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불광 서울혁신파크에서 인디 게임 페스티벌 ‘노랑 던전’이 열렸다. ‘1인 개발자’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엔 게임 관련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유저들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모여 인디 게임의 가능성을 응원했다.
개성 넘치는 게임들이 자리를 빛냈지만 그중 많은 유저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것은 개발자 SOMI의 <리갈 던전>이었다. SOMI는 <레츠놈>과 <레플리카>로 잘 알려진 인디 게임계의 아이돌(?) 개발자다. 현장에 공개된 <리갈 던전>의 개발 버전을 직접 플레이하고 느꼈던 내용을 정리해봤다. / 디스이즈게임 김영돈 기자
<리갈던전>은 범죄와 경찰, 그리고 법 집행을 다룬 게임이다. 법과 범죄는 누와르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인데, 영화에선 주로 악당과 공권력의 충돌을 스릴 넘치는 액션으로 그려내곤 한다. 하지만 <리갈던전>에 액션과 스릴적인 요소는 없다. 대신 이 게임은 범죄를 처리해야 할 '일'로 묘사한다.
게임의 진행은 <페이퍼 플리즈>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입국 심사’가 ‘사건 의견서 작성’으로 바뀌었을 뿐, 자료를 검토하고 사실 관계를 살펴 서류로 만드는 과정은 비슷하다. SOMI는 노랑 던전에서 진행된 개발자 토크에서 “<페이퍼 플리즈>로부터 상당 부분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준비된 사실을 '사건'으로 만드는 일
게임의 목표는 경찰 팀장이 되어 형사들이 작성해놓은 조서를 보고 ‘사건 의견서’를 작성해 범죄 피의자를 검찰로 송치하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피의자를 직접 체포하거나 형량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사건에 맞는 사실을 잘 정리해 서류를 완성하는 게 주 업무다.
사건 의견서의 마지막 항목인 ‘수사 결과 및 의견’을 쓰는 과정에서는 플레이어와 피의자의 전투 이벤트가 등장한다. 피의자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플레이어는 조사 과정에서 얻은 진술을 이용해 피의자의 주장을 반박한다. 턴제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투가 끝나면 완성된 사건 의견서는 검찰로 넘어가게 된다.
# 성과 점수로 평가받는 '훌륭한 경찰관'
검찰로 넘어간 의견서는 검사의 기소 절차를 밟는다. 검사의 판단이 끝나면 사건은 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어떤 내용의 의견서를 작성했는가에 따라 사건은 유죄가 될 수도 있고, 무죄로 종결될 수도 있다.
핵심은 사건에 가장 적합한 ‘사실’을 의견서에 담는 것이다. 사건 의견서는 같은 항목에도 여러 가지 선택지를 집어넣을 수 있다. 같은 ‘사건 경위’ 항목에도 목격자의 진술과 피의자의 자백 중 더 적절한 항목을 선택할 수 있다. 의견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되고 플레이어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
<리갈던전>에서 플레이어를 평가하는 항목은 ‘치안 성과’와 ‘정확한 법 집행’이다. ‘치안 성과’는 중대한 범죄를 처리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고 사소한 범죄를 처리하면 적은 점수를 받는다. 살인 사건의 경우 20점, 특수강도는 15점으로 높지만 수배자 검거는 3점, 절도는 2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성과 등급은 A에서 D등급까지며 D 평가를 2회 연속 받으면 직위해제로 게임 오버된다.
‘정확한 법 집행’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뒤, 플레이어의 의견서가 검찰이나 법원의 판결 내용과 일치하는지 평가하는 항목이다. 의견서의 항목이 적절하게 구성됐다면 검찰과 법원은 유죄를 선고할 것이고, 어떠한 이유로든 무죄가 선고되면 플레이어의 평가는 하락한다. 정확한 법 집행 또한 치안 성과와 마찬가지로 2회 연속 D를 받으면 게임 오버된다.
# 법 집행 과정에서 찾아오는 고민
이날 플레이 했던 에피소드 중엔 할아버지와 소녀의 ‘특수절도죄’를 처리하는 사건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소녀는 지하철역에서 나눠주는 신문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고 가다 체포됐다. 신문을 나눠주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플레이어는 사건의 조서를 작성해야 하는 입장이다. 결국 절차에 따라 그들을 법원으로 보냈지만 유죄 확정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플레이어는 기자와 마찬가지로 법의 영향을 받는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엔 잠시 법을 집행하는 입장이 된다. <리갈 던전> 속 경찰은 성과로 평가 받는 조직이다. 성과주의 조직이 어떤식으로 법을 대하는지, 일반인과 경찰이 느끼는 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체험하며 낯선 고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개발자 SOMI는 “처음엔 주어진 대로 사건을 처리하겠지만, 후반에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온다"라며 "플레이어는 선택지를 고르고, 그에 따른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택과 결과, 그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작 <레플리카>에 이어서 <리갈 던전>은 플레이어에게 어떤 생각을 남기게 될까. <리갈 던전>은 2018년 상반기를 목표로 개발 중이며 PC(스팀)과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출시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