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게임계에는 ‘외산게임 필패론’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 <에버퀘스트> <애쉬론즈 콜>는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게임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동시 접속자 수천 명 이하를 기록하며 고전하다가 결국에는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 같은 사례를 들어 해외, 특히 서구의 게임은 국내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외산 게임 필패론’이란 말은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최근에는 앞다투어 해외 게임들의 국내 퍼블리싱을 진행하기도 할 정도다. 이 같이 급변한 시장 상황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 화두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어떻게 해야 다른 시장에서 성공하는 게임들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국내 게임업계는 당연히 “어떻게 해야 최대의 게임시장인 북미와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바이오웨어의 공동 스튜디오 디렉터 고든 왈튼(Gordon Walton)이 지난 9일 열린 KGC 2007의 기조 강연에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풀어놓았다. 이름하여 “서구 시장에서 성공하는 법”이다. 강연 내용을 아래에 소개한다. /디스이즈게임 황성철 기자
강연을 시작하면서 고든 왈튼은 우선 한 시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성공하는 게임들이 흔치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서양에서 아시아로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대부분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나 몇몇 게임들은 다르다. <울티마 온라인>의 경우 일본에서 10만 카피가 팔렸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한국과 중국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게임 내용을 많이 수정하지 않고도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MMO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공한 게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지 않을까? 고든 왈튼은 브랜드를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었다. 타겟 시장에서 해당 게임의 브랜드가 얼마나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울티마>는 일본 내에서 기존 패키지의 판매로 상당히 잘 알려진 브랜드였습니다. 블리자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으로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였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시기(Timing)입니다. 너무 늦어서는 안됩니다. 적절한 시기에 게임을 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왜 다른 시장으로 진출한 게임들이 실패하는 것일까?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 <리니지>. 그러나 해외 시장, 특히 북미지역에서의 성적은 무척이나 초라하다. 고든 왈튼은 <리니지>의 사례를 상당히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 <리니지>의 미국실패는 낮은 인지도·인터페이스·타이밍 때문
“한국 게임의 사례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리니지>는 왜 미국에서 실패했을까요? 바로 브랜드 인지도가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게이머들의 브랜드 수용도가 무척이나 낮았습니다. 게다가 인터페이스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든 왈튼이 KGC 기조 강연에서 '서구 시장에서 성공하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든 왈튼은 환경의 차이도 <리니지>의 서구시장 진입 실패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바로 한국 특유의 PC방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런칭 후 몇 년이 지난 게임을 서구로 보내는 것은 경쟁에서 뒤쳐지는 행위다. 이미 시장의 트렌드와 동떨어진 게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과 아시아의 미적 감각의 차이도 중요한 차이라고 했다.
“주인공들의 외모를 비롯한 아트 스타일도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리니지2>와 <아크로드>의 캐릭터는 매우 섬세하나 서구 게임들의 캐릭터들은 우락부락합니다. 서구에서 바바리안이 잘 생겼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한편, 고든 왈튼은 최근 양쪽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게임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를 들어 <이브온라인>은 최근 중국에서 런칭이후 2~3만 명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라그나로크>와 <메이플스토리>도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게임이다. 특히 그는 <메이플 스토리>와 같은 캐주얼 게임들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이들 게임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요인은 바로 아시아에서 검증된 새로운 과금 방식에 서구의 젊은 유저층이 적응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는 서구시장에서 성공하는 MMO가 가져야 할 조건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는 게임 플레이에서의 혁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바꾸는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는 게임 플레이에서 혁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편안하면서도 조금의 혁신이 있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이전 게임보다 조금이라도 다른 게임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터페이스도 중요한 요인이다. 대부분의 서구 게임들은 이른바 ‘WASD’ 조작 방식을 사용한다. 양손을 모두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게임들은 마우스를 이용한 한 손 조작 방식이 우세하다. 이 같은 점 때문에 국내 게임의 해외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또 서구 게이머들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먼저 반복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새로운 게임요소를 주기적으로 도입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에는 50~70레벨을 달성할 동안 계속해서 똑같은 것을 반복하도록 하였으나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서양이건 아시아이건 게임 디자이너에게 어려운 과제입니다.”
PvP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PvP만 강조해서는 캐주얼 게이머의 반감을 불러와 전체적으로 유저 계층이 얇아지는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PvE 요소와의 적절한 조화를 강조했다.
물론 <퓨리>나 <길드워>와 같이 PvP에 특화된 게임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고든 왈튼은 그들 게임이 태생적으로 많은 유저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속해서 좀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이야기들을 이어나갔다.
“서구 게이머들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적거나 불가능한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서구 문화는 개성을 굉장히 중시합니다. 그래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북미 MMO 베테랑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몰려든 청중들.
◆ 서양 유저들, 아시아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서구 시장의 상황은 어떻게 변화할까?
고든 왈튼은 첫번째로 바로 젊은 계층이 '트렌드 세터'가 된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서구의 어린 유저층은 아시아의 미적 감각과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들이 서구에서 보다 많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그는 다양한 과금 방식의 적용 역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시아에서 익숙한 핸드폰 결제, 게임 카드 등이 서구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서구 시장에서 부분 유료화 방식을 적용중인 게임들이 있다. 해외 개발사들도 다양한 과금 방식의 적용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기도 하다.
세번째로 그는 웹 클라이언트로의 중심 이동을 들었다. 그는 디스이즈게임과의 인터뷰에서 웹 기반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최근 <클럽 펭귄>과 같은 웹기반 캐주얼 온라인 게임들은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고든 왈튼은 짧은 강연시간 동안 여러가지를 이야기했다.
인터페이스, 캐릭터의 미적감각, 새로운 컨텐츠 등이 추구하는 목적은 모두 같다. 바로 성공하는 MMO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는 특히 보다 많은 유저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수의 하드코어 유저를 포용하되 다수의 캐주얼 게이머를 끌어들일 수 있어야 성공하는 MMO가 된다는 말이다.
한편, 특유의 강연 스타일답게 이번 기조 강연에도 많은 Q&A가 이루어졌다. 몇 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Q: 아시아의 온라인 게임들이 유럽에 많이 진출했다. 그것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인상은 어땠는가? A: 유럽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북미와 비슷한 것 같다. 젊은 층의 호응이 있다. 직접 게임을 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다. 어린이들이 보다 인터넷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그들이 더 잘 적응하는 것 같다. Q: 서양에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다른 게임의 매출액 차이가 무척 심하다. 이 때문에 서양 게임의 성공할 수 있는 기준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기준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A: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굉장히 독특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블리자드의 경우는 게임 플레이 등에서 굉장히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MMO의 성공의 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가’이다. 사람들이 일단 플레이해보고 게임이 좋으면 남아있고 그렇지 않으면 떠난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기준은 브랜드였다. <리니지>도 비슷하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미국 시장에서 <리니지> 만화를 출판하겠다. 중요한 것은 가입자의 임계점을 높이는 것이다. Q: 닌텐도 Wii에 대한 질문이다. 북미 시장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아까 PT에서 봤을 때는 젊은 세대가 아시아 컨텐츠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Wii와 같은 경우는 모든 세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컨텐츠가 미국 시장에서 어떤 점 때문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이 자리에 소니나 닌텐도, MS 관계자가 있는가? 없나? 그러면 마음대로 비난을 해도 될 것 같다.(웃음) 닌텐도의 성공요인은 2가지다. 적절한 가격과 신선함이다. 다른 게임들은 조작이 복잡했다. 이전 콘솔을 경험해야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는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새로웠다. 게임 플레이 자체가 상당히 달랐다. 느낌이 상당히 달랐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Wii는 DS의 반밖에 성공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DS를 더 좋아한다고 본다. 일본의 컨텐츠는 25세 이하의 연령층에게는 굉장히 익숙하다. 이 세대는 이른바 ‘포켓몬’ 세대이기 때문에 닌텐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덧붙여 말하자면 콘솔 플랫폼은 가입자를 플랫폼 홀더가 소유한다. 그것을 통해 제공되는 게임들은 제한된 플랫폼을 사용하는 게이머들만 즐길 수 있다. 이는 IP에게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플랫폼은 브라우저라고 생각한다. Q: 캐주얼 게임이 앞으로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사례가 있는가? A: 상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하드코어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시간을 들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면 플레이 사이클을 짧게 해야 한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컨텐츠를 충분히 못 즐기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소비자가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크기로 컨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Q: 아시아에서 캐주얼 게임이 서구 시장에 갔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A: 좋은 질문인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고민이다. 일단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좋은 파트너를 찾는 것이다. 포커스그룹테스트(FGT)도 많이 해서 실질적인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직접 봐야 한다. 게임 자체가 서구 시장에 안 맞을 경우는 어느 정도 수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게임 플레이는 보편적이다. 그런 것 보다는 부수적인 신화와 같은 요소들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오래 붙잡기 위해서는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Q: 서양에서는 패키지 구입방식을 많이 쓴다. 부분 유료화에 대해서 유저들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또, 젊은 세대들은 PvE, PvP 중어떤 플레이 방식을 좋아하나? PvP게임을 즐기게 된다면 개인대 개인과 팀대 팀 방식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궁금하다. A: 굉장히 인기가 많은 게임들을 무료로 배포한 적이 있다. 이 경우 게임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로그인을 하는 비율은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게임을 실제로 즐기게 된다. 공짜일 때 심리적으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흥미로운 이야기다. 특히 성인들이 그렇다. 그러나 돈이 부족한 아이들의 경우는 반대다. 이 두 시장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자신을 게이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료 게임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갖지 않는다. PvP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승리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PvP 유저들은 종 모양의 곡선(Bell-Curve)을 그린다. PvP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은 평균적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치팅과 같은 수준으로 잘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승리를 좋아하나 PvP에서는 승리를 얻기가 힘들다. 서구시장에서는 완전히 PvP만 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흥미롭게도 팀대 팀 방식에서 게이머들은 혼자서 하면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나 팀으로 실수로 하거나 잃게 되면 팀웍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건 흥미로운 이야기다. PvP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PvE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더 높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