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매년 같은 지방에 여행을 간다면 어떨까? 한 드라마 시리즈를 13년 동안 계속 본다면? 아마 13년을 다 채우기도 전에 다른 것을 찾거나, 너무 익숙해져서 눈 감고도 줄줄 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역에, 그 드라마에 쏟는 애정과는 별개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익숙함이지 새로움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여기, 13년간 한결같이 사랑받아온 게임이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즐겨 플레이하고 있지만,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 버린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가시덤불 골짜기, 톱니항, 다크샤이어, 줄파락… 우리가 처음, 거대한 아제로스 대륙을 마주쳤을 때 느꼈던 감동. 13년이 흐른 지금 그 감동을 다시 느끼기란 조금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블리자드 속에 마련한 어느 작은 이벤트 하나가 전 세계 와우 유저들을 술렁이게 한 적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음 카드뉴스로 만나보자. / 디스이즈게임 황찬익 기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우리를 가슴 뛰게 했던
그 게임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장대한 스토리와 멋진 퀘스트가
아제로스 대륙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설레게 한 건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느낌
그러나 13년 세월이 흘러간 지금,
이미 대륙 대부분은 공략이 끝나버렸고
계속해서 새로운 지역이 추가됐지만
이마저도 빠르게 공략되고 있다.
우리는 처음 그 거대한 대륙과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걸까?
그런데 얼마 전, 와우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하나
사진에 나타난 것은
페이지 번호와 뜻 모를 문장 한 줄뿐.
‘...바다와 정신과 자신…’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유저들이 달려들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기만 한 문장
온갖 추측이 오고 가는 가운데,
어느 유저가 가설 하나를 제시한다.
와우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공식 설정도.
여기에 나오는 바다(water)와 정신(spirit) 사이에 있는 것은
바로 ‘자신’ 아니겠냐는 것.
그리고 그 ‘자신’의 위치에 존재하는 단어는
‘에메랄드의 꿈’
유저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넓은 아제로스를 수색하기 시작한다.
처음 수색한 곳은 ‘황혼의 숲’.
‘에메랄드의 꿈’과 연결돼 있어,
‘이세라’의 권속들이 자주 나타났던 곳.
놀랍게도, 숲을 뒤지던 유저들은
정말 두 번째 페이지를 발견한다.
이에 유저들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문장들은 특정 지역을 암시하고 있으며,
다른 페이지들도 숨겨져 있으리라는 것.
적은 인원으로 넓은 와우 대륙을 모두 뒤질 수는 없었다.
다른 유저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결과
광활한 와우 대륙을 수사하기 위해 모인
수 백명의 유저들
그렇게 유저들은 아제로스 구석구석을 날아다니며
예전에 이미 공략했던 그 수많은 지역과 던전들을
이전보다도 훨씬 꼼꼼히, 하나하나 따져가며 찾아다녔고
커뮤니티에서는 밤새도록 토론하며 수수께끼 같은 페이지의 문장 뜻을 유추해냈다.
그렇게 2주간, 수백명의 유저들이 수백시간을 들이며 찾아낸 끝에,
9쪽 ...바다와 정신과 자신…
78쪽 ...가장 먼저 추락한 군주들…
161쪽 ...바람, 눈…
655쪽 ...연기와 무덤, 스카라베의 달…
845쪽 ...눈과 모래와 바위 속…
1127쪽 ...전투를 지켜보라, 눈도 깜빡 말고…
2351쪽 ...보석의 감시자…
5555쪽 ...떠오르는 태양의 빛…
그리고, 마지막 구절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상징하는 곳.
와우 게임 속 해돋이, 이른바 ‘와돋이’로 유명한 서부 몰락지대
서부 몰락지대 몰센 농장 서쪽 해안가 한 켠,
난파된 배 안에 들어있는 보라색 상자 하나.
상자를 열자 나온 것은…
“수수께끼의 정신 지룡”
여태까지 어떤 공식 발표도 없고,
누구 하나 소유한 사람도 없어
아무도 존재를 몰랐던 희귀 탈 것
유저들은 블리자드가 꼭꼭 숨겨놨던 그 아이템을
작은 단서만으로 그 넓은 대륙에 달려들어
기어코 찾아낸 것이다.
가시덤불 골짜기에서 상대 진영을 만나
퀘스트 하나를 놓고 죽자고 싸웠던 기억
수 십명이 모여 밥 대신 욕을 먹으며 공략했던 레이드 던전
전설 무기 하나가 갖고 싶어서 노가다로 보냈던 긴긴 시간들
우리가 와우를 했던 이유
그리고 아직도 와우를 추억하는 이유
하지만 너무 재밌게, 열심히 했기에
더이상은 새로움을 느끼기 어려웠던
13년차 온라인 게임
어쩌면 개발자가
그렇게도 꽁꽁 숨겨놓은 수수께끼는
희귀 탈것을 위해서가 아닌
지난날의 추억으로 장소를 찾았다가
세계에 대한 애정으로 기꺼이 대륙을 누빈
유저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은 아니었을지.
유저들이 숨겨진 비밀을 찾아냈다는 소식에,
블리자드 수석 디자이너인 제레미 피즐은 다음과 같이 밝히며
이 모든 것이 유저들을 위한 이벤트였음을 밝혔다.
“다음에 또 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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