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게임업계에는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파급력’ 면에 있어서 가장 거대한, 그리고 뜨거운 논란을 야기한 이슈라고 하면 역시나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 질병 코드 지정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WHO의 이번 결정을 두고 게임업계는 물론이고, 의학계, 정치권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요. 디스이즈게임은 2019년에 벌어진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지정,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을 타임라인 순서로 정리해봤습니다.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 추진은 지난 2018년 여름, 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을 공개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전부터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정말로 WHO가 ICD-11에서 '중독성 행동 장애'의 하위 분류로 ‘게임 이용 장애’를 신설한 것으로 확인되자 전 세계 게임업계에서는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WHO는 2019년 5월 말로 예정된 총회에서 ICD-11을 최종 승인하겠다고 밝혀 우려를 샀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WHO 총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올해 3월~4월을 전후해서 이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3월 말에는 박양우 문체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양우 장관 후보자는 “게임 중독성 여부에 대한 객관적 근거 및 의학적,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게임업계 및 의료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국내 실정에 맞게 합리적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의견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개인적으로 게임을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사견을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 박양우 문체부 장관 후보, "WHO 게임 장애 결정되면 '국내 실정 맞게' 적용할 것"
4월 6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게임 과몰입’과 ‘게임 이용장애’를 주제로 게임문화 포럼이 열렸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스테트슨 대학교 크리스토퍼 퍼거슨(Christopher Ferguson) 정신의학과 교수가 기조 강연을 맡은 이 행사에서 국내외 4명의 교수들은 한 목소리로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 추진에 대해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반대했는데요.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
특히 이날의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후원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주목받았습니다. 실제로 이날 포럼을 시작으로 문체부에서는 본격적으로 WHO 이슈에 집중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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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는 4월 9일에는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범부처 공동 연구의 제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혀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범부처 공동연구는 미래에 '게임장애'가 실제 적용됐을 때 임상적, 심리학적, 산업적 파급 효과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게임장애와 관련이 있는 부처에 연구 참여를 요청해 정부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밝혔죠. 하지만 이러한 문체부의 ‘바람’과는 다르게, 실제 정부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은 이후 수많은 진통과 논란, 논쟁을 거친 이후에나 표면화될 수 있었습니다.
☞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장애' 범부처 공동연구 준비 중
총회가 열리는 5월이 되자, 각계 각층에서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재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WHO에 반대 의견을 공식 전달했다고 5월 2일 밝혔는데요. 문화연대 또한 같은 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한다는 서한을 WHO에 보냈다고 해서 주목 받았습니다. 문화연대는 반대 서한에서 게임 장애 질병 분류가 "충분한 기간 동안 객관적인 검증 없이 진행한 성급한 판단"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습니다.
게임문화재단 또한 5월 9일에 WHO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게임 이용장애’ 등재 철회를 요청했습니다. 게임문화재단은 WHO의 이번 조치는 명백한 과잉의료화(over-medicalizaion)의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질병의 범위를 무리하게 확장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WHO가 인류의 복지가 아니라 의료산업에 봉사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밖에도 한국게임학회 등, 20개가 넘는 단체와 대학, 또한 부산광역시 같은 지역 자치단체까지 나서서 앞다퉈 WHO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조직적인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공통적으로 WHO의 결정은 충분한 근거가 없으며, 과잉 의료행위가 될 것이라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 문체부-한콘진,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반대 의견 전달
☞ "객관적 검증 부족하다" 문화연대, WHO에게 게임 장애 질병 분류 반대 서한 보내
☞ 게임문화재단, 세계보건기구(WHO)에 항의서한 전달
☞ 문화부, 지자체까지 반대! WHO의 게임과몰입 질병분류 시도 "근거 부족하다"
WHO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토론회도 잇달아 개최되었습니다. 문화연대 주최로 지난 5월 3일 개최된 긴급 토론회에서는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이 “무엇보다도 게임을 질병코드로 등재하려는 의학계의 공격이 집요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약 게임이 질병코드로 등재되면 경제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것은 의사들이다” 라고 발언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 "게임 질병코드 이슈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세력은 의사"
정의준 건국대학교 교수
그리고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는 지난 2014년부터 5년간, 약 2천여 명의 청소년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적극 알리면서 WHO의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의 추적 조사는 게임 과몰입을 유발하는 것은 게임 자체라는 기존의 프레임을 벗어나, 게임 과몰입이라는 현상의 인과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정의준 교수는 결론적으로 “청소년기의 게임 과몰입 원인은 게임이 아닌, 학업 스트레스”라고 밝히며 WHO의 결정이 성급하다고 주장했습니다.
☞ “청소년기 게임 과몰입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 학업 스트레스”
이렇게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와중에 5월 20일을 맞이하고, WHO의 총회가 개최되자 공중파를 포함한 여러 방송 및 미디어에서도 이번 이슈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반대 뿐 아니라 찬성 측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며 본격적으로 이번 이슈에 대한 찬/반 양 측의 논쟁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으로 찬/반 양측이 격돌해서 큰 화제를 모은 방송으로는 5월 21일 개최된 MBC ‘백분토론’. 그리고 KBS 제1 라디오의 ‘열린토론’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MBC 백분토론은 찬/반 양측의 발언 및 토론 참석자들의 태도 등이 큰 화제를 모으며,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이 이슈가 알려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다만 일부 참석 패널들의 ‘토론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발언과 행동은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 대도서관부터 중독정신의학회까지. 게임 장애 질병 분류 '100분 토론'의 주요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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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월 25일, WHO는 결국 수많은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게임 이용 장애'를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인정했습니다.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공식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이죠.
새로 개정된 ICD-11에서 게임 이용 장애는 '6C51'이라는 코드를 부여받았으며, '중독적 행위로 인한 장애' 항목에 '도박 중독'(Gambling Disorder)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총회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한 보건복지부는 국가별 발언에서 "ICD-11 개정 노력이 과도한 게임 사용의 부작용을 예방, 치료하는 정책 근거 마련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며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게임사용장애 기준을 신중히 설정해 개정안이 실효성 있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게임 과몰입’ 공식 질병 인정... WHO 회의서 만장일치 통과
WHO의 결정에 즉각 전 세계 게임업계는 반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일례로, 한국 게임산업협회는 미국게임산업협회(ESA)를 비롯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브라질의 게임협회와 함께한 공동 성명서를 5월 27일 발표했습니다.
이들 각국의 게임산업협회는 WHO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지침들은 독립된 전문가들이 뒷받침하는 정기적이며 포괄적이고 투명한 검토가 기반이 돼야 한다고 밝히며 ‘게임이용장애’는 WHO의 ICD-11에 포함될 만큼 명백한 증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 "WHO, 게임 이용 장애 결정 재고하라" 전 세계 게임협회의 성명발표
[전 세계 게임산업협단체 성명서 ]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에 대해 의학계 및 전문가들 간에도 상당한 논쟁이 있다. 전 세계 게임산업협단체들은 WHO가 학계의 동의 없이 결론에 도달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결과가 되거나 의도치 않은 결과가 될 수도 있으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전 세계 게임업계는 각종 정보 및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건전한 게임 이용을 장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수십억 명의 게임 이용자들이 건강하게 게임을 즐기고 일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게임 이용은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다른 가치들과 동일하게 절제와 올바른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 산업(게임산업)은 VR, AR,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 기술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정신 건강, 치매, 암, 기타 다양한 분야까지 연구 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게임산업은 이용자들이 가장 안전한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 정책 등을 포함해 세계적인 수준의 소비자 보호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
여러 단체 및 관련 기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어찌되었든 WHO 총회를 통해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코드를 부여 받은 이상 이를 되돌릴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슈는 빠르게 ICD-11의 국내 도입 시점 및 적용 범위 등에 대한 논의로 옮겨 가기 시작했습니다.
ICD-11이 승인되면서 게임 이용장애는 오는 2022년 1월부터 공식 질병으로 효력이 발생합니다. 공식 질병 적용 대상은 194개의 WHO 회원국이며, 각국은 게임 이용 장애 대처를 위한 방안 마련을 진행하게 됩니다. 다만, ICD-11은 어디까지나 각국에 대한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한국은 이를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은 현재 '한국 질병 분류 코드'(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KCD)라는 독자 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화 반대 측은 KCD에 게임 이용 장애가 등재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KCD는 예정대로라면 오는 2025년에 개정될 예정입니다.
☞ WHO '게임 이용 장애' 공식 질병 인정,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질병분류 정보센터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초점이 KCD로 옮겨가자, 빠르게도 정부 부처간 갈등이 표면화되었습니다.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보건복지부와, 반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공직자들 사이에서 연달아서 통일되지 않은 발언이 나오면서, 정부가 마치 갈팡질팡하는 듯한 모습을 노출한 것이죠.
☞ 문체부 vs 복지부 시작되나? 게임 이용 장애 관련 공공 기관 입장 모음
급기야 5월 28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관계부처들은 향후 ICD-11 대응을 놓고 조정되지도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에 불안을 줘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경고를 하면서 빠르게 진정세를 맞이했습니다. 참고로 이낙연 총리의 이 발언은 보통 비공개로 진행되는 간부회의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대중에 공개해서 주목받았습니다.
☞ 이낙연 총리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조정 안 된 의견 말해 국민에 불안 주지 말 것"
이낙연 국무총리
‘게임 이용 장애’의 국내 도입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만큼, 6월 이후 이 이슈는 ‘장기적인’ 여론전 양상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업계, 문화계, 정신의학계, 심리학계 등 다양한 학계와 업계에서 저마다 찬/반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내고 있는데요. 특히 게임 업계에서는 ‘게임은 문화’라는 인식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한덕현 교수, "공존질환 나으면 게임과몰입도 씻은 듯 사라진다"
☞ 한콘진, ‘게임은 문화’ 인식 확산을 위한 연구논문 모집
☞ [FAQ]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 심리학계의 반격이 시작됐다
☞ 정신의학단체 9개 "게임이용장애 질병 인정하고 적용 절차 진행하자"
또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90개 단체는 게임질병코드의 국내 도입 저지를 목표로 하는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발족하고,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행동으로 게임 스파르타 300인(Game Spartan 300)을 모집하겠다고 밝혀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공대위는 이 활동을 포함해서 앞으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행동을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 게임질병코드 반대를 위한 공대위가 ‘게임스파르타 300인’ 모집을 시작한다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질병 코드를 국내에 도입하는 것에 대한 민·관협의체의 구성도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23일, 마침내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의 주도로 협의체의 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협의체는 의료계(3명), 게임계(3명), 법조계(2명), 시민단체(2명), 관련 전문가(4명) 등 각계를 대표하는 민간위원 14명과 정부위원 8명 총 22명으로 구성됐었습니다. 협의체의 장은 윤창렬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맡으며, 이 협의체가 이제 질병 코드 도입에 대한 여러 논의를 진행하게 됩니다.
참고로 협의체 구성원을 살펴 보면 정부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통계청 등 유관 기관의 국장, 정책관급 인사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민간 전문가 14인에는 게임 이용 장애에 목소리를 내온 인물들이 대거 포함되었는데, 게임 이용 장애 등재 반대 측은 이경민 서울대 교수, 한덕현 중앙대 교수, 이동연 한예종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게임계 위원으로 김정욱 넥슨코리아 부사장이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끄는데요. 찬성 측은 노성원 한양대 교수,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협의체는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도입 추진 배경, 질병코드의 도입 시 예상되는 사회적 영향 등에 대해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할 계획입니다. 그 방법으로는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의 과학적, 객관적 근거와 관련한 의료계와 게임계의 공동 연구가 제시됐습니다.
☞ 국무조정실,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 관련 민관협의체 구성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