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스토리 중심의 모바일게임을 만들었다. 나름대로 확고한 원칙 탓에 비벤디, EA 등 유명 회사에 인수됐다가 매각되기를 반복했다. 지난해 11월 넥슨 산하의 스튜디오가 된 '픽셀베리 스튜디오'의 이야기다.
그들이 쓰는 이야기만큼이나 회사 이력도 극적이고 독특하다. '스토리텔링 게임' 전문 개발사는 왜 이 장르만 13년을 파는 걸까? 이런 게임과 가장 거리가 먼 넥슨과 손을 잡은 이유는? 픽셀베리 스튜디오의 올리버 미아우 CEO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픽셀베리 스튜디오 올리버 미아오 CEO
# "스토리텔링 장르 가능성 보고 넥슨이 투자"
디스이즈게임: 한국에서는 픽셀베리 스튜디오와 게임이 낯선 사람들이 많을 텐데, 먼저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올리버 미아우 대표: 픽셀베리 스튜디오의 CEO, 공동창립맴버 중 하나인 올리버 미아오라고 한다.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2012년에 창립했고, 그 중 일부 맴버는 거의 20년 가까이 나와 게임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스토리 기반 게임을 집중해서 만들고 있고, <High School Story>(이하 '하이스쿨 스토리')와 <Choices: Stories You Play>(이하 '초이스')를 출시했다.
스튜디오 설립 과정에서 힘든 일이 많았다고 들었다.
<초이스> 출시 전에 돈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팀원 모두 게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20%씩 임금을 삭감하고 론칭 스펙에 3개의 스토리를 탑재해 출시했다. 다행히 게임 성과가 매우 좋아서 출시 1주일 뒤에 모두의 임금을 원상 복귀하고 삭감분도 돌려줄 수 있었다.
EA에서 나온 이유를 좀 더 듣고 싶다.
사실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두 번째 회사로, 처음에는 비벤디에 있었다. 인수되고 2년 후에 비벤디와 액티비전이 합병했는데, 당시 액티비전은 모바일게임에 관심이 없어 우리 스튜디오를 EA에 매각했다. 아마 비벤디가 EA에 판 유일한 스튜디오가 아닌가 싶다.
EA에서는 아이폰을 위한 스토리 중심 게임을 개발했다. 그래서 나온 게임이 좋은 성과를 거뒀는데, EA 경영진은 우리 스튜디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것 같았고, 결국 팀 전체가 구조조정을 당하게 됐다.
그렇지만 우리는 팀원들과 오래 일했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함께 새로운 회사를 만들게 됐다. 그게 픽셀베리 스튜디오다. 당시를 생각하면 정말 슬프고 힘든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좋은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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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는데 다시 대기업인 넥슨과 손을 잡게 됐다.
스토리텔링 게임은 큰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같은 생각을 하는 기업의 도움을 받아 더욱 발전시키기로 했다. <초이스>의 성과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많은 곳에서 관심을 보이는 행운이 따랐는데, 결과적으로 넥슨이 가장 잘 맞는 회사라고 판단했다.
크게 세 가지가 작용했다. 첫째로 똑똑하고 야망 있는 사람들이 넥슨에 많았고 오랫동안 협업할 수 있다고 믿었다. 두 번째로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처럼 오래된 게임을 10년 이상 서비스하면서 지속적으로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시아 시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넥슨의 입장은 어떤가?
내가 생각하기엔 넥슨도 스토리텔링 게임의 가능성을 크게 본다. 픽셀베리는 이 장르를 좋아하는 큰 유저 베이스와 노하우가 있다. 넥슨도 우리를 통해 이와 같은 것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사실 넥슨에서 인기 있는 게임과는 다른 장르지만, 이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내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두 게임이라는 큰 분류 안에 있기 때문에 비슷한 점, 배울 점이 많다. 넥슨이 게임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발전시켰는지, 글로벌 측면에서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배워야 했던 것을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 "어느 정도의 충돌은 괜찮다, 거기서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
<초이스>는 어떤 게임인가?
로맨스, 호러, 모험까지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이야기를 모은 플랫폼과 같은 게임이다. 플레이를 하면서 선택지를 통해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주로 플레이하는 유저 3분의 2가 젊은 여성인데, 그 외에도 나이가 많거나 남성 유저들도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 장르에 여성 유저가 특별히 많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인기 드라마나 TV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더욱 매력을 느낄 만한 스토리에 집중하고 마케팅도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보통 로맨스라고 하면 여성만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성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끄는 장르다.
좋은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좋은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로맨스나 갈등, 충돌 등 다양한 감정을 묘사한다. 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계의 변화를 통해 캐릭터와 이야기의 매력이 새롭게 창출되기도 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훌륭한 액션을 보고 나서도 속편을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여성분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긴 하지만 마케팅의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수 년 동안 스토리텔링 게임을 만들면서 배운 점이 있는데, 남성도 여성만큼이나 로맨스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다만 마케팅이나 이야기의 속도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흔히 <초이스>와 같은 게임을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라고 말하는데, '스토리 중심 게임' 혹은 '스토리텔링 게임'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는가?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워킹데드> 등 텔테일게임즈 작품이 잘 알려져 있는데, 마치 사촌처럼 서로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워킹데드>는 매우 아름다우며 몰입력과 밀도가 높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초이스>는 하나의 게임 속에 수십 개의 스토리가 들어 있고, 매주 다섯 개에서 일곱 개의 스토리를 업데이트한다. 비유하자면 <워킹데드>는 제작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영화, <초이스>는 빨리, 많은 에피소드가 나오는 드라마와 같다.
스토리텔링 장르에 오랫동안 집중했는데, 처음에 이 장르가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면, 첫 게임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이렇게 수년 간 배운 점이 있는데 '이야기의 힘이 곧 콘텐츠'라는 점이다. 모든 훌륭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이야기에 핵심이 있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에는 좋은 각본을 쓰는 작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뛰어난 작가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썼다. 강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첫 게임 <Surviving High School>을 만들 때 재능 있는 대학생에게 작가를 맡겼고, 그와 함께 십대에게 인기 있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공부했다. 그 대학생은 지금까지도 픽셀베리 스튜디오에서 작가로 활약 중이다.
이 장르가 지금처럼 힘이 강해질 거라 믿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 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작가들과 일하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다. 점심 먹으면서 대화를 해도 특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창의적인 환경에 있다는 것은 다른 팀원이 자기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작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거나 충돌하면 스토리의 일관성을 해칠 수도 있을 텐데, 조율하는 과정이나 노하우가 궁금하다.
그 말대로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과 일을 하면 서로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이 없을 수가 없다. 우리는 소규모 그룹으로 작가진을 구성해서 그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같이 작업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작은 그룹이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하면서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 구성을 기획하고 매주 논의하며 스토리를 이어간다.
모든 작가진을 총괄하는 콘텐츠 담당자도 있다. 이 사람은 어떤 작가를 어떤 그룹에 넣을지 열심히 고민한다. 충돌 가능성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룹을 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며 배치한다.
어떤 그룹에 로맨스 작가, 웃긴 농담을 잘 쓰는 작가, 진지한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 정교한 사건을 잘 만드는 작가를 넣는다고 하자. 이 사람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같이 작업하면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각자의 장점을 합친 스토리도 나올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충돌은 괜찮다. 이 과정이 가장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 "스토리텔링 중심 게임, 웹툰처럼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될 것"
어떻게 보면 작은 스토리 게임을 모은 플랫폼과 같은 느낌이다.
맞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양한 미디어 포맷을 합친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책은 상상력을 활용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게임은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직접 선택을 할 때 유저가 더 잘 몰입할 수 있고, 드라마는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방영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세 가지를 합친 개념이기에 <초이스>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 때문에 스토리텔링 게임이 새로운 미디어 포맷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웹툰이 새로운 미디어 포맷으로 자리잡은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게임의 가능성에 큰 야망과 꿈이 있고, 넥슨이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게임 장르는 아시아에서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에서 언어나 문화 등 다른 것을 어떻게 반영할지 계획이 궁금하다.
이야기의 힘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웹사이트나 블로그 등 다른 포맷을 통해 에전보다 훨씬 많은 텍스트를 읽는다. 그렇기 때문에 '읽느냐 안 읽느냐'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초이스>의 한국어판 출시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만약 출시한다고 하면 한국 작가를 섭외해 한국 유저들을 위한 최고의 이야기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국 작가가 쓴 이야기를 미국에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 등 다양한 한국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점점 큰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 시장과 문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다. 그래서 넥슨과 손을 잡은 건 단순히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의 콘텐츠와 이야기를 게임에 적용해 세계 시장에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초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으로 출간하는 등 IP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은 없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심 있는 것 중 하나다. 다른 훌륭한 미디어 포맷의 핵심에도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EA에 있을 때 만든 <서바이빙 하이스쿨>은 소설화를 위해 출판사와 협업하는 단계까지 갔다가 무산됐던 경험이 있고, <초이스>는 여러 제안이 있었는데 너무 바빠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넥슨과 함께 일을 하게 된 이유에도 이것이 있다. 넥슨이 자사의 게임을 소설이나 만화, 각종 캐릭터 상품과 오프라인 행사까지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넥슨은 보유한 IP를 지속적으로 유저의 관심사가 되도록 만드는 노하우가 있다. 이 점을 많이 배우고 있다.
<초이스>의 첫 팬 미팅이 올해 말에 진행될 예정이다. <메이플스토리>만큼이나 사랑받는 IP가 되고 싶다. 또 넥슨과 일하면서 우리 게임을 책이나 TV 프로그램으로 만들 때 도와줄 사람도 생겼다. 이런 파트너십이 결과물을 낳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우리의 중요한 계획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