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도입부는 플레이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자이자 인상을 결정하는 첫 대면이다. 그러니 친절해야 하고, 또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너무 설명만 늘어놓거나 지나치게 쉬워서 흥미를 잃게 하면 안 된다. 게임의 중요한 특징을 강조해야 함은 물론이다. 복잡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야생의 땅: 듀랑고>는 어떻게 도입부를 기획했을까?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왓스튜디오 강임석 게임 리드 디자이너
# 초반 플레이를 구성하는 축, 행동 통제와 스토리 관여
초반 플레이를 구성하는 방법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유저의 행동을 통제하고 스토리 관여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매력적인 초반 플레이의 한 예로 꼽히는 <슈퍼 마리오>는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첫 화면을 탐색하다가 실패를 겪고 게임 플레이를 익힌다. 텍스트 한 줄 없이도 효과적으로 게임을 설명하는 초반 플레이 구성이다. 또 <보더랜드 2>는 게임 인터페이스조차 스토리에 효과적으로 녹여냄으로써 게임의 목표와 플레이 방법을 안내하기도 한다.
전자는 도전과 실패를 통한 성장을 중시한 게임에서 주로 채용하고, 후자는 직관성이 중요한 작품에서 많이 채용한다. 또 어느 한 방향만 고정하는 것 뿐 아니라 오프닝 시퀀스를 삽입해 처음에는 행동을 통제하고 스토리를 설명하다가 점차 행동을 풀어주는 등 초반 플레이를 넓게 구성하기도 한다.
<야생의 땅: 듀랑고> 역시 초반 플레이의 스펙트럼을 넓게 구성했다. 처음에는 샌드박스 MMORPG의 특성을 살려 유저가 자율적으로 여러 환경에 도전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방식으로 프로토 타입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내 테스트에서 "게임이 너무 낯설다", "익숙했던 게임들과 달라 익히기 힘들다.", "그런데 배울 것은 많아 어렵다"는 피드백이 등장했다. 결국 최초의 의도와는 멀어졌지만 게임 플로우에 따라 바꿔나가게 됐다.
# 게임의 프롤로그와 임팩트를 책임진 프롤로그, '기차'
프로토 타입의 초반 플레이는 유저의 행동에 따라 힌트를 제공하는 반응형 가이드였다. 캐릭터가 허기를 느끼면 음식과 요리 안내를 하는 등 상태 변화에 따라 적절한 힌트를 주고, 장기적인 목표는 스킬의 효과와 성장 방법을 제시하는 '장래희망'을 주는 식이었다.
여기에 테스트 피드백에 따라 '듀랑고' 세계와 배경을 설명할 오프닝, 가장 기본적인 게임 방법을 알려줄 프롤로그가 주어졌다. 행동을 살짝 통제하고 스토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에 따라 프롤로그, 그 유명한 '기차 씬'이 등장했다.
길고 좁은 기차 공간에서 유저는 자신의 캐릭터를 선택하고 <듀랑고>에 여러 스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터치할 곳을 알려주는 손가락 안내를 통해 이동 방법과 상호 작용, 전투를 배운다. 유저가 프롤로그를 플레이하는 동안 본 게임을 위한 추가 데이터를 내려받는다. 긴 로딩 과정 없이 게임을 배우면서 플레이 준비를 마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거대한 공룡이 튀어나오는 연출을 통해 앞으로의 게임 플레이를 기대하게 된다.
프로토 타입과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는 여기서 바로 대륙으로 이동해 게임을 하게 된다. 하지만 포커스 그룹 테스트 과정에서 아직도 가이드가 부족하고, 유저가 스폰된 위치에 따라 게임의 경험이 크게 달라진다는 의견이 나왔다. 섬이 자동으로 만들어지고 나무가 절차에 따라 생성되는 게임이지만 수동으로 나무를 심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 앙코라 섬이 태어난 이유다.
# 튜토리얼 지역은 랜덤으로 만들면 안 돼! '앙코라 섬'
초반 스폰 지역을 무작위로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과일을 따라'는 가이드가 있는데, 아무리 주변을 찾아봐도 과일이 나지 않는 기후라면? 혹은 다른 유저들이 가까운 과일을 모두 따서 멀리까지 가야 한다면? 처음에는 안정된 환경에서 순서대로 할 일을 주면서 동일한 경험과 지식을 얻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무전기 메시지 대신 인물이 등장했다. 'K'는 워프의 충격으로 쓰러진 유저 캐릭터를 구해주고 생존 방법을 알려준다. 초반 가이드에 캐릭터와 개연성이 생긴 것이다. 유저가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
앙코라의 구성 역시 피드백을 반영했다. '공룡'을 전면에 내세운 게임인데 초반에는 작고 약한 공룡만 나오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자연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에 따라 앙코라의 동선과 자연물을 섬세하게 구성했다.
이제 기차에서 앙코라에 도착한 유저는 K의 안내에 따라 인벤토리, 스킬, 채집과 제작을 배운다. 또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수풀, 개울과 강, 바다를 보고 아주 커다란 공룡, 현대에서 워프해온 구조물이 뒤섞인 이색적인 환경을 만난다. 그리고 공동 건설을 통해 뗏목을 만들고 대륙으로 떠나는 구조가 됐다.
앙코라를 개선한 후 3차에 걸친 리미티드 베타 테스트가 시작됐다. 이렇게 공들여 초반 플레이를 구성했는데 이탈률이 상당했다. 앙코라 섬에서 뗏목을 만드는 마지막 구간에서 유저들이 게임을 그만두는 사례가 속출했다.
분석했더니 불필요한 동선이 문제가 됐다. 앙코라 섬 북쪽까지 쭉 올라오면 뗏목 건조 현장이 있고, 주변에서 재료를 구해 건설에 투입하는 단계가 된다. 그런데 중간에 모여 있는 NPC 그룹 때문에 재료를 채집하기까지 너무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NPC 그룹의 위치를 바꿔 해결했다.
어떤 유저가 올린 플레이 영상도 동선 개선에 참고가 됐다. 이 유저는 유도하는 동선이 아니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바람에 게임 안내 트리거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건너갈 수 없는 자연물 등을 배치해 해결했다.
디자인과 다르게 작동해 이탈율에 일조한 부분도 앙코라 섬에 있었다. 바로 뗏목 건조. 익명의 유저들과 협동해서 많은 재료를 모으고, 같은 뗏목에 탄 유저들을 자동으로 친구로 맺어주고 같은 섬으로 보냈더니 부작용이 더 많이 생겼다. 재료를 많이 모으는 것이 귀찮아 눈치를 보다 갈대 한 줄기만 던져넣는 얌체 플레이부터 뗏목 친구의 사유지 물건을 훔쳐가는 일 등이 많아 이 부분은 결국 개인 뗏목으로 바꿨다.
# 갑자기 어려워졌어! 불안정섬 적응하기
기차, 앙코라 섬을 거치면 유저는 뗏목을 타고 어느 섬에 도착하게 된다. 사유지와 채집지를 한 섬에 만드니 귀한 자원이 있는 곳에 사유지를 놓아 독점하는 유저가 생겼다. 또 섬이 너무 커서 모바일 환경과 잘 맞지 않는 문제도 생겼다. 사유지를 놓는 마을섬, 채집을 하는 불안정섬이 분리된 이유다.
하지만 가이드가 있는데도 불안정섬에서 이탈율이 발생했다. 전투다운 전투는 긴 튜토리얼 과정을 지나야 하니 루즈하고, 마을섬에서 채집, 건설 가이드가 집중적으로 발생해 특정 자원이 모자라거나 건설물로 섬이 뒤덮이는 문제가 생겼다. 또 갑자기 탐험을 하라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앙코라와 마을섬 사이에 탐험의 예고편, 작은 불안정섬을 하나 더 추가했다. '부트캠프'라고 명명된 이 곳은 앙코라와 달리 유저가 자유롭게 탐험하며 위협적인 (하지만 안전한) 공룡과 싸워 보고, 건설과 제작을 체험하게 된다.
불안정섬도 손을 봤다. 불안정섬을 탐험하기 위한 팁을 알려주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새로운 인물 'X'를 등장시켰다. X는 특히 반응이 좋아 이후 NPC와 단체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임무(퀘스트)도 이 시점부터 등장했다. 많은 유저들이 불안정섬에서 가이드가 끊기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더이상 가이드는 필요허지 않은 시점이다. 이제 유저들이 게임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유롭게 즐겨야 할 단계지만, 지금까지 할 일을 받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갑자기 끊기면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유저들이 모일 수 있도록 불안정섬 출입구를 한 곳으로 모았고, 여기에 캠프를 설치해 각 단체로부터 임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대체로 무언가를 채집할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이것을 보고하거나 가져오는 식. 단기 보상 뿐 아니라 유저가 섬의 다양한 곳을 탐험할 수 있는 요인이 되어 반 자동생성 단기가이드 역할을 하게 됐다.
# "섬을 폭발시킬까요?" 중간 과정에서 임팩트 주기
결국 <듀랑고>의 초반 플레이는 기차→앙코라 섬→부트캠프→마을섬→불안정섬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됐다. 그리고 글로벌 베타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예상 외로 부트캠프와 마을섬, 불안정섬 세 구간에서 이탈율이 높게 발생했다. 문제 파악을 위해 FTUE 테스트에 참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분석에 나섰다.
불안정섬이 바뀜에 따라 부트캠프의 역할이 애매해진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부트캠프에서 배운 것을 불안정섬에서 반복하니 지루해지고, 잘 정돈된 앙코라에 비해 부트캠프는 어수선하고 재미가 없는 데다 계속해서 가이드가 떴다. 또 <듀랑고>의 매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평이 많아 대대적으로 리뉴얼을 단행했다.
K는 아직 유저들 곁에 있어야 했다. 부트캠프를 K의 사유지 '안전가옥'으로 개념을 바꿨다. 안전가옥에서 불안정섬에 있는 것과 같은 임무를 도입해 나중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중간에 '라마'를 끼워넣어 무전기 대학이라는 장기 가이드도 함께 보여줬다. K의 사유지라는 멋진 '모델하우스'를 제시해 게임을 계속 하고 싶은 동기를 불어넣었다.
마을섬으로 떠나는 과정에도 '기차의 공룡' 같은 임팩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섬 폭발 등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결국 열기구를 타고 마을섬에 가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유지를 짓고 살까, 어디에 자리잡을까 높은 시점에서 빠른 속도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완성된 초반 플레이 흐름은 이렇게 된다. 먼저 행동 제한과 스토리 관여도가 높고 임팩트 있는 오프닝씬을 본다. 잘 다듬어진 앙코라 섬과 안전 가옥을 거치며 게임의 매력을 느끼고, 마을섬과 불안정섬으로 이동하면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안내하는 흐름이 완성됐다.
# "게임은 새로운 재미를 익히는 초반 플레이의 연속"
잘 만든 초반 플레이는 게임을 재미있게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들은 초반에 게임이 끌리지 않고 핵심 재미가 느껴지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익힐 수 없으면 게임을 그만둔다. 그렇다고 차근차근 게임을 가르치기만 하면 '잘 만든 초반 플레이'일까?
강임석 리드 디자이너는 초반 플레이에서 감정 기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을 순간, 강렬한 감정을 주는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많은 정보를 한 번에 몰아서 주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치가 있으니 소화할 수 있도록 조금씩, 여러 번에 나눠서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같은 일은 반복해서 시키는 것보다 여러 행동을 섞어서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듀랑고>의 경우 이동, 대화, 도구제작, 쉬기, 탐험 등이 섞여서 등장한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합쳐 게임의 기능을 완만하게 익힐 수 있어야 한다. 시간에 따라 학습 난이도가 확 오르는 구간이 있는 것보다는 조금씩 친숙해질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하며, 익힐 기능이 여럿이라면 이 세 원칙을 적용해 한 번에 하나씩, 차분하게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잘 설계한 초반 플레이는 지루한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재미를 익히는 구간으로 변합니다. 게임의 어느 단계에 있든 재미 요소가 새로 등장한다면 새로운 초반 플레이가 필요하고, 따라서 게임은 이러한 초반 플레이의 조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