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재미있게 즐기면 최고죠. 그런데 게임은 가끔씩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극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바로 온라인스포츠게임 ‘팡야’를 통해서 세계대회 우승, 더 나아가 게임개발사의 직원까지 된 안현우 씨(28)의 이야기입니다.
게임에서 즐거움과 좋은 사람, 그리고 실력까지 3박자를 두루 추구하는 온라인게임 고수를 찾아가는 ‘고수 인터뷰’. 첫 번째 시간은 ‘불꽃같은 홀인원 드라마’ 안현우씨 편입니다. 만나보시죠!
TIG: 현우씨. 반가워요~
먼저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안현우: 저는 안현우라고 하고요 77년생입니다. 현재 엔트리브소프트 운영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혼입니다. ^^;
TIG: ‘팡야’와 인연이 정말 특별한 변화를 갖다 줬는데, ‘팡야’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안현우: ‘팡야’가 오픈 베타를 하기 직전에 친구가 추천해서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그저 박세리, 최경주 같은 골프스타들의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것이 골프에 대한 전부였죠.
그래서 ‘무슨 재미로 골프게임을 할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정말 재미있더군요.
현실에서는 엄청나게 힘든 버디, 이글을 척척 낚고 홀인원까지 노려볼 수 있으니까요. : )
TIG: 들어 보니 재미 삼아 시작했군요. 그럼 WCG도 원래 목표했었던 것?
안현우: 아니에요. 대회 같은 건 생각도 안 했는데 역시 주변의 도움이 컸죠. ‘팡야’를 소개해준 친구가 “세계대회가 있으니까 한국예선전에 참가해보자”고 하더라구요. 저와 같은 새마을길드의 ‘쐬주’라는 아이디를 쓰는 친구인데요, 실제로 이름이 ‘이진로’라 쐬주에요. 그런데 소주 2잔이면 치사량인 친구니 이름과 정말 안 맞죠. ^^;;
이 자리를 빌어 쐬주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고맙다 친구야~
TIG: ‘친구따라 강남가서’ 대박난 경우군요. 원래 실력이 뛰어났었나요?
안현우: 사실 WCG 2004 한국예선에 참가할 때만해도 잘 치는 사람들과 치면 엎치락뒤치락 했죠. 예선전 현장에 가보니까 전국사이버체전에서 1, 2위 했던 사람부터 초절정 고수들이 잔뜩 모여서 긴장했었죠.
그래도 여차저차 해서 계속 올라가니까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결국 그 당시에 1등으로 한국 국가대표가 됐는데요 정말 기분 좋았어요. 어머니께 “엄마 나 1등 먹었어. 미국 가~”라고 기분 좋게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 WCG 2004에서 팡야로 금메달 딴 안현우. 이 때부터 삶의 항로가 바뀌기 시작했다.
TIG: ㅋㅋㅋ 정말 기뻤나보다. 원래 금메달을 목표로 했었죠?
안현우: 한국대표가 되고 나서는 오로지 1등, 금메달과 1만달러의 상금을 향해 매일매일 열심히 연습했어요. 게다가 ‘팡야’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임이잖아요. ‘설마 해외선수들에게 지겠나’ 싶었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까 변수가 많은 오프라인 대회라 그런지 외국 유저들 중에서도 고수가 많더군요. 특히 대만 선수가 잘 쳤어요.
TIG: 오~ 그래서 우승까지 힘들었다는?
안현우: 아뇨. ^^; 외국 선수들은 ‘럭키팡야’나 ‘신경안정제’같은 아이템을 많이 쓰면서 악착같이 달려들었지만 8강, 4강, 결승… 점점 올라갈수록 타수 차이가 많이 났죠. 결국 4강전과 결승전에서 모두 7타 차이로 이겼어요. 역시 오프라인 대회는 안정적으로 기복 없이 잘 치는 게 최고더군요. 전 원래 빨리빨리 치는 스타일이에요.
TIG: 우승하고 돌아와서 엄청 '쐈죠'?
안현우: 한동안 사람들과 축하주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죠. ^^; 사실 원래 취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WCG에 참가하면서 시기를 놓쳤어요. 그래도 ‘내 인생에 이런 경험이 어디 있겠나’하는 생각에 도전한건데 상금도 받고 좋았죠. 그런데 우승 이후부터 막연히 ‘게임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PC 하드웨어 관련된 일을 했었거든요.
▲ 안정감 있는 컨트롤과 침착한 경기운영은 그에게 '금메달'을 안겨줬다.
TIG: 그래도 결국 ‘팡야’를 만든 엔트리브소프트에 입사하게 되었잖아요?
안현우: 정말 기쁘죠. 사실 가장 활발하게 일해야 할 나이에 손을 놓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팡야’는 정말 재미있고 2004년은 최고의 한 해 였지만 ‘불안감’이란 게 항상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죠. 무엇보다 어머니가 좋아하세요.
TIG: 좀… 생뚱맞은 질문인것 같은데… 왜 아이디가 ‘불꽃’이에요?
안현우: 아마 대답도 생뚱맞을 것 같은데... ^^;;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병장말년에 할 일이 없어서 고각을 담당하는데 불이 막 훨훨 타오르더군요. 그 불꽃을 보면서 ‘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도 향기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어요. 그때부터 모든 아이디는 불꽃향기로 했죠. 그런데 길드 활동을 하다보니 다들 ‘향기님~’이라고 부르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불꽃’으로 줄였어요.
TIG: 원래 성격도 닉네임처럼 화끈해요?
안현우: 한 번 친구면 친구고, 한 번 아니면 아니죠! ^^
TIG: 그럼 화끈하게 ‘불꽃처럼 팡야를 즐겨라!’.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안현우: 노하우라… 예전에는 무대포로 ‘남들 치는 것처럼 쳐야지’란 식이었는데 어느 순간 무리해야 될 때와 안전하게 가야 할 때를 구별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들도 티샷에 팡야를 놓쳤다고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세컨드 샷에 잘 못쳤을 때 퍼팅 라인이 어떻게 되는지… 고민해야 해요. 실패를 하더라도 ‘자기만의 공략법’을 차곡차곡 비축해두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됩니다.
TIG: 고마워요~ 흠... 앞으로 많이 바빠지겠어요. 계획과 각오 한 말씀.
안현우: 예! ‘팡야’가 더욱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절대고수도 삐끗하면 질 수 있는 게임이 바로 팡야거든요. 그간 유저입장에서 아쉬웠던 것들이나 안타까웠던 것들을 차근차근 배우면서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팡야’ 프로게이머를 한번 따보고 싶었는데… 이젠 개발하는 입장이 됐으니까 도전하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그럴수록 더 좋은 게임으로 풀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즐팡하세요~
▲ '팡야' 잘해서 처음 미국 땅을 밟아봤던 WCG 2004 당시 모습.
▲ 그 때 바닷가에 새긴 자신의 아이디. 불꽃처럼 앞으로도 활활 타오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