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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당신이 '심즈'에서 심을 죽이는 이유

'심즈 4' 프로듀서, 인터뷰에서 플레이어가 심 죽이는 이유 밝혀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18-10-29 17:55:52

<심즈> 시리즈는 기네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가상의 마을에서 '심'들의 삶을 꾸려나가는 <심즈> 시리즈는 현실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대리 만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심즈 4>로 꾸준히 서비스되고 있다.

 

그런데 <심즈>​ 플레이어 사이에서 '심 죽이기'는 일종의 '메타'로 여겨진다. 감금, 고문, 방화… <심즈> 시리즈를 아는 이라면 직간접적으로 접해봤을 플레이다. 일부 플레이어는 포럼에서 '총격 모드', '저승사자 모드' 등 유저 제작 모드를 다운로드받아 자신의 심을 죽이는 플레이를 벌이기도 한다.

 

건강한 삶을 목표로 하는 <심즈>에서 일부 플레이어는 자신의 심을 죽이고 싶어 한다. 개발자 입장에서 플레이어의 심 죽이기는 오랜 난제였다. 2005년부터 <심즈>를 제작한 <심즈 4> 시니어 프로듀서 그랜트 로디크(Grant Rodiek​)는 현지 시각으로 25일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왜 플레이어가 <심즈> 시리즈에서 온갖 기괴한 살인 행위를 저지르는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원문 바로가기)

 


 

 

# <심즈 4>에서 하루에 죽는 심은 2만 8천 명

그랜트 로디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심즈 4>에서 하루에 죽는 심은 총 2만 8천 명. 그중 나이가 들어 사망하는 경우는 30.5%에 불과하며 나머지 69.5%는 각종 사고로 사망한다. 일일 사망 심 중 11%는 굶어 죽고, 10.7%는 물에 빠져 죽으며, 10.6%는 화재로 사망한다.

 

이는 플레이어가 "심을 죽이겠다"는 의지를 실현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수치다. <심즈>에서 젊은 사람이 병사하기는 쉽지 않다. <심즈>는 기본적으로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살다가 노년기가 되어 죽는 날이 다가오면 '죽음의 신'이 그 심을 데리고 가는 생애 주기를 가지고 있다.

 

<심즈>에서 젊은 사람이 죽으려면 각종 사고가 발생해야 하고, 그마저도 게임 속 '화재경보기' 같은 장치로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 요리를 아무리 할 줄 몰라도 시리얼에 우유만 부어 먹을 줄 알면 (비록 만족도는 떨어질지는 몰라도) 아사하지 않으며, <심즈 2>까지만 해도 사다리 없이는 수영장을 빠져나오지 못하던 것과는 달리 <심즈 3>부터는 수영하던 심이 사다리 없이 수영장 밖을 나올 수 있다.

 

로티크가 제시한 수치는 결국 많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심 세계 속 심을 의도적으로 죽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심즈 4> 심의 10.6%는 화재로 사망한다. 사진은 <심즈 2> (출처: 심즈위키)

 

<심즈 3>에서 심이 모두 죽으면 뜨는 메시지

 

 

# 기상천외한 심 죽이기

 

다음은 모드를 쓰지 않고 인-게임 요소로만 구성한 <심즈>의 심 죽이기 시나리오다.

 

아버지 고트 모티머가 잠을 자기 위해 방에 들어간다. 모티머가 잠을 자던 중 갑자기 문이 사라진다. 방벽은 통유리로 바뀐다. 잠에서 일어난 모티머는 문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오줌이 누고 싶지만, 화장실에 갈 수 없다. 모티머는 결국 방바닥에 오줌을 지린다. 

 

통유리 밖으로 가족들이 지나다닌다. 배가 고프다. 제발 자기를 꺼내달라고 소리친다. 아내 벨라 고트는 침실로 가는 문이 막혔다고 불평할 뿐 남편의 고함을 들은 체도 안 한다.

 

정신 차릴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방 안. 급기야 침대마저 사라지고 방 안에는 어떤 가구도 남지 않는다. 며칠 뒤, 고트 모티머는 자신이 지린 오줌 위에서 생을 마감한다.


고트 모티머는 누가 죽였을까? 어떤 심도 아닌 플레이어 자신이다. 위의 시나리오는 우연이나 사고가 아니라 계산된 시뮬레이션이다. 플레이어는 심을 살리기 위해 문을 설치해줄 수도 있고, 방에 변기를 놔줄 수 있다. 애초에 플레이어가 심의 생사를 가지고 놀 계획이 없었더라면 문이나 침대를 없애고 방 벽을 통유리로 바꾸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외 <심즈> 유저 포럼 '심즈 온라인'에는 <심즈 4>에서 심을 죽이는 방법이 망라돼있다. (바로가기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기상천외한 심 죽이기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문을 설치하지 않는 이상 이 심이 살아날 확률은 없다 (출처: angelfire.com)

 

'심즈 3'부터 수영장에 심을 넣고 사다리를 치워도 익사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이렇게 벽돌을 둘러 가둬야 한다. (출처: 심즈위키)

 

벽에 다른 심과 키스한 사진이 잔뜩 걸려있다. 여심의 마음이 어떨까 상상하는 잔혹한 플레이도 가능하다. (출처: 심즈위키)

 

 

# 왜 심을 죽이는 걸까?

<심즈> 플레이어는 왜 이런 성향을 보이는 걸까? 게임심리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티 응우옌(C. Thi Nguyen)은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플레이 성향이 주어진 게임을 가능한 한 빠르게 마치려는 '스피드런' 현상의 일종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심즈> 시스템은 애초에 심을 돌보기 위해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도구가 심을 돌보기 위한 장치다. 심을 죽이는 행위는 게임 의도에 없는 방식"이라며 "플레이어가 심을 죽이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연출해야 한다. 이는 곧 게임을 리믹스해야 하는 행위"라고 부연했다.

 

플레이어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기 때문에 그런 플레이를 즐기는 게 아니라, 죽을 일이 없는 심을 죽이면서 주어진 틀 안에서 자신만의 플레이를 창조하는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응우옌은 플레이어의 '막장 소설'이 개인적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즈3] 잔인한 실험 - 심씨 표류기 (바로가기)

 

<심즈 4>에서는 웃다가도 죽을 수 있다 (출처: 심즈 온라인)

 

# 심즈 플레이어의 4가지 타입, 그중에 '재밌는 짓을 좋아하는 사람들'

<심즈 2> 확장팩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심즈>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랜트 로티크는 "왜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플레이어가 대상을 통제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극단적인 방법이며 돋보기로 벌레를 태워죽이는 일보다 친절하고 신사적인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로티크는 자신의 팀과 수년간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즈> 플레이어를 4가지 타입으로 분류했다.

 

1. '건축 모드'로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

2. '심 만들기'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아름다운 인물을 만드는 '심 창조 아티스트'

3. '생활 모드'로 고전적인 줄거리를 즐기는 '이야기 작가'

4. 심의 목숨을 거두고 시스템을 간파하는 것을 즐기는 '재밌는 짓을 좋아하는 사람'

 

"왜 심을 죽이는 걸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4번에 해당한다. 이 유형의 게이머들은 게임 내에서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가문, 관계도, 빈부, 삶의 목표 등의 기본 설정을 파괴하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심 세계를 박살 낼까 고민한다. 로티크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캐릭터를 창조적으로 죽이기 위해 게임 내 시몰레온('심' 시리즈의 화폐 단위)을 올려주는 치트키인 'rosebud'를 몇 번이고 입력한다.

 

'재밌는 짓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자신의 특이 플레이를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그렇게 <심즈> 커뮤니티에는 '100명의 아이 낳기', '마을의 남자 심을 모두 내 연인으로 만든 뒤 죽이기', '아내가 죽는 모습 그림 그리기' 등 '어둠의 도전 과제'가 만들어졌다. '재밌는 짓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시리즈와 확장팩은 '다른 의미'의 도전 과제 갱신이 됐다.

 

유튜브 연재물 '콜 미 케빈'(Call Me Kevin)은 다양한 방법으로 심을 죽이는 모습을 조명한다.

 

 

# <심즈>에 앞으로 어떤 죽음이 나올까?

 

<심즈> 제작진은 이런 괴짜 플레이어를 게임을 즐기는 부류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그들의 플레이를 강하게 막지 않는다. 제작진은 심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묘사하지만 디테일은 묘사하지 않는다. 심은 오줌을 지리거나 악취를 풍기긴 하지만 사망 과정에서 팔다리가 잘려나가거나 피가 나오진 않는다. 로티크는  이와 관련해 "아이들이나 반려견이 불타 죽는 역겨운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심즈>는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둔 상태에서 나름의 최저선은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재밌는 짓을 좋아하는 사람'은 <심즈>에서 어떤 죽음을 창조할 수 있을까? 로디크는 인터뷰에서 "앞으로 <심즈>에 청각장애가 있거나, 앞을 보지 못하거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심을 추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자신의 심이 불치병이나 난치병 등 회복이 힘든 질병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즈> 제작진은 장애나 질병을 가진 심을 개발하기 위해 장애나 병력을 가진 플레이어의 자문을 얻었다고 한다.  

 

<심즈 4>에서 한여름에 난방하면 '더워 죽는다' (출처: 심즈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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