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을 분석하는 한 해설가의 말이다. 지난 주말, kt 롤스터와 아프리카 프릭스가 롤드컵 4강 진출에 실패했다. 4강 진출 팀은 유럽 2팀, 중국 1팀, 북미 1팀. 11월 3일 인천 문학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결승전에는 한국팀이 없다.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롤드컵으로는 최초.
올해 롤드컵의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롤챔스 코리아, 이하 LCK) 출전팀은 'kt 롤스터', '아프리카 프릭스', '젠지 e스포츠'(이하 kt, 아프리카, 젠지)였다. 세 팀은 순서대로 C, A, B 조에 소속되어 지난 10일부터 17일까지 '그룹 스테이지'(조별 예선)를 치렀다. 4개 조로 이루어진 그룹 스테이지는 조별로 4팀이 모여 8강에 갈 상위 2팀을 가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디펜딩 챔피언 젠지는 그룹 스테이지에서 1승 5패로 허무하게 탈락했고, kt와 아프리카는 8강전에서 패배했다. 한국은 이대로 <리그 오브 레전드> 최강국에서 내려온 걸까? 우선 각 팀의 성적표를 보자.
kt는 그룹 스테이지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5승 1패를 거두며 순위 결정전 없이 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해외 팀의 적극적인 이니시에이팅(Initiating, 교전 개시)에 능수능란하게 대응하면서도 끈끈한 팀워크로 실속을 챙겼다. 조별 스테이지 중 2001년생 신인 '유칼' 손우현 선수의 저돌적인 무빙과 '스코어' 고동빈 선수 특유의 현란한 경기 운영이 돋보였다.
나머지 LCK 두 팀이 그룹 스테이지 탈락 위기까지 놓이자 kt는 LCK의 자존심이자 희망이 됐다. 지난 20일 , kt는 엄청난 기대 속에서 중국의 인빅터스 게이밍(Invictus Gaming, 이하 IG)과 8강전을 치렀다. 하지만 kt는 경기 시작부터 봇부터 미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IG에게 주도권을 뺏겼다.
미드에서는 IG의 '루키' 송의진이 유칼을 능수능란하게 상대해냈으며, '구멍'이라고 여겨졌던 IG의 봇 듀오도 kt의 막강 봇 듀오를 상대로 선전했다. 2세트까지 0:2로 전부 내주고 만 kt는 3세트 엘리전에서 가까스로 승리, 4세트에서 분위기를 이어 연승하며 역스윕의 기대를 높였지만, 마지막 5세트에서 안타깝게 패배하며 4강에 오르지 못했다. kt는 IG를 상대로 패패승승패로 아쉽게 탈락해 지난 주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kt는 LCK 팀 중 해외 팀의 막강 이니시에 가장 유연하게 대처했지만 8강에 머물며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됐다. kt 선수의 연령은 LCK 참가팀 중에 상대적으로 높은 편. kt가 내년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면 유칼, '킹겐' 황성훈 등 피지컬이 좋은 2000년대생 신인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
창단 최초로 롤드컵 엔트리에 오른 아프리카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운 점도 많았다. 조별 스테이지 초반부 2경기는 밴픽부터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게임에서도 내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G2 e스포츠(이하 G2)와 플래시 울브즈(Flash Wolves, 이하 FW)에게 패를 내주고 말았다.
아프리카는 조별 스테이지에서 내리 2연패 하며 남은 4경기를 전부 이겨야 8강행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후 각성한 아프리카는 베트남의 퐁 부 버팔로(Phong Vu Buffalo)를 상대한 4경기에서 '모글리' 이재하 카드가 성공하며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모글리의 4렙 드래곤 트라이
이어서 '투신' 박종익의 탐 켄치와 '기인' 김기인의 아칼리가 FW의 운영을 흔들어놓은 5경기, '쿠로' 이서행의 '도발 쇼'가 돋보였던 6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게 된다. 그에 따라 아프리카는 21일 중국의 RNG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고 8강전에 올라온 클라우드 나인(Cloud 9, 이하 C9)을 상대했다.
기인은 전 세트 딜(Deal)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뒷받쳐주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기인이 자리한 탑을 제외한 전 라인에서 이니시에 번번이 당하며 안일한 모습을 보였다. 냉정하게 말해서 기인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4강에 가기 어려운 경기력이었다.
안타까운 처음은 더 나은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법. 아프리카 프릭스의 이번 롤드컵은 만족스럽진 않았다. 감독에게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바로가기) 그럼에도 몇몇 선수들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2인분, 3인분을 해내며 '광탈' 위기의 팀을 8강까지 올렸다. 8강전에서는 기인이 압도적인 기량을 보였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올해 롤드컵 신고식을 치른 아프리카 프릭스. 앞으로 선수 개개인의 활약이 전체 팀 운영에 녹아들고, 전력 분석을 담당하는 감독 이하 코치진이 현재의 이니시 메타를 잘 분석해낸다면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13년 삼성 갤럭시 오존 이후 첫 LCK 롤드컵 조별 리그 탈락, 전년도 롤드컵 우승팀 그룹 스테이지 탈락, '1학년 5반'… 이번 롤드컵 이후 젠지에게 붙은 수식어다.
롤드컵 이전의 젠지는 7인 로스터를 가동했지만 롤드컵 규칙상 1명을 포기한 6명을 데리고 가야 했다. 최우범 감독은 '강민승' 하루와 '앰비션' 강찬용, '플라이' 송용준과 '크라운' 이민호 중 크라운과 앰비션을 뽑고, 하루를 서브로 기용했다. 이후 이 선수 기용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크라운은 부진하고 앰비션이 출장 자체를 하지 못한 반면, 뽑히지 못한 플라이는 지난 롤썸머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였기 때문이다.
젠지는 그룹 스테이지 6경기 중 '코어장전' 조용인과 '하루' 강민승이 이끈 C9과의 3경기를 제외하고 전 경기를 패배했다. 밴픽부터 실제 경기 진행까지 "롤드컵 강자답지 못한 경기를 했다"는 것이 중론인데, 특히 많은 팬이 OP 챔피언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젠지(구. 삼성)는 '정석의 정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형적인 LCK 운영을 구사하는 팀이다. 실제로 인게임에서 젠지는 국내 리그에서 보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 플레이란 탑, 미드, 봇, 정글 각자의 위치에서 충실하며 골드와 경험치를 넉넉히 챙긴 뒤 신중한 한타 싸움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메타를 뜻한다.
LCK 3팀이 받아든 초라한 성적표는 운영 중심의 LCK 메타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빠르고 강한 이니시' 메타보다 약하다는 반증으로 다가온다. 한국팀 3팀은 이니시를 피하고 라인 운영에 집중하다가 원거리딜러가 허무하게 죽고, 그 사이에 오브젝트를 내주며, 라인도 밀리면서 경기의 흐름을 잃는 패턴을 반복했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중시하는 LCK 메타가 기회가 될 때마다 공격적으로 싸움을 여는 해외 주류 메타보다 경쟁력이 없다는 것. 실제로 한국(LCK)는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리프트 라이벌즈, 아시안게임 등 올해 들어 열린 모든 <리그 오브 레전드>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중국(LPL)에 내줬다. "한국은 더 이상 롤 최강국이 아니다"라는 말은 롤드컵만 보고 내린 근시안적인 진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10월 27~28일 양일간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4강전에는 유럽의 G2와 프나틱(Fnatic)’, 중국의 IG, 북미의 C9으로 확정됐다. 그에 따라 11월 3일 인천 문학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결승전에는 한국팀이 없다.
한국은 오랜 시간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의 맹주로 자리했던 '고인 물'이다. 해외의 주류 메타를 도외시하고 선수 선정, 밴픽, 경기 운영까지 전부 '고여버린' 결과, 매년 당연한 듯 결승에 올랐던 LCK는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에 들러리로 전락했다.
원래 '고인 물'이라는 말 뒤에는 '썩는다'는 말이 따라온다. 고작 1년의 주춤세로 그간의 역사와 영광이 모두 무너졌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LCK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LCK의 입지는 이번 롤드컵보다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