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 대표는 4년 차 1인 인디 개발자다. 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군지 모를 사람도 있을 듯. 박정우 대표는 <데드레인> 시리즈, 그리고 지난 3월 18일 출시한 <다크워터: 슬라임 인베이더>의 개발사 데브박스의 대표이다.
<데드레인>과 <다크워터> 등 그가 개발한 게임을 보면 알 수 있듯 플랫포머 장르에 푹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개발한 게임은 플랫포머라는 장르의 재미를 정석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즐기는 만큼 잘 알고 있고, 잘 알고 있는 만큼 잘 만든다는 의미.
그의 독특한 이력은 '퇴사 후 나만의 게임 개발'을 성공해낸 개발자라는 점, 그리고 1인 개발자라는 점이다. 게임 애니메이터로 활동했던 그는 재직 중 <데드레인>을 개발했고, GIDC, BIC, 유티니 코리아 어워드에서 수상까지 경험했다.
최근 <다크워터>를 출시한 뒤, 이제야 여유가 좀 생겼다는 박정우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1인 인디 개발에 대한, 그리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다.
디스이즈게임: 전작인 <데드레인> 그리고 이번에 나온 <다크워터> 모두 플랫포머 장드다. 이 장르를 원래 좋아했었나?
데브박스 박정우: <데드레인>을 개발하며 재미를 느끼게 됐다. 게임을 만들며 장르에 빠졌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전까지는 장르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연구 차원으로 점차 다른 플랫포머 게임도 하게 되더라.
그럼 플랫포머 장르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게임은 뭐가 있을까?
<솔트 앤 생츄어리>, <오리> 시리즈다. 사실 어려운 게임에 도전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죽고 또 죽기만 했다. 그런데도 계속 도전 욕구가 생기더라. '아, 이런 게 바로 플랫포머 장르의 재미구나' 싶더라.
왠지 어려운 게임이 목표처럼 들리는데.
<다크워터> 개발을 막 시작할 땐 그랬다. <오리>와 <셀레스트>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두 게임이 어렵기로 소문나지 않았는가? (웃음) <셀레스트>를 하며 3천 번 정도는 죽은 것 같더라.
<다크워터>가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개발하며 노선이 바뀌기라도 했나?
맞다. 어느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모두가 친숙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을 원했다. 그런데 친숙한데 어려운 게임? 뭔가 앞뒤가 안 맞더라 (웃음). 처음엔 가시에 닿기만 해도 죽을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런데 한 스테이지당 20분씩 플레이 해야 하는 게임에 이런 난이도는 어울리지 않더라. 그래서 난이도를 조절하게 됐다.
방금 하신 이야기나, 텀블벅에 올라온 개발 이야기 등을 보면 게임 수정을 많이 한 것 같다. 1인 개발이라 테스트 피드백을 받기 힘들었을 텐데?
상세히 피드백을 주신 유저들 덕이다. 처음에는 데모 공개 기간이 끝나면 게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장문의 피드백이 메일로 왔더라. 게임을 개발하며 짚지 못했던 점들이나, 플레이어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던 점들을 상세히 짚어 주셨더라.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수정, 또 수정했다. 어느새 처음 예상했던 론칭 기간보다 5개월이 더 흘렀더라. 하지만 사람들이 준 피드백이 떠오를 때마다 수정하는 걸 멈출 수 없겠더라. 그래서일까? 지금은 스스로 만족할 퀄리티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럼 만족도를 점수로 따진다면 스스로 몇 점 정도 줄 수 있을까?
85점 정도? 출시 전에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진 않다. 게임 표지의 경우 외주를 줘서라도 바꾸는 게 좋지 않았을까? 게임이 본격적으로 재밌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걸 좀 더 앞으로 배치했어야 했나? 이런 생각들이 많다.
그래도 85점이면 꽤 만족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좀 포기하더라도 좀 더 잘 팔릴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은 없었나?
사실 그 부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면 <데드레인 2>를 개발하며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어봤기 때문이다. 괜찮다면 <데드레인 2>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인디 개발이란 하루하루가 불안함의 연속이다. 생활비, 불확실한 게임 흥행에 대한 걱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돈 걱정 없이 게임을 만들고 싶어지더라. 그런 생각에 <데드레인 2> 비지니스 모델(BM)을 바꾸게 됐다.
수익구조를 바꾸면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얻었나?
1편은 유료 게임이었다. 인기도 많았고 호평이 자자했지만 불법 다운로드 수가 장난 아니더라... 정말 착잡했다. (전작에서 인기가 검증됐으니) 후속편을 부분 유료화로 만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실패했다. <데드레인>의 절반밖에 벌지 못했다. 1편이 1년 치 수익을 벌었으니, 그 절반이면 어느 정도일지 알 거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이도 저도 아녔다. 재미와 돈 둘 중 하나만 잡았어야 했다. 둘 다 어정쩡하게 원했다 보니 중구난방이 되더라. 차라리 BM이 잘 된 게임을 분석하거나 기획에만 집중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다크워터>를 만들게 된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혼자서 BM까지 챙기기엔 역량이 부족했다. 차라리 가격을 늘리되, 사람들에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담아내고자 했다. 내가 잘 하는 게 뭘까 생각하니 역시 플랫포머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더라.
<데드레인>에서 게임 분위기도 확 바뀌었는데, <다크워터>의 밝은 분위기가 취향인가 보다.
굳이 따지자면 <데드레인>쪽이 취향이다. <데드레인>도 좀비영화를 좋아해서 만들게 된 게임이다. 하지만 2편이 생각보다 성과가 안 좋았다. 그래서 여태껏 시도하지 않은 걸 해보고 싶어졌다. 마니악한 좀비물과 달리, 사람들이 쉽고 친숙하게 접근 가능한 캐쥬얼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이야기도 듣고자 한다. 만들고 싶은 게임을 위해 퇴사까지 한 거로 아는데.
맞다. 게임 업계에서 일하게 된 것도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내가 부품이 되어가는 느낌만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나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단 생각만 들더라.
새벽에 일어나면 게임을 만들고, 퇴근하면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회사에서는 동료들 어깨너머로 배워가며 여러 조언도 구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해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데드레인> 론칭을 끝내고 반응을 보니 나쁘지 않더라. 아예 1인 개발을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에서의 개발과 1인 개발 다 해본 흔치 않은 분이다. 어느 쪽이 더 힘들었나?
회사에서는 매일 매일이 힘들고 무서웠다. 앞서 말했듯 내가 부품이 된다는 생각만 들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크런치 기간이 되면 매일매일 일정으로 가득 차고 삶에 여유도 없더라. 삶에 보람을 못 느끼게 되니 정신적으로 매우 지치더라. 인디 개발에 거리낌 없이 뛰어들 수 있던 이유기도 하다.
반대로 1인 개발을 할 때는 야근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투자한 만큼 게임 퀄리티가 올라가니 말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와 게임의 흥행 여부 같은 걱정들 말이다. 그렇지만 일 자체가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퇴사 때 분위기는 어땠나?
돌이켜보면 동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퇴사를 만류했다. 반대로 개발자들은 보통 응원해주더라. 아무래도 개발자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꿈이기도 하니 말이다.
코로나19로 작년 행사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바뀌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진행 측이나 참여 측이나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런 행사는 모두가 처음이지 않은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퍼블려서의 행사 참여도 줄어들었다. 인디개발자와 퍼블리셔 간의 연결이 줄어든 게 꽤 아쉬웠다.
제일 힘든 건 유저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단 점이다. 피드백을 통해서 배워나갈 때가 많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버그를 수정하거나 하기도하고. 플레이하는 걸 지켜보는 행복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획한 의도와 플레이어의 행동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바뀌며 이 점이 어려워졌다.
홍도도 그렇다. 인디 개발자에게 홍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운이 좋아야 미디어에 노출되는 정도? 아니면 게임을 잘 만들어 관심을 많이 받거나 하는 정도다. 오프라인 행사가 이런 홍보 기회를 많이 줬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개발 일정에도 영향을 줬을 법한데.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특정 기간 안에 데모 버전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 제출하고 나면 게임 수정이나 버그 해결이 불가능하다.
1인 개발 대선배까진 아니더라도. 선배 정도로는 불러도 문제없을 것 같다. 다른 개발자들이 자문을 받기 위해 많이 찾아올 듯한데, 보통 많이 접하는 질문이 있나?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개발자 간 교류는 거의 없다. 그래도 오프라인 행사 때 학생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듣곤 한다. "게임을 끝까지 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 말이다. 그럴 때마다, "정말 작은 것부터 제작을 해봐라" 그렇게 말하곤 한다.
학생들 이야기하니, 요즘 학생들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 게임 행사들에서 학생들 작품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회사 생활에 찌든 게 없어서 그런 걸까? (웃음) 창의력과 잠재력이 정말 남다르다 생각한다.
1인 개발을 계속하는 이유에는 그런 점도 있을까?
물론 혼자 개발하는 게 익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성공하지 못해서 1인 개발이라 생각한다. 돈을 번다면 동료를 원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같이 작업을 했을 때 성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 때, 그때 규모를 늘리고 싶다. 다른 사람을 무책임하게 협업할 순 없으니 말이다. 지금은 망해도 혼자고, 칭찬도 혼자 받으니 좋은 점도 있고 (웃음).
누군가 1인 개발을 하겠다 물어보면?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집이 곧 작업실이고, 작업실이 곧 집이니 게을러지기 쉽다.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알려 줄 수 있나?
게임을 통해 조선시대나 한국을 알리고 싶다. 물론 언제나 게임의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집중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해 하나라도 더 검색하게 되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예전부터 꿈꿔오던 목표인데, 게임 개발 실력이 늘고 자신이 있을 때 도전에 나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