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온라인 게임사들에게 일본 게임시장은 양날의 검과 같다. 높은 구매력을 가진 유저층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콘솔에 편향된 시장의 벽을 뚫기란 상당히 어렵다. 국내에서 인지도 있는 대형 게임사들도 현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씨소프트 일본지사의 정슬기 선임매니저는 일본 게임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지난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08 세계 게임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정 매니저는 “일본에서 온라인 게임시장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앞으로 점차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가 일본 게임시장 진출 전략이란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황성철 기자
◆ 시장 점유율은 5.7%, 아직 시작단계
지난 2006년의 집계에 따르면 전체 일본 게임시장 중 온라인 게임이 차지하는 영역은 약 5.7%로 737억 엔(약 6,482억 원) 수준이다. 디지털 컨텐츠 백서에 의하면 2007년에는 전년대비 20% 상승한 885억 엔(약 7,784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체 게임시장 규모가 약 1조3천억 엔(약 11조4천억 원, 2006년 기준)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 게임의 비중은 상당히 낮다. 그러나 정 매니저는 온라인 게임시장의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물론,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성장률 둔화의 가장 큰 원인은 대작 타이틀의 부재입니다,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도 NDS나 위핏(Wii Fit) 처럼 시장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는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일본에 진출한 후 한때 동시접속자 12만명을 기록하며 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전체 파이를 키울 수 있는 타이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정 매니저는 또한 일본 게임 시장이 매력적인 이유로 중국과 일본의 PC방을 그 예로 들었다. 일본 현지에는 넷카페라는 이름의 PC방들이 약 2,200여곳 정도 영업 중이다. 20만 개에 달하는 중국의 PC방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정 매니저는 양국 PC방의 매출 규모를 비교했다.
“중국은 PC방의 수가 20만인데 매출은 2조원이 안됩니다, 그러나 일본은 2,200개에서 8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두고 있습니다, 만약 일본 넷카페의 수가 1만개였다면 온라인 게임 시장을 비관적으로 봐도 되겠지만 아직 2,200개입니다, 시작도 안 한 것입니다.”
전체 게임시장에서 온라인 게임의 비중은 적으나 충분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
정 매니저에 따르면 이런 같은 구매력의 차이는 1인당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액)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한다. 중국에서 동시접속자 30만명이 창출하는 매출 규모가 일본에서는 단 5만명으로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1인당 ARPU가 4천엔(약 3만5천 원)을 넘는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일본은 파생상품 시장이 상당히 발달해있다. 캐릭터 상품에 열광하는 현지 팬문화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 매니저는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진행한 한 이벤트성 행사의 경우를 그 예로 들었다. 엔씨는 일본 현지에서 서비스 중인 <리니지2>의 캐릭터인 ‘다크엘프’의 피규어를 2천개 제작했다. 그런데 팬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나머지 발매 10분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현지 시장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 매니저는 일본 게임 시장에서는 중국과 같은 모럴 해저드가 적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적 재산권, 사기, 해킹과 같은 위험요소가 적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지에 진출한 온라인 게임 관련 경쟁사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전체 파이를 늘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게임 시장이 마냥 매력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선 초기비용이 상당히 높다는 단점을 들 수 있다. 높은 임금과 물가 수준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일본인 특유의 ‘쏠림 현상’ 때문에 시장의 탄력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콘솔 위주의 게임 시장에서 온라인 게임으로의 유저 유입이 더딘 이유기도 하다.
일본을 제대로 알고 공략할 수 있는 퍼블리셔가 꼭 필요하다.
◆ 언어실력 보다 전문성과 국가 이해도가 중요
매력적이지만 분명 어려운 일본 게임 시장, 정슬기 선임매니저는 이곳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능한 인력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현지에 온라인게임 전문가들이 부족합니다, 반면 콘솔 기반의 프로듀서나 유통전문가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콘솔 기반 타이틀의 유통처럼 마케팅을 진행하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본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콘솔과 온라인 모두를 이해하고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게임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는 인력의 확보가 중요하다.
또한 그는 일본어에 능통한 인력보다는 게임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어는 현지에서 배울 수 있지만 전문성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 내부에서는 사내 ‘잡 포스팅’ 등을 통해 내부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GM 출신 인력들의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한다.
“처음에 일본 현지 직원들을 통해 게임 마케팅을 실시했는데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 바로 넷카페입니다, 후에 인력을 보강하면서 넷카페라는 기회를 발굴하여 현지 점유율을 상당히 높였습니다, 특히 <리니지2>의 경우 업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을 정도입니다.”
◆ 완성된 게임으로 오픈베타를 해야 한다
한편, 정 매니저는 빠른 판단이 필요한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일본의 경직된 조직문화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리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가이드로 만들어 현지 조직에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온라인 게임 사업 인프라가 잘 구축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전체적으로 많이 낙후되어 있는 상태다. 정 매니저는 기술 인프라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며 특히 결제 시스템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자체 결제시스템을 개발할 정도였다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게이머들의 오픈 베타(OBT)에 대한 인식차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한다.
“일본 온라인 게임시장에서 베타테스트 단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OBT를 통해 게임을 완성해나간다는 인식이 있는 것에 반해 일본은 완성된 게임을 OBT를 통해 체험해보는 과정으로 인식합니다, 일본에서는 완성된 게임을 OBT 단계에서 공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술적, 문화적 차이 등 현지 적응에서 올 수 있는 여러 난관을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성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슬기 선임매니저는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사가 어떤 점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정확한 포지셔닝으로 일본시장에 진출한다면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일본 유저들은 오픈베타에 냉정하다. 갖추고 서비스하지 않으면 금새 외면하고 만다.
엔씨소프트 재팬의 일본시장 진출 전략. 현재 중단 단계를 지나고 있다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계자들이 세미나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