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에 나오는 개념인데, 특정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려면 1만 시간의 학습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 틀렸다는 말도 있다. 미국의 한 심리학 교수는 어떤 분야든 선천적 재능이 노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아무리 노력한들 주어진 재능을 극복하기란 어렵다는 것.
부산의 인디 개발사 써니사이드업은 1만 시간을 찍었다. 이들은 견습 마녀 엘리가 마을에서 주민들을 도와주며 성장한다는 힐링 어드벤처 <숲속의 작은 마녀>를 만들고 있다. 천 위에 실로 색을 입히듯 도트를 찍었는데, 픽셀 아트를 연구하고 직접 적용하는 데 1만 시간을 넘게 썼다.
공개된 스크린샷과 콘셉트 아트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써니사이드업은 지난달 <숲속의 작은 마녀>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는데, 목표 금액의 1,366%인 1억 3천만 원을 모금했다. 이는 텀블벅 펀딩의 '비디오게임' 모금 중 최고치다. (초여명의 TRPG <크툴루의 부름>이 2억 원을 모금했다)
그런데 이들은 이전까지 픽셀 아트는 커녕 게임도 만들어본 적 없다. 전공을 살리는 사람도 한 명뿐이다. 이들의 성과는 노력의 결실인가, 엄청난 재능인가? 1만 시간의 법칙은 옳은 걸까, 틀린 걸까? 우리가 주워섬기는 대부분의 금언과 마찬가지로 믿고픈 대로 믿으면 될 일은 아닐까?
19일, 어깨가 잔뜩 무거워진 써니사이드업을 만났다. 인터뷰는 화상 통화로 진행됐다.
팀원이 전부 나왔다.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은현: 프로젝트 관리와 배경 아트를 주로 담당하는 박은현이라고 한다.
선화: 써니사이드업에서 콘셉트 아트와 픽셀 아트를 맡은 이선화라고 한다.
가람: 인게임 캐릭터, 몬스터 등의 픽셀 아트와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는 정가람이다.
경래: 써니사이드업의 프로그래머 겸 기획자 조경래다.
팀 이름이 왜 써니사이드업인가?
가람: 첫째는 팀원 모두가 반숙 프라이를 좋아한다. (웃음) 두 번째 이유는 '써니사이드업'이라는 단어가 태양의 형상에서 유래가 됐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도 태양처럼 높이 떠오르고 빛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팀명을 지었다.
네 사람은 어떻게 처음 만났나?
은현: 가람이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경래는 가람이를 통해서 알게 됐다. 가람이는 경래를 군대에서 알았다. 경래와 가람이가 먼저 모바일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나는 게임의 플랫폼을 PC로 옮긴 이후에, 현재 프로젝트(숲속의 작은 마녀)의 직전부터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3명이 함께 현재 프로젝트의 초기 개발을 하던 중에 선화 씨가 오면서 4명이 됐다.
선화: 서울에서 스타트업 생활을 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져 본가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써니사이드업에서 사람을 모집하는 것을 알게 됐다. 정보를 찾아보니 게임이 너무 맘에 들어서 꼭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람이 이루어져 같이 일하게 됐다.
이전에 게임을 만든 적 있는지?
은현: 셋은 원래 대학생이었다. 경래와 가람이가 둘이서 게임을 만들고 있다가 나는 졸업한 뒤에 합류했다. 선화 님만 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을 뿐, 나머지 셋은 게임과 관련이 없는 과 출신이다. 경래는 국어국문학과, 가람이는 전자과, 나는 중국어과다.
중국어 능력자가 있으면 <숲속의 작은 마녀>의 중국어 번역이 수월하겠다.
은현: 학교생활을 열심히 안 했기 때문에... (웃음) 기초 회화만 열심히 했다.
아까 잠깐 '이전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어떤 게임이었나?
경래: 똑같이 마녀 엘리가 나오는 게임이다. 탑뷰 로그라이크 장르로 픽셀로 만들었다. 가람이랑 둘이서 개발하고 있었는데 인력 분배 문제 때문에 아예 새로운 게임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숲속의 작은 마녀>다.
독립 개발을 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 4명이 게임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선화: 대표 셋에 혼자 직원이다 보니 힘든 점은 있다. 대표들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
은현: 눈치를 봐?
선화: 눈치 보거든요? (웃음)
경래: 확실히 인원이 적은 만큼 각자 맡아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힘든 점도 많다. 각자 자신이 맡은 메인 분야 외에도 일을 처리해야 하니까. 하지만 인원이 적은 만큼 한 사람 한 사람 의견을 들을 수 있다. 팀원 모두 자신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점은 좋다.
부산에서 게임을 만들기 괜찮은 편인가? 다른 개발자들과 교류가 약하지는 않은지?
은현: 아쉬울 때도 있다. 선배님들이라던가 동료분들이 서울이나 판교에 많이 계셔 만나 뵈려고 해도 쉽지 않고 연락도 잘 안 된다.
그래도 부산에서 게임을 만들기 괜찮은 편이다. 부산시에서 문화 콘텐츠 사업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 팀도 역시 지원을 받아, 부산글로벌게임센터에 입주해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같은 건물에 다양한 팀들이 입주해 있기 때문에, 다른 개발자와의 교류 또한 아주 약하지는 않다. 좋은 정보가 있으면 공유하고, 어려운 부분은 돕기도 한다. 우리도 초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어떤 팀들과 친하게 지내나?
은현: 주변에 있는 친한 팀과 도움 주시는 선배님들이 너무 많아서 다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팀 위주로 말씀드리겠다.
같은 PC/콘솔 플랫폼 출시를 목표로 픽셀 아트 게임을 만들고 있는 '서클 프롬 닷'이라는 팀이 있다. 이들은 현재 가상의 부산을 배경으로로 한 느와르 액션 게임을 만들고 있다.
모바일 게임 업체 중에 친한 팀은 <만들어봐 요정의 집>이라는 게임을 만들고 있는 프로비스 게임즈, <시바사가>를 런칭했고 현재 새로운 작품을 개발 중인 좀비 메이트, <인생 게임> 제작에 참여하셨던 분들께서 새롭게 팀을 꾸린 스튜디오 휠이 있다.
게임의 분량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경래: 주인공의 스토리를 메인으로 잡고, 서브 퀘스트를 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게 <숲속의 작은 마녀>의 방식이다. 대략 15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맵을 탐험하거나 NPC의 서브 스토리를 보는 것을 즐기는 분들을 위한 콘텐츠도 추가할 생각이다. 15시간을 하고도 3~4시간 정도는 더 즐길 거리가 있게끔 하는 게 목표다. 스토리를 볼 수 있는 NPC를 10명 안팎으로 만들 거다.
처음에 <숲속의 작은 마녀> 영상을 보면서 <스타듀밸리> 생각이 많이 났다.
경래: 게임을 처음에 만들 때 최초로 영감을 받았던 게임이 바로 <스타듀밸리>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여유로운 귀농 생활을 하는 모습이 마치 도시라는 현실에서 벗어난 판타지 세상의 생활 같았다. 그래서 실제로 판타지 세상에서, 진짜 같은 마녀의 생활을 체험하는 게임을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둘 사이의 차별점이 무엇인가? "우리 게임에는 마녀가 나온다" 이런 거 말고.
경래: <스타듀밸리>(스듀)에서 부족한 게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명확한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 위에 쭉 진행되는 스토리를 얹어보기로 했다. 또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우리 게임에는 NPC에게 정체성이 보다 명확하게 부여된다. NPC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숲속의 작은 마녀>의 또 다른 재미다.
은현: 게임성 부분에서도 차이점이 많다. <스듀>는 전원에서 생활하며 편한 분위기를 즐기는 게임이라면, <숲속의 작은 마녀>는 월드에 숨겨진 기믹과 장소가 있어 탐험의 느낌을 준다. 각종 맵에서 다양한 테마와 그에 걸맞는 크리쳐가 준비돼있다. <스듀>가 정해진 영역을 살아가는 게임이라면, 우리 게임에는 새로운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법사가 되는 방법>과 비슷하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고?
가람: 그렇다. 우리 다 처음 들어보는 게임이었는데, 그렇다고 하니 놀라시는 분들이 많더라. 유튜브를 보고 나서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게임은 옛날 게임이고 곧 나올 우리 게임이 훨씬 세련됐다.
캐릭터 창작 차원에서는 어떤 것들을 참고했는지?
선화: 게임은 아니지만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 지브리나 디즈니,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봤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다. NPC 프레임이 무지 많이 나오는데 애니 본 경험이 도움이 됐다. 또 그들 애니메이션에 수인 캐릭터가 나와서 참고가 많이 됐다.
외국에도 출시할 예정인가?
가람: 사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이 타깃이었다. 트위터도 해외를 기준으로 운영했다가 최근 한국 트위터를 추가했다.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를 기본으로 하며 이후 상황에 따라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추가를 고려하고 있다.
예상 출시 가격은?
은현: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20달러 내외로 생각하고 있다. 텀블러 펀딩 가격이 15,000원이었는데 정식 출시가는 그것보다는 높은 가격이어야지 펀딩에 참가한 분들이 가치를 보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출시 일정이 궁금하다.
은현: 내년 2월 스팀 얼리 억세스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얼리 억세스를 플레이해주시는 분들의 데이터와 의견을 고려해서 정식 출시까지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더 완성도 있는 게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후 큰 문제가 없다면 내년 여름 정식으로 출시하려고 한다. 문제가 생기면 연기될 수도 있지만, 당장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작에 집중하겠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출시하는 작품이다 보니 이렇다 할 노하우나 경험이 부족하다. 텀블벅 펀딩 때 데모를 배포했고, 많은 피드백을 받아서 큰 도움이 됐다. 경험이 모자란 팀에겐 소통과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리 억세스 때도 데이터와 피드백을 참고해서 정식 발매 때 조금 더 완성도 높은 제품을 선보이겠다.
스팀(PC) 말고 다른 플랫폼 욕심도 들 것 같은데?
은현: 계획은 많이 하고 있다. 타 플랫폼에서도 조금씩 연락이 오고 있다. 그런 부분은 퍼블리시 계약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 혹시 몰라서 텀블벅에도 명시를 안 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최대한 다른 플랫폼에서도 찾아뵙고 싶다.
퍼블리셔는 구하셨나? 좋은 제안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은현: 아직 정식으로 퍼블리싱 계약은 하지 않은 상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 있다. 현재는 계속 대화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단계다.
좋은 제안이 오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은현: 그렇다. 우리와 방향이 맞는 퍼블리셔를 찾고 있다.
텀블벅 펀딩 결과를 짧게 말해달라.
가람: 7월부터 1달 동안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목표 금액은 1,000만 원이었는데 총 136,628,000원을 모금하며 목표 금액의 1,366%를 돌파했다. 전체 후원자는 4,652명이다. 전해 듣기로는 텀블벅 '비디오게임' 카테고리 중에서는 역대급 수치였다고 한다.
역대급 크라우드 펀딩의 주인공이 된 소감이 어떠신지?
가람: 기분은 굉장히 좋은데, 너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책임감이 많이 생기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1억 넘게 모았는데 어디 쓸 건가?
은현: 여러 계획이 있는데 우선 더 좋은 퀄리티로 <숲속의 작은 마녀>를 만들기 위해 인력을 충원할 생각이다. 지금 프로그래밍 쪽에 사람이 필요하다. 뽑고 남은 돈으로는 번역을 할 계획이다. 다른 플랫폼으로 포팅을 진행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네 사람의 각오 한마디씩 듣고 마치겠다.
경래: 나는 기획자다 보니 재미없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재밌는 게임을 만들겠다.
선화: 이번 펀딩을 통해서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예쁜 캐릭터를 만들겠다.
은현: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여러분의 성원을 배신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가람: 크라우드 펀딩의 안 좋은 사례가 워낙 많다보니 펀딩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기대를 아예 않는 분들도 계셨다. 우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실망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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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tle Witch in the Woods (@SunnySideUp_DEV) October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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