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모바일게임 시장의 '표절논란'이 다시 한 번 불거졌다. <로스트테일>(중국명:미성물어)이 한국 서비스를 결정하면서부터다.
넥스트무브는 2016년 12월 15일 신작 모바일 MMORPG인 <로스트테일>의 국내 퍼블리싱을 발표했다. 문제는 <로스트테일>이 중국에서 공개 당시부터 <트리오브세이비어>(이하 TOS)와 표절 논란을 빚었던 게임인 <미성물어>(迷城物语)라는 점이다.
텐진의 러도 인터랙티브(乐道互动)가 만든 <미성물어>는 중국 매체에서도 <TOS>와 그래픽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게임이다.
<TOS>를 개발했고, <TOS 모바일>을 준비 중인 IMC게임즈는 크게 반발했다. 퍼블리셔인 넥슨은 출시 후 상황에 따라서는 법적조치까지 예고했다. 오랜만에 불거진 표절 논란. 과연 무엇이 문제고, 양쪽은 어떤 입장을 내세우고 있을까. 디스이즈게임에서 <미성물어>의 국내 서비스와 관련된 논란을 정리했다. /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관련기사
[이슈분석 ①] 로스트테일, 트리오브세이비어 표절논란. 무엇이 문제길래? (현재기사)
[이슈분석 ②] 끊이지 않는 한-중 표절게임 논란, 어떤 이슈 있었나
[칼럼] 중국 게임의 표절 논란,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 국내버전 <로스트테일>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 만큼 기사에서는 원작인 <미성물어>와 <로스트테일>을 별도로 표기했다. <迷城物语>의 중국발음은 <미청우위>지만 <미성물어>라는 이름으로 이미 알려진 만큼 기사에서는 <미성물어>로 통일했다.
# 누가 봐도 비슷한 분위기.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이미지
<미성물어>는 3D 배경에 2D 캐릭터를 조합한 그래픽부터, 사용하는 색의 구성이나 몬스터, 오브젝트의 디자인 등 게임 곳곳에서 <TOS>를 연상시킨다.
마을에는 기도하는 모습의 거대한 여신상이 나무로 둘러싸인 우물 한 가운데 놓여 있고, 바닥의 철망 사이로 불이 흘러간다. 벽에는 투박한 책장이 빼곡하게 늘어선 용암성(熔岩城堡)은 <TOS>의 마법사의 탑을 떠오르게 만든다.
천정에 닿을 듯한 파란 수정과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목재 구조물, 파괴된 나무선로 등으로 가득한 경험동굴(经验洞穴) 역시 <TOS> 초반에 만나는 수정광산과 지나치게 닮았다. 설명만 놓고 보면 다른 게임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구조지만 색감과 오브젝트의 세부적인 디자인까지 비슷하다 보니 더 순간 같은 게임처럼 보일 정도다.
몬스터의 디자인은 더 닮았다. <TOS>에 나오는 거북이형 몬스터인 '매그버크'는 뿔이 등으로 조금 옮겨간 모양으로, '아모리'는 손의 철퇴 대신 철망치를 낀 모습으로, 호그마 궁수나 전투병은 차이를 찾기 어려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성물어>만 놓고 봤을 때는 분위기나 색감은 둘째치고 몬스터 때문이라도 <TOS>와의 '유사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이런 유사성은 중국 게임매체로부터도 지적을 받았다.
지난 8월 25일 Appgame은 "캐릭터의 모습, 게임 화면 등이 한국 온라인게임 스타일에 가깝고, <라그나로크>의 아버지 김학규의 신작<TOS>와 아트 스타일이 매우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원문: 但人物角色的外形、游戏场景等都更偏向韩国网游的风格,而且和《仙境传说》之父金学圭的新作《救世之树》的美术风格很相似。)
# 현실적으로 어려운 표절 입증. 부정경쟁행위로 다툴 가능성 높아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표절 혐의가 매우 짙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미성물어>를 <TOS>의 표절작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저작권법의 적용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게임의 '아이디어'와 '표현' 중 표현만 보호하지만, 표현의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서도 매우 깐깐하다.
[게임과 법] 저작권법은 '표현'은 보호하지만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는다 [바로가기]
[게임과 법] 저작권법이 보호하지 않는 게임과 관련된 몇 가지 표현들 [바로가기]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유사성이 아닌 두 게임 사이에 실질적으로 동일한 부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막에서 더위를 피해 가벼운 복장을 걸친 캐릭터나, 광산에 놓인 선로처럼 전형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들은 저작권법에서 ‘표준적 삽화의 원칙(Scènes à Faire)’이라고 해서 보호하기 곤란하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단순한 분위기나 색감, 일부 디자인 정도로는 저작권 침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미성물어>의 열염구왕(왼쪽)과 <TOS>의 매그머크(오른쪽)
게임업계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은 사례도 극히 드물다. 일러스트 트레이싱(그대로 대고 베낌)이나 일부 콘텐츠에서 표절을 인정한 경우는 있어도, 법정에서 저작권 침해을 내세워 승소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적인 시선, 심증으로는 확실해도 저작권법은 피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이 이슈는 저작권보다는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다툴 가능성이 크다. 2013년 신설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 덕분이다.
(차)목은 '부정경쟁행위'의 유형 중 하나로 '그 밖에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포함했다.
예를 들어 상호는 다르지만 유명 매장과 인테리어를 비슷하게 꾸미거나, 특정 게임과 거의 동일한 스테이지를 제공하는 등 완전히 똑같은 상품은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상품이 가진 명성을 이용해서 이익을 보려는 행위 등이 부정경쟁에 속한다. 저작권법의 법리 상 적용할 수 없었던 '카피캣'에 제약을 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2015년 10월 킹닷컴이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의 <포레스트매니아>를 상대로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을 때도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상의 부정경쟁행위'로 <팜히어로사가>의 권리를 침해한 것을 인정받았다. 최근 <불루마불>과 <모두의 마블>의 소송도 저작권보다는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다툴 가능성이 크다.
[게임과 법]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킹닷컴 vs 아보카도엔터 제1심 판결 해설 [바로가기]
[팩트체크] ‘부루마불’ vs ‘모두의마블’, 회사 미래를 건 카피캣 논란 [바로가기]
<미성물어>의 용암의탑 몬스터(왼쪽)과 <TOS>의 아모리(오른쪽)
# 법적조치 예고한 넥슨, 게임 출시 후 대응하겠다는 넥스트무브
# 만연한 모바일게임 유사성 논란. 해결기회 될까?
최근 모바일게임 숫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인기 IP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리니지>시리즈를 이용한 모바일게임이 나란히 1, 2위를 다투는 중이다.
IP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라이선스는 받지 않고 교묘한 방법으로 특정 IP를 연상시키거나, 일부 콘텐츠를 바꾸는 등의 '꼼수'를 사용하는 개발사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연말 <리니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엔씨소프트로부터 소송을 당한 이츠게임즈의 <아덴>도 그런 혐의를 의심받고 있다.
특히 저작권 인식이 국내보다 약한 중국에서는 <미성물어>처럼 특정 게임과 유사한 콘셉트를 이용하거나 일부 콘텐츠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해당게임이 국내 시장에 출시되며 논란을 겪은 사례도 <로스트테일>만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바일 유사성 논란이 공론화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한 업계관계자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필요한데 지금은 그조차 없다. 이번 사건에서 양쪽 모두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는 만큼 이를 계기로 IP의 유사성에 대한 확실한 선이 그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