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게임중독 미혼모, 영아 유기’라는 제목의 뉴스가 잇따라 나오면서 인터넷에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제 눈에 가장 크게 띄었던 단어는 ‘게임중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또 게임을 갖고 마녀사냥을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게임중독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강조했고, 일부 매체에서는 ‘전자마약’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했으니까요. 하지만 생각과 달리 현실은 슬펐습니다.
단순하게 보고 넘어갈 정도의, 1~2분 정도의 보도나 단신으로 처리될 정도로 가벼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 사건의 ‘현상’과 ‘원인’이라는 두 가지 시선
이번 사건에서 확실한 사실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인 20대 미혼모가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고, PC방 화장실에서 출산한 후 아이를 죽여서 유기했다는 것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은 PC방에서 출산, 출산 당일까지 게임을 즐겼다는 정도입니다. 이런 사실만으로 뽑은 기사의 제목이 ‘게임중독 미혼모, 영아 낳고 유기’입니다.
얼핏 보면 게임에 빠져서 출산일도 잊고, 결국 아이를 죽이고 유기한 사건으로만 알게 됩니다. 그래서 관련 사건 보도 기사들을 찾아서 정독해 봤습니다. 파고들수록 20대 미혼모의 현실이 더 슬프게 다가오더군요.
아무도 그녀가 왜 그런 생활을 하게 됐는지, 왜 PC방을 전전했는지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사건에만 집중하고, 이를 보도하다 보니,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현실은 짚지 못하고 넘어간 느낌입니다.
굳이 ‘게임 때문이다, 아니다’를 따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핵심은 ‘무관심’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리됐으니까요.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그녀에게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게임중독’이라는 현상을 원인으로 만들면서 계속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사회의 무관심 & 게임 속 친구들의 관심
그녀는 게임에 과몰입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유기했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에 중독된 미혼모가 ‘게임’ 때문에 영아를 유기했다는 결론은 너무 성급합니다. 그녀를 비정하게 만든 원인이 오로지 게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경찰 조사에 따르면 그녀는 고등학교 이후로 혼자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요양원에 있었죠. 그녀가 게임에 빠진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였습니다.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자 PC방과 찜질방을 전전합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현실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게임 속에서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생겼죠. 아이의 아버지도 게임을 통해 만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게임 속에서 남자친구는 그녀를 보살폈지만, 현실에서는 임신을 이유로 헤어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게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녀가 배고프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몇 만 원씩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반면, 현실에서는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임신을 하고도 돈이 없어서 병원진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한 것은 사실입니다. 동시에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준 사람들은 게임 유저들입니다. 자신을 외면한 현실 대신 게임을 도피처로 삼은 것이 그녀의 실수였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지 ‘게임중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자극적인 단어 몇 개만으로 사회의 무관심을 덮어버리는 것은 너무 슬픈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이 과거 ‘게임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일부 사건과는 명백히 다른 이야기라는 겁니다.
■ 비정한 사회의 단면, 슬픈 현실
현실에서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남자친구가 끝까지 그녀를 책임졌다면? PC방이나 찜질방을 전전할 때 주변에서 관심을 가졌다면? 세상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가 전부였습니다. 물론 그녀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진하게 남습니다.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미혼모 시설은 전액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혹은 게임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찾아보지 않았다고 나무라기 전에 주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그녀는 지금 서울 여성보호센터에서 치료감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조사한 경찰 관계자도 아쉬워했습니다. “피의자는 게임을 친구라고 생각할 정도로 중독자였다. 하지만 출산 직후 피 묻은 바지를 입고 배회하던 그녀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관심을 보여준 사람도 없었다. 비정한 사회의 단면을 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A4 한 장도 안 되는 기사로 그녀가 게임중독 때문에 자신이 낳은 아이를 유기한 사실만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게임 때문이다”, “아니다”는 결론을 따지는 모습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여전히 무관심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한 원인 지적과 대안 제시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합니다. 이게 정말 ‘슬픈 현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