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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게임개발 허들시스템, 잘못 쓰면 ‘독’ 된다

일부 개발사들의 무분별한 검증시스템 부작용 양산

2007-08-14 16:46:04

넥슨의 '허들시스템'과 엔씨소프트의 'PRC', 'MRC' 등 내부 개발 검증 시스템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를 무작정 도입했던 게임업체들이 갖가지 부작용을 겪고 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몇 해 전부터 게임을 개발 단계별로 구분해서 회사 내부의 실무진 및 임원들이 자체적인 검증 과정을 갖고 있다. 요즘에는 여러 퍼블리셔와 개발사들도 다양한 검증시스템을 도입,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넥슨의 경우 각 테스트 과정에서 모두 허들시스템으로 검증이 이뤄지고, 퍼블리싱게임 검증 과정에는 3명의 사장이 모두 참여한다. 만약 관련 인원이 해외 출장중인 경우에는 화상회의를 통해서라도 검증에 참여할만큼 허들시스템은 회사의 중추적인 검증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 고민 없이 따라했던 개발사들 부작용’에 골치 

 


문제는 '허들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검증 시스템을 아무런 고민 없이 도입했던 일부 개발사들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개발사들은 개발자 이탈, 매출 감소 등 갖가지 부작용을 겪고 있다. 특히 여러 구성원이 서로의 프로젝트를 '크로스 리뷰'하는 방식인 허들시스템의 특징 때문에 회사 내부의 '줄서기'나 '정치 싸움'으로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한 중소 개발업체의 사장은 "몇 해 전 화제가 됐던 허들시스템을 우리 회사에도 도입했으나 결국 정치 싸움을 부추기는 꼴만 됐다. 개발 이사와 팀장급에서 사소한 마찰이 일어나더니, 지금은 회사가 사분오열되었다. 최근에는 한 개발팀장을 중심으로 팀 전체가 '개발 이사와는 일 못하겠다'며 회사를 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즉, 서로의 게임 프로젝트를 검증하던 도중 정치적인, 혹은 감정적인 이유의 '딴지걸기'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런 '태클'이 계속되자 회사 구성원간의 신뢰에도 금이 갔다는 것이다.

 

 

◆ 정작 중요한 유저대상 테스트는 뒷전

 

정작 중요한 '유저'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예전 같으면 충분히 베타테스트로 유저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만한 완성도의 게임도, 허들시스템에서 다뤄지게 되면 '개발자들끼리만 아웅다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허들시스템으로 인해 테스트 한번 못해보고 결국 프로젝트를 접었던 한 개발사의 팀장은 "당장 유저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파악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테스트'다. 테스트조차 진행하지 못하게 막아놓고서, 개발경력이 5~6년씩 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 게임은 이게 문제야' 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했다. 그래도 열심히 만든 게임인데, 유저들의 평가는 한번 받아봐야 할 것 아닌가"라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런 허들시스템의 부작용은 회사의 구조나 개발팀 인원 구성이 모두 다름에도 무조건 유명 회사의 검증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업계 최고인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모두 검증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니까 우리도 당장 도입해야하지 않겠냐"는 조바심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잘 쓰면 이 되고, 잘못 쓰면 이 된다

 

허들시스템을 무작정 따라하다가 여러가지 부작용을 겪는 개발사들이 생겨나면서 여러가지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아무리 좋다는 시스템이라도 회사의 상황을 감안해 체질에 맞춰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개발사의 프로그래머는 "넥슨이나 엔씨에는 좋은 게임을 개발해본 경력 많은 개발자들이 많다. 쉽게 말해서 김동건 본부장이나 배재현 상무 같은 사람에게 내가 만든 게임을 평가받는다면 그건 납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신생 개발사인 우리 회사에서는 믿고 검증을 맡길만한 사람이 없다. 또 이런 환경에서 내부 검증을 받다보니, 게임을 모르는 비개발 임원(마케팅, 경영)들의 엉뚱한 '문제 제기'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고 말했다.

 

넥슨과 엔씨의 개발력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는 내부 검증 시스템. 하지만 회사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무분별한 시스템의 도입은 오히려 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