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에서 중요한 것은 빛과 그림자가 어떻게 구현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마그나카르타> <창세기전3>의 일러스트 및 모델링을 담당했고, 지금은 엔씨소프트의 차기 MMORPG <블레이드앤소울>의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김형태 씨가 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콘텐츠개발자 컨퍼런스(ICON 2008)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제작과 게임 컨셉아트’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김형태 씨는 “일러스트에서는 어떻게 이쁘게 그리느냐보다 빛과 그림자가 어떻게 표현되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블레이드앤소울>의 영상이 공개된 후 ‘김형태의 스타일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게임 속 캐릭터들의 빛과 그림자가 원화와 유사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빛과 그림자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광원과 보조광원(그림자 등)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요소다. 이런 설정을 위해서는 평소 조소 등의 미술작품을 통해 빛에 대한 연구와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며, 항상 빛을 유념하며 그림을 그린다면 훨씬 입체감 있는 모습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
빛과 그림자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려준 예시 그림.
김형태 씨는 “컨셉아트란 액세서리, 디테일, 질감 등이 표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컨셉아트란 게임 그래픽의 완성을 위한 설계도이며, 그림이 아니라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러스트와 컨셉아트의 차이점에 대해 “그림과 디자인의 차이”라고 표현했다. 일러스트로 그려진 캐릭터를 어떻게 3D로 구현시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 컨셉아트라는 말이다.
실제 컨셉아트의 예시. 일러스트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김형태 씨는 이를 위해 컨셉아트에는 ‘입체감’, ‘게임에서의 실현가능성’, ‘재질과 감촉'의 3가지 요소가 꼭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배경을 그릴 때는 입체감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장식 구조나 순서 배치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이 컨셉아트”라고 강조했다. 또한 재질과 감촉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제 샘플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했다.
김형태 씨의 이번 강연에는 게임 개발자 지망생을 비롯한 수십명의 청중이 30분 전부터 강연실을 꽉 채워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강연 후반부에는 청중과 함께 게임회사 입사와 업무(특히 컨셉아트, 디자인 계열)에 대한 Q&A가 오고가기도 했다.
다음은 강연 시간 중에 진행된 질의응답(Q&A)을 정리한 것이다.
질문> 게임 일러스트 취업준비생이다.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준비해야 되나?
김형태> 나 역시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임회사가 포트폴리오를 볼 때 가장 유념하는 것은 ‘이 사람을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회사가 실제로 쓰고 있는 컨셉아트와 가장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것이다. 강연에서 언급한 컨셉아트의 중요점 3가지와 3D화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질문> 캐릭터 디자인이 아닌 다른 분야 전공자인데,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있나?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분야’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내가 캐릭터 원화를 그릴 것인지, 배경을 그릴 것인지부터 선택해야 한다. 선택이 끝났다면 타인이 코드화, 기호화 해놓은 그림을 무작정 따라 그리는 것이 좋다. 물론 기본이 튼튼한 그림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질문>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자료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가?
주위에 있는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얻는다. 남이 그린 그림, 아마추어 분들이 그린 그림 등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실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예전에 집에서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서 한 시간 반 가량 지하철을 타야 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지만 나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지하철 내부에 붙어 있는 광고판(주로 사람얼굴이 확대된 광고들)을 보며 그 구조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이처럼 주위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질문> 입사준비를 위해 막연히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달라.
가장 중요한 것은 ‘손을 쉬지 말라’는 것이다. 고민이 있더라도 그림을 그리면서 고민을 하고, TV를 보더라도 그림을 그리면서 TV를 봐라.(실제로 질의응답 시간에도 김형태 씨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향상된 자신의 실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형태 씨의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
질문> 온라인 게임은 수명이 길다. 그러다 보면 초창기 디자이너 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다른 팀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이 두 팀간의 의견차가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하나.
온라인 게임 수명이 보통 10년이다. 자연스럽게 초기 멤버들이 다른 프로젝트로 옮기는 경우 많이 있다.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후자 팀의 개성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싶다면 스타일 가이드를 작성해 이를 후자 팀에게 학습시키는 것이다. 일정기간 학습 후 실현 가능성이 보이면 그때서야 투입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 지는 그 팀의 문제이다.
질문> 신입 디자이너로 입사 후 해야 할 일은?
신입은 입사 후 5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정하게 된다. 그림을 계속 그리면서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면 메인 아티스트, 치프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된다. 만약 디자이너가 아닌 아트 디렉터가 되고 싶다면 게임 속 비주얼 구현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엔진이 어떻게 구현되는 지 등 구체적인 사안까지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분야로 진출할 것인지에 대해 목표를 정한 후 거기에 맞춰서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질문> 게임 회사 직원들은 건강관리가 힘들 것 같다. 어떤 식으로 관리를 해야 하나.
인터넷을 줄여라. 인터넷 시간만 줄여도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나 역시 과거에 하루에 8시간 이상 인터넷을 한 적이 있다. 그 시간만 줄이고 조절한다면 충분히 건강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 다른 나라의 컨셉아트는 자유분방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획일적인 것 같다. 혹시 회사 내에서 캐릭터를 비슷하게 만들라는 강압 같은 것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선 나는 그런 강압을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성공한 게임들은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 <리니지> <바람의 나라> <프리스타일>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등 비슷한 스타일의 게임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사실 그런 정체성을 고민하기 전에 자신의 실력부터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실력을 키워 대중에게 공감할 수 있는 스타일을 만든다면 그러한 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질문> 김형태 씨의 그림을 보면 여성의 특정 부위가 강조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게임을 잘 팔기 위한 방법인가 아니면 개인의 취향 때문인가.
팔기 위해서 그렇게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그리라는 강요도 받지 않는다. 나 스스로 판단해서 그렇게 그리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 시장 소비자 폭은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많다. 이들은 에로티시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국가이기에 이를 항상 감추고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욕을 먹더라도 노골적으로 과감하게 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컨셉이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어필이 된 것 같다. 사실 내 그림을 보면 빛이나 앵글 등도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특정 부위에만 관심을 가지더라.
질문> 일을 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꼈을 때와 좌절감을 느꼈을 때는?
욕이든 칭찬이든 내 그림에 대한 반응이 있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그와 반대로 일러스트가 공개 되어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 좌절감을 느끼게 되더라.
질문> 게임회사에서 일할 때 작은 회사부터 경력을 쌓아 대기업을 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처음부터 대기업 입사를 위해 도전하는 것이 좋을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경력을 쌓아서 옮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신입으로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추후에 연봉을 올릴 기회가 적어진다. 그러나 작은 회사에서라도 프로젝트를 하나씩 완성하여 경력을 쌓아 옮기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입사할 수 있다. 물론 연봉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 경력직으로 입사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