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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위메이드로부터 100억 투자 취소 통보받은 '보이저엑스'의 사연

보이저엑스 남세동 대표 페이스북에 4개월 간의 경험 적어

임상훈(시몬) 2017-05-06 16:01:04

지난달 '8개월 크런치 모드'로 비난을 샀던 위메이드가 스타트업 100억 원 투자 취소 이슈로 다시 한번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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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메이드는 딥러닝(인공지능) 스타트업 '보이저엑스'(VoyagerX)의 창업자에게 100억 원 투자를 권유하고, 투자하기로 약속하고 거듭 재확인해줬으나, 지난달 특별한 이유 없이 박관호 의장의 의사에 따라 일방적으로 투자를 취소했다.

 

투자 및 대출 약속을 받고 사무실를 임대하고, 창업자 본인 및 창업 멤버들이 기존 직장에서 사표를 쓴 시점에 갑작스럽게 투자가 무산돼 더욱 큰 안타까움을 샀다. 

 

이 같은 사실은 보이저엑스의 남세동 대표가 5월 2일 이후 본인의 페이스북에 연재식으로 '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는 글을 게재하며 널리 알려지게 됐다.  [남세동 대표의 페이스북]

 

남세동 대표는카이스트 재학 중 네오위즈에서 인턴으로 들어가 '세이클럽'을 개발한 뛰어난 개발자로, 장병규 대표와 함께 포털 사이트 '첫눈' 창업에 참여한 인물이다. 첫눈이 네이버에 인수된 뒤, 일본으로 넘어가 '라인 카메라'와 'B612'등의 앱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일본에 체류하며 '딥 러닝' 기술을 활용한 제품과 서비스를 연구하다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의 제안을 받고 '보이저엑스'를 창업했다.

 

남 대표가 페이스북에 적은 4개월 간 겪은 일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지 출처: 남세동 대표 페이스북)

 

1월 09일: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로부터 미팅 요청.

1월 15일: 장현국 대표와 압구정 티타임. 창업 및 100억 원 투자(600억 밸류에이션) 제안받음.

2월 16일: 장현국 대표와 삼성동 레스토랑 다이닝텐트 미팅. 100억 원 투자 재확인. (창업 결심하게 됨.)

 



2월 17일: 장현국 대표, 위메이드 투자 실무자 소개시켜주고, 샘플 계약서 보내줌. 이후 남 대표에게 사무실 임대 및 구인 활동 독려. 사무실 보증금 위해 10억 원 금전대차(대출) 계약하기로 합의. 계약 성사 확실한지 재차 문의했고, 거듭 확인해줌.

 

2월 18일 ~ 4월 23일

- 남 대표는 두 개의 직장 그만 둠. 합류하기로 한 멤버들은 회사(카카오, 라인 등)나 주변에 퇴사 통보. 일본에 있던 아내도 직장에 퇴사 이야기함. 

- 남 대표 측 로펌과 위메이드 법무팀, 10억 원 금전대차계약서 검토 마무리.

- 3,000만원 계약금 내고 사무실 계약. 장현국 대표, "잘 하셨습니다."와 "좋은데요."라고 피드백 줌.

- 800만원 컴퓨터 구입.

- 한국에 거주할 집 계약.

- 위메이드가 대출해주기로 한 10억 원은 회사 내부 절차상 9억 원으로 조정해 4월 말보다 5월 1일 보내는 게 편하다고 연락이 옴. 그렇게 하기로 함.

- 위메이드 법무팀 검토 끝난 100억 원 계약서를 남 대표 측 로펌이 검토하고 다시 위메이드에 전달.

 

4월 24일

- 오후 1시, 박관호 의장과 위메이드에서 미팅. 투자 약속 받음. 밸류에이션 낮춰달라는 요청 받음.

- 오후 4시, 위메이드 투자 담당자로부터 전화. 300억 원으로 밸류에이션 조정하는 어떻겠냐고 물어봄.

- 오후 5시, 위메이드 투자 담당자로부터 전화. 10억 원 금전대차계약 절차 이야기 나눔. 보이저엑스 통장사본 전달하고, 25일 계약서 3부 프린트해 도장 찍어서 위메이드에 보내면 다음날(26일) 위메이드에서 도장 찍어 보내주기로 함.

- 저녁, 밸류에이션을 500억 원으로 줄이는 것까지 생각하고 장현국 대표에게 연락했으나, 바쁘다는 피드백 받음.

 

4월 25일 

- 아침, 위메이드 투자 담당자로부터 전화. 이메일 봤는지 문의. 

 

 

- 이메일 확인 뒤 위메이드 투자담당자와 통화. 어제(24일) 밤 박관호 의장이 장현국 대표에게 전화해서 투자 못하겠다는 의사 전달했고, 장 대표가 설득하려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함.

- 장현국 대표에게 통화 시도했으나 받지 않음. 카톡으로 연락하니 곧 연락을 준다고 함. 약 1시간 30분 뒤 중국행 비행기 탔으니 도착해서 연락 주겠다는 카톡 메시지 옴.

- 오후 5시, 장현국 대표와 통화가 됨. 박 의장과 사전에 이야기하면서 진행했던 건이어서, 장 대표도 이렇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함.

 

5월 02일 이후

- 명예훼손죄 명예롭게 받아들일 각오로 4개월간 겪고 깨달은 일 적기 시작.

 

 

- 페이스북 글들을 본 위메이드 투자 담당자로부터 카톡 메시지 받음.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투자 취소 결정을 이메일로 통보받은 남 대표는 소송을 생각하고 변호사를 만났다. 하지만, ▲​3년 정도로 예상되는 소송기간 ▲차후 투자 유치의 어려움 ▲승소하더라도 수 천만원 대로 그칠 ​배상액수 등으로 그만두었다고 적었다.

 

대신 남세동 대표는 업계에 이런 일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겪은 일을 공유한다고 밝혔다.

 

"약 20년 이 업계에서 살아 왔고, 운 좋게도 우리 업계의 여러분들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받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제가 겪고 깨달은 것을 업계의 여러분들께 공유하는 것이 그 동안 제가 받아온 것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업자가 조심하든, 투자사가 조심하든, 어느 쪽이 바뀌든, 우리 업계에서 이런 일이 줄어들길 바랍니다." ​

 

5월 5일 남 대표는 제목 끝에 '마지막(?)'을 단 16편을 적었다. 자칫 '비극'으로 끝났을 이번 일에서 다시 '희망'을 본 사연이 적혀 있었다.

 

고민하던 중 엔젤 투자자 선배들, 성공한 동료 창업자들이 생각났다. 몇 시간 연락을 돌렸더니 순식간에 몇 억 원의 투자금이 모였다. 이 사람들도 참... 뭐 대부분 아무 내용도 듣지도 않고 일단 급할 텐데 얼마 넣어주면 되는지부터 묻는다. 연휴 기간이다보니 해외에 계신 분들이 많았는데, 급하면 엔젤 투자(별 조건 없는 보통주 투자) 계약서 도장 찍기 전에 일단 입금부터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중략)

멤버들에게 이 기쁜 사실을 알렸다. 우리가 최소한 1년은 더 해 볼 수 있겠다! 

(중략)

엔젤들이 얘기했다. 다른 듯 비슷한 듯 한 얘기들이었는데 섞어 보면 이렇다. 극도의 공포 상태구나. 사실 번지점프, 그거 그냥 하면 되는 건데, 누가 뒤에서 발로 차면 안 되지. 사업은 워낙 힘든 건데 시작할때라도 편한 마음으로 시작해야지 그렇게 두려운 상태에서 시작하면 안 된다. 지나고 보면 이거 다 별거 아닐 거다. 사업 하다 보면 다 겪는 과정이다. 힘 내라.

 

멤버들이 얘기했다. 마음 회복될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이렇게 보이저엑스 호는 일단 멈췄다. 우주(5개월 된 아들)가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크게 잘 울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