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왕좌의 게임> 시즌 7 마지막 편에서 산사 스타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에다드 스타크가 남겼던 말로, 스타크 가문 자녀들을 뭉치게 했던 대사였죠.
3년 만에 넥슨 정상원 부사장과 다시 만난 자리, 문득 이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넥슨은 4년 전 신규 개발을 강화하기 위해 ‘인큐베이션실’을 만들었습니다. 6개월 동안 만든 프로토타입이 통과되면 정식 개발팀이 되는 구조였죠. 개발자가 자유롭게 새로운 게임을 시도할 수 있는 특공대 같은 조직이었습니다. ‘가축이 되지 말고, 야수가 되자!’ 당시 넥슨이 내건 모토였죠.
그런데 지난 4월 조직개편을 통해 인큐베이션실을 없애고, 자율권이 크게 확대된 7개의 독립적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신규 게임 개발을 이제 스튜디오 별로 구획해 맡는 구조가 됐죠. 인큐베이션실에서 따로따로 있던 야수들을 스튜디오 단위로 무리지어 놓겠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윈터펠에 겨울이 왔듯, 게임생태계의 상황이 만만치 않아졌다는 거죠. 소규모 독립적인 신규 게임 개발팀이 따로따로 버티기 힘들어졌다는 거고요.
인큐베이션실처럼 독립적 스튜디오 체제도 1996년 넥슨 창업 이후 처음 있는 시도입니다. 변화의 폭은 인큐베이션실 신설보다 훨씬 컸습니다.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스튜디오에 개발 및 평가, 채용 등의 자율권을 줬으니까요. 한 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는 “우리 사장님이 미쳤어요”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신규 게임에 대한 넥슨의 바람이 그만큼 크고, 고민이 그만큼 깊었겠죠. 궁금해졌습니다. 넥슨의 개발을 총괄하는 정상원 부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어려운 시기, 게임 개발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1) [허접만담 w/ 정상원] 넥슨은 왜 파격적인 독립 스튜디오 체제를 선택했나? (현재 글)
(2) [허접만담 w/ 정상원] 게임 판이 바뀌러면 인디스러운 회사가 성공해야 한다 (보러가기)
임상훈 디스이즈게임 대표(이하 시몬): 오랜만이다. 3년 전 인큐베이션실 관련 인터뷰에서 ‘라이브 게임(서비스 중인 게임)에 집중됐던 상황을 벗어나 신규 개발을 강화하겠다.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에 대응해 소규모 팀 단위로 다양한 게임을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난 4월 인큐베이션실은 없어지고, 독립 스튜디오 체제로 개편됐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정상원 넥슨 부사장(이하 띵): 세상이 많이 험악해졌다. 메이저 게임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든 시장이 돼버렸다. 과거 PC 온라인게임 시장이 그렇게 됐던 것처럼. 3~4년 전만 해도 모바일게임은 그래도 좋았다. 뚝딱 만들어서 뚝딱 낼 수 있었으니까. 만드는 거 1년, 론칭에도 돈이 별로 안 들었다.
그래서 인큐베이션실 만들고, 모바일게임을 이것저것 시작했는데, 상황이 확 바뀌었다. 오히려 PC 온라인게임은 론칭시켜 주는데, 모바일게임은 출시하기 더 힘들어졌다.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영화관이 많이 생겼지만, 대작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해서 작은 영화는 걸 데가 없는 한국 영화계 상황과 비슷하다. 작은 팀이 만든 게임을 론칭하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기존 인큐베이션실 시스템을 통해 성공작을 만들기는 힘들어졌다.
시몬: 확실히 요 몇년 모바일게임 시장 상황은 소규모 팀에서 단기간 만든 게임이 성공하기 무척 어려워진 것 같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발 기간도 늘어나고, 마케팅 비용도 크게 증가했고, 온라인게임 IP 기반의 규모 있는 모바일게임들이 시장에 턱하고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자연스레 투자 받기도 힘들어지고, 폐업하는 회사도 속출하고, 그래서 묻히는 게임들도 수두룩하고. 인큐베이션실은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에 대응해 새로운 도전을 독려했는데, 모바일 환경의 변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게다가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된 것 같다.
띵: 맞다. 그땐 여러 게임들을 만들어 모바일게임 시장에 기운을 불어넣고 싶었다면, 지금은 그렇게 만들더라도 못 나오는 게임들이 많다. 처음에는 만들기만 하면 나올 줄 알았는데, 만들다 보니까 나오는 것 자체도 힘들어질 뿐더러, 아이디어는 좋지만 사업적 측면에서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개수가 많다 보니 사업적인 지원을 못 받는 게임들도 있고. 다른 프로젝트에 치이는 것들도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개별 팀 단위보다 더 힘을 받는 구조가 필요했다. 스튜디오 단위에서 개발뿐만 아니라 사업까지 포함할수 있도록 개편을 진행 중이다. 비전과 관심이 비슷한 직원들끼리 뭉쳐 다니니까, 자기 회사 같은 느낌도 받을수 있을 거고. 지방자치제 비슷하다.
[참고] ㈜넥슨(대표 이정헌)은 4월 16일 자회사를 포함한 신규개발 조직을 독립적 스튜디오 체제로 개편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게임 시장의 트렌드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고, 각 조직의 개발 철학과 개성에 기반한 창의적 게임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개발 스튜디오에 프로젝트 신설 등 운영 전반에 대한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각 스튜디오와 총괄 프로듀서, 주요 타이틀은 아래와 같다.
▲데브캣 스튜디오(김동건) = <마비노기 모바일>, <프로젝트 DH>, <어센던트 원> 등
▲왓 스튜디오(이은석) = <야생의 땅: 듀랑고>, <메이플블리츠X> 등
▲원 스튜디오(김희재) = <삼국지조조전 온라인>, <탱고파이브>, <파이널판타지 XI 리부트> 등
▲띵소프트(정상원) = <페리아 연대기>, <BnB 모바일> 등
▲넥슨지티(김명현) = <서든어택>, <타이탄폴 온라인> 등
▲넥슨레드(김대훤) = <판타지워택틱스R>, <영웅의 군단>, <AxE>(액스) 등
▲불리언게임즈(반승철) = <다크어벤저> 시리즈 등
시몬: 모바일게임 초창기 투자사들이 여러 모바일게임에 조금씩 투자하던 시절이 있었다. 큰 온라인게임 하나에 투자하는 돈을 쪼개 작은 모바일게임 여럿에 투자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그게 훨씬 힘들었다고 말하더라. 작은 회사는 큰 회사보다 갖춰진 게 없어 챙겨야 할 일도 무척 많았고, 그렇게 여러 회사를 일일이 관리하는 게 어려웠다고. 인큐베이션실에서도 여러 개발팀을 챙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띵: 아이디어 위주로 움직이는 환경에서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팀 관리와 경험이 중요해진다. 그 요소를 갖추지 못한 팀들은 소위 말하는 ‘뒷심 부족’으로 어그러졌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여러 팀을 관리하게 되면 지원을 동등하게 해주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 과정에서 지원을 못 받은 팀들이 말라버리는 경우가 생기고.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비슷한 비전을 가지고 달려가자’라는 생각을 한 거다. 같은 취향을 가진 스튜디오에서는 ‘우리 것’ 혹은 ‘내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할 거고 동기부여도 잘 될 것 같고.
시몬: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에 주로 관심이 있는데, 회사 차원에서는 프로젝트를 중간에 잘 드랍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자기가 만들던 게임이 드랍되는 개발자는 감정적으로 힘들 거고, 지원을 못 받았다고 느끼면 서운함이 생길 수도 있다. 같은 취향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 스튜디오 내에서는 신뢰가 쌓인다면 인큐베이션실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개발 포기를 결정할 수 있을 듯하다.
띵: 맞다. 인큐베이션실에서는 여러 게임 중에 특정 게임을 드랍하면 해당 개발팀 입장에서 왜 그 타이틀만 드랍하는지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면도 있었다. 안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전체가 움직이는 게 위험하다 생각했다. 게임이 10개가 있다고 치자. 그 중 절반 정도는 좋고 나머지는 안 좋다면, 집중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힘 안주는 게임에 대해 열심히 하라고 푸싱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스튜디오 별로 나눠져서 지향이 같은 프로젝트에 대해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챙겨 주는 게 각각의 게임에 좋을 것 같다. 마이너라고 치부가 되더라도 ‘나한텐 이게 최고야’라고 목숨걸고 계속 밀고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끝까지 론칭을 할 수 있는 시대니까.
시몬: 그런데 약간 의문이 드는 게 시장이 어려워진 게 올해 초의 일은 아니잖나. 그렇다면 이 조직개편은 꽤 늦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맞나?
띵: 그렇다. 왜냐면 관성이라는 게 존재하고, 프로젝트를 합치는 과정에서 그 순간에 여러 진동이나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이디어 베이스로 개발했던 게임들을 소프트론칭도 해봤는데 결과가 별로 안 좋았다. 조금 더 일찍 개편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쉽지 않았다.
시몬: 진동이나 충돌?
띵: 기존 인큐베이션실에서 모든 팀이 수평적으로 갔었다면, 지금 스튜디오는 수직적인 체계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부적으로 누가 스튜디오를 맡을 것이며, 어떤 모토로 어떻게 합칠 것이냐, 이런 부분 등 검토할 내용들이 있었다. 1월에 신임 대표 인사도 있었으니까 겸사겸사.
시몬: 대표 인사가 없었다면 그대로 갔을 건가? (웃음)
띵: 그러진 않았을 것 같다. 개편은 했을 것 같다. 일단 게임은 다양하게 만들었지만 론칭도 안 되고 사업적으로 어려운 이슈가 많았기 때문에 바꾸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요즘처럼 어려워진 시장 환경을 뚫으려면 목숨걸고 덤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각 스튜디오마다 특징을 가지고 가는 게 좋겠단 생각도 하고 있었으니까. 데브캣의 경우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기대심이 생기는 반면, 넥슨이란 회사의 이름은 부정적이다. 흔히 거른다고 이야기하는데, 데브캣은 안 그렇다. 그래서 그런 브랜딩도 필요하고. 대표도 바뀌는 참에, 자연스런 분위기에서, 사실 철저하게 시뮬레이션을 돌린 건 아니다. ‘하면서 고쳐보자’ 이런 생각으로 진행했다.
시몬: 개편이 잘 추진된 것 같나?
띵: 두 달 밖에 되지 않아 잘 알 수는 없는 것 같다. 최근 든 생각인데, 개발자들이 대기업에서 게임을 만들기 힘든 구조라고 생각한다. 게임 개발이 회사 일이 되는 순간 개인의 독창성과 헤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게임 개발을 잘 하려면 ‘내 것’, ‘내 게임’, ‘우리팀의 게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게 성공한다면 확실한 보상을 받고, 실패하면 회사에서 보호해주고. 영화는 대박나면 영화사가 아니라 감독이 칭찬받는다. 게임도 영화와 같이 예술과 산업의 경계선상에 있는데, 게임 개발자는 그런 반응을 얻기 어렵다 보니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이 떨어지고 있다. 기존 인센티브 시스템이 동기부여가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인센티브를 타간 사람이 많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무뎌지기 시작한 분위기였다.
그러다 (스튜디오 단위로) 구획이 나뉘어지니까, ‘우리끼리 잘해보자’ 이런 마인드가 생겼다. 아직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좋은 점은 스튜디오 단위로 ‘우리’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개인이 문제의식이 있어도 말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이제 문제 해결의 권한을 스튜디오로 이양했고, 채용부터 시작해서 큰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는 한 ‘알아서 하세요’로 바꿨기 때문에, 각각의 스튜디오가 작은 회사가 된 것 같다. 물론 리스크가 있긴 하다. 스튜디오 하나가 크게 성공한다면 회사를 떠나거나, 독립하겠다 우기거나 그런 일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정도까지 성공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으니까. 그런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생각한다.
시몬: 띵 아저씨는 예전부터 개발자가 ‘내 것’, ‘우리 것’이라는 감정을 가지는 것을 매우 중시했던 것 같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스튜디오 내의 비슷한 비전의 다른 멤버들과 공유하는 것도 많고, 관련 분야에 전문적인 관리자가 있다면 덜 고립되고 시너지도 잘 날 것 같기는 하다.
띵: 그래서 인큐베이션실이 전체 단위에서 스튜디오 단위로 분산된 거다. 이제는 개발하면서 하나하나 중앙의 컨펌을 받지 않고 있다. 회사 단위에서는 마지막 체크만 하는 셈이다. 예전 인큐베이션실에서는 3개월, 6개월 단위 프로토타입 보고를 했는데, 시장이 무거워짐에 따라 바로바로 결과를 보여주기 힘든 상황이 됐다. 스튜디오 단위로 움직이면 완성도도 더 높고, 더 긴 인큐베이션 시간을 가져갈 수 있겠다, 이런 기대를 하고 있다.
시몬: 그렇다면 기존 개발팀 단위로 인센티브 제도는 스튜디오 체제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띵: 비슷하다. 다만 이제는 개발팀이 아니라, 그 개발팀이 속한 스튜디오 단위로 지급된다. 각 스튜디오의 비전이나 정책에 따라 인센티브가 분배될 수 있을 것이다. 신규 개발의 경우, 각 프로젝트의 매출에서 직접 개발비(인건비, 로열티 등)를 제외한 금액의 10%를 해당 스튜디오에 지급한다. 출시 이후 1년 단위로 온라인게임은 3회(총 3년), 모바일게임은 2회(총 2년) 지급된다. 받은 사람이 많지 않고, 받았다고 자랑하지도 않아서 회사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국내 성과는 높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성과를 거둬 지급받는 팀도 있는데...
시몬: 인센티브도 스튜디오 단위로 가고, 그 밖에 출시 이전까지 완전한 자치권을 준다는 게 파격적이다. 기대하는 대로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잖은가?
띵: 그렇다. 스튜디오 단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스튜디오 헤드가 독재할 수도 있고. 평가에서 드러날 거다.
시몬: 그 평가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띵: 1년마다 쓴 돈, 번 돈, 나가서 이름을 날렸나, 이렇게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판단해야겠지. 지금 과제 중에 하나가 ‘내년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것도 있다.
시몬: 전례가 없고, 무척 큰 변화인데 혼란스럽다는 의견은 없나?
띵: 아직은 없다. 각 스튜디오마다 꿈을 꾸는 시기인 것 같다. 제각각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현재까지는 다들 행복한 시기인 것 같고, 곧 뭔가를 해야할 시기가 오면, 그때 봐야지.
시몬: 여러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결과물이 나올텐데, 현재 시장에서 마케팅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큰 프로젝트가 출시 단계에서 본사 마케팅의 지원을 못 받아 묻히는 결과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띵: 회사에 그만큼 지원을 받을 수 있게끔 스튜디오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 정도도 못하면 무소불위인 거지.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실제로 찾아오면, 스튜디오 내부적으로는 마케팅 없이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될 거고. 바이럴 마케팅을 하던가, SNS에 넥슨을 욕하는 글을 쓰던가. (웃음) 어떤 방식으로든 찾아야 한다. 달리 말해 스튜디오가 주체가 되어서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시몬: 스튜디오에 자율권과 독립성을 줬지만, 회사에 가이드라인이 있을 것 아닌가. 스튜디오가 예를 들면 ‘우리는 라이브게임만 하겠어’라고 한다면, 이런 것도 인정되는 건가?
띵: 그렇다. 라이브가 크게 잘 되면 그 하나만 잡고 쭉 가도 된다. 허용이 안 되는 부분은, 사업적으로 실패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박수도 못 받고 그러면 문제가 되는 거다. 계속 실패하더라도 의미가 있었다면 회사 차원에서 보호해 주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스튜디오 헤드가 바뀌거나 스튜디오가 해체되겠지. 그런 긴장감을 통해서 조절하는 거고, 리스크는 인지하고 있다.
덧붙여 하고 싶었던 것은 사과 하나에도 생산자 이름을 붙이잖는가. 반면에 게임이 나오면 회사에만 관심이 있지 만든 사람에겐 관심이 없다. 게임이 제품화가 되어버려서. 나는 스튜디오의 행보에 대해 팬이 생기고, 그게 다 재산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게임이 망하더라도, 그 팬들은 회사 보고 게임을 한 번 더 하니까. 스팀 인디가 성공하는 것처럼.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게임계는 그런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시몬: 브랜드에도 여러 층위가 있는 것 같다. 개발사의 브랜드와 개발자의 브랜드가 있잖아요. 예전 PC온라인 게임 시절에는 개발자의 브랜드가 강했던 반면에 요즘은 개발자의 브랜드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스튜디오 브랜드도 마찬가지고. 메이저 업체의 브랜드는 더 나빠졌다. ‘3N은 거르고 본다’는 말까지 나오지 않는가.
띵: 묶어서 이야기되고 있다. 그 안에는 죄가 없는 개발자도 많이 있을 텐데. 그래서 나는 스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예를 들면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게임계엔 그런 게 없어서, 그런 브랜딩을 더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스튜디오 별로 어떻게 브랜딩을 할 건지, 채용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어떻게 할 건지 잘 추진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넥슨은 싫어해도 스튜디오를 좋아하면 성공한 거니까.
시몬: 그 브랜드라는 게 사실은 열심히 일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대표할 수 있는 게임이 나왔을 때 생기는 거 아닌가. 제품을 좋아해야 그것을 만드는 팀이나 사람, 그 과정에 예정이 생기는 것이고. 엔딩이 있는 스토리가 강한 콘솔이나 스팀의 스탠드얼론 게임과 달리 우리나라 모바일게임, 특히 개발이나 마케팅 규모가 커지면서 수익성에 우선순위가 놓여진 우리나라 상황에서 스튜디오 단위로 각각의 게임에 힘을 준다고 브랜드화가 잘 될 수 있을까?
띵: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프로젝트에 모든 스튜디오가 달라붙으면 브랜드화가 어려울 텐데, 넥슨 신규 게임 개발자들은 남이 가던 길을 그대로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던전앤파이터>가 돈 벌어준 덕에 사치를 부리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사치를 부릴 수 있을 때 빨리 결과를 내야하니까. 각 팀이 하고 싶어하는 분야에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려고 한다. 망해도 된다. 연속해서 5번 정도 망하면 못하게 하겠지만. (웃음)
망하면서 얻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환경이 바뀌면 망한 게임들이 각광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모바일 RPG가 강한 지금 게임시장의 구도가 언젠가는 바뀔 거니까. 아재 소비자가 게임에 돈을 쓰지 않는다거나, 모바일게임이 단순히 킬링타임용이 아닌 콘솔을 대체하는 날이 온다거나, 랜덤박스가 금지돼 게임성으로만 승부하는 날이 온다던지, 그런 날이 왔을 때 우리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다른 모바일 RPG가 잘된다 해서 우리도 <잘된다1>, <잘된다 2>, <잘된다 3>... 이렇게 개발하진 않을 거다. 이런 비전을 내가 강요하지 않아도 각 스튜디오마다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현 모바일게임 시장 구도에 강한 스튜디오는 이 시장에 뛰어드는 거고, 다른 부분에 강점이 있다면 그들이 강한 분야를 파는 거고. 이렇게 힘을 실어주다 보면 회사 차원에서 여러 분야로 퍼져가는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시몬: 어쨌든 유저들로부터 스튜디오의 브랜드가 인정받으려면 좋은 게임이 나와야 하는 거고, 좋은 게임이 결국 새로운 IP가 되는 거고. 그나저나 넥슨의 경우 기존 PC 온라인게임의 IP가 잘 되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이를테면 <메이플스토리2>라던가.
띵: 잘 안 된 건 아니다, <메이플스토리2>는 중국에서는 꽤나 성과를 거뒀다. 단지 한국에서 모바일IP 부문에서 성과가 상대적으로 없어 보이는것이는 거지. ‘리니지’나 ‘뮤’ 같은 IP에 비하면. 아쉬운 점은 게임에 다른 방향성을 접목시킨 시도가 잘 먹히지 않았다는 거다. <메이플스토리2>만 하더라도 생활형 콘텐츠를 기획했는데 유저들은 주로 레벨업에 포커스를 뒀다. 그래도 다음 번에 또 이런 게임을 만들다보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네오플이 벌어다 준 돈이 많아서 그것으로 하는 거지만. (웃음) <던전앤파이터>가 중국에서 잘 하고 있을 때 여러가지 시도를 해야 한다.
[참고] 네오플의 <던전앤파이터>는 지난해 중국에서 1조 이상의 로열티 수익을 거뒀다. 네오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 636억 원으로 넥슨코리아보다 1조 가까이 많았다.
시몬: 한 발 더 나가서 기조, 스타일, 비전이 확실한 개발팀과 스튜디오가 중요한 것 같다. 최근 메이저업체 임원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입에게 입사면접에서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입사’라는 답변이 나왔다고. 그게 꿈이라면 입사 후에는 따로 할 일이 없지 않을까?
띵: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일 하긴 힘들 거다. 꿈이 뭐냐 물었을 때 이상적이고 도전적인 소리도 하고, 이런 게 중요한 것 같다. 스튜디오의 브랜드가 잘 알려져 그런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
시몬: <디스 오브 워 마인>을 만든 11비트 스튜디오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확실하다. 그런데 면접 때 그런 꿈을 물어보지 않고. 단지 어떤 일을 잘 하나, 기술이 있나만을 살펴본다고 한다. 지원자 자체가 그런 꿈이 없으면 그 회사에 지원할 일이 없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거다. 스튜디오나 개발사의 지향이 명확하고 의미있는 성과를 낸다면, 관심있고 재능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훨씬 쉬울 것 같다.
띵: 그런 게 결국 회사를 제대로 만드는 거다. 회사는 껍데기니까. 사람들이 알맹이를 이루는 거고.
시몬: 확실히 인큐베이션실 구조 아래 개별적인 팀 단위보다 같은 지향점을 가진 스튜디오 체제 아래 멤버들 사이에서 업무 진행이 수월하게 이뤄질 뿐 아니라, 업무 후에 축적되는 부분도 많을 것 같다. 반복을 통해 조금씩 개선해가는 ‘이터레이션’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 넥슨은 내부 노하우 공유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 매년 여는 NDC(넥슨개발자콘퍼런스)도 노하우의 축적과 공유라는 맥락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띵: 게임이라는 것이 요즘에는 90% 이상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성공한 몇 개가 뉴스에도 나오고 있지만 대다수의 게임들은 노력을 그렇게 많이 했음에도 퀄리티가 떨어져서던지, 마케팅의 어려움에서던지, IP 힘이 없어서이던지, 아니면 운때가 안 맞아서던지 실패한다. 그렇다면 처음 해보는 것보다 망해본 놈이 또 망할 가능성이 낮다고 봐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서너 번의 노하우가 쌓여서 이제는 좀 더 확률을 높일 수 있으리라 본다. NDC에서도 그렇고 꽁꽁 숨기기보다 서로 돕고 살아야 그나마 성공할 가능성이 1%라도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서로 잘 모르는 팀 단위보다는 서로 공동체가 된 스튜디오라면 협력이 좀 더 많아지리라 예상하는 부분도 있다.
시몬: 공동체가 돼 한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가는 것은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스튜디오 단위로 비전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잘 정렬돼(align) 있으면 의사결정의 낭비도 줄어들 것이고, 논의의 폭과 깊이도 다를 것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팀 구성이나 스튜디오 내의 지원도 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띵: 결과가 좋으면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던 중간에 무슨 잘못을 했던 모든 것이 다 잊혀진다. 그런데 이야기한 것처럼 성공확률이 낮은 경우에는 그 과정에서 서로 다독거리면서 내가 뻘짓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변의 격려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라보는 방향이라는 것이고…
누구는 RPG를 잘 만들고 싶고, 누구는 인디게임 스타일을 잘 만들고 싶고, 누구는 액션게임, 누구는 콘솔 등 같은 분야를 추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재미있게 일하면서도 그쪽 유저들 입맛에 좀더 적절한 게임을 만드는 환경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찌되었던 게임 제작이 과정에서도 의미가 있고 각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이 모여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게임 유저층도 매우 다양화되어 가고 있는데 미래에 올지도 모르는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서는 그쪽에 오타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몬: 그나저나 자율성과 독립성이 강화된 스튜디오 체제 하에서는 스튜디오 간 협업이나 인사이동은 어떻게 되나? 완전 자치공화국 같이 되면 이전보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띵: 협업은 개인적인 친분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 주에 한 번씩 리뷰를 한다. 스튜디오끼리 모여 자유롭게 자랑하고 브레인스토밍하고 아이디어 내는 리뷰다. 각자 만들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서로 자극받고, 같이 점심 먹는 그런 자리다. 사실 인사이동은 예전에 비하면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구조긴 하다. 서로 다른 개발엔진을 쓸 때도 있고. 이럴 때 스튜디오끼리 빅 딜을 할 수도 있다.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는데, 만들려고 하고 있다.
시몬: 스튜디오 한 곳에 인원은 몇 명 정도 있나?
띵: 100명 초반부터 많은 곳이 200명 후반까지 된다.
시몬: 슈퍼셀 본사 개발 조직은 200명이 안돼서 조직 내 밍글링(mingling, 캐주얼하게 어울림)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넥슨은 어떤가?
띵: 스튜디오마다 스튜디오 헤드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보는데, 스튜디오 사이에서의 밍글링은 크게 바라진 않는다.
시몬: 채용에서도 스튜디오 단위로 공채를 내나?
띵: 넥슨 자체적으로 공고를 내는 것이 아닌 스튜디오에서 개별적으로 뽑는다. 예전 공채에서 서류심사 후 1, 2지망을 받았던 것과는 다르다.
시몬: 지금까지 들은 바에 따르면 스튜디오에서 개발을 완료하고 론칭을 계획할 때 넥슨 본사에서 결정을 한다, 스튜디오에 사업담당자를 넣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되는 건가?
띵: 지금 진행 중이다. 약간 변동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마케팅이나 유저획득(User Acquisition)을 하는 팀은 스튜디오에 있을 필요가 없다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이며, 이 게임의 비즈니스 포인트를 어떻게 잡아 가야 할지, 타겟팅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결정하는 인원은 팀 안에 있어야 한다. 사업 기획하는 사람이 스튜디오에 들어와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 거다. 잘 되는 PM(프로젝트 매니저)을 넣기보단 개발과정을 바닥부터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사업의 잣대로 재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다른 의견도 있긴 한데, 이런 방향으로 가고 싶다.
시몬: 지금까지 진행이 가장 잘 되고 있는 스튜디오는?
띵: 제일 잘 되는 곳은 데브캣이다. 원래 하던 가락이 있으니까. 최근 인원도 확충하고 프로젝트도 더 가져갔다. 자율권이 주어졌으니까 문제는 없는것 같다. 나머지 팀들은 셋업하고, 스튜디오 내에서 공통화 할수 있는 부분들 조정하고있는 중이다. 미들웨어, 소스코드 같은 것들. 효율성은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 같다.
시몬: 게임 회사들은 엔진이나 다른 미들웨어 등을 개발팀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스튜디오 체제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띵: 스튜디오로 합쳐지면서 추천보다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좀 있을 거고, 조금 더 끈끈해질수도 있고, 그러다 다 산으로 갈 수도 있는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