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업데이트) 속도가 중요하다"
2022 지스타 현장에 <데스티니 2>의 수석 개발자(Chief Development Officer) '저스틴 트루먼'이 찾아왔다. 저스틴 트루먼 CDO는 어떻게 번지가 <데스티니 2>가 겪었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며 라이브 서비스 게임 운영을 위해선 기존 AAA 게임의 개발 공식과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스티니 2>(국내명 <데스티니 가디언즈>)는 17년 9월 출시된 루트 슈터형 FPS 게임이다. 출시 초기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부족으로 유저 수가 크게 하락했지만, 18년 출시된 <포세이큰> 확장팩으로 다시 전성기를 찾았으며 22년 2월 출시한 <마녀 여왕> 확장팩을 통해 출시 5년 뒤에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어떻게 <데스티니 2>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저스틴 트루먼 번지 CDO
# 정말 위험했던 시절
<데스티니 2>는 14년 출시됐던 <데스티니>의 후속작이다. 출시 3년 만에 후속작이 나온 셈인데, 저스틴 트루먼 CDO는 당시 "하드코어 게임이라는 틀을 벗어나고 싶었다"라고 언급했다. <데스티니 2>는 전작과 비교해 보다 멋진 싱글플레이 캠페인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콘텐츠에 대한 보상이 즉각적으로 주어져 플레이어가 빠르게 아이템을 파밍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출시 초기 반응은 <데스티니> 보다 좋았으나, 6개월 뒤 "게임에 콘텐츠가 부족하다"라는 비판이 잇따르며 큰 위기가 찾아왔다. 특히 그래프로 바라본 유저 수 이탈이 치명적이었다. 전작 <데스티니>의 유저 수 추이와 비교하면 너무나 가팔랐다. 이대로라면 5주 뒤 서비스 종료까지 갈 수 있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운영 중인 게임 프랜차이즈가 <데스티니> 하나뿐이었던 번지에게는 너무나 큰 문제였다.
18년 2월, <데스티니 2>가 처한 상황은 심각했다.
두고 볼 수 없었던 번지는 수 년 간에 걸친 변화를 시도했다. 첫 번째 변화는 번지 내부에 '라이브 마인드셋'(라이브 서비스에 맞춘 마음가짐)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보통 AAA급 게임은 '박스형 제작 방식'을 취한다. 많은 자본과 인력이 들어간 AAA급 게임을 만들 때는 게이머의 예상을 모든 면에서 뛰어넘을 필요가 있고, 기술과 퀄리티 면에서 압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이 완성되면, 마케팅을 집중해 판매량을 극대화한다. 본래 번지도 주로 사용하던 개발 방식이었다.
하지만, 저스틴 트루먼 CDO는 유명 영화 제작사 픽사의 인터뷰에서 나온 "우리 영화는, 처음엔 다 별로였다."(Every time we show a film for the first time, it s**ks)를 언급하며 계속해서 게임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소비자들은 픽사의 영화를 볼 때 예술적이고 완벽하고, 정교한 작품을 접한다고 느끼지만, 이런 작품도 시작부터 대단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번지의 방법 역시 무수한 실패에서 거듭하며 배우고 게임 콘텐츠를 꾸준하게 공급하는 것이었다.
# 계속해서 콘텐츠를 확충하는 '속도감'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감'이다.
2010년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오랜 기간 즐기는 게임은 고퀄리티의 게임이었다. 밸런스가 괜찮고, 게임에서 변하는 요소가 크게 없었던 게임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향이 바뀌었다. 게이머에게 꾸준히 콘텐츠를 제공하고, 지속해서 피드백을 받으며 게임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에 번지는 "속도가 위치보다 중요하다"라는 철학을 세웠다. 여기서 위치는 게임의 퀄리티고, 속도는 게임을 얼마나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있느냐다.
다만,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개적인 실패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실패를 하더라도 빠르고 솔직하게 비판을 받아들여 게임을 보완하고, 업데이트를 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런 희생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속도다.
저스틴 트루먼 CDO는 게임 외에도 실패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 제품을 개선해 간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성공의 재정의
<데스티니 2>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저스틴 트루먼 CDO는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성공의 방식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에 "신뢰가 먼저다. 그 다음이 고객 유지, 마지막이 수익이다."(First trust, then Retention, then revenue)라는 법칙을 세로 세웠다.
번지는 당초 빠져나간 유저는 새로운 시즌이나 확장팩이 출시되면 복귀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상은 달랐다. 게임에 크게 실망한 유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데스티니 2>는 별로인 게임이며 복귀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주로 <데스티니>를 플레이하는 인플루언서나 스트리머는 번지에게 금전적 타격까지 받는 셈이 됐다.
이에 번지는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설문 조사를 하는 등, 1년 간 유저의 신뢰를 쌓기 위한 대책을 진행했다. 이에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신뢰를 조금이라도 더 잃는다면 뒤가 없는 것이기에 유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여겼다.
그 다음은 유저 수를 복구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조 속에서 개발된 <포세이큰> 확장팩은 유저 이탈을 막기 위해 수많은 콘텐츠를 <데스티니 2>에 심어 놨으며, 하드코어 플레이어를 위한 콘텐츠도 개발해 놓았다. 해당 확장팩을 기점으로 번지는 드디어 하락 곡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한국에 <데스티니 가디언즈> 라는 이름으로 게임이 론칭한 것도 이맘때이다.
평가가 좋았던 <포세이큰> 확장팩
국내에 <데스티니 가디언즈>라는 이름으로 정식 론칭한 것도 이맘때다.
유저 수 추이 역시 이때 크게 회복됐다.
유저 분위기가 바뀌고 나서야 번지는 매출에 대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다만, 매출이 1번(신뢰)와 2번(유저 수 유지)와 상충되지 않도록 유료 치장 아이템을 늘려나가는 대신 게임에 F2P(무료 플레이)를 도입하고 랜덤 박스를 삭제했다.
번지는 <포세이큰> 이후에야 게임 내에 2차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치장 아이템을 확충해 나가기 시작했다.
# 데이터에 기반한 전략 수립
목표가 생겼다면 다음은 데이터에 기반한 전략 수립이 중요하다.
번지는 정해진 시기마다 자체적인 핵심성과지표(KPI)를 통해 지표를 측정하고 있다. 가령 보컬 세티먼트(목소리 분야)에서는 SNS, 트위치, 스트리밍 등지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 지 평가한다. 그 외에도 레이트 라스트 위크 등의 성과 지표를 통해 유저 만족도를 지속적으로 평가한다.
유저 수 지표는 24시간마다 측정되며, 일, 월, 주 단위로 게임을 접속해서 플레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체크한다. 지난 주에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지만 이후에 복귀한 사람, 오랜 기간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다가 복귀한 사람 등을 계속해서 지표를 통해 측정한다. 매출 지표 역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이런 데이터는 모든 번지 스튜디오 직원이 볼 수 있도록 별도로 공유한다. 그리고 라이브 오퍼레이션을 통해 2주마다 비지니스 매니저 뿐만이 아닌, 개발자나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와 같은 직군도 지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시즌별로 진행하는 단체 미팅도 있다. 시즌마다 진행하는 미팅에서는 대학 수업처럼 번지의 전 직군이 참여해 지표를 체크하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자신이 개발한 콘텐츠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스틴 트루먼 CDO는 이런 방식을 통해 콘텐츠를 개발할 때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있었고, 출시 후에는 예측이 정확했는지에 대한 검증이 가능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고 소중한 데이터를 쌓아나갈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 크런치는 영원히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저스틴 트루먼 CDO는 "라이브 서비스 마음가짐은 기차역을 짓는 것이지, 기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유를 들어 강조했다.
기차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면 마지막 크런치 작업을 통해 기차의 퀄리티를 향상시키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기차가 떠나면 그 순간 또 다른 기차가 다시 기차역에 정차한다. 이런 과정을 연속으로 겪다 보면 언젠가는 제 때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다른 기차가 와 부딫치며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연기된 게임은 언젠가 좋아지지만, 서두르게 발매된 게임은 영원히 나빠진다"라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명언처럼 퀄리티에 집중하는 것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완벽주의와 같은 게임 개발 철학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엔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번지 내부에는 "크런치는 영원히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크런치는 신용카드의 한도와 같다. 크런치를 하면 결국 지치게 되고, 지치면 쉬어야 한다. 쉬면 쉬는 만큼 다시 크런치를 해야 할 분량이 생긴다. 라이브 서비스를 위해서는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크런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는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다시 다가올 반복적인 작업을 예측하며, 어떻게 지속적으로 게임을 개선하고 운영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라이브 서비스 마음가짐을 통해 번지는 이전과 비슷한 인력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저스틴 트루먼 CDO는 <데스티니 2>에 위기가 닥쳤을 때, 정말로 끝났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실패를 통해 어떻게 라이브 서비스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정의할 수 있었고, 수 년 간의 노력을 통해 '라이브 서비스 마인드셋'을 스튜디오 내에 확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스틴 트루먼 CDO는 자신의 강연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많은 라이브 게임 개발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