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를 하나 던저보겠다. ‘한국형 MMORPG’. 장담컨데 이 글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가 떠올랐으리라.
어디선가 많이 해본 듯한 게임들, 특색없다고 비판받는 게임들이 많다. 앞으로도 한동안 그들은 흥망을 거듭하며 국내 게임계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유저들은 말한다. 좀더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고. 그러나 사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화제작 <블레이드앤소울>의 개발을 지휘하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배재현 전무. 그는 새로운 시도보다는 다른 시도를 해보라고 말한다. 13일 경기도 일산 KINTEX에서 개최된 KGC2008에 나선 그의 기조강연을 들어보았다. /디스이즈게임 황성철 기자
강연 초반, 배재현 전무는 “게임을 처음 해봤는데 마치 전생에 해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게임들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누구나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원한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은 여간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배재현 전무는 새로움보다는 다른 게임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새로운 게임 경험을 만드는 것은 여간해서는 힘들다는 것이다.
"저도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그는 흔히 RPG에서 사용되는 중세 환타지 설정을 다른 것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어떨까?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설정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숨이 탁 막힐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소재의 선정이 곧 새로운 게임 경험을 보장하는 것일까? 유저들이 ‘아! 이 게임 새롭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배재현 전무는 이런 시도들 대부분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소재의 변화를 주는 모든 시도들은 결국 실제 게임성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생에 해본 듯한 게임이 되고야 맙니다."
그는 새로운 테마의 게임을 만들 경우 상당히 치밀한 준비를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선택한 테마의 근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협의 경우 단순한 차용으로 비극에 이른 경우가 적지 않다.
치밀한 준비를 하더라도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무협이 RPG 게임으로 만들어진 사례가 적다. 또한 특유의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다양한 유저층의 유입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또한 과장된 액션을 게임 내에서 제대로 구현하려면 중세 판타지에 맞게 짜여진 기존 RPG의 전투 시스템을 모두 뜯어고쳐야만 한다.
결국 새로운 게임 경험을 만들어 내는 일은 무척 힘들다는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예전의 게임들은 어땠을까?
<울티마 온라인>이나 <에버퀘스트>, <리니지>와 같은 게임들은 MMORPG의 여명기에 나온 게임들이지만 MMORPG의 여명기에 나온 게임들이지만 현재 나온 게임들보다 색다른 게임 경험을 제공했다. 시스템도 더 풍성하고 자유도도 더 높다. 왜 그럴까?
배재현 전무는 요즘 게임들의 참신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들 게임이 오히려 더 새로워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게임들은 대부분 예전에 등장한 시스템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새로운 충격은 없습니다. 또한 기존의 강력한 시스템들은 점차 유저들의 불만에 의해 칼날이 무뎌져왔습니다. 기존 시스템을 물려받았지만 점차 닫히고 작아지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울티마온라인>의 경우 다른 유저의 캐릭터를 죽이고 시체에서 아이템들을 남김없이 벗겨가는 일은 그 당시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에버퀘스트>의 경우 한 사람의 퀘스트를 위해 수십여 명이 참여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수백명이 퀘스트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그 와중에 힐러들은 자명종을 맞춰놓고 번갈아가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문제점, 게임의 참신함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배재현 전무는 작은 제안들을 늘어놓았다. 기술과 인터페이스의 재발견, 단순화, 창발성, 개발 방법론 등등. 그는 그 중에서도 기술의 재발견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게임성을 만들기 위해 다시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 모순입니다. 예전의 뛰어난 게임들이 요즘 게임들보다 그래픽을 비롯한 기술적인 면에서 앞서있는 것은 아니며 기술의 발전이 때때로 많은 어려움을 수반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울티마온라인>의 하우징 시스템을 3D로 구현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배재현 전무는 닌텐도DS가 기술의 재발견을 통해 성공한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NDS의 경우 PDA의 인터페이스 기술을 차용하여 성공한 것입니다. 누구나 다 따라할 수 있는 기술이죠. 하지만 왜 다른 사람들은 시도하거나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닌텐도만이 깊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왔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단순화를 통해서도 새로운 게임성을 창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경우 <에버퀘스트>의 시스템에 새로운 것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삭제와 단순화를 거친 것입니다. 이미 요즘 게임들은 충분히 복잡하고 커졌습니다. 거기에 또 무엇인가를 추가하면 그것을 잘 다듬기가 힘듭니다. 자동차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자동차 꼬리가 비쭉비쭉 튀어나와있지는 않거든요”
배재현 전무의 경험과 사례를 곁들인 자세한 이야기는 시간 관계상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끝난 느낌이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TIG는 그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TIG> 앞서 <리니지2>의 경우 프로토타입에서 채워넣지 못한 시스템을 후에 넣을 때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해달라.
TIG> 강연 중에 ‘게임 개발은 타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현재 맡고 있는 <블레이드앤소울>의 개발에도 그런 소신을 적용하고 있나? 무협 컨셉트를 직접 선택한 것인가?
TIG> 무협을 테마로 하였을 경우 발생하는 게임 개발의 어려움을 사례로 강연의 주제인 ‘다른 게임 경험(different gaming experience)’를 설명했다. <블레이드앤소울>도 무협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배재현> 그런 고민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블레이드 앤 소울의 개발이 더뎠다. 복장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6개월이 걸렸을 정도다. 그렇기에 강연에서 <울티마온라인>이나 <에버퀘스트>, <리니지>같은 선배들이 고맙다는 말을 한 것이다. 사실 ‘그냥 판타지 설정으로 갈 걸’ 하고 생각한 적도 있긴 하다.
TIG> 해외에서 <블레이드앤소울>에 대한 관심이 높다. 벌써 팬사이트들이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무협 스타일의 <블레이드앤소울>이 해외 특히 미주나 유럽쪽에서 통하리라 생각하는가?
배재현> 그런가? 아직 잘 모르겠다.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유럽은 미주보다 훨씬 관대하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TIG> 가장 이상적인 MMORPG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배재현> 음, 샌드박스라고 생각한다.
TIG> 리니지도 샌드박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재현> 일부분 반영되어 있기는 하다.
TIG> 앞서 말한 ‘다른 게임 경험의 관점’에서 블레이드 앤 소울을 바라볼 때 어느 정도 만족하는가?
배재현> 한 50%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갈길이 멀다.
TIG> <블레이드앤소울>의 프로토타입 개발 단계에서 <리니지2>와 같은 개발 과정상의 문제점들을 반복했는가? 배재현> <리니지2>는 급하게 만들어서 아쉬운 게 많다. 이번에는 쫒기지 않고 천천히 만들려고 한다.
TIG> <아이온>의 오픈베타 동접이 15만명을 넘는 등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사실상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다. 아이온 이후에도 성공하는 게임들이 나와 기존의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배재현> 물론이다. 성공하는 게임들은 계속해서 나온다.
TIG> 그런데 <아이온>의 이런 흥행몰이가 다른 게임들의 유저들의 이탈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배재현> 성공한 게임들은 서로 파이를 갉아먹지 않는다. 리니지 시리즈의 동시 접속자수는 사실상 하나도 안줄었다고 할 수 있다. 성공한 게임들은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TIG> 인터뷰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