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코딩 교육' 열풍이 일어난다 싶더니 어느새 잠잠해졌다. 관심이 식은 것은 아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매일 오르내리고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뜨겁다. 코딩 교육의 중요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고, 게임 업계는 넥슨이 2016년부터 청소년 프로그래밍 대회 NYPC(Nexon Youth Programming Challenge)를 열고 있다.
대회 외에도 청소년과 학부모에게 코딩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진로 탐색을 돕는 토크콘서트 행사가 열린다.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NYPC 토크콘서트'에는 프로그래밍 교육 단체 '멋쟁이 사자처럼' 이두희 대표, 메이커 유튜브 채널 '콩돌이 프로덕션', 데브시스터즈 김태훈 인공지능 엔지니어, 넥슨 인텔리전스랩 강대현 대표 겸 넥슨 부사장 등 4인이 강연자(엠베서더)로 나섰다. 그들은 왜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꿈나무 프로그래머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NYPC 토크콘서트의 내용을 정리했다.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 프로그래밍,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세상을 바꾸는 방법
TvN의 예능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이두희 프로그래머는 현재 프로그래밍 교육 단체 '멋쟁이 사자처럼'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인상 깊은 방송 활동과 교육 단체 활동까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대표도 진로 선택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이 대표에게 대학이란 고등학교의 연장이었지, 어느 특정 학문과 기술을 깊게 배우는 곳이 아니었다. 그때서야 대학과 고등학교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 대표는 뒤늦은 진로 고민 끝에 창작물이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고, 만약 업계가 잘못돼도 다른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다.
프로그래밍 교육 단체 '멋쟁이 사자처럼' 이두희 대표
비단 게임과 프로그램 뿐 아니라 여러 기반 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소프트웨어는 게임 뿐 아니라 로켓 연구까지 두루 쓰이는 기술인데다 배우기까지 쉽고, 이 대표 말로는 짜릿하고 자극적이다. 여러 활동 끝에 그가 프로그래밍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대학생과 사회인 30명을 대상으로 시작한 첫 프로그래밍 교실 '멋쟁이 사자처럼'은 어느새 4개국까지 퍼져나갔고 이탈률도 적었다.
직접 무언가를 배우고 만든다는 것의 짜릿함, 그리고 재미있는 수업 과정이 한 몫 했다. 2016년 '알파고' 열풍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이를 패러디한 '알까고'를 만들어 인공지능이 바둑알을 튕겨 대결하는 알까기 게임을 하게 만들었고, 각 교실끼리 대회를 열면서 즐겁게 진행했다. 서울대학교 팀의 인공지능은 홍진호 프로게이머와 치열한 접전을 벌여 극적인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 대표에게 프로그래밍이란 배우기 쉽고 결과는 짜릿하며, 세상을 바꾸는 비정치적인 수단 중 하나다. 혼자의 힘으로 5천만 명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면 대통령처럼 정치적으로 강한 힘과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IT업계에도 대통령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홍진호 프로게이머가 준우승을 거둔 '알까고' 대회
이 대표의 팀은 최근 포항소방서와 협력해 전국에서 소방대가 화재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몇 분이나 걸리는지 도표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수도권의 소방대가 지방보다 더 빨리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수도권이 골든 타임 5분을 넘겨 도착한 경우가 많았고, 지방은 그 이전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의 소방 인프라를 점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예산 편성에 영향을 미쳤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고, 5천만 명에게 더 나은 소방 인프라를 만들 수 있도록 근거를 제시해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현장에 참석한 청소년들에게 "좋은 코드의 조건은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쓰는가에 있다. 아무리 못 짰어도 내 친구, 가족이 쓴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쓰이지 않는 코드는 의미가 없다. 자기가 짠 코드를 현실에 접목시킨 성공의 경험이 미래를 바꾼다. 모쪼록 재미있게 공부하고, 의미 있는 성공을 하면서 훌륭한 개발자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지금, 당장, 함께 만들고 공유해 세상을 바꾸자
'콩돌이 프로덕션'은 이수현, 이진호 콘텐츠 크리에이터 2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스톰트루퍼' 헬멧 모양의 미세먼지 마스크, 실시간으로 가상통화 거래 사이트의 가격을 읽고 그 정보를 알려주는 '비트박스', 실제 총 모양의 조이스틱을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호평을 받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는 '메이커' 취미 채널이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수현 씨는 팀원을 모아 '매일냠냠'이라는 플래너 앱을 만들고 어느 정도 수익을 거뒀다. 다음 목표는 3D 프린터를 이용한 디자인 알고리즘이었다. 하지만 '매일냠냠'과 달리 팀원이 모이지 않았다. 당시 소프트웨어 외에 하드웨어나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는 학생이 적었던 것. 이수현 씨는 그 때 처음으로 세상이 좁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전문 외의 분야에도 눈을 돌려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콩돌이 프로덕션 이수현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진호 씨가 설명하는 메이커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무언가를 만듦으로써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코딩은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합쳐지면서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졌다. 프로그래밍이 실체를 갖게 되면서 현실 세계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됐고, 이는 구글 등 세계 유수의 회사에서도 추구하고 있는 '풀스택 개발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두 사람이 메이커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두 사람은 프로젝트의 개발 과정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콩돌이 프로덕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다른 메이커 채널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메이커 문화의 가장 큰 장점인 공유와 교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셈.
콩돌이 프로덕션 이진호 콘텐츠 크리에이터
콩돌이 프로덕션이 강조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함께"다.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면 크든 작든, 소프트웨어든 하드웨어든 가리지 않고 당장 시작해보라는 것. 하지만 혼자서 무턱대고 도전한다면 시련이 닥치고, 뒤로 갈수록 의욕이 사그라들면서 힘들어진다. 이럴 때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든든해진다.
메이커 문화는 '공유'를 기반으로 한다. 그 어떤 멋있는 프로젝트라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는다면 의미가 사라진다. 프로젝트를 자랑하고, 의견과 비판을 주고받으며 아이디어를 나누면 성장을 위한 밑거름, 작은 씨앗이 된다. '공돌이'가 세상을 바꾸는 '콩돌이'가 될 수 있다.
# 인공지능, 불가능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
최근 콘트롤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DOTA 2>에서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주목을 받은 인공지능이 있다. 인공지능을 인류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OpenAI의 인공지능이다. 다음 달 OpenAI에 합류하는 데브시스터즈 김태훈 머신러닝 엔지니어는 인공지능 딥러닝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간략하게 소개했다.
딥러닝은 인간의 뇌 구조를 인공지능 연구에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인간의 뇌는 뉴런과 뉴로라는 생체 신경망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이 신경망을 컴퓨터로 모방해 인간이 학습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딥러닝이라고 한다. 세간에 잘 알려진 딥러닝 프로젝트로는 아타리 게임부터 시작해 바둑, <스타크래프트 2>에 도전 중인 '딥마인드', 그리고 음성 합성 기술을 활용한 '듀플렉스'가 있다.
김태훈 엔지니어가 연구하는 것도 바로 인공지능 음성 합성 기술이다. 이 기술이 적용된 인공지능은 딥러닝을 활용해 문장과 상황, 미리 설정된 감정 수치에 적합한 음성을 합성해 사람처럼 문장을 읽는다. 현장에서는 손석희 앵커의 목소리를 합성해 NYPC 참가자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시연을 보이기도 했다. 이 기술은 지하철이나 박물관의 음성 안내, 대화 인공지능, 스피커 목소리 합성, 오디오북 등 사람의 목소리가 필요한 대다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데브시스터즈 김태훈 머신러닝 엔지니어
딥마인드가 주로 사용하는 학습 방법은 강화학습이다. 인공지능이 처음 <쿠키런>을 플레이한다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움직이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장애물에 맞춰 뛰면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 '젤리를 먹으면 점수를 얻는다' 등의 규칙을 파악하게 된다. 나아가 '이 타이밍에서 뛰면 점수를 많이 얻는다' 등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 학습한다. 김태훈 엔지니어는 이 방법을 이용해 <쿠키런> AI를 개발했다.
바둑을 풀어낸 딥마인드, <DOTA 2>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OpenAI의 인공지능도 강화학습을 통해 문제 풀이를 반복하며 답을 찾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답을 찾아내겠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한계 또한 명확하며 특히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김태훈 엔지니어는 Open AI에서 강화학습의 시간을 단축하는 연구를 희망하고 있다.
김 엔지니어는 "인공지능의 연구는 사람을 대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문제를 풀게 하기 위해서 진행된다. 바둑은 몇십년 간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여겨졌으나 결국 구글 딥마인드가 문제를 풀어내는데 성공했다. 여러분은 프로그래밍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고민하시고, 세상을 바꾸는 인공지능에도 도전해보시길 바란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정답 척척 찾아주는 인공지능 시대, 청소년이 갖춰야 할 역량은?
넥슨 인텔리전스랩스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게임 서비스를 연구하는 조직이다. 이용자의 게임 적응을 돕는 어드바이저, 매칭 시스템, 챗봇 등을 연구해 적용하고 있으며 지금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 서비스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조직의 장은 넥슨 강대현 부사장으로, <메이플스토리> 등 여러 게임 디렉터 시절부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개발자 출신이자 인공지능 연구와 게임 사업을 동시에 지휘하는 입장에서 강 부사장이 예상한 미래의 핵심 역량은 '문제를 잘 찾아내는 능력'이다. 학교에서는 미리 주어진 정답을 정확하게 맞추는 능력이 중요하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회사일수록 문제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며, 다루는 범위가 넓어 정답 자체가 없다. 이런 현상은 '정답 찾기'를 인공지능에게 맡기게 될 미래에서 더욱 가속화된다는 것이 강 부사장의 예측이다.
인공지능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데이터에 따라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제시하면 인공지능이 정답에 가까운 답변을 내놓는다. 문제를 푸는 사람이 학생에서 인공으로 옮겨가는 것.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역량은 인공지능에게 줄 좋은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잘 프로그래밍해서 풀게 만드는 능력이다.
강대현 넥슨 부사장 겸 인텔리전스랩스 총괄
유명한 인공지능 연구 사례로 '고양이 사진 학습'이 있다. 수십만 장의 고양이 사진을 제시해서 공통점을 학습시키면 인공지능은 새로운 고양이 사진을 봐도 고양이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핵심은 기술을 기술로만 활용하는가, 아니면 원리를 이해하고 프레임을 바꿔서 새로운 가치를 발생시키는가에 있다.
고양이 사진을 분류하는 기술은 게임 회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서든어택>의 '월핵'을 찾는 일에 적용하자는 발상은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핵 여부를 판별하는 기술 자체는 고양이 사진 분류와 비슷하다. 핵 의심 유저들의 단시간 플레이를 영상 클립으로 전송한 다음 움직임을 분석해 핵 여부를 판단한다. 실제 <서든어택>에 활용되는 기술이다.
더 나아가, 이미지를 하나의 정보값이라고 판단, 다른 단위로 바꿔서 어뷰징, 매크로를 탐지하는 데 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유저의 플레이 패턴을 파악한 뒤 일정 시간마다 수행된 패턴을 비교하면 효율을 추구하는 매크로 특성상 일정 주기로 패턴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고양이 사진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처럼 패턴과 패턴을 비교해 판단하는 것이다.
기존 반복 패턴 매칭 탐지 방식으로는 2시간 단위로 패턴을 바꾸거나 비효율적인 행동(노이즈)를 집어넣은 변종 매크로를 파악할 수 없다. 수십만 명이 이용하는 게임에서 의심 유저 한 명의 행동을 운영 인력이 계속 주시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빅데이터화하여 인공지능이 분석하게 하면 결국은 탐지할 수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이미 20테라의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매칭 데이터 또한 기가바이트 단위로 보유하고 있다. 어떤 데이터를 서로 비교해볼 것인지, 기술의 기반과 원리를 이해하고 고민하며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잘 찾아내는 능력이 미래의 개발자에게 필요해진다.
마지막으로 강 부사장은 이런 역량을 기르기 위해 몇 가지 조언을 건넸다. 먼저 코딩을 지식으로만 끝내지 않고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연습을 꾸준히 할 것을 권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례를 예로 들었는데, 병원에서 진단하기 힘든 알러지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먹었던 음식 사진을 찍고 액셀에 재료를 정리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이처럼 일상 생활 속 문제를 찾아내고,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를 객관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과 사고 방식이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