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리만큼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게임들이 한데 모이는 행사 '아웃 오브 인덱스'(이하 OOI). 10월 20일 서울혁신파크에서 개최된 이번 OOI 2018에서는 총 9개의 게임들이 선정돼, 현장에서 직접 게임을 시연해 볼 수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룬 게임 <카펫 크롤러>나 게임과 예술의 경계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에브리띵 이즈 고잉 투 비 오케이>같이 흥미로운 게임들이 많았지만, 기자의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띈 게임은 <위치 볼>(Whichball)이었다. <위치 볼>이 눈에 띈 이유는 간단하다. OOI 팜플렛에 적힌 '한줄 게임 소개'가 아주 짧고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위치 볼>은 이렇게 설명돼 있다. "공치며 달리기".
어떤 특징도 없고, 허무할 정도로 가벼운 설명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OOI의 게임들 사이에서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자는 현장에 도착하자 마자 <위치 볼>을 플레이해 봤다. 설명만큼 간단한 게임이었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게임이었다. /디스이즈게임 박수민 기자
# 간단한 조작, 간단한 룰! 그러나 만만치 않은 게임
<위치 볼>의 가장 큰 특징은 ‘간단한 조작과 룰’이다. 게임의 조작 방법과 룰을 완전히 익히는 데에 채 1분이 걸리지 않는다. Xbox 패드로 플레이하게 되는 <위치 볼>은 패드 중에서 왼쪽 이동 스틱과 A버튼 단 두 가지만 사용한다.
게임 룰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다. 게임은 두 명의 유저가 함께 진행하게 되며, 이 두 유저의 캐릭터가 곳곳에 장애물이 있는 트랙을 달려가게 된다. 화면은 중앙을 세로로 나눴으며 게임 난이도(심플, 스탠다드, 마스터)에 따라 속도와 바퀴수(Lap)가 달라진다. 특이한 점은 상대방의 진영에도 내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점. (이 점은 이후 게임을 보다 전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든다)
유저는 게임에서 빛나는 공(이 공이 ‘위치 볼’이다)을 마치 배구하듯 서로에게 토스하게 되는데, 이 공을 쳐내지 못해 화면 가장자리까지 도달하면 공을 던진 유저가 토스 횟수에 비례해 점수를 획득하게 된다. 이 점수는 각 바퀴를 먼저 들어 온 유저에게도 주어지며, 마지막 바퀴를 돌았을 때 점수의 합산이 높은 유저가 승리하게 된다.
게임의 형태는 전통적인 레이싱(?) 형태인 달리기와 탁구, 혹은 배구 같은 랠리 게임이 합쳐진 모습이다. 장애물을 피하면서 날아오는 공을 넘기기만 하면 되는, 언뜻 쉬운 게임인 것 같지만 실제로 해 보면 마냥 쉽지만은 않다. 기존 게임들은 한 가지(달리거나, 혹은 날아오는 공을 넘기거나) 컨트롤만 신경 쓰면 됐지만, <위치 볼>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공을 받은 순간 A버튼(공을 받는 버튼)을 길게 누르면 공을 변화구처럼 던질 수도 있다. 짧게 누르면 낮은 각도로 상대방을 향해 빠르게 공이 날아가고, A버튼을 꾹 누른 채 방향키로 위나 아래, 뒤를 입력해 주면 공이 큰 폭으로 울렁거리며 상대방에게 날아가기 때문에 그 공을 받기 까다로워진다. 다만 속도는 짧게 버튼을 눌렀을 때 보다 느리니, 궤도를 잘 읽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유저는 이런 심리전 요소가 가득한 위치볼 랠리를 주고 받으면서 레이싱 트랙 곳곳에 있는 장애물도 피해야 한다. 장애물에 캐릭터가 부딪히게 되면 일정량의 점수를 잃으며, 추가로 경직에 걸려 위치볼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실점(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방의 득점)을 당할 수도 있다.
게임에 좀 더 익숙해지고, 승리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면 다양한 전략으로 상대방을 괴롭힐 수도 있다. 장애물이 없거나 부딪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레버를 앞으로 기울여 속력을 높일 수도 있고, 경계선 너머 상대방 진영에 있는 자신의 캐릭터로 상대방의 랠리를 방해할 수도 있다.
# 개발자는 왜 <위치 볼>을 ‘간단한 게임’으로 만들었는가
최근 출시되는 게임들을 살펴보면 전보다 어렵게, 전보다 더 복잡한 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게 생소했던 초창기의 게임과 달리 지금의 유저들은 보다 많은 게임을 접했고, 다양한 컨트롤러를 통해 게임을 조작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이런 현상은 일종의 ‘게임 소외 현상’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단어 ‘고인물’은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다. 특정 게임을 오래 해 게임에 적응을 마친 유저는 점점 더 높은 난이도의 게임을 원하게 되고, 뒤이어 게임에 뛰어든 신규 유저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게임의 난이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치 볼>의 개발자 ‘클라크’(S.L.Clark)는 이런 게임 소외 현상을 눈여겨봤다. 개방된 장소에서 무작위 게이머가 게임을 접하게 되는 ‘공공 이벤트 게임’을 만들어 왔던 그는 이런 게임 소외 현상에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며 대기했다가, 기껏 해야 한 번 또는 두 번 플레이 할 수 있는 공공 이벤트 게임을 어렵게 만들어 버리면, 필연적으로 게임에게 소외되는 유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자는 이번 <위치 볼>을 기획할 때 ‘쉽게 적응할 수 있고, 한 번에 룰을 이해할 수 있어 첫 판에도 온전히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점으로 뒀다. 그 과정에서 그가 떠올린 것이 ‘아주 고전적인 게임의 형태’ 인 달리기와 <퐁>(PONG)이다.
그는 OOI와의 인터뷰에서, 두 고전적 게임의 결합을 통해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클라크의 목표는 ‘복잡한 곳에서 게임을 플레이해도 어렵지 않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직접 게임을 해 본 결과, 기자도 그의 말에 동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게임은 아주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전략을 통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