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리그 오브 레전드>에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졌다. 블루 진영 대포 미니언이 레드 진영에 비해 사거리가 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에 동일한 조건으로 싸움이 펼쳐지는 줄 알았던 유저들은 충격에 빠졌고, 몇몇 이는 풍문으로 내려왔던 '블루 진영이 유리하다'가 맞았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니언 사거리 차이는 솔로 랭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또한 프로 선수들의 블루-레드 진영 승률 차이는 얼마나 크며, 또 어떤 구도로 형성되고 있을까. 수 년 만에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 '대포 미니언 사거리'가 야기한 승률 차이를 정리해봤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솔로 랭크 데이터는 오피지지에서 제공받은 것으로, 10.15 패치를 기준으로 집계됐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중심이 되는 '소환사의 협곡'은 축구, 배구, 농구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좌우가 완전히 대칭된다. 다시 말해 어떤 진영에서 경기를 하든, 차이가 없는 구조인 셈이다.
때문에 이번 '대포 미니언 사거리 차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 유저들 사이에 큰 이슈가 됐다. 블루 진영 대포 미니언의 사거리가 더 긴 만큼, 어떤 진영에서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확실한 이점 하나가 생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한 명의 유저로부터 출발했다.
28일 미국 커뮤니티 레딧의 한 유저는 "<리그 오브 레전드> 초창기부터 이어진 버그를 발견했다"라며 블루 진영 대포 미니언의 사거리(300)가 레드 진영(280)보다 더 길다는 것을 공개했다. 이후 몇몇 유저가 실시한 '실험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유저와 챔피언없이 미니언끼리 라인전을 펼치게 한 결과, 33번 중 블루 진영이 25번 승리한 반면 레드 진영은 고작 8회 승리에 그쳤기 때문이다.
실험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는 이를 두고 큰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미니언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미니언이 등장하는 '라인'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장소이자 모든 스노우볼이 시작되는 곳이다. 아울러 라인은 상대 본진에 도달하기 위한 첫 번째 출발점에 해당한다. 때문에 미니언 사거리는 겉보기엔 소소할지 몰라도, 결과에 따라 엄청난 크기의 스노우볼을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라이엇게임즈 역시 빠른 대처에 나섰다. <리그 오브 레전드> 소환사의 협곡 디자이너 플록스(Phlox)는 레딧 게시판을 통해 "지난주 월요일 해당 버그를 확인했다"라며 "테스트 서버를 통해 몇 가지 사안을 점검한 뒤, 10.16 패치로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미니언 사거리 차이는 일반 유저들의 솔로 랭크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30일 오피지지가 제공한 10.15 패치 데이터에 따르면, 해당 기간 솔로 랭크 승률은 블루(50.9%) 진영이 레드 진영(49.1%)에 비해 미세하게 높았다.
티어별로 세분화할 경우 이는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블루-레드 진영의 승률 차이가 0.7%에 불과한 브론즈 티어를 제외하면, 다른 티어들은 모두 블루 진영이 레드 진영에 비해 약 2%가량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플래티넘 티어 블루 진영 승률은 50.90%로, 48.50%을 기록한 레드 진영에 비해 2.4%나 높은 편이다.
챔피언을 뜯어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각 라인별로 가장 픽률이 높은 챔피언에 해당하는 다리우스, 리신, 제드, 이즈리얼, 쓰레쉬 등 다섯 개 챔피언은 모두 근소하나마 블루 진영에서 더 높은 승률을 올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 존재하는 149개 챔피언 중 데이터가 집계된 10.15 패치 동안 레드 진영에서 더 높은 승률을 기록한 챔피언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라이즈와 탐켄치가 블루, 레드 진영에서 동일한 승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대세에 큰 영향은 없다.
가장 큰 승률 차이를 기록한 챔피언은 '럼블'로, 레드 진영에서 47.1%의 승률을 기록한 반면 블루 진영에서는 무려 53.5%의 승률을 올렸다. 물론 럼블의 낮은 픽률(1.1%)과 파일럿의 숙련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수치임에는 분명하다.
여담으로 블루-레드 진영의 승률 차이는 '칼바람 나락'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나타냈다. 10.15 패치 기준, 칼바람 나락 블루 진영 승률은 51.3%로, 48.7%를 기록한 레드 진영에 비해 2.6% 높다. 이는 칼바람 나락이 탑, 미드, 바텀 등 여러 라인이 존재하는 소환사의 협곡과 달리 하나의 라인으로만 진행되기에 드러난 수치로 보인다.
그렇다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최고수들이 모인 '프로씬'은 어떨까. 다음은 2020 LCK 스프링 정규시즌에 참가한 10개 팀이 기록한 진영별 승률이다.
프로씬 역시 블루 진영이 높은 승률을 기록한 솔로 랭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DRX와 그리핀의 블루 진영 승률은 레드 진영에 비해 약 20% 이상 높다. 반면 레드 진영에서 특출난 성적을 올린 팀도 있다. 바로 젠지, 아프리카, 샌드박스다. 이 중 아프리카는 블루 진영보다 레드 진영에서 15% 이상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는 블루 진영이 먼저 픽을 시작하는 대신, 레드 진영에게 마지막 픽의 권한을 넘긴다. 때문에 블루 진영은 선픽의 강점을 살리기 좋고, 이를 통해 상대 픽을 강제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반면 레드 진영은 마지막 픽을 '히든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프로씬의 레드 진영 승률은 선수들의 챔피언 폭과 코칭 스태프의 밴픽 역량이 드러나는 부분으로도 꼽힌다.
물론 위 수치만으로 블루 진영 대포 미니언의 사거리가 승부를 갈랐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프로씬에는 챔피언 밴픽과 전략, 전술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팀이 블루 진영에서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프로 경기가 작은 요소만으로도 큰 변수가 발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블루 진영 대포 미니언의 긴 사거리'는 시작부터 큰 스노우볼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여러 가지 패배 요인이 존재한다. 팀원과의 합, 불화, 개인 능력 혹은 예상치 못한 변수 등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이번 '대포 미니언 사거리 차이'의 경우, 유저의 영역과 완전히 별개의 부분에 해당한다. 때문에 오랜 시간 이를 발견하지 못했던 라이엇게임즈에도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레딧 유저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누구도 대포 미니언 사거리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게임을 플레이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라이엇게임즈가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자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라이엇게임즈가 버그를 놓쳤음을 인정하고, 바로 다음 패치를 통해 대포 미니언 사거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상황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남을 가능성도 높다.
대포 미니언 사거리 차이는 다음 달 5일 진행될 10.16 패치를 통해 수정될 예정이다. 때문에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블루 진영'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찬스가 될 수도 있다. 당분간은 레드 진영에서 게임을 패배하더라도, 본인의 손을 탓하지 마시라. 대신 '레드 진영 대포 미니언'의 사거리가 짧은 것을 두고두고 원망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