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온>이 2008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거머쥐었다. '양치기 소년' 소리를 들으며 계속 연기됐던 게임. 상용화까지 이런저런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다. 상용화 초기지만 흥행에서도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마침내 게임대상까지 탔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결과도 좋지만, 내부적인 고비도 많았던 <아이온>의 우여곡절 히스토리를 짚어봤다. /디스이즈게임 김광택 기자
<아이온>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4년이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100 명이 넘는 인원을 과감히 투자해 ‘포스트 리니지’를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때 가장 화제가 됐던 게임은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였다. 모든 매체의 눈이 이 게임 하나에 집중된 해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최고의 MMORPG 개발사로 손꼽히는 엔씨소프트가 자극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넘어설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내부의 목표였고, 그 시도가 <아이온>이었다. 물론 상용화가 시작된 지금, 게임성 면에서 <아이온>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벽을 넘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다.
2005년 8월: “아이온 연내 공개하겠다”
엔씨소프트가 2005년 2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11월에 열리는 지스타 행사에서 <아이온>을 처음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힌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플레이엔씨’라는 게임포털의 런칭을 앞두고 캐주얼 게임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던 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엔씨소프트는 게임포털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이런 와중에 <아이온>을 연내에 공개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엔씨소프트가 해외에서 <시티 오브 히어로>와 <오토어썰트>의 성공을 어느 정도 자신하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2005년 11월: 양방언, <아이온> 음악감독 맡아
게임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양의 야니’로 불리는 양방언 씨가 <아이온>의 음악감독을 맡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에는 유명한 해외 작곡가를 섭외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웹젠이 <썬>의 배경음악을 하워드 쇼어에게 맡겼고, 그라비티가 <라그나로크2>를 칸노 요코에게 맡긴 것이 그 예다. 엔씨소프트도 <리니지2>와 <길드워>의 배경음악을 각각 빌 브라운과 제러미 소울에게 의뢰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엔씨소프트가 제일교포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인 양방언 씨를 음악감독으로 섭외했다. 결국 <아이온>의 배경음악은 동양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OST 음반도 나왔다.
2005년 12월: “올해에 공개하면 안되겠다”
<아이온>이 지스타에서 공개되지 않았다. 엔씨소프트는 연내에 <아이온>을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게임의 완성도였다. 당시의 버전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내부 판단에서 연내 공개가 미뤄진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게임을 공개하는 것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아이온>은 대대적인 수정작업에 들어간다. 시기상으로는 소위 ‘빅3’로 불리는 <썬> <제라> <그라나도 에스파다>가 한창 주목을 받고 있던 때였다.
2006년 5월: E3에서 <아이온> 최초공개
<아이온>의 공개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이뤄졌다. 엔씨소프트는 <아이온> 외에도 <던전러너> <타뷸라라사> <길드워 챕터2> <오토어썰트> <엑스틸> <사커퓨리> 등 막강한 라인업으로 E3에 단독부스로 참가한다. 이때 처음으로 <아이온>이 ‘크라이엔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언리얼엔진’이 대세이던 시절이었지만 엔씨소프트는 <아이온>에 국내 최초로 ‘크라이엔진’을 도입한 것이다. E3에서 공개된 <아이온>은 화려한 그래픽과 함께 PvPvE의 갈등구조, 유저의 행동패턴이 월드를 변화시키는 ‘상호작용 시스템’ 등으로 화제가 됐다. <아이온>은 그 해에 해외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E3 관련 상을 휩쓴다.
2006년 9월: 공중전투 구현에 집중
<아이온>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기존의 MMORPG에서 보기 힘들었던 종족간 공중전투를 게임의 핵심 컨텐츠로 내세운 것이다. 당시에 엔씨소프트는 자유비행과 공중전투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이때 어비스에 대한 윤곽도 드러나게 된다. 또 게임 캐릭터를 동양적인 감성에 맞게 바꾸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강력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도 개발된다.
2006년 11월: 지스타에서 아이온 첫 공개
<아이온>의 개발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판단한 엔씨소프트가 국내 공개를 진행한다. 엔씨소프트는 그 해 봄에 E3때 공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 <아이온>을 공개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체험판을 들고 나왔다. 지스타에서 <아이온>을 즐긴 유저의 반응은 다양했다. 당시 디스이즈게임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반적으로 재미있다'는 의견이 86%였고 '그래픽이 뛰어나다'는 의견도 88%에 달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리니지2>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유사한 내용들이 많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미 E3를 통해 한 차례 접했던 <아이온>을 좀더 자세하게 뜯어보는 유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5월: <리니지3> 사태와 <아이온>
엔씨소프트가 2007년 여름에 <아이온>의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다. 9월로 예상되었던 베타테스트를 앞당기겠다는 발표였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게임포털인 ‘플레이엔씨’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리니지3>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른바 ‘<리니지3> 사태’로 불리는 사건이 터지면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3> 프로젝트는 일시 중단되고 만다.
결국 믿을 만한 카드는 <아이온>이었다. 이때부터 엔씨소프트는 <아이온>에 올인하게 된다. 그때까지 엔씨소프트는 <아이온>을 개발하면서 ‘웰메이드’를 지향했지만 ‘웰메이드’로 인정받는 것과 더불어 반드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졌다. 그런 차원에서 베타테스트를 앞당기게 된다. |
2007년 6월: FF테스트와 베타테스트 연기
<아이온>의 클로즈 베타테스트에 앞서 ‘프랜즈&패밀리 테스트(FF테스트)’가 시작된다. 클로즈 베타테스트에 앞서 진행된 FF테스트는 일종의 최종점검 차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게임 자체의 외형은 훌륭하지만 여전히 유저들의 눈높이에 맞는 컨텐츠가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엔씨소프트는 여름으로 예정됐던 베타테스트를 미루고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에 다시 돌입했다.
2007년 10월: 첫 클로즈베타테스트 시작
10월에 대망의 첫 번째 클로즈 베타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엔씨소프트는 3~4개월에 걸친 담금질을 거친 후 유저들에게 <아이온>을 공개했다. 테스트 반응은 뜨거웠다. 테스터로 뽑힌 인원 상당수가 고스란히 게임에 접속한 것이다. 유저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수준 높은 그래픽과 모나지 않은 친숙한 인터페이스, 자연스러운 레벨업 시스템 등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때에도 문제로 지적된 것들은 있었다. <아이온>만의 특색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2008년 1월: 2차 클로즈베타테스트 연기
엔씨소프트는 당초 2007년 연내 상용화를 언급했지만 결국 2차 클로즈 베타테스트마저도 2008년 3월로 연기되었다. 문제는 역시 게임의 완성도였다. 엔씨소프트는 또 다시 <아이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수차례 수정작업을 거쳤지만 여전히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엔씨소프트는 2008년 6월 내에 상용화를 시작할 계획이라는 말만 남긴 채 침묵한다.
2008년 3월, 7월: 2~3차 클로즈베타테스트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거듭하면서 <아이온>의 전체적인 모양이 완성되기 시작한다. 천족과 마족의 PVP 컨텐츠에 대한 테스트는 어느 정도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7월에 진행된 ‘어비스’ 테스트였다. 대규모 PVP와 점령전 컨텐츠를 예상했던 유저들에게는 다소 멋없는 모양세었다. 당초 엔씨소프트는 3차 테스트를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픈 베타테스트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이 계획에서 한 발 물러났다.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11일: 오픈베타 동접 20만 명 돌파
<아이온>에 대한 우려는 지나친 걱정이었을까. 마지막 베타테스트 이후 무려 넉 달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아이온>의 오픈 베타테스트가 시작되면서 유저들이 엄청나게 몰려든 것이다. 테스트를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동시접속자 수 4만 명을 넘기더니 6시간 후에는 10만 명을 돌파했다. 또 테스트를 시작한 지 닷새 째인 15일에는 20만 명의 벽을 돌파하면서 ‘대박’ 게임으로 자리매김한다. PC방에서도 <아이온>의 돌풍은 이어진다. 100주 연속 1위를 하던 <서든어택>을 밀어내고 PC방 점유율 1위 게임으로 올라선 것이다.
2008년 11월 25일: OBT 2주만에 상용화
오픈 베타테스트 2주 만에 <아이온>의 상용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진다. 상용화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온>의 열풍은 식지 않고 이어졌다. 추정 사전결제 매출이 50억 원을 돌파했다. 개인 유저의 유료화 전환율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지는 등 <아이온>은 성공적인 상용화를 이뤄낸다. 현재 <아이온>의 동시접속자는 2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PC 점유율 역시 여전히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이온>이 히트작 부재에 빠진 국내 게임시장에서 활력소 역할을 하겠다”는 김택진 대표의 다짐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2008년 12월 16일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상 수상
<아이온>은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2008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했다. 엔씨소프트로서는 <리니지2> 이후 오랜만에 받는 게임대상이었기 때문에 감회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