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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팩트체크] '게임 중독' 질병 등록 찬성이 반대보다 9% 많다?

게임 중독 질병 등재를 찬성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정확할까?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19-05-13 18:00:46

13일,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게임 중독'(Gaming Disorder)​ 질병 지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이달 말 WHO(세계보건기구)가 게임 중독의 질병 지정 여부를 결정하는 총회를 열기에 앞서 진행되었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게임중독에 대해 '술, 도박, 마약 중독 등과 마찬가지로 질병으로 분류·관리하는 데 찬성한다'를 선택한 응답자는 45.1%로 나타났다. '놀이문화에 대한 지나친 규제일 수 있으므로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반대한다'를 선택한 응답자 36.1%보다 약 9% 높은 것이다. '모름/무응답'을 선택한 응답자는 18.8%. 표본오차는 95%로 신뢰수준의 ±4.3%p이다.

 

그렇다면 게임 중독 질병 등재를 찬성하는 국민이 반대하는 국민보다 더 많다는 뜻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 리얼미터의 여론 조사와 발표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리얼미터가 공개한 설문 결과부터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찬성과 반대 의견을 비교했을 때 찬성이 9%p 높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오차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찬성 의견이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리얼미터가 공개한 세부 응답비는 아래와 같다. 

 

- 찬성 우세 : 여성, 50대 이상, 충청·서울·TK·PK, 중도층·진보층·보수층,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지지층 

 

여성(찬성 50.1% vs 반대 28.0%)

 

50대(53.3% vs 32.2%)

60대 이상(47.1% vs 22.7%)

 

서울(48.6% vs 34.8%)

대전·세종·충청(60.8% vs 27.2%)

대구·경북(39.3% vs 27.7%)

부산·울산·경남(43.4% vs 35.8%)

 

중도층(51.1% vs 32.8%)

진보층(46.5% vs 41.1%)

보수층(42.7% vs 35.6%)

 

바른미래당 지지 (62.2% vs 20.7%)

더불어민주당 지지 (50.8% vs 31.9%)

자유한국당 지지 (41.2% vs 36.1%)


- 반대 우세 : 남성, 학생, 20대, 30대, 호남, 무당층

 

남성(찬성 40.0% vs 반대 44.4%)

 

학생(43.2% vs 49.9%)

20대(40.9% vs 46.5%)

30대(39.7% vs 45.4%)

 

광주·전라도(32.6% vs 46.6%)

 

무당층(33.1% vs 52.3%)


- 찬반 팽팽 : 경기·인천, 40대, 정의당 지지층

 

경기·인천(찬성 43.2% vs 반대 41.2%)

 

40대(42.3% vs 40.9%)

 

정의당 지지층(43.0% vs 40.6%)


 

# 표본이 불균형하고, 질문이 편향된 여론조사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크게 2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 전체 응답자 511명 中 40~60대는 375명인데 10대~30대 136명에 불과

 

리얼미터는 지난 10일, 19세 이상 성인 6,187명에게 조사를 실시해 총 511명의 응답을 받았다. 리얼미터는 이번 여론조사의 응답 목표 인원을 500명으로 잡았다. 응답률은 8.3%.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가 목표치를 넘겼고, 5%대 미만의 응답률을 기록한 조사도 '여론'조사로 보도되는 상황이니 얼핏 보면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응답자 연령 표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이번 여론조사에 19세~29세는 53명, 30대는 83명이 응답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총 136명이 응답한 것이다. 40대는 108명, 50대는 132명, 60대 이상은 135명이 응답했다. 40대부터 60대까지 총 375명이 응답한 것이다. 즉, 전체 응답자 중에 청년층(10대~30대)은 26.6%, 중장년층(40대~60대)은 73.3%다. 

 

성별도 마찬가지. 전체 응답자 중 남성은 343명, 여성은 168명이었다. 남성은 응답 목표 인원 248명을 상회하지만, 여성의 응답 목표 인원은 252명으로 목표 할당 50.4%보다 낮다. (32.9%)

 


결론적으로 이번 조사의 응답자 표본은 골고루 분포되지 않았다. 조사는 2019년 1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으로 성, 연령, 권역별 가중치를 부여해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10대부터 30대까지는 목표할당 비율을 채우지 못했다. 반면에 40대 이상부터는 목표할당 비율을 초과 달성했다.

 

이 조사를 통해 게임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중장년층이 상대적으로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기존의 해석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국민 전체로는 찬성 여론이 다소 우세"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 응답자의 '스키마' 유도하는 질문과 답변 선택지

 

아래는 511명이 실제로 리얼미터에게서 받은 질문과 그 답안이다. 아래 질문지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리얼미터는 아직까지도 실체가 불분명한 '게임 중독' 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질문에 반영하고 있다.

  

 

문3. 오는 20일경에 세계보건기구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찬반이 분분한데요. 선생님께서는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하는 데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택지 1~2번 무작위 배열)

 

01번. 술, 도박, 마약 중독 등과 마찬가지로 질병으로 분류·관리하는 데 찬성한다

02번. 놀이문화에 대한 지나친 규제일 수 있으므로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반대한다

03번. 잘 모르겠다


(1)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

 

자동 음성이 전달되는 질문에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할지'라는 표현이 사용된 순간 응답자에게 '게임 ≒ 중독 → 질병'이라는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게임 중독이라는 질병이 실존한다는 스키마(Schema, 인지심리학에서 특정 대상의 규칙성을 포착하는 지식의 구조를 뜻함)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중독'의 개념 자체는 학계에서 찬·반 양론에 휩싸여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리얼미터는 가치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보는 개념인 '게임 중독'을 사용했다. 

 


 

(2) 술, 도박, 마약 중독 등과 마찬가지로

 

'KTX 일부 노선을 사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찬성하십니까?'

'고속철도의 경쟁체제도입에 찬성하십니까?'

 

이 질문은 사실 같은 뜻으로 프레임을 달리 표현해 어느 한 쪽의 취지에 맞춘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2가지 질문에 대한 시민들의 찬반을 묻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앞 질문에는 반대가, 뒷 질문에는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EBS 다큐프라임​ 2012년 10월 30일 방영분)

 

리얼미터의 이번 질문도 매우 노골적으로 프레이밍 효과를 노리고 있다. 게임 중독을 '술, 도박 마약 중독'과 등치시키면서 마찬가지로 '관리 대상'이라는 스키마를 조성하고 있다. (찬성 답변과 달리 반대 답변에는 관리라는 단어도 빠져있다) 술, 도박, 마약 중독은 응답자의 머릿속에 쉽게 위험이 연상되는 것에 반해, 놀이문화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마땅히 떠오르는 대상이 없다.

 

서베이 조사방법론에서 이러한 질문은 허위반응을 유도하는 불균형한 질문으로 여겨진다.

 

 

# 리얼미터의 아전인수격 '게임 중독' 해석, 이대로 좋은가?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5월 13일, 해당 여론조사를 의뢰한 CBS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번 조사의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표본 집계는 물론, 질문마저 불균형한 조사를 시행한 업체의 대표의 주장에도 납득하기 힘든 지점이 많다.

 

"정치적으로 캐스팅보트인 지역이나 계층이 게임 중독에 대해서 심각하게 느낀다."

→ 해당 조사는 응답자의 구체적인 의견을 묻지 않았다. 또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응답자의 비율 자체가 과잉대표된 가운데, 특정 답변을 선택한 응답자의 수가 많다고 해서 이들이 '심각하게' 느낀다고 보기 어렵다.

 

"무당층. 그러니까 정치에 대해서 좀 관심이 없는 분들. 이분들은 아무래도 게임을 할 가능성이 좀 높겠죠?"

→ '무당층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라는 전제부터 설명하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게임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 역시 전혀 없다. (부실한) 통계를 통해 대표 개인의 주장을 밝힐 뿐이다.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게임을 많이 이용하겠죠. 남성이 반대가 높았습니다. 44.4%가 반대했고요. 남성은 찬성이 40%. 오차범위 내에서 반대 의견이 높았습니다. 반대로 여성은 찬성 의견이 오차 범위를 넘는 수준으로 높았는데요. 찬성 50.1%, 반대 28%. 집에서 남편분들이나 아니면 아들들이 게임에 너무 중독될 만큼 열심히 하는 모습 별로 보기 싫다는 얘기겠죠."

→ 여성보다는 남성이 게임을 많이 이용하는 근거 역시 무엇인가? 개인의 경험칙에 의존해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 업체의 대표가 인터뷰에서 할 말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애초에 이번 여론조사는 정당 지지도와 정부의 국정수행 평가와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정당 지지도와 국정수행 평가를 사회 현안을 종합해서 해석해오던 여론조사 업체가 게임을 이슈로 끌어들이면서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리얼미터는 지금까지 여론조사와 관련해 총 52건의 심의·조치를 받았다. (리서치뷰 7건, 갤럽 5건, 한국리서치 4건) 리얼미터는 WHO의 질병 코드 등재 여부를 1주일 앞두고 특정 입장을 '밀어주는' 듯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오는 20일 전후로 WHO의 ICD-11(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판) 심의로 게임 중독의 질병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게이머와 업계의 냉철하면서도 뜨거운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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