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백 원짜리 동전 몇 개 들고서 찾아간 오락실에서 패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GAME OVER'가 어린 저를 반기곤 했습니다. 피시방과 콘솔이 낯설었던 시절, 화면 속 게임 캐릭터의 죽음은 게임 오버, 다시 말해 게임이 끝났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게임 웹진 가마수트라의 2011년 글인 "Dealing With Death: Streamlining The Player Experience"에는 '게임 오버'와 캐릭터의 '죽음'이 동의였던 초기의 게임을 벗어나기 위한 8개의 시도가 담겨있습니다. 죽음 역시 게임 경험의 연장선으로 끌고 와, 플레이어를 더 몰입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했을 지도 모르는 죽음에 함께 나누고자 전문을 번역 및 편집해 공개합니다. 기사 맥락에 맞게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사진 추가 및 수정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게임 속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유저의 몰입이 필수적이다. 몰입이 깊어지면, 누가 뭐라 하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하지만, 유저가 '게임 오버'를 마주하면 몰입이 깨지기 쉬워진다. 초기 게임들은 '게임 오버' 이후에 모든 행동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유저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게임이 시작된 이래로 '게임오버'는 항상 있었고, 크게 변하지도 않았다. 이 '필요악'을 과거 인기 게임에서는 다양한 '죽음'에 대한 해석을 통해 유저 몰입을 유지하려 했다. 많은 게임들은 지금도 플레이어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두며, 유저에게 반복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있다. 더 나아가, 게임 콘셉트에 맞게 '죽음' 자체를 잘 녹이는 게임을 지향하고 있다.
블리자드의 <디아블로2>는 직선에 가까운 퀘스트 라인과 전투 중심의 게임 플레이를 통해 몰입하도록 했지만, '저장' 기능을 뺐다. 저장 기능이 없어 겜블링, 조합, 아이템 드롭 등 랜덤 요소를 다소 넣을 수 있었다. 또한, 저장 기능이 없는 <디아블로2>에서의 죽음은 '게임오버' 그 자체가 아니었다.(하드코어 모드 제외)
<디아블로2>에 플레이어가 몰입하도록 '죽음' 자체는 필요했다. 유저가 느끼는 죽음의 의미가 게임오버까지는 아니지만 피하고 싶어 하는 수준은 되어야했다.
블리자드는 약간의 골드 손실과 함께, 죽었던 캐릭터를 마을에서 부활하도록 했다. 죽음을 경험한 플레이어를 후퇴시키지만, 죽기 직전과 같은 행동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장소를 찾아가거나, 시체를 찾으러 가도 된다.
FPS의 전설 <언리얼 토너먼트>의 클래식한 데스매치에 참가한 유저의 목표는 킬 달성이다. 데스매치에서 죽음의 의미는 단순하다. 나의 죽음이 다른 유저의 승리의 밑거름이 된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의 죽음이 상대의 승리이자 자신의 패배로 이어지는 큰 패널티다.
하지만, <언리얼 토너먼트> 특유의 빠른 부활과 다이내믹한 액션 덕분에 유저들은 죽음을 시각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경험이 없는 데스매치 참가 유저들은 자발적으로 죽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 전투를 이어간다.
1999년 크리스털 다이나믹스는 <레거시 오브 케인 : 소울 리버>를 통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했다. 게임의 주인공 '라지엘'은 일종의 유령으로 특별한 차원인 '물질계'와 '영혼계'를 여행 할 수 있다. 두 차원에서 라지엘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차원을 넘어가 특정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특이하게도 라지엘은 물질계에서 죽으면 영혼계로 순간이동된다. 영혼계에서 다른 영혼을 '먹으면' 물질계로 돌아올 수 있다. 영혼계에서 죽더라도 특별한 공간에서 회복하고, 물질계에서 다시 도전 가능하다. 이런 특이한 시스템 덕분에 라지엘은 죽지 않고 여행과 도전을 이어간다. <레거시 오브 케인 : 소울 리버>는 죽음 자체를 게임 시스템에 녹여 '게임오버'를 없앴다.
유비소프트의 2008년 <페르시아의 왕자>는 죽음으로부터 주인공을 살리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수호자 역할인 엘리카와 항상 함께 다니며, 마법으로 주인공의 곡예와 전투를 보조한다. 엘리카는 곡예를 하던 플레이어가 떨어지는 지상으로 올려준다. 전투에서 죽을 위험에 처하면, 죽기 직전 마법을 쓰며 구해준다.
엘리카의 존재는 플레이어가 도전 포기를 선택하게 하지 않고, 어려운 도전 자체에만 집중하게 한다. 플레이어는 다른 걱정 없이 주인공의 곡예와 전투에만 신경 쓰면 된다.
<보더랜드>는 속도감 넘치는 FPS/RPG 하이브리드 게임으로 이질적인 배경과 중독적인 게임 플레이로 사랑받았다. 플레이어가 죽으면, 결과적으로 약간의 돈을 내고 가까운 체크 포인트에서 되살아난다. 하지만, 체크 포인트에서 되살아나기 전에, 짧은 시간동안 특별한 상태로 돌입한다.
특별한 상태에 돌입한 플레이어의 화면은 약간 어두워진다. 계속해서 전투는 이어진다. 화면이 완벽하게 암전되기 전까지 아무 몬스터를 죽이면 죽음은 없던 일이 되고, '세컨드 윈드(second wind)'를 얻게 된다. <보더랜드>에서는 누구나 죽기 전에 누군가를 죽이면 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죽는 것을 두려워 하기보다 계속해서 전투를 하려 한다.
<브레이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스토리와 독창적인 '시간 조정' 시스템으로 인기를 끈 인디게임이다. '시간 조정'을 통해 플레이어는 언제든 자신의 행동을 되돌린다. 죽음에 이르는 실수도 시간을 되돌리면 그만이다. 자신의 도전이 맘에 들지 않아도 시간을 되돌려 다르게 도전해도 된다. 다시 되돌려 죽음 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벗어나면, 게임의 상태와 기술, 임무 등이 변한다. 시간 조정은 죽음과 같은 상황을 반복이 아닌 새로운 경험으로 느껴지게 한다.
2011년 스퀘어 에닉스의 <더 서드 버스데이>는 슈팅과 RPG가 혼합된 게임이다. '오버 다이브'라는 특이한 시스템을 통해 주인공을 죽음으로부터 지킨다. 유저는 주위 NPC와 몸을 바꾸며 죽음을 계속해서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대상 NPC의 컨트롤을 얻는다. 오버 다이브를 통해 조종하는 NPC의 스킬이나 능력을 사용하여 일종의 업그레이드를 경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위 마법사의 컨트롤을 뺏으면 이전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능력을 통해 다양한 임무를 해결하게 된다.
CCP 게임즈의 SF 멀티플레이 게임 <이브 온라인>은 2011년에 시작됐다. 유저는 함선을 조종하며 우주를 여행한다. <이브 온라인>은 세계관에 알맞은 접근을 통해 유저들이 죽음에서도 게임에 몰입하게 만들었고, <이브 온라인>의 정체성이 되기도 했다.
게임 내 유저는 함선이 파괴되면 캡슐을 통해 탈출한다. 함선에 남은 아이템은 주위 사람이 가져갈 수도 있고, 탈출하는 캡슐마저 터질 수 있다. 그런 경우 다른 행성에서 클론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재정비를 통해 자신의 함선 아이템을 되찾을 수도 있고, 복수를 선택할 수도 있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을 경우, 빈손에 가까워 질지도 모른다. 함선을 비롯해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이브 온라인> 속 죽음은 큰 손실이다. 하지만, 무거운 '죽음'에 대한 패널티는 유저들이 게임에 더 몰입하는 계기가 됐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레이지>는 메뉴, 맵과 같은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캐릭터의 죽음도 '미니 게임'처럼 만들어 플레이어의 몰입을 도왔다. 플레이어의 체력이 없어지면, '제세동기'가 등장한다. 스피드와 타이밍에 따라 제세동기로부터 체력이 결정되고, 결정된 체력과 함께 캐릭터가 살아나게 된다. 항상 살아나지만, 어떻게 살아나는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운이라는 요소를 통하여 다른 능력을 가진 두 플레이어의 차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싱글 플레이를 즐기는 유저의 경험이 다르지 않는 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