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 3시드 팀 KT는 이번 서머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할 만큼 평균적으로 뛰어난 경기력을 기록했기에 이번 롤드컵에서는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만 했다. 하지만 결과는 2015년, 2018년에 이은 8강 탈락이었다. 대진운도 나빴다.
반면 징동 게이밍은 이번에도 단단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있다. KT도 충분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징동 게이밍은 8강에서 떨어질 팀이 아니였다. /서준호 필자(index),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출처: 라이엇 게임즈)
※ 본 리뷰는 외부 기고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T는 롤드컵까지 항상 험난한 길을 걸었던 팀이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KT는 서머 정규시즌 1위 및 올 퍼스트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선발전으로 떨어져야 했다. 선발전이라니, 올드 KT 팬들의 PTSD를 자극하는 그 곳에서 KT는 다행히도 이전 선발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이겼다.
그러나 진정한 시련은 롤드컵 본선부터였다. 첫 경기 상대부터 LPL 2시드이자 MSI에서 LCK 팀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BLG였다. KT는 이길듯한 경기를 아깝게 놓치며 패자 라운드로 떨어졌다. 다음 상대는 롤드컵의 강자 디플러스 기아였다. KT는 경기를 조심스럽게 풀어가며 끝내 조합의 힘이 떨어진 디플러스 기아를 상대로 승리했다.
여기까지는 대진운이 다소 불운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KT의 다음 상대는 LPL 3, 4시드인 웨이보 게이밍과 LNG였다. 최종전 상대는 디플러스 기아였다. 그렇게 KT는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LPL 2, 3, 4 시드 팀들과 디플러스 기아만 두 번 만나며 가장 대진운이 없는 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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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잊고 있던 게 있다. 이전부터 KT의 롤드컵 8강 대진운은 안 좋았다. KT는 2015년 롤드컵 때는 당대 최강팀 중 하나였던 ROX를, 2018년에는 그해 롤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IG를 만나 롤드컵 8강에서 떨어져야만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2023년에는 우승 후보 1위 끝판왕 징동 게이밍을 상대로 맞이하게 됐다.
징동 게이밍은 어떤 팀인가? 징동 게이밍은 한국 국가대표 듀오 ‘카나비’ 서진혁, ‘룰러’ 박재혁 선수와 LPL 최고의 미드라이너인 ‘나이트’ 줘딩을 주축으로 한 캐리 라인과 이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369’ 바이자하오, ‘미씽’ 러우윈펑을 보유한 슈퍼팀이며, 슈퍼팀답게 LPL 스프링, MSI, LPL 서머를 모두 우승하며 롤 역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노리는 팀이다.
징동 게이밍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스프링 플레이오프 4라운드에서 BLG 상대로 5세트까지 가는 힘겨운 사투를 벌였고 MSI에서는 3라운드에서 T1을 상대로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이 있었다. 서머 시즌은 징동 게이밍의 가장 큰 위기였다. 징동 게이밍은 결승에서 LNG 상대로 1:2로 우승컵을 내주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징동 게이밍의 무서운 점은 이러한 위기를 결국 모두 이겨내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는 점에 있다.
1세트에서 KT는 칼리스타, 자야, 자르반을 밴하고 현재 자야를 제외하면 캐리력이 가장 뛰어난 원딜로 평가받는 아펠리오스, 상체 교전 시너지가 좋은 잭스와 세주아니를 가져오는 컨셉의 밴픽을 완성했다. 징동은 가장 티어가 높은 미드 챔피언 오리아나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상대 픽에 맞춰가는 밴픽 컨셉을 준비했다.
KT의 1세트 인게임 내용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1세트의 초반 핵심은 상체 교전이었다. KT의 잭스와 ‘세주아니, 징동의 레넥톤과 렐 중심으로 2:2와 3:3 교전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KT의 상체가 전령을 챙기며 좀 더 이득을 봤지만, 레넥톤이 킬을 먹은 징동과는 달리 KT는 벨류 픽인 잭스 대신 세주아니가 킬을 먹었다는 점이 KT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아쉬움은 잠시였다. 킬을 먹은 세주아니가 텔레포트로 합류한 오리아나와 함께 바텀 교전을 승리로 이끌며 바텀을 풀어주는 데 성공했다. 14분 시점에서 징동의 레넥톤과 오리아나에 비해 잭스와 아칼리의 성장이 크게 밀리지 않으며 KT가 승기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KT는 한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았다. 용 한타에서 징동이 주요 스킬 대부분을 아펠리우스에게 사용했음에도 룰루의 서포팅을 받고 살아남은 아펠리우스가 오히려 돌진을 위해 뭉쳐있던 징동 진영에 궁 대박을 터트렸고 이때 아칼리 진입각이 잡히며 KT가 한타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바론을 처치한 KT는 조급한 이니시를 건 징동을 상대로 완벽하게 한타 승리를 거두며 1승을 가져갔다.
징동 게이밍 위에 정확히 떨어진 월광포화 (출처: LCK)
징동은 2세트 밴픽에서 변화를 줬다. 먼저 근접 시너지를 바탕으로 한 초반 교전 능력이 좋고 이니시도 가능한 세주아니를 밴했고 원딜을 2페이즈로 내리고 초반 교전 능력이 뛰어난 바이를 2픽으로 가져왔다. 인게임은 니코의 심리적 빈틈을 제대로 노린 비에고의 갱킹을 통해 퍼블을 거두었으나 이후에는 니코의 독무대였다.
니코는 16분쯤 전령 싸움에서 4인 궁대박을 터트리며 한타를 끝내버렸고 이후에도 한타 때마다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맹활약했다. KT의 경우는 용 앞에서 판단이 다소 늦는 모습을 보이며 계속 손해를 봤다.
2세트를 패배한 KT는 블루 진영을 선택했다. 징동은 현재 바텀에서 가장 좋은 픽으로 평가받는 자야를 풀고 니코를 밴하는 선택을 했다. 덕분에 KT는 자야, 아지르, 잭스를 가져왔으며 징동은 상대 픽에 맞춘 아트록스와 시비르, 한타 벨류를 생각한 오공을 가져왔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경기 내용은 라인전부터 잘 풀어낸 징동이 사고 없이 성장한 오공의 한타 활약을 바탕으로 손쉽게 이겼다. KT는 중간에 과감하고 좋은 판단을 보여주긴 했으나 상대의 돌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티어 높고 원하는 챔피언들을 많이 가져왔으나 징동의 조합이 예상 밖에 시너지를 보이며 한타 힘에서 밀렸다.
3세트에 이어서 4세트에서도 블루 진영을 선택한 KT는 오공을 밴하는 걸 선택했다. 징동은 오공이 밴 되자 리 신을 선택했고 KT는 징동의 돌진 조합 상대로 어느 정도 카운터를 칠 수 있는 탈리야와 라인전이 더 강한 신드라 중 고민하다 신드라를 선택했다.
KT 바텀은 미니언 생성 전부터 적극적인 딜교환을 통해 경험치 및 바텀 주도권을 잡고 시작했다. 이 덕분에 3분 만에 바이가 적 정글에 침입할 수 있었고 KT의 서폿과 징동의 정글의 1:1 교환이 이루어졌다. 이 교전에서 점멸이 빠진 신드라가 되살아난 리 신의 갱킹에 죽고 이어서 리 신의 탑 갱킹으로 인해 잭스의 점멸이 빠졌다. 그러나 KT는 침착했다. 리 신이 탑 갱킹을 간 턴을 이용하여 용을 먹은 KT는 14분 빠른 합류를 바탕으로 상대 오리아나를 효율적으로 공략하며 교전에서 이득을 봤다.
KT는 다음 상황에서도 침착했다. 점멸이 없는 신드라가 바텀에서 징동에게 잡히며 KT는 징동에게 용을 내줘야 했다. 하지만 KT는 용을 내준 대신 미드 1차 타워를 철거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후 그대로 기세를 몰아 과감한 탑 다이브를 통해 2킬을 기록하며 이득을 봤다. 이후 연속적으로 리 신, 라칸을 잡아내며 기세를 올리던 KT는 24분 그라가스를 잡아내며 바론을 칠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그라가스를 잡아내는 과정에서 리 신과 라칸을 밀어냈기 때문에 바론을 칠 근거는 충분했다. 그러나 KT의 바론 시도를 방해하기 위해 남았던 오리아나와 카이사의 활약으로 바이를 제외한 KT의 모든 챔피언이 쓰러졌고 징동에게 바론이 넘어가면서 게임의 흐름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잭스가 바론을 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KT가 얼마나 바론을 치는데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신드라도 초시계까지 구매하고 합류한 상황이었으니 그러한 변수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완벽함이 오히려 빈틈의 실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그 후에도 KT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왔다. 잭스가 오리아나를 제대로 물며 좋은 교전 구도를 만들어 냈으며 추격하며 그라가스를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유리한 교전을 이어가기 위해 궁극기를 사용한 바이가 강화된 솔방울탄에 의해 상대 진영으로 깊게 빨려 들어가며 오히려 바이를 내주게 된다.
KT에게 유리한 한타 구도였기 때문에 솔방울 탄이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아쉬울 수밖에 없었으며 그게 심지어 강화된 솔방울 탄이었기 때문에 바이가 상대 진영으로 날아간 상황이 되어버렸다.이후 바론을 내준 KT는 마지막 한타에서 분전해 보지만 대포 미니언의 공격에 노출된 넥서스가 깨지며 결국 패배하고 만다.
강화된 솔방울 탄에 의해 빨려 들어가버린 바이 (출처: LCK)
KT가 분명 이번 롤드컵 최고의 팀은 아니었다. KT는 이번 상대였던 징동 뿐만 아니라 BLG와 LNG에도 패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KT는 8강이라는 성적표가 합당한 결과일 수도 있다. 대진운이 매우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롤드컵은 최고의 팀을 뽑는 대회이고 결국은 모두 꺾어야만 하는 상대들에게 패한 셈이니 말이다.
KT 팬으로서는 8강이라는 성적을 만족할 수 없는 결과인 건 당연한 결과이다. 상대가 아무리 뛰어난 팀이었다고 해도 우승을 노리는 팀의 팬 입장에서는 이른 단계에서 패배는 변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8강을 보면서 KT 선수들이 8강을 준비하는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KT는 분명 스위스 라운드에서 약점을 노출했으며, 너무 명확해서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번 징동과의 경기에서도 KT는 분명 아쉬운 판단을 보였고 실수도 있었으며 패배했지만,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음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KT는 패배하는 경기에서 밴픽의 티어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가령 BLG전에서 선택한 자크의 경우는 물론 조건부로 좋은 픽일 수는 있지만 결코 높은 티어의 정글픽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며, 스위스 라운드 기준으로 최강의 챔피언이었던 자야를 내주었다.
하지만 이번 징동과의 경기에서 KT는 자야와 잭스를 비롯한 티어가 높은 챔피언들을 가져갔다. 오히려 밴픽만 놓고 봤을 때는 KT가 더 좋은 챔피언들을 가져갔고 징동은 이를 상대하기 위한 카운터픽들을 준비한 느낌이었다. 상체 교전에서 약점을 보였던 LNG 전을 잊지 않고 잭스와 세주아니 조합으로 강력한 상체 교전 조합을 완성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1세트 승리를 거두었다.
‘기인’ 김기인은 롤드컵 동안 잭스를 선호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롤드컵 티어를 그대로 따르며 이번 4경기 중 3경기에서 잭스를 선택했다. 게다가 오늘 전까지 비판받던 경기력을 확실히 끌어올린 모습을 보여줬다. 스위스 라운드에서는 알리스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던 ‘리헨즈’ 손시우였지만 이번 징동전에서는 알리스타가 티어가 낮다고 판단하고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롤드컵 내내 한판도 하지 않았지만 전날 경기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레나타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리헨즈’ 손시우의 레나타 경기력은 매우 좋지 않았고 상대에게 티어 높고 잘하는 서폿인 라칸을 계속 내준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리헨즈의 통산 라칸 승률은 49경기 65.3%, 레나타 승률은 이번 경기 포함하여 13경기 84.6%로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기가 젠지 시절이긴 하지만 KT에서도 이번 경기 이전까지 3승 0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리헨즈는 자신이 선호하진 않지만 현재 챔피언 티어를 다르고, 자신의 레나타 경기력이 좋지 않자 과감하게 레나타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며 확실히 챔피언 티어와 자신의 경기력에 대한 피드백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이전까지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던 리헨즈의 레나타 (출처:gol.gg)
과감한 이니시와 다이브도 인상적이었다. 디플러스 기아와의 첫 경기에서 이상할 정도로 조심하는 플레이를 보이며 경기력적인 측면에서 비판받았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KT는 다이브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면 지체없이 뛰어들었고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상대가 턴을 길게 쓴다는 생각이 들면 여지없이 응징했으며 상대가 일방적인 이득을 보지 못하도록 노력한 티가 확실히 났다. 바텀 주도권을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인 적 정글 침투도 있었다.
물론 용 근처에서 판단이 늦어지며 큰 손해를 보거나 마지막 4세트 바론 앞에서 안일한 플레이로 인해 제대로 응징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결과가 자신의 실수에만 있는 건 아니,며 상대방이 잘한 플레이는 잘했다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카이사의 움직임도 좋았지만 오리아나의 궁이 너무 완벽하게 들어갔기에 초시계와 점멸이 있는 신드라와 룰루가 실수를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빈틈의 실을 보여준건 KT의 잘못이지만, 0.1초 사이에 빈틈의 실을 발견하고 한 번에 KT를 베어버린 징동의 저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4세트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형이 달라 솔방울탄이 강화되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었다. 이번 롤드컵에서 KT는 LPL 4팀과 모두 경기를 해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팬들이 오래 기다린 롤드컵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경기력은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팀을 응원하는 KT 팬들을 위로하며 글을 마친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