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게임예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매력적인 스팀 펑크 세계관, B급 감성 슈터의 최고봉, 모두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이하 기어박스)의 <보더랜드> 시리즈를 부르는 수식어입니다. <보더랜드> 시리즈는 탄탄한 세계관과 루터 슈터로 지난 10년간 4,800만장 이상 판매되기도 했죠. 지난 9월 13일에는 최신작 <보더랜드3>가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보더랜드>가 열정적인 커뮤니티와 팬덤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요? 다양하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세기말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위기가 풍기는 그래픽이 아닐까 합니다. 그 주역 중 한 사람으로는 기어박스의 스캇 캐스터 아트 디렉터가 있습니다.
스캇 캐스터는 2007년부터 12년째 기어박스에서 일하며 <보더랜드> 모든 시리즈에 참여했습니다. 캐릭터를 비롯해 배경, 구조물 등 모두 그와 <보더랜드> 개발진이 이루어낸 결과물입니다. <보더랜드3>가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는 가운데, 스캇 캐스터와 대화를 질답 형식으로 꾸몄습니다.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의 스캇 캐스터 아트 디렉터
디스이즈게임: 반갑습니다. 게임예술관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스캇 캐스터 아트 디렉터: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스캇 캐스터입니다.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의 아트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입니다
항상 시리즈를 접할 때마다 게임의 그래픽에 놀랍니다. 뭐랄까… 연륜도 느껴지는데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요?
그림을 그린 지는 꽤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괴물이나 가지각색의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대전 게임이 흥행하면서 게임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게 되었죠. 특히, 대전 게임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여러 게임이 있겠지만 <스트리트 파이터2>가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죠. 캡콤과 SNK의 대전 게임 아트를 보고 열정을 불사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멋지고 획기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보는 게 일생의 목표가 되었죠. 나중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하고는 더 크게 자극받았습니다. 특히 ‘아키라’와 ‘공각 기동대’는 제 사고방식을 새롭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아트워크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요? 더불어, 아트워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대전 게임과 애니메이션 아트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씀드렸지만, 만화를 통해서도 이 직업을 택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고등학교 때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 기동대’ 1편과 데이비드 W. 맥의 ‘서클 오브 블러드' 6장을 구매하기도 했으니까요.
아트, 스토리, 디자인에서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때문에 만화 업계에 뛰어들기 위해 디자인 스쿨에 진학했죠. 그래서 게임 업계에 들어오기 전에 얼마 동안 만화 업계에서 일했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모두 아주 좋지만, 종이에 인쇄된 2D 그림으로 그런 느낌을 살려낸다는 것은 게임에 비하면 더 난이도가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게 아트워크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스캇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공각기동대
그렇다면, 언제부터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에 합류하게 됐나요? 회사에서 맡은 직책은?
2007년에 입사했으니… 벌써 기어박스에서 12년을 일했네요. <보더랜드> 1, 2의 메인 캐릭터 컨셉 디자이너로 일했었고, <배틀본>의 아트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보더랜드 3>의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습니다.
어떤 과정(계기)로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에 합류하게 됐나요?
하하, 좀 복잡합니다! 제 친구인 Jason Shields와 저는 본업에 종사하면서 여가시간에 턴 기반 쿼터뷰 SF 전략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게임을 더 발전시킬지 고민하던 차에,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해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70개 회사에 뿌렸죠. 닌텐도 DS와 같은 콘솔에 출시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얼마 있어 3개의 회사가 답을 해줬는데, 그중 하나가 기어박스였습니다. 무려, 대표인 랜디 피치포드가 직접 이메일을 보내 만나고 싶다고 했죠! 이후 랜디 피치포드를 만나 하루 종일 얘기를 나눴더니 저희 둘 모두에게 입사를 제안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제안을 받아들여 보더랜드에 참여하게 됐죠. Jason과 저는 아직도 여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GUI 개발을 시작으로 캐릭터 컨셉을 하다가 아트 디렉터가 되었습니다.
'보더랜드3'가 5일만에 5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하겠죠. 이렇게 얻고 있는 반응에 대한 소감을 밝힌다면?
오, 이런. 미칠 듯이 좋죠! 개발자들은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4년 반을 쏟아부은 데 대한 결과가 좋으니 너무 행복합니다! 게이머분들이 즐겁게 플레이해주신다니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보더랜드> IP는 B급 감성을 잘 어필한 게임으로 알려져 있죠. 지금은 B급 감성 요소가 게임의 정체성으로 잘 자리잡았지만, 게임을 처음 기획 하면서, 그리고 시리즈가 판매되면서 이를 유지, 발전시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아트적인 부분에서요.
<보더랜드> 아트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시리즈를 아우르는 정서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계속 게임 월드, 캐릭터, 생물, 전반적 테마, 총기 등을 창조하고 확장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를 단순 추가하는 건 쉽지만, 과거의 의사결정을 고려하면서도 미래지향적 보더랜드 스타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니까요.
게다가, 캐릭터를 비롯해 구조물, 환경 오브젝트 겉에 그려진 검은 선은 물론, 곳곳에 있는 아주 작은 영역까지 모두 손수 그려넣은 것들입니다. <보더랜드>의 아트 스타일은 인력에 매우 의존하는 작업입다. 덕분에 작업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결과물은 독특하고 아주 좋습니다.
스캇 캐스터가 작업한 <보더랜드> 배경 원화 #1.
스캇 캐스터가 작업한 <보더랜드> 배경 원화 #2.
위 특징을 유지 또는 강조하기 위해, 디렉터로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저는 아트 스타일의 뿌리는 유지한 채로 진화시키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B급 감성은 핵심으로 유지하고 말이죠. 저는 삐딱하거나 과장된 공포 영화를 좋아합니다.
저는 항상 B급 정서를 A급 퀄리티로 구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아트적으로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하고 바보 같은 비밀 게임 요소가 넘쳐납니다. 비주얼은 기가 막히지만 "진지하지 않은" 삐딱한 톤으로 마무리 짓죠. 솔직히 이제는 이게 저희에겐 너무 당연하게 다가옵니다(웃음). 저희는 저희가 즐기고 사랑하는 것을 만들어나갈 뿐입니다!
게임 속 캐릭터, NPC와 적들은 다소 평범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이런 특징과 적합한 외형을 만들어냄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저로서는 각 캐릭터에 인격과 고유한 외형을 부여해서 개성을 살려 하나하나 살아있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어떤 캐릭터라도 대수롭지 않은 NPC가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감정적인 인상을 남겨 기억에 남았으면 했습니다.
스캇 캐스터가 작업한 <보더랜드> 배경 원화 #3.
스캇 캐스터가 작업한 <보더랜드> 배경 원화 #4.
(위 질문에 더해) 조금 넓은 범위에서 추가로 질문해보겠습니다. 전체적인 게임 느낌을 위해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나요? 이를 위해 노력한 점이 있다면(에피소드 포함)?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할 때 스튜디오 전체에 일어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소, 적, 캐릭터 등에게서 감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왔습니다. 그러한 감정적 반응을 유발하기 위해 레벨, 시나리오, 아트, 애니메이션, 특수효과, 오디오 등을 두루 사용해야 했죠.
각 행성은 고유 느낌을 내기 위해 각기 다른 사운드 요소와 분위기를 가집니다. 에덴-6의 습지에는 프로메테아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산업 도시적 느낌과 확연히 다릅니다. 심지어는 푯말이나 환경 특수효과조차 다르죠. 이번에는 모든 행성과 생물군계를 대상으로 창의력을 더 광범위하게 발휘해봤습니다.
스캇 캐스터가 작업한 <보더랜드> 배경 원화 #5.
스캇 캐스터가 작업한 <보더랜드> 배경 원화 #6.
'보더랜드' 하면 밴디트 무리 중 '사이코(Psycho)'가 떠오릅니다. 매번 표지로도 등장해 일종의 마스코트가 됐죠. <보더랜드3>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물론 너무 좋죠! 마스코트가 되다시피 한 ‘사이코’는 개발자들 자신과 개발물을 투영한 창조물입니다. 괴상한 개발자들이 말하고 뛰어다니며 사람들이 즐길 법한 것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마스크는 상징적이며 단순하지만, 게임의 느낌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분들이 좋아해 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위 질문에 더해) 사이코 캐릭터의 디자인 탄생 배경이 알고 싶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런 모습이 나오게 됐나요?
솔직히 <보더랜드>의 첫 사이코는 별생각 없이 구성했습니다. 저희는 그냥 멋있어 보여서 디자인했고, 사이코가 시리즈의 얼굴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정말입니다! 한데 사이코가 표지에 실리게 되고 이제는 상징적 존재가 되어버렸죠!
그래서<보더랜드 3>에서는 사이코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했습니다. 여자 사이코도 추가했고, 마스크도 개량하고, 역대 최고로 다양한 변형 및 구성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여자 사이코는 좀 다르게 디자인했는데, 좀 웃기는 얘기지만 코스플레이 커뮤니티에서 본 여자 사이코를 참고해서 시작했습니다. 저희 게임으로 많은 분이 코스플레이를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여자 사이코 디자인을 코스플레이 커뮤니티에서 영감을 얻는 반전 상황이 된 것입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보더랜드' IP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나 스테이지 등 게임 콘텐츠가 있다면? 무기도 포함해서.
저는 볼트 헌터에서 NPC에 이르기까지 제가 만든 캐릭터를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와 제 팀은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거든요! <보더랜드 3>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 ‘배경’입니다. 저희가 게임을 개발한 역사상 최고로 방대하며 다양한 지역을 구현하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게임의 아트워크를 통해, 시리즈를 즐긴 팬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희는 그저 멋지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아트로 여러분을 즐겁게 하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아트와 스타일, 톤의 경우는 독창적인 것을 추구했습니다. 저희가 만들어낸 비주얼에 열광해주시고 시리즈의 스타일로 받아들여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이디어와 아트 스타일 관련해서 타협할 필요 없이 저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캐릭터와 월드로 시리즈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다시 한 번 팬 분들, 코스플레이어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보내주신 팬 아트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팬 아트는 저희에게 큰 힘이 되며, 저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주는 계기입니다. 수년간 성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보더랜드3>에서 행성을 누빌 때 사용되는 이동수단 '생츄어리'
<보더랜드3>에 등장하는 총기 원화 #1.
<보더랜드3>에 등장하는 총기 원화 #2.
<보더랜드3>에 등장하는 총기 원화 #3.
지금까지 가장 애착이 가는 보더랜드 시리즈는 무엇인가요?
<보더랜드 1>는 제가 처음 개발한 게임이라서 개인적으로 소중한 기억입니다. 한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기억이 있던 자리를 <보더랜드 3>이 차지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팀으로 가장 최근에, 가장 힘들게 작업해서인 듯합니다.
<보더랜드 3>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또 한 편을 만들 수 있게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끝으로, '보더랜드' 시리즈를 사랑하는 한국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우선 저희 게임을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정중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고유한 스타일을 창조해내는 건 게임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쏟는 시간의 두 배 이상이 듭니다. 커뮤니티의 플레이어분들께서 저희의 관점을 알아보고 애착을 가져주시기 감사할 따름이죠.
저희는 고유하고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유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트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없이는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