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my business card, I am a corporate president. In my mind, I am a game developer. But in my heart, I am a gamer."
명함 속에 나는 회사 사장입니다. 머리 속에 나는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나는 게이머입니다.
그 전부터 지명도 있었지만, 2005년 봄 GDC 기조연설 이후 그는 그야말로 '세계 게임계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연설을 시작하는 세 개의 단순한 문장은 이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죠.
굳이 이 인물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게임 관련 회사에 다니거나, 게이머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래도 혹시 잘 모르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여쭤볼게요.
화면이 두 개였던 닌텐도 DS라는 게임기를 본 적 있나요? 혹은 거실에서 Wii라는 게임기를 향해 하얀 리모컨을 흔들어 본 적 있나요? 둘 다 아니라면 닌텐도 스위치라는 게임기를 TV나 모니터에 연결해본 적 있는지요? 이 모든 게임기는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 대표이던 시절 발매됐거나 개발 중이었습니다.
소니와 MS의 공세에 비틀거리던 닌텐도는 그가 대표를 맡은 뒤 부활했습니다. 혁신의 아이콘 같았던, 푸근한 인상의 닌텐도 4대 대표는 안타깝게도 2015년 7월 담관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게임과 게임기는 남았습니다. 그가 남긴 말과 기억도 남았습니다. 그것들을 모은 책 <이와타씨에게 묻다>가 번역, 출간됐습니다. 이와타 사토루를 다룬 첫 책이죠.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관련 책은 쏟아지는데 이런 책은 처음입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긴 처음이자 마지막 책일 듯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재밌게 두 번 읽었습니다. 저처럼 이와타가 만든 게임기나 게임과 인연이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일화가 풍부해 게임 개발이나 조직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에도 유익합니다.
<이와타씨에게 묻다>는 ▲이와타 대표가 했던 이야기들 ▲이토이 시게사토와 나눈 대화 ▲'사장이 묻는다' 인터뷰 ▲미야모토 시게루 인터뷰 등을 엮은 책입니다. 이와타는 <마더 2> 개발 때부터 일본의 국민 카피라이터라 불리는 이토이 시게사토와 인연을 맺었고, 1998년 그가 만든 '호보닛칸이토이신문'과 창간 때부터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그 덕분에 이 신문사에서 이런 책을 낼 수 있게 됐죠. 각 주제가 이와타의 이력과 연결돼 이어진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서점에는 '경영도서'로 분류돼 있습니다. 실제 3할 정도가 리더십 관련 내용이지만, 딱딱하지 않습니다. 이와타가 친한 선배가 돼 HAL 연구소와 닌텐도에서 겪고 진행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는 느낌입니다. 아래는 각 장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 1장. 이와타가 닌텐도 대표가 되기까지
그는 대학 졸업 후 6개월 간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HAL연구소라는 작은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이죠. 시장을 4번이나 한 아버지 입장에서는 못마땅했겠죠.
1장에는 ▲정치 명문가 자제가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 ▲비슷한 꿈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계기 ▲HAL에 입사해 닌텐도를 막무가내로 찾아간 사연 ▲HAL 사장이 돼 한 달 동안 직원 면담만 한 이야기 ▲42살에 닌텐도 대표로 깜짝 발탁되는 여정 등이 나옵니다.
아, <팅클 포포>가 <별의 커비>로 바뀐 이야기도 있군요. (닌텐도 내에서 한때 그의 별명이 '커비'였다고 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책에 나와 있어요.)
2011년 닌텐도는 3DS가 실패한 뒤 구조조정 압박이 있었습니다. 이와타는 급여를 절반으로 삭감하고, 이사회 멤버들 급여도 20~30% 줄였죠. 직원 해고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훗날 대형 게임회사의 구조조정이 있을 때마다 이 일화는 꾸준히 언급되곤 합니다.
왜 그럴 수 있었는지 책을 읽고 알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 병약한 천식 환자였던 이와타는 전학 후 집단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HAL 같은 작은 신생 회사를 다녀 늘 '을의 입장'이기도 했고요. 닌텐도의 사장이 돼서도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은 이런 경험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개발자 출신이어서 개발자 생각을 잘 이해하는 경영자였다고도 하고요. 2장에는 그가 게임 개발자 또는 닌텐도 경영자로서 경험을 통해 얻은 조언이 들어있습니다. 닌텐도 입사 2년 만에 대표가 된 뒤 경영 서적들을 열심히 읽고 토론했던 이력이 드러납니다. 일반 회사원이나 취업 준비생에게도 꽤 도움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 3장. 이와타가 지녔던 개성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였던 이와타는 모르는 일에 대해 '왜 그런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가설과 검증을 반복하는 습관이 있었죠.
천재 프로그래머의 기질이 최선으로 발휘되는 의사소통에 대한 생각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프로그래머의 잘못이듯, 어떤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못 받아들이면 그는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와타는 사람들이 기뻐해주는 일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지인들도 동의합니다. 그에게는 좋은지 싫은지, 힘든지 아닌지보다 '이것이 합리적인가'가 가장 중요한 판단의 근거였습니다. 2000년대 그가 무대에 섰던 이유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개발에 시간을 쓰는 게 회사에 더 낫다고 판단한 탓이었습니다.
# 4장. 그와 친했던 세 사람 이야기
출처: 닌텐도
"지금의 프로그램을 살리려면 2년이 걸리지만 처음부터 새로 만들면 6개월 안에 가능하다."
천재 프로그래머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 이와타가 했던 이 이야기는 무척 유명합니다. <마더 2>가 개발 난항을 겪을 때 이토이 시게사토에게 했던 말이죠. 국민 카피라이터에서 게임 개발자, 매체 대표 등의 이력을 이어온 이토이 시게사토와 인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대째 족벌경영을 하던 닌텐도 대표 자리를 그에게 넘겨줬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와타에게 "지금까지와 똑같은 일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이는 닌텐도 DS가 나오게 된 배경이 됩니다.
이와타는 스스로를 '세계 제일의 미야모토 시게루 연구가'라고 불렀습니다. HAL 시절부터 그를 흉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가 미야모토에게 배운 '어깨 너머의 시선', 기능에서부터 시작하는 발상법, 소재(제작된 애셋)를 헛되이 하지 않는 발상 등을 소개했습니다.
애플과 닌텐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만듦으로써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점이죠. 하지만 차이점도 명확합니다. 닌텐도는 0.5밀리 더 얇게 만드는 것보다 튼튼하게 만드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회사일 테니까요.
이런 닌텐도의 개발 철학은 5장에 나옵니다. 이와타는 게임기 자체의 성능보다 기계가 어떤 환경에서 놀 수 있는지에 더 주목했습니다. Wii가 나오던 때는 대형 평면 TV가 등장하는 시기였죠. 그는 거실 TV에 Wii가 늘 연결돼 있기를 바랐습니다. 집에 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TV를 켜고 리모컨을 듭니다. 이와타는 그렇게 게임기도 켜지기를 바랐습니다.
게임 인구의 확대와 게임의 일상화를 노렸던 그가 'Wii 컨트롤러' 대신 'Wii 리모컨'이라는 용어를 고집했고 관철했던 이유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