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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 17] 글로벌 유저 마음 사로잡은 '이블팩토리', 무엇이 달랐을까?

네오플 기키스튜디오 황재호 팀장 "차별화에 집중하고, 덜어낼 수 있는 건 다 버렸다"

장이슬(토망) 2017-04-27 21:03:55

"넥슨이 이걸?" 

 

그간 넥슨이 출시한 게임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래픽도 픽셀이었고, 게임은 무척 어려운데다 과금 상품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해외 스트리머들이 나서서 방송을 하는 등 반응도 남달랐다. 어떤 점이 <이블팩토리>의 '엣지'이고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간지'일까? 황 팀장에게 직접 들어보자.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네오플 기키스튜디오 황재호 팀장


 <이블팩토리> 프로모션 영상

 

 

# 괴작 혹은 글로벌 갓겜의 역습

 

넥슨의 게임 스튜디오 네오플에는 실험적인 게임을 만드는 '기키스튜디오'가 있다. 팀이라고 해도 황재호 팀장이 기획을 겸임하고, 도트 그래픽을 만든 두 명,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두 명 해서 소규모 5인 팀이다. 황 팀장은 기키스튜디오를 맡아 레트로풍 아케이드 게임 <이블팩토리>를 개발했다. 

 

<이블팩토리>는 세로 뷰의 픽셀 그래픽이 특징으로, 강력한 보스들에게 맞서 폭탄과 시간 감속을 활용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액션 게임이다. 보스들은 여러 가지 패턴으로 주인공을 공격하고, 주인공은 한 대라도 맞으면 그대로 죽는다. 유일한 무기인 폭탄도 바로 터지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보스에게 근접해야 한다. 높은 난이도와 정교한 콘트롤이 필요한 게임이다.

 

총 개발 기간은 19개월로, 2016 지스타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올해 2월 넥슨 아메리카의 퍼블리싱을 받아 글로벌 동시 출시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155개국에서 피처드됐고,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는 126개국에서 피처드됐다. 출시 35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글로벌 150만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북미에서 가장 다운로드가 많았고, 브라질과 러시아가 뒤를 이었다. 해외 반응 역시 고무적이었고, 특히 스트리머들의 방송이 많았다. 반면 국내에서는 반응이 조금 달랐다. 

 

앱스토어에서는 <슈퍼 마리오 런>이 한국어화되면서 순위가 밀렸고, 스토어 리뷰에서는 "이게 넥슨?", "넥슨이니 최하점을 주고 시작한다" 라는 둥 기존 넥슨의 이미지와 결부시켜 판단하는 유저가 많았다. 국내 스트리머 '메탈킴'은 자신이 넥슨 게임을 칭찬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리뷰 영상을 올렸다. 

 

분명 소규모 개발에 비해 뜨거운 반응이었다. 좋지 않은 지표도 있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골고루 다운로드받았고, 레트로풍 그래픽이나 게임 콘셉트 등 호평하는 부분도 만국 유저들이 모두 비슷했다. 하지만 비판하는 점도 비슷했다. '조작감이 나쁘고 볼륨이 작다'며 혹독한 점수를 준 유저도 많았다. 비슷한 이유로 최하점을 준 한 이탈리어 유저의 리뷰는 엉성한 기계 번역 때문에 '음란한 컨트롤'이라는 유머 소재가 됐다.

 

종합하면, <이블팩토리>는 치명적인 단점과 부족한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셀링 포인트 덕분에 큰 반응을 부를 수 있었다. 명확한 셀링 포인트, 그것을 '엣지'라고 부른다.

 


 

 

# 엣지란 무엇인가

 

'엣지' 있는 게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황 팀장은 엣지를 구성하는 요소를 '차별화'와 '간지'라고 표현했다. 

 

먼저 '차별화'는 게임 내부 요소를 어떻게 조합하는가의 문제다. 게임 음악 작곡가 이논 주르는 익숙함과 독창성의 비율은 8:2, 15~20%만 독창적인 편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간혹 차별화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유저는 너무 낯설어서 소외감을 느낀다. 

 

황 팀장은 익숙함과 독창성을 잘 조화해 '엣지'를 만든 게임으로 <알토 어드벤처>, <에그 잉크>, <히든포크스>, <좀비캐처>를 뽑았다. <알토 어드벤처>는 아름다운 아트로 차별화를 꾀했고, <에그 잉크>는 평범한 방치형 게임이지만 양계장이라는 소재와 독특한 아트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히든 포크스>는 숨은그림찾기를 극대화했고 <좀비캐처>는 자원을 수집해 생산하고 판매하는 게임에서 '뇌로 꾀어 좀비를 작살로 잡는다'는 아이디어를 가미했다. 

 


 

"차별화할 부분 20은 정말 과감하게 해야 합니다. 다들 우리 게임은 양산형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옷만 다른 정도의 차별화에요. 더 강한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넥슨 아메리카에 한국 게임을 가져가면 반응이 똑같아요. 'Just another Asian game...' 똑같은 아시안 게임이다, 이런 말 들으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블팩토리>는 세 가지 핵심적인 차별점을 만들었다. '고퀄 정통 아케이드 게임', '타겟층에게 먹히는 감성 코드', '기존에 없던 플레이 방식'. 이 세 가지를 과감하게 만들자. 그리고 이를 포장하는 '간지'로 레트로풍 픽셀 아트, 레트로하지 않은 사운드, 서구권에 먹힐 만한 로고를 만들기로 했다. 

 


 


 

 

# 주인공이 너무 강하면 재미가 없더라

 

황 팀장이 처음에 구상한 것은 괴수를 조합해 도시를 파괴하는 게임이었다. 괴수물을 좋아해서 이런 컨셉을 잡았지만, 막상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니 재미가 없었다. 주인공이 너무 강하고, 모바일에 맞춰 조작을 단순화했더니 게임이 너무 지루해졌다. 

 

이걸 그대로 뒤집기로 했다. 공격 옵션은 다양하게 만들고, 터무니없이 약한 주인공을 만드는 거다. 주인공이 약해질 만한 상황을 전부 넣어봤다. 거대 보스와 일대일 대전이고, 보스는 원거리에서 탄막을 쏘아대는데 주인공은 바짝 붙어서 근접 공격을 해야 한다. 무서운 보스와 혼자 싸워야 한다는 위압감을 주기 위해 세로형 UI를 선택했다. 이렇게 <이블팩토리>의 콘셉트가 만들어졌다.

 

괴수가 주인공인 프로토타입 게임을 뒤집어 <이블팩토리>를 만들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마케팅 비용을 전혀 받지 못했으니, 게임성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회사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게임을 보여주며 자발적인 사내 테스트를 했다. 처음에는 한 손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었지만, 어려운 게임에 임하는 유저는 긴장감 때문에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잡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양손 플레이로 바꿨다. 테스트에 임한 사람들로부터 점수도 받았다. 처음에는 낮았다가 목표 점수인 80점에 도달했다. 

 

전반적으로 긴장감이나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전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적받은 요소는 다양했다. 그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지적받는 조작감과 볼륨이었다. 하지만 모든 피드백을 다 수용하면 평범한 게임이 된다고 생각한 황 팀장은 게임을 차별화하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 왜 이 게임을 해야 할까, 답을 줘야 한다 

 

모든 게임 기획자들이 고민하는 문제다. 다른 게임도 많은데, 왜 우리 게임을 해야 하나? 황 팀장은 '엣지'로 답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블팩토리>는 먼저 '고퀄 정통 아케이드 게임'을 내세웠다. 수치가 눈에 보여 승과 패가 명확한 RPG와 달리, 아케이드 게임은 오로지 유저의 능력에 기반하기 때문에 게임이 어렵다. 실력만 있다면 원코인 클리어도 가능하니 수익화 역시 어렵다. 그러다보니 모바일게임 시장에 아케이드 게임은 있지만, 좋은 퀄리티의 게임은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이 수요층을 빈틈 시장이라 보고 여기에 집중했다. 

 

아케이드 게임은 '이론적으로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깰 수 있는 게임이다. 보스의 패턴은 반드시 틈이 있으며, 무기 강화가 전투에 미치는 영향은 절반이 안 된다. 클리어를 실패하면 코인을 넣게 해서 매출을 유도한다. 해외 매체들은 이런 특성 때문에 <이블팩토리>를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정의했다. 

 


 

두 번째 차별화로, '타겟층에 먹히는 감성 코드'를 적극 채용했다. <이블팩토리>는 타겟 유저를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80~90년대 일본 게임을 해본 경험이 있는 서구권 유저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며 도전 욕구가 있는 남성으로. 

 

그래서 게임에도 <신세계 에반게리온>, <봄버맨>, <메탈 기어 솔리드>, <걸즈 앤 판처>를 떠올릴 수 있는 오마주를 넣었다. 단, 너무 과하면 안 된다. 적절한 수준으로 가져와야 유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긍정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 바이럴 가능성이 올라간다. 게임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친구나 동료에게 게임을 소개해준다면? 소개 받은 사람 역시 이 코드에 공감할 수 있는 타겟 유저일 가능성이 높다. <이블팩토리>역시 기대한 대로 바이럴이 발생했다.

 


 


 

세 번째 차별화는 '기존에 없는 플레이 방식'이다. 액션 게임은 근접전이다. 보스의 공격을 피해 가까이 다가가 버튼 러시로 대미지를 주는 방식이다. 긴장감은 있지만 모바일에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고전 슈팅 게임은 원거리와 원거리의 싸움이다. 움직임이 좌우로 제한되기에 모바일에서 가장 적합한 방식이긴 하지만, <이블팩토리>가 추구하는 긴장감을 위해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보스의 원거리 공격-플레이어의 근접 시간차 공격-플레이어의 도주로 이어지는 패턴을 개발했다. 보스의 공격을 피하고  폭발 시간을 계산해 폭탄을 놓는다. 안전한 곳으로 도주한다. 이렇게 만드니 긴장감은 있는데, 이동 피로감이 크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고민 끝에 <맥스 페인>처럼 탄막을 피할 수 있는 시간 감속 요소를 도입했다. 덕분에 한 방에 죽는 주인공, 타이밍 공격, 시간 감속이라는 차별화된 게임 메카닉스가 구축됐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 게임 평가는 좋지만 유니크하다는 평을 많이 못 듣는 것 같아요. <이블팩토리>는 출시하고 나서 정말 독특하다고 많이 들어서 고무적이지 않나 자평합니다."

 


 


# 레트로 그래픽, 세련된 사운드, 해골 로고를 융합해 간지를 소환한다!

 

많은 한국 게임이 차별화보다는 끌리는 외양, 즉 '간지'를 만드는 데 실패한다. '간지'는 문화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권과 동양권의 게임 아트 취향은 매우 다르다. <록맨>의 각국 게임 표지는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일본 문화가 많이 퍼진 단계에서 발매된 <록맨 2> 게임보이 표지도 완벽하게 간극을 좁힐 수는 없었다. 품질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픽셀 아트였다. 일본 게임이 세계를 호령한 시절이 있기 때문에 8비트, 16비트 풍의 픽셀 아트는 향수의 대상이자 동서양의 공통적인 게임 경험이다. '베베메탈'이나 '싸이'가 고유의 콘셉트로 월드 스타가 된 것처럼, 시간이 별로 없는 소규모 팀이라면 어설프게 서구 취향을 따라가기보다 유리한 것을 취하는 것이 좋다. 

 


 

이제 사운드를 정할 차례다. 레트로 그래픽은 미디 사운드와 조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핫라인 마이애미>, <크립트 오브 네크로댄서>, <뉴클리어 스론>처럼 픽셀 그래픽에 세련된 사운드를 입힌 게임도 매력적이다. 

 

국내에는 어울리는 작곡가가 없어 <뉴클리어 스론>의 OST를 담당한 핀란드의 작곡가 '주카이오 칼라이오'를 섭외했다. 비용도 한국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보안 문제로 빌드를 직접 줄 수는 없었지만, 영상과 스크린샷을 주고받으며 작업했고, 덕분에 사내 테스트 및 구글 플레이 사운드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서구권에 먹히는 멋진 로고를 만들려 했으나, 퍼블리셔인 넥슨 아메리카와 크게 충돌했다. 기키스튜디오는 <다크소울>처럼 무겁고 하드코어한 액션 게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딱딱하고 거친 느낌으로 로고를 디자인했다. 그러나 넥슨 아메리카는 생각이 달랐다. <이블팩토리>는 가볍고 캐주얼한 아케이드 게임이니, 유머스럽고 아기자기한 로고가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장난하는 줄 알았어요. '우리 게임에는 해골이 안 나와요!' 했더니 '미국 사람들은 해골 좋아해요! 게임에 꼭 안 나와도 됩니다! 이게 쿨해요!' 랍니다. 격한 대화가 오갔고, 결국 합의한 게 지금의 로고에요. 출시하고 나서도 걱정했어요. 해골 안 나오는데 오해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막상 출시하니 해골은 아무도 신경 안 쓰더라고요. 기획적 논리보다는 현지 피드백이 절대적입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했더니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 차별화할 것을 정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라

 

<이블팩토리>는 목표로 한 '엣지'를 위해 정말 많은 것을 버렸다. 심지어 '유저 수'도 포기한 것 중 하나였다.

 

"게임을 출시하고 보니 1챕터에서 약 75%의 유저가 이탈합니다. 저희 퍼블리셔는 1챕터 난이도를 고치라고 했어요. 거절했습니다. 저걸 포기하면 뒤에 남은 25% 유저가 재미 없어해요."

 

하드코어 콘셉트를 위해 매끄러운 초반 플로우를 포기했고, 사운드 퀄리티를 위해 영상 예산을 작곡가에게 전부 올인했다. 아케이드 요소를 위해 조작감과 매출 요소를 과감히 축소했고, '넥슨 게임'에 으례 붙이는 로그인 시스템도 뺐다. 

 


 

매주 새로 출시되는 게임은 3,500개에 육박한다. 이 중에서 소규모 팀의 게임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핵심이다. 먼저 게임의 핵심 차별 요소를 정하고 나머지는 전부 덜어내야 한다.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극대화할 것은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황 팀장은 "어느 선에서 새롭게 갈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중이고, 기키스튜디오 같은 소규모 스튜디오는 계속 유지하려고 합니다." 라고 강연을 마무리하며, 앞으로도 색다른 게임을 계속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