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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호라이즌 제로 던'이 너무 잘 나와서, 존속 불투명해진 비운의 PS 게임

게릴라 게임즈의 '킬존' 시리즈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4랑해요) 2021-09-01 18:19:31
다른 게임이 너무 잘 나와서, 존속이 불분명해진 게임 시리즈가 있다고요?

게릴라 게임즈의 <킬존> 시리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게릴라 게임즈는 네덜란드에 위치한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산하의 게임 제작사다. 국내 게이머에겐 <호라이즌 제로 던>을 개발한 회사로 유명하며, 최근에는 후속작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를 2022년 출시할 것이라 예고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다만, <호라이즌> 시리즈가 너무나 잘 나온 덕택에, 기존 게릴라 게임즈의 간판 타이틀이었던 <킬존> 시리즈는 찬밥 대우를 받고 있다. 2021년 1월에는 공식 사이트마저 폐쇄하며 존속마저 불분명해진 상태. <킬존> 시리즈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헤일로 킬러"라는 별명이 붙은 <킬존> 시리즈

 

"<킬존>은 <헤일로> 킬러가 될 것이다"

소니에서 직접 밝힌 내용은 아니지만, <킬존> 시리즈의 첫 작품 <킬존>(2004)은 발매 전부터 "헤일로 킬러"라는 별명이 붙으면서 유명해졌다. 정확한 자료를 찾기 힘들어 정말로 소니와 게릴라 게임즈가 "헤일로 킬러"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킬존>이 많은 기대를 받았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당시 Xbox에는 <헤일로>라는 간판 타이틀이 있었다. <헤일로>는 외계인 '코버넌트'와 인류의 전쟁을 다룬 SF FPS다. Xbox의 그래픽을 아낌없이 활용한 그래픽과 참신한 게임플레이가 호평을 받으며 FPS 장르의 중심을 콘솔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 11월 Xbox로 발매된 후속작 <헤일로 2>가 무려 846만 장의 판매량을 올렸을 정도니, <헤일로> 시리즈가 Xbox 진영을 견인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반면 PS2의 놀라운 판매량과는 별개로 PS 진영에는 내세울 만한 독점 FPS 타이틀이 없었다. 이 때 화려한 그래픽, SF 세계관을 차용한 만큼 에너지 병기가 꽤 많이 등장하는 <헤일로>와 반대로 화약 무기가 주로 등장하는 <킬존>이 공개되었으니 자연스레 "헤일로 킬러"라는 별명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기자의 뇌피셜이지만 HUD를 포함해 푸른 색감이 자주 등장했던 헤일로와 대비되게, 킬존은 검은색과 빨간색을 주로 사용한 만큼, 이러한 시각적인 대비도 게이머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외에도 <킬존>은 많은 부분에서 헤일로와 대비된다

 

이런 기대감을 타고 2004년 발매된 <킬존>은 분명 나쁜 게임은 아니었다. PS2의 한계까지 끌어올린 그래픽, 현장감 넘치는 그래픽과 모션은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스토리는 진부했고, 게임플레이가 단순한 덕택해 빠르게 식상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임 자체만 평가하면 평작 이하는 아니지만, "헤일로 킬러"라는 타이틀에는 걸맞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나 커진 기대감이 발목을 붙잡은 셈.

 

PS2로 발매된 <킬존>(2004)
 

 

# '낚존'이라는 오명을 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킬존> 시리즈는 국내 커뮤니티에서 "낚존"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원인은 2005년 E3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니는 <킬존 2>의 트레일러 영상을 공개하면서 "거짓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게임플레이를 그대로 담았다는 것.

 


 

물론, 지금 관점에서 보면 해당 트레일러는 상당히 어색하다. 별도의 UI도 보이지 않으며, 주인공의 1인칭 모션과 연출을 보면 대놓고 작위적인 느낌이 풀풀 난다. 그래픽만 보더라도 별도의 렌더링을 통해 만들어진 시네마틱 트레일러라는 느낌이 곧바로 느껴질 정도.

문제는 당대 게이머들이 이 발언을 그대로 믿어 버렸다는 것.

2005년은 지금만큼 인터넷을 통한 정보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고, 게임 개발 및 3D 그래픽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았다. PS3의 스펙에 관한 소식도 무성한 와중(PS3는 2006년 11월 발매됐다) <킬존 2>의 트레일러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차세대 기기로 구현된 '진짜' 게임플레이라 여겼다. 그만큼 트레일러 하나는 당시 관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기자에게도 트레일러 하나는 충격이었다. "꼭 해봐야지"라는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PS3가 없어 결국 해볼 수는 없었지만

 

후에 소니가 해외 매체를 통해 해명한 바에 따르면 이는 '해프닝'이었다. 해당 트레일러는 게릴라 게임즈에서 컨셉을 잡기 위해 만든 '데모' 동영상이었고, 이를 잘못 인지한 소니 PR 측에서 실제 영상이라 말해버린 것. 게릴라 게임즈에겐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건이 알려지며 국내 커뮤니티에서 <킬존>은 "낚시"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킬존 2>는 E3 공개 후 4년이 지난 2009년 2월 27일 발매됐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트레일러와 실제 게임 사이 4년이란 시간이 있었던 만큼 <킬존 2>의 그래픽 하나는 당시 공개했던 트레일러보다 뛰어났다. 2009년 PS3로 발매된 게임이라곤 믿을 수 없는 그래픽이었다.

 

<킬존 2>의 스크린샷

 

하지만 이런 성취에도 불구하고, <킬존 2>에 대한 게이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래픽과 다르게 게임플레이는 단순 엄폐와 총격의 반복이었다. 묵직한 1인칭 모션은 호평이었지만, 조작감 측면에서는 답답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픽을 제외하면 전작 <킬존>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 그래픽은 좋았지만... 애매한 평가 받았던 <쉐도우 폴>

 

휴대용 타이틀을 제외하면, PS로 발매된 <킬존> 시리즈의 마지막 게임은 <킬존: 쉐도우 폴>이다.

<쉐도우 폴>은 PS4의 런칭 타이틀 중 하나였다. 그만큼 받는 기대도 매우 컸으며,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팬층의 기대감도 있었다. 실제로 발매된 후 받은 평가에서도 게임플레이를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졌다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

 

<킬존: 쉐도우 폴>

하지만 <쉐도우 폴> 역시 기존 <킬존> 시리즈가 보여준 문제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래픽은 분명 뛰어났다. 하지만 게임플레이가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했다. 스토리는 어색하고 작위적이며, 멋진 디자인에 비해 기억에 남는 등장인물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길 찾기'였다. 몇몇 게이머로부터 너무나 길 찾기가 어려워 "그래픽 감상하라고 일부러 네비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냐"는 빈축까지 샀다.

<쉐도우 폴>이 상업적으로까지 실패한 게임은 아니다. 2014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1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최초로 100만 장 판매를 돌파한 PS4 게임이며, 이후 무리 없이 <호라이즌 제로 던>을 개발한 것을 보면 개발비 이상을 회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많은 기대를 받은 런칭 타이틀이자 대표작으로써는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디자인 멋지고 그래픽 좋으면 뭐합니까? 기억에 남는 놈이 없는데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킬존> 시리즈는 휴대용 기기로도 발매됐다. 2006년 10월 PSP를 통해 한글화 발매됐던 <킬존: 리버레이션>은 게임성으로 꽤 호평을 받았으며, 2013년 PSP VITA로 발매된 <킬존: 머셔너리>는 VITA의 성능을 아낌없이 사용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내세울 만한 AAA 타이틀이 얼마 없었던 VITA의 유일한 간판 게임이었다.

 

이후 게릴라 게임즈는 <쉐도우 폴>의 개발 인력을 <킬존 3> 발매 후 개발되고 있던 신규 IP <호라이즌 제로 던>에 투입했다. 2017년 발매된 <호라이즌 제로 던>은 <킬존>과 다르게 비평 면에서도 성공했으며, 2020년 기준 11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며 상업적으로도 초대박을 거뒀다. 이후 게릴라 게임즈는 <호라이즌> 시리즈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휴대용 기기로 발매된 <킬존> 타이틀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PSP VITA가 몰락한 지금에는 의미를 잃은 말이긴 하지만

 

# 언젠가는 <킬존> 신작을 볼 수 있을까? 답은 "글쎄"

 

언젠가는 <킬존> 시리즈의 신작을 볼 수 있을까? 현 게릴라 게임즈의 현 상황을 보면 이는 힘들어 보인다.

게릴라 게임즈가 공식적으로 <킬존> 시리즈에 대한 지원을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현 상태를 보면 시리즈 신작이 나오리란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 게릴라 게임즈는 모든 개발 인력을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 투입한 상태이며, 본편 이후 발매될 추가 DLC도 생각해 보면 <킬존> 신작이 개발되기는 더더욱 힘들어 보인다. 

여기에 비관적인 뉴스도 하나 더 있다. 2021년 1월 게릴라 게임즈는 <킬존> 공식 웹사이트를 폐쇄했다. 현재 사이트는 플레이스테이션 공식 사이트로 리다이덱션되며, 동시에 아직 멀티플레이 서비스가 지원되고 있던 <킬존 머셔너리>의 신규 클랜 생성도 불가능해졌다. 사실상 <킬존> 시리즈는 여기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 셈.

 

현재 <킬존> 공식 홈페이지에는 해당 메세지만 출력된다

 

몇몇 팬들은 <킬존> 시리즈가 <헤일로>의 <마스터 치프 에디션>처럼 리마스터되길 바라기도 하나, <킬존> 시리즈가 게임플레이보단 '그래픽'과 '연출'을 강점으로 내세웠음을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요원해 보인다. 아무리 당대에 뛰어난 그래픽이었다 하더라도 현대 과점에서 보면 뒤떨어지는 부분이 눈에 띌 수밖에 없기 때문. 리마스터를 통해 게임을 재출시할 이유가 적다.

그렇다 하더라도 <킬존> 시리즈를 게릴라 게임즈의 "흑역사"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킬존> 시리즈가 성취한 그래픽적인 성취 하나는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킬존> 시리즈를 위해 만들어진 '데시마 엔진'은 <호라이즌> 시리즈, <데스 스트랜딩> 등 다양한 게임에서 활용되고 있다. <킬존> 시리즈를 개발하며 얻은 노하우가 <호라이즌> 시리즈 개발을 위한 발판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리즈 주요 적 '헬가스트'의 디자인도 <킬존>이 남긴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특유의 방독면 디자인이 큰 인상을 남겼기 때문. 사진은 E3 2010 (출처 : Barry Mulling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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