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게임업계 종사자 중에는 '지국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이들이 꽤 있을 것 같다. 유니티 지국환이자 동시에 인디 게임사 ‘문틈’ 대표였던 지국환. 그는 2013년 유니티에 입사, 개발부터 기술지원, 마케팅 등 엔진 전반적인 일을 담당하는 ‘에반젤리스트’로 일하다가 3년 3개월 만인 올해 6월, 유니티를 퇴사했다.
지인들은 “유니티에 들어간 것도 신의 한 수였는데, 그 좋은 곳을 굳이 왜 제 발로 나와서 고생길로 가느냐”며 걱정했다. 업계 종사자, 심지어 인디 게임사 중에 꽤 흥행한 곳들의 지인들조차도. 그만큼 홀로 업계에서 기반을 닦고 회사, 게임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기자 역시 의문이 들었던 결정. 하지만 질문을 하자, 지국환 대표의 답변은 꽤 짧고 간결했다.
“지금 아니면 못 나올 것 같아서요.”
지 대표는 게임을 좀 더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나왔다며, 어떻게 보면 지금이 내 기술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이기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툭 내뱉은 말이지만, 꽤 깊은 생각 끝에 나온 말인 듯 했다. 결혼 청첩장을 게임으로 만들 만큼 개발에 대한 생각이 대단했던 그였다.
“모바일게임 시장의 트렌드가 계속 변화하고 있잖아요. 평소에 모바일게임을 좋아해서 계속 게임을 개발하고 싶은데… 지금 가진 기술로 게임을 어디까지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좋아하는 일이 부업이었는데, 오히려 이쪽 규모가 점점 커지더라고요. 타이밍을 놓치면 뭔가 계속 머물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망하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망하면 뭐 어디든 입사하면 되지!’라는 꽤나 긍정적인(?) 생각도 가졌다. 망하더라도 젊을 때 한 번이라도 빨리 망해봐야 할 것 같단다. 경험도 하나의 재산이니까. 2016년을 마감하는 그의 나이, 31살. 그는 추운 겨울, 온전한 ‘문틈 지국환 대표’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게, 편하게 만들고 싶어서 인디 개발로 뛰어든 지 어느덧 6개월째.
게임 그래픽으로 표현한, 개발사 '문틈'의 모습. 현재 모습이 정말 저렇다. 운동용 짐볼도 있더라.
유니티에 몸 담았던 덕에 개발자 네트워킹은 어느 정도 있었다. 유니티에서 몸담으면서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포스트 모템(사후 분석) 관련 강연도 틈틈이 했다.
물론 그렇다고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전적, 소속적인 부분에서 오는 불안함은 있다. 하지만 지 대표는 이런 것은 어디를 가든 어느 정도는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만, 하고 싶은 개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개발이 재미있으니 그런 걱정들이 상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니티 때 만났던 네트워킹이 있다 보니 고립된 느낌이 다른 이들보다 덜 한 것도 있었고.
그가 운영 중인 ‘문틈’은 유니티에 입사하기 전부터 설립됐던 회사다. 그 전에 다녔던 스타트업 회사들이 사업을 접다 보니 직접 개발을 해야겠다 싶어서 차렸다. 초기에는 여러 명이 있었지만, 모두 취업 후 회사를 나갔고 현재는 지국환 대표 1인 체제로 있다. 유니티는 문틈 설립 후, 공모전을 통한 우연한 기회로 입사하게 됐고, 그 인연이 6월까지 이어진 것.
지 대표는 문틈을 창업하고 유니티에 근무하면서 총 5개의 유니티 기반 모바일게임을 출시했다. 많이 알려진 <던전999>, <카툰999>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그 전에는 <웨딩 런>, <드랍십> 등도 출시했다. 각종 스토어에 우수게임으로 선정되며 인기게임 반열에 오른 <던전999>의 경우에는 개발기간이 단 4개월이 소요됐다. 원사운드 작가와 함께 만든 <카툰999> 역시 국내, 외 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지국환 대표 본인의 청첩장이자, 게임이었던 <웨딩 런>.
“당시 에반젤리스트로서 유니티 엔진 확산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부 레퍼런스도 필요했고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기 때문에 속도를 내서 게임을 개발했던 것 같아요. 집에서만 개발할 수 있었다 보니 좀 더 그랬고. 앞만 보고 달렸던 느낌이랄까.”
그는 올 7월부터 본격적으로 ‘문틈’에 주력했다. 어느덧 지나버린 5개월. 그는 지금 차기작을 개발 중이다. 지국환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트렌드에 벗어난, 아무도 만들지 않은 그런 게임’이란다. 게임은 내년 3, 4월쯤 안드로이드, iOS 동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게임명은 <던전투어>. 틈틈이 문틈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게임 소식을 알리고 있다.
“시장이 커지고 게임도 많이 나오면서, 성공 방정식이 있는 게임들은 모두 대형 게임사, IP들이 잡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개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되더라고요. 대부분의 회사들이 개발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서, 지금의 게임을 개발하게 됐어요.”
지국환 대표가 선택한 게임은 정통 RPG. ‘999’ 시리즈가 클리커 류 게임이 열풍일 때 업계 트렌드에 맞춰서 냈다면, 이번에는 그걸 회피하는 콘셉트다. 잘 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라고는 하지만, 시장에 흔히 보이지 않지만 독특한 재미를 이것 저것 모으며 살을 붙이고 있다. ‘잔재미가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던전투어>는 ‘탐험’을 기본으로 하는 게임이다. 스토리 RPG로, <던전999>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게임은 <던전999>의 이후 이야기로, 잭과 로즈가 999층에서 비밀을 푼 돌을 발견하고 이를 마을에 가져갔지만, 돌을 찾아오라고 했던 촌장이 사라지면서 그를 찾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출시 버전에서는 첫 챕터가 소개된다. 촌장을 구출하기까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후 여러 챕터가 출시된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 요소도 있다.
※ 개발 중인 영상입니다.
<던전999>의 주인공 ‘잭’과 ‘로즈’는 이번에도 등장한다. 탐험을 주로 하는 만큼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게임은 퍼즐과 수집, 성장 등 다양한 요소가 섞여 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수께끼를 풀면서 일정 개수의 ‘별’을 획득하는가 하면 특정 아이템을 활용해 장애물을 없애며 진행할 수도 있다.
각 지역은 좁은 방, 던전을 비롯해 필드 등 다양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드에는 몬스터들이 있으며 과거 콘솔 RPG 방식 같이 몬스터와 접촉하면 전투가 벌어지는 방식이다. 전투는 실시간으로 벌어지며 스킬을 사용하면서 남은 적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잭’과 ‘로즈’ 외에 다양한 캐릭터를 영입할 수도 있다. 이는 대화를 비롯해 기부 등과 같은 특정 액션을 통해 가능하며, NPC와 호감도를 쌓아서 해당 NPC를 파티로 영입하면 된다. <던전투어> 내 모든 NPC를 영입할 수 있다.
현재 <던전투어>는 기본 로직은 다 구성됐으며 콘텐츠 추가 등 레벨디자인을 하는 단계다. 내년 출시를 앞둔 만큼 연말 주변 관계자 등 지인을 통해 UX 등 테스트도 진행할 것이라고. 출시 후 안정화가 되면 향후에는 가로 버전을 별도로 제작, 스팀 등 PC 플랫폼에도 출시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데모 영상을 통해 보여줬듯이, 컨트롤러 대응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 개발 중인 영상입니다.
지국환 대표는 앞으로 개성 있는 게임을 꾸준히 만들어 가고 싶다고 밝혔다. 개발하면서 드는 수 많은 아이디어가 <던전투어>에 모이고 있지만, 이후에는 무게를 좀 덜어내서라도 가벼우면서 단순한 게임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것은 <던전투어>가 끝나 봐야 알겠지만, 생각한 게임 중에는 <던전 999>에 등장했던 ‘잭’을 통한 간단한 플랫포머 게임도 있다고. 물론, 기존에 출시됐던 게임의 편의성도 지속해서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는 처음 목적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1인 개발이라 고된 점도 있겠지만 후회는 없어요. 재미있고, 편하게 게임을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좋은 게임 선보여 드릴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