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지난 4월 개발 조직에 큰 변화를 줬다. 중앙에서 통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7개 독립 스튜디오가 새 게임의 개발이나 스튜디오 운영 등에 대해 자율권을 갖게 된 것이다. 넥슨은 각 스튜디오를 매출 외에도 게임성이나 의미 있는 도전 등 여러 기준으로 평가할 예정이다.
넥슨이 스튜디오에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넥슨의 ○○가 아니라, '○○ 스튜디오'라 불릴 정도로 각자 독자적인 색과 브랜드를 가지는 것. 즉, 넥슨은 개발사로서 기조와 미래를 각 독립 스튜디오에게 맡긴 셈이다.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의 체제 개편을 맞아, 각 독립 스튜디오의 총괄 프로듀서를 만나 그들이 꿈꾸는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넥슨레드 김대훤 대표
디스이즈게임: 예전에도 만만치 않은 규모였는데, 독립 스튜디오가 되며 규모가 300명으로 더 커졌다. 지금 어떤 팀들이 안에 있는가?
김대훤: 아무래도 타이틀로 얘기를 하는 것이 알아듣기 편하겠지? 현재 라이브 게임으론 <스페셜솔져>, <AxE>, <판타지워택틱스R>(구 슈퍼판타지워), <영웅의 군단>, <리터너즈>를 가지고 있고, 미공개 프로젝트도 3개 준비 중이다. 팀이나 회사 단위로 얘기를 하면 기존 넥슨레드 인원에 엔도어즈, 넥스토릭, 넥슨GT 일부 인원이 모여 있다.
넥슨레드만 해도 <스페셜솔져>(모바일 FPS)와 <AxE>(모바일 MMO)라는 상반된 장르를 만들었는데, 이번에 모인 팀까지 보니 앞으로 어떤 회사가 될 지 감도 잘 안 잡힌다.
대충 2개 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모바일 RPG처럼 지금 대세이고 개발에 많은 자원이 필요한 장르를 효율적으로 잘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잘하고 좋아하는 장르를 (트렌드에 맞지 않아도) 꾸준히 시도해 조직의 창의력도 유지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도 찾아 내는 것.
피처폰 시절에 개발사들이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타이틀과 개성있는 타이틀 2 트랙으로 개발을 이끌어 갔던 것이 떠오른다.
비슷하다. 요즘 모바일 시장에서는 이런 2 트랙 전략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현재를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을 잘 하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 잘하는 것을 준비할 필요가 있으니까.
해야만 하는 것은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히트작, 아니 히트작까진 가지 않아도 매출 순위 위쪽에 올릴 수 있는 '중박' 타이틀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모바일 RPG겠지. 모바일 환경에선 AI가 반복 작업을 해주고, 유저는 잠깐 잠깐 성장 확인하고 직접 플레이하는 이 장르가 너무 잘 맞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우리가 <판타지 워 택틱스 R>과 <AxE>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장르기도 하다.
이런 장르는 보통 여러 회사가 뛰어들기 때문에 어중간한 투자로는 답이 없다. 많은 인력이 빠르게 고 퀄리티로 게임을 만들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추가로 여러 게임들 사이에서 확실히 눈에 띌 수 있는 특징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결국 리소스를 집중 투자해 실행력과 개발력을 끌어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안에 굵직한 RPG를 만드는 실이 몇 개 있다. <AxE>까진 어떻게 꾸역꾸역 만들었는데, 이젠 제대로 웰메이드 게임을 보여줘야겠지. <AxE>가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앞으로 나올 작품은 개발사 '넥슨레드'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타이틀로 준비 중이다. 우리 개발자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타이틀로….
그럼 잘 할 수 있는 것은?
이건 회사의 정체성과 미래를 위한 도전이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선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주류 장르던 비주류 장르던 회사의 미래를 위해 꾸준히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건 도전이니만큼 회사와 개발자들이 자신 있는 것을 해야겠지. 물론 실패 가능성이 큰 만큼 작은 규모로, 많이.
요즘 우리 화두는 모바일 대전게임이다. <스페셜솔져>같은 FPS부터 <클래시로얄>같은 게임까지 대전이라면 뭐든지다. 우리 시작이 대전 게임(스페셜솔져)이기도 했고, 또 플레이를 오래 하기 힘든 모바일 환경에선 호흡은 짧고 자극은 강렬한 대전 게임이 곧 각광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안에서 '루트(root)실'이라는 실험 조직을 만들어 이것 저것 도전해보라고 풀어 놓고 있다.
어떤 방향인진 대충 알겠다. 일단 밥줄이라고 할 수 있는 주류 장르 팀부터 얘기해보자. 위에서 직접 얘기하기도 했지만, 이 부분은 이미 많은 회사가 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비슷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고. 여기서 의미 있는 차별화가 가능할까?
'잘 만든다'는 것이 뭘까? 흔히 개발력 등으로 뭉뚱그리는 요소가 있다. 대충 정리하면 전문성, 생산력, 창의성 등으로 정리될 것이다.
전문성 같은 경우 유저들이 신작에 기대하는 것이 많아진 만큼 개발자들도 역량과 눈높이를 올려 뒤떨어지는 부분 없이 게임을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다. 이 부분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팀이나 개발자 하나하나의 역량, 자신가 맡은 영역에선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전문가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코드 한 줄에도 혼을 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웃음)
그렇다고 무작정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시간을 쓸 순 없다. 상업 게임은 상품이고, 상품은 적절한 때에 나와야 한다. 남들보다 빨리,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 계획을 잘 짜야 하고, 이후에도 시간과 리소스를 잘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생산력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작품이 다른 게임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단순히 퀄리티 높고 시장만 선점해선 안되겠지. 오래 살아남으려면 우리 게임만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창의성이다.
나는 이중 몇몇은 '시스템'을 통해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사전제작이나 고도의 분업화로 일정 부분 성과를 내기도 했다. 우리도 이런 것을 많이 참고해야겠지.
시스템으로 어떻게? 예를 들어 전문성 같은 걸 교육이나 채용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까?
회사(≠ 팀)에 엔진이나 서버, 아트 등을 총괄하는 전문 팀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기존에는 이런 조직이 각 개발팀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 노하우도 잘 공유 안됐고 만약 프로젝트가 잘 안됐을 경우 경력 있는 개발자들도 흩어졌지.
그런데 팀이 아니라 ‘회사’에 기능 기반 팀이 있다면 구성원들이 더 안정된 환경에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다. 또한 이런 팀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 영역을 보기 때문에 보다 긴 관점에서 계획을 짤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회사 공용 조직을 두면 개발팀마다 관련 부서를 만드는 것보다 리소스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시스템으로 전문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셈이지.
이 예시는 현재 넥슨레드에서 적용 중인 모델이다. 현재 나나 CTO오 같은 사람들이 관리하는 기능 기반 팀이 만들어진 상태다. 서버, 엔진, 비쥬얼, 전략기획 같은 팀이다. 단순히 개발팀의 업무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시장을 분석·예측하거나 회사에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것까지 하려 한다. 아무래도 게임을 만들다 보면 자기 작품에만 집중하느라 외부 상황을 신경 못쓰기 쉬우니까.
확실히 이런 기능 중심의 공용 조직은 해외 일부 개발사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아직 시작 단계라 고민이 많다. (웃음) 예를 들어 아트 공용팀이 있다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아티스트가 개발팀에 속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으니까. 이 부분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처리해야겠지. 파견 개념을 만든다거나 순환 보직 구조를 만드는 식으로.
이런 것이 공용 조직이 아니라, 각각의 개발 팀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똑같은 방법으론 안되겠지만, 현재 시스템이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팀의 생산력은 계획이나 개발자들의 역량 못지 않게, 개발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이걸 팀원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이걸 위해 실장·팀장 중심으로 약 10여명의 키 멤버가 모인 코어 조직을 키우고 유지하려 한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사단'을 키운다고 할까?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제로 상태에서 재미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보며 여러 사람이 실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아무리 디렉터가 게임의 방향성이나 핵심 가치를 잘 얘기해도 구성원들이 이걸 똑같이 받아들이긴 힘들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재미가 다르고 게임 경험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니까. 보통 모인 지 1년은 돼야 서로의 의도를 오해 없이 이해하게 된다. 그 전까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심하면 서로 감정까지 상한다.
하지만 서로를 잘 아는 멤버들이 출발선을 끊으면 이게 놀랍도록 쉬워진다. 후발 멤버들은 참고할 수 있는 '실체'가 있으니까. 실제로 <AxE>를 만들 때도 <테일즈위버> 라이브 조직 멤버들이 이 역할을 해준 덕에 쉽게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눈덩이를 만들 때 처음 굴릴 씨앗 눈덩이가 퍼석퍼석하면 눈을 뭉치기 힘들지만, 단단한 씨앗으로 눈을 굴리면 쉽게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때문에 큰 그림에선 이렇게 서로를 잘 알고 실력 있는 소규모 코어 멤버들을 잘 육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중심이 될 수 있는 멤버들이 있어야 큰 프로젝트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까.
그럼 이런 코어 조직은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는 건가?
이들이 루트실(넥슨레드의 실험 개발 조직) 관련 일을 하고 있다면. 이쪽은 자유가 모토니까. 나도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 조직이다.
반면 주류 장르를 만드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면 얘기가 다르겠지. 이건 프로젝트 하나를 만들 때마다 상당한 리소스가 필요한데다, 잘못되면 회사가 기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쪽은 내가 프로젝트 시작, 끝 단계에서 엄청 개입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할 때는 전략과 방향성을 굉장히 꼼꼼히 보고 논의한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결과물이 개발진과 스튜디오 이름을 걸고 나가도 될지 판단하고, 만약 부족하면 끌어 올리라고 하고. 그래야 만약 잘못돼도 내가 책임질 수 있으니까.
대신 만드는 과정에선 거의 일임한다. 디렉터가 개발 상황에 따라 튜닝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기까지 내가 개입하면 그건 그냥 김대훤 게임이지. 시작과 끝에 내가 개입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함이지, 내 게임을 만들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개발 과정에서 중간 보고만 받는 정도다. 중간 보고라고 해도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다. 개발과정 자체는 다른 팀에게도 다 오픈돼 있으니까.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그럼 반대로 그 코어 조직에 속하지 않은 다른 개발자들은? 창의력과 전문성이 개발자 일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대형 프로젝트는 개발자들이 의욕을 가지기 힘든 구조고.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라고 느끼기 쉽지 않은가?
맞다. 그래서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개발자들의 의욕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많은 회사가 이 단계에서 일체감을 해결책으로 삼는다. 먼저 회사의 철학과 문화를 구성원들에게 녹여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그 다음 각 조직의 비전과 문화를 녹이는 방식을 취한다. 솔직히 개편 전에는 이게 잘 안됐다. 회사 개발진을 하나의 철학과 문화로 묶기엔 넥슨은 너무 컸다.
하지만 이젠 독립 개발 스튜디오 체제가 되며 이 부분이 상당 부분 해결됐다. 스튜디오라는 중간 규모 조직이 만들어지며 최소한 '우린 넥슨레드 개발자야'라는 건 시도할 수 있게 됐지.
그러려면 뚜렷한 조직 문화나 비전이 필요하다.
당장 목표는 '재미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회사'다. 폼 나게 말하면 개방적이고 교류와 협력이 자유로운 회사랄까? 이외에도 모든 팀이 개발 진척도를 공유해 구성원들이 회사의 히스토리를 알게 한다던가, 개개인이 자기 일에 책임감 가지는 것 등 여러 목표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이거다.
게임사를 다녀본 사람들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얘긴지 알 거다. 솔직히 몇 달 고생한 동료 앞에서 객관적으로 '네 게임 재미 없어'라고 말하기 얼마나 힘든가. 그게 회사가 휘청일 정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라면 더 그렇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사명감(?) 없이는 싫은 말 못한다. 보통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대충 재밌다고, 나오면 꼭 하겠다고 말한다. 실제론 안 할 거면서. (웃음)
하지만 콘텐츠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냉정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처럼 구성원들의 시너지가 중요한 업체에선 서로 이런 민감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식구'가 돼야 하고.
이상적인 얘기긴 한데, 그게 가능할까?
말만으론 힘들겠지. 그래서 여러 시스템을 준비 중이고, 또 적용했다. 예를 들어 타이틀에 대한 전직원의 피드백이 대표적이다. 루트실에서 만든 실험작이든, 수십 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든, 어떤 게임이든 완성되면 스튜디오 모든 직원들에 플레이하고 피드백을 준다. 결과물만 보고 제 3자의 시각에서 투명하게 게임을 평가하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구성원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 이걸 하는 건 다수결을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필요하면 그런 것도 있긴 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구성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어떤 피드백을 줬느냐를 모두에게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그걸 바탕으로 무슨 이유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도. 이것만 꾸준히 해도 구성원들이 게임을 보는 눈도 올라가고, 회사가 어떤 게임을 목표로 하는지 잘 전달될 것이라 믿는다.
이를 원활히 하기 위해, 테스트를 한 뒤 직원들의 피드백을 모두 정리해 사내에 공유할 예정이다. 그리고 회사와 개발팀이 그 피드백을 보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도.
2번째는 퀄리티 관리다. 자기 게임을 냉정히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반면 유저들의 눈높이는 날로 높아지고 있고. 하지만 3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게임을 평가한다면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지.
직원들이 게임을 하고 피드백 주는 것은 다른 회사에서도 많이 한다. 그리고 많은 개발자들이 내 일이 아니라, 혹은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냉정한 피드백을 꺼리고.
당연히 그냥 회사 차원의 테스트만 해선 안되겠지. 보상이 있어야 한다. 좋은 피드백을 준 사람을 알려 일종의 스타처럼 만드는 것, 피드백에 대한 평가 체계 등을 생각 중이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실제로 구현됐을 때 잘 보여주는 것, 변화를 체감하게 하는 것도 고민 중이고. 아무리 좋은 피드백을 줘도 변화가 없어 보이면 누가 열심히 피드백 주려 하겠는가?
그리고 이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루트실의 역할도 중요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부담 없이 게임 평가를 공유하는 문화 뿐만 아니라, 조직의 창의성, 코어 조직 육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
앞서 루트실에 대해 실험 개발 조직이라고 소개했다. 모바일 대전 베이스의 작지만 참신한 타이틀을 개발하는 공간이라고. 이런 곳이 어떻게 평가 문화, 코어 멤버 형성에 도움이 되는가?
개발자들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평가할 타이틀이 루트실의 작품일테니까. (웃음)
루트실은 개발자들이 아무 간섭 없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이다. 명목 상 내가 실장이긴 한데, 당장 나부터가 여기서 어떤 것을 하는지 들여보지 않는다. 실장인 나부터가 이러면 다른 곳에서도 개발 과정에 개입할 수 없겠지.
개편 전에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관리해봤는데, 이런 조직은 누군가가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악영향을 주더라. 내가 유저들의 모든 기호를 커버할 수도 없고 모든 게임을 관리할 수도 없으니까.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위에 있으면 개발자들은 내 표정 하나하나에도 반응하게 된다. 그렇게 개발자들의 소신이 무너질 위험을 만드느니, 아예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났다고 생각했다.
대신 평가 기준으로 삼은 것이 스튜디오 전체의 피드백이다. 일정 시간(보통 반년에서 8개월) 안에 어느 정도 결과물을 만들면 우리 구성원 모두가 게임을 평가한다. 우리가 300명 정도 된다. 이 정도 숫자면 충분히 다양한 시각에서 게임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창의적이고 괜찮은 것 발견하면 그대로 진행하고.
루트실 작품은 조직 특성 상 개성적인 게임이 많은데, 이런 타이틀은 누구 하나의 시각보단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또한 회사 딴에서도 구성원들이 이렇게 자주 게임을 평가하다 보면 게임 평가 문화도 자연스럽게 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루트실 안에 있는 팀들은 규모가 작다고 들었는데, 6~8개월 개발한 결과물로 잘 평가할 수 있을까?
완성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있는 프로토타입 정도면 충분하다. 또한 개발팀은 서버, 아트, 테크니컬 아트 등 기능 기반 공용 조직에 리소스를 사용하거나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루트실 개발팀이 보통 최대 10명 정도 되는데, 이정도 인원과 공용 조직 리소스면 반년 간 프로토타입 만드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발이라는 것이 항상 원하는 일정 안에 끝나진 않겠지. 그런데 과거 비슷한 팀을 이끈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 이상 시간을 끌면 더 힘들어지더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한참 개발했는데 경영진이나 구성원들이 '이 산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봐라. 개발팀 멘탈 깨진다.
애초에 독특한 게임 도전으로 방향을 잡은 이상, 게임의 핵심 재미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빨리 만든 후, 고/스톱을 빨리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간단히 요약하면 루트실 자체를 통한 새로운 게임 도전, 그리고 스튜디오 구성원들이 끊임 없이 나오는 루트실 게임을 평가하며 조직 문화를 바꾸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맞다.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해 주류 장르를 따라 가야 한다고 해도, 콘텐츠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을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도전이 계속돼야 조직에 활기가 돌고. 물론 불명확한 투자긴 한데, 의미 있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같은 임원진은 결과가 나왔을 때 그걸 바로 현실화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겠지.
루트실은 어떤 사람들이 속할 수 있는가?
작은 조직이지만, 프로젝트 시작은 물론 개발까지 자율권을 가지기 때문에 기준이 조금 까다롭다. 실력이 검증됐고 창의력 있고, 만에 하나 실패해도 그걸 자양분 삼을 수 있는 사림이어야겠지. 루트실의 목적은 도전뿐만 아니라, 도전 과정에서 배운 것을 회사에 적용하기 위함이기도 하니까.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성을 보여줬느냐’겠지. 개발도 밑천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여기에 더해 이젠 자율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만큼 열정과 의지력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소규모라고 해도 팀으로 일을 하는 것이니만큼, 팀 생활에 걸맞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리더십이 있어야겠지.
기준이 굉장히 까다롭다.
게임은 결국 흥행산업이다. 그런 만큼 대규모 프로젝트는 물론, 이런 소규모 도전 프로젝트도 어설픈 준비로 시작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루트실이 팀원들에게 개발 자유가 주어진다고 더 쉽게 볼 수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여기가 더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한다. 메이저 프로젝트에선 목표가 명확하지만, 여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니까. 여기서 일하다 늪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
그런 만큼 더 까다로운 기준으로 사람을 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실력있는 개발자들이 메이저 프로젝트와 루트실이라는 상반된 개발 환경을 오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루트실이 실험 프로젝트나 조직 문화 변화 외에도, 개발자들을 단련하는 역할도 일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비슷하다. 교육을 목표로 한 곳은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거나 개발 역량이 오르기 쉽겠지. 또한 소규모 팀 프로젝트기 때문에, 루트실을 통해 '코어 조직' 또한 육성될 수 있지 않을까도 기대하고 있다.
루트실은 현재 어떤 게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프로젝트 시작은 개발자들 자유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어떤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큰 방향성 정도만 얘기를 하자면 '모바일 대전 게임' 정도다. 기본적으로 우리 개발자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RPG 이후 새로운 트렌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마트폰이 과거 PC처럼 대세 기기가 됐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그런데 모바일 기기 특성 상 PC처럼 진득하게 게임하긴 힘들다. 반면 자동 전투 기반 콘텐츠는 들어가는 품도 많고, 유저에게 줄 수 있는 자극이 한정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클래시 로얄>처럼 짧은 호흡을 가진, 반면 그 시간 동안 큰 자극을 줄 수 있는 게임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바일 초창기에 비해 많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당장 모바일 FPS만 해도 어른(?)들은 조작을 힘들어하지만, 어린 친구들은 키보드·마우스로 플레이하는 것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FPS, 전략 카드배틀 등 대전 게임 자체도 많은 장르가 모바일로 나오고 있고.
이런 장르라면 생산력 같은 것보단, 핵심 기믹을 설계하고 현실화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겠지. 그래서 루트실에서 소수 정예로 도전하고 있다.
그간 성과가 좀 있었나?
루트실 자체는 제대로 돌아간 지 1년도 안 돼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물론 루트실 이전에도 이런 실험 조직을 4~5년 정도 굴려보긴 했는데, 삽을 펐던 기억이 더 많다. (웃음) 아직 이쪽 실에서 낸 게임은 없지. 창의적인 타이틀, 그것도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게 쉽진 않더라.
그래도 이것을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꾸준히 무언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일단 개발자들의 역량 강화에 정말 많이 도움이 된다. 개발자로 일하며 자기가 주도적으로 게임을 만들기 보단 큰 팀에 속해 지엽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루트실에서 무언가를 만들면 게임 전체를 봐야하고, 전체적인 재미를 고민해야 한다. 이 차이가 크더라.
실질적인 소득도 있었다. 과거 <삼국지M> 같은 영지 경영 게임이 유행일 때 우리 실에서도 이 장르를 1~2년 연구했다. 그 때 연구한 게 게임으로 나오진 못했지만, 모바일 환경에서 비동기 방식(혹은 느린 템포로)으로 유저와 유저 간의 상호작용을 만드는 것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건 지금 만들고 있는 모바일 MMORPG 프로젝트에서 많이 참고하고 있다. (웃음)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게 아깝진 않나? 4~5년이면 짧은 기간도 아닌데, 삽만 줄창 펐지 않은가.
창의적이고 먹힐 만한 타이틀을 만드는 것이 어디 쉽겠다. 그게 4~5년 만에 나왔으면 우리 말고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하겠지. (웃음) 우린 이걸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고 있다.
그래서 메이저 프로젝트와 실험 프로젝트의 균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메이저 프로젝트가 꾸준히 성과를 내야 우리도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고, 반대로 새로운 것이 나와야 다음 세대의 메이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루트실에서 하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 구조가 잘 돌아가려면 다른 곳에서 중박 이상 타이틀을 꾸준히 내줘야겠지.
이게 아마 우리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한다. (웃음) 이 부분은 방법론을 계속 튜닝 중이다.
그렇다면 지금 만들고 있는 작품들이 이런 시스템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어떤 것을 준비 중인가?
루트실 작품을 얘기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같고, 궤도에 오른 큼직한 타이틀만 얘기하겠다. 현재 넥슨레드는 수집형 RPG인 <프로젝트 G>, 모바일 FPS <프로젝트 M>, 아직 프로젝트 명이 확정되지 않은 모바일 MMORPG를 개발 중이다. 세 작품 모두 언리얼엔진4로 개발 중이다.
<프로젝트 G>는 얼마 전에 원화를 공개했다. 과거 <영웅의 군단>을 만들었던 개발자들이 주축이 돼 개발 중이다. 가장 큰 특징은 그동안 수집형 RPG 장르에서 등한시 된 '커뮤니티성'을 끌어 올렸다는 점이다. 약간 과장 좀 보태면 MMORPG처럼 내 캐릭터가 세상에서 다른 캐릭터, 유저들과 상호작용하는 재미를 주는 것이 목표다. 이외에도 언리얼엔진4를 활용한 고 퀄리티 그래픽, 일본까지 염두에 두며 신경쓴 '스토리' 등도 특징이다.
미공개 MMORPG 프로젝트는 앞에서 잠깐 얘기했던 것처럼 모바일 영지경영 게임의 비동기 상호작용을 MMORPG라는 장르에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모바일 MMORPG는 기기 특상 상 유저와 유저 간의 상호 작용이 적은데, 만약 이 방식을 성공적으로 적용할 경우 조금 더 사람 냄새 나는 모바일 MMORPG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프로젝트 M>은?
근래 모바일에서도 '배틀로얄' 방식 슈팅 게임이 인기다. 아마 가볍게 한 판 즐길 수 있고, 피지컬 요소가 게임을 크게 좌우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총을 못쏴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일찍 죽으면 다른 게임 찾으면 되고. 여러모로 모바일에 특화된 것 같다.
그런데 <프로젝트 M>은 이런 모바일 슈팅 트렌드를 '역행'한 작품이다. 우리는 이런 캐주얼한 슈팅게임 붐 뒤에. 다시 한 번 하드코어한 대전 중심 슈팅 게임이 인기를 얻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바일에서 이런 게임이 인기 없는 것은 터치 조작이 힘들어서인데, 이제는 이 조작에 익숙해진 사람도 많이 늘었지 않은가?
사람들이 모바일 조작에 더 익숙해지고 캐주얼한 슈팅도 많이 즐긴다면, 그 다음에는 조금 더 깊이 있는 게임을 찾지 않을까? 어찌 보면 <프로젝트 M>은 도전작에 조금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웃음)
아, 참고로 이 세 프로젝트 모두 앞서 말한 '코어 조직'이 중심이 돼 개발 중이다.
<프로젝트 G>의 홍보 이미지
메이저 프로젝트라곤 해도 기존 작품의 장르적 특색만 답습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런 장르야 말로 잘 만드는 것 못지 않게 차별성이 중요하지 않은가. 특히 RPG 같은 장르는 기존 작품을 하고 있는 유저도 있는데, 이들이 게임을 옮기게 하려면 우리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어야겠지.
마지막으로 '넥슨레드'라는 이름에 남기고 싶은 이미지가 있다면?
넥슨레드라는 이름만 봐도 '한 번 깔아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음…, 내가 말하고도 욕심이 좀 큰 것 같다. (웃음) 그런데 이건 우리 말고도 많은 개발사가 꿈꾸는 목표일 것이다.
갈 길이 굉장히 멀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신뢰 받아야 하니까. 이건 단순히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서비스도 잘하고 좋은 게임도 꾸준히 내야 한다. 먼 길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려한다. 2019년부터 <프로젝트 G>를 시작으로 게임이 하나 하나 나올텐데, 사랑받고 신뢰받을 수 있는 게임을 내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지금 구상하고 진행 중인 내부 시스템 개편도 잘 마무리 짓겠다.
넥슨레드와 우리 게임, 개발자들에 대한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