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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위 규모&게이머 1,500만... 스페인 게임 시장은 어떤 곳인가?

[연재] 멜봇 스튜디오 백장미 대표의 스페인 게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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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백장미) 2020-08-14 13:18:05
약 30여 년 전에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인싸’ 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에서 8KB 재믹스 CPC-50 게임기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동생은 한국인이었음에도 현지 또래 아이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당시 현지 콘솔 게임 카세트는 세로 삽입이어서 우리는 새로운 게임을 빌리거나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서는 했던 게임만 주구장창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귀하고 애틋했을지 모른다.

갑자기 왜 옛날 옛적 재믹스 타령이냐고? 세계 어디에서나 비교적 쉽게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게임이다. 음식, 음악, 여행 등 다른 흥미로운 주제도 많지만 게임에는 ‘훅’ 하는 뭔가가 있다. 내게도 ‘훅’ 하고 들어온 게임들이 있다. 내가 살았던 나라, 나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등... 게임을 기억하면 당시 연관되는 추억들이 함께 떠오른다.

내 길지 않은 게임 경험을 떠올리면 그동안 내가 만난 스페인 게임 업체의 사람들과 그들의 게임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왜 이 업계에 풍덩 뛰어들었는지 설명하려면 이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먼저 스페인 게임 시장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하고 싶다.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재믹스 CPC-50A (출처: MSX 위키)

 

# 세계 10위의 스페인 게임 시장, 게임 수도는 마드리드 아닌 바르셀로나


스페인 게임 시장은 현재 세계 10위의 수익 규모를 가지고 있다.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 3위는 일본, 한국이 4위다. 금액 규모로 보면 스페인 게임 시장은 한국보다 2배 가까이 작은데 솔직히 스페인이 탑10 안에 든 것이 놀랍기도 하다.

 

(출처: 뉴주)

 

게임 일을 하면서 스페인 게임 시장과 관련해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스페인에서 게임이 더 큰 산업이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떤 정책과 공공 지원이 필요할까? 게임 문화가 지금보다 더 대중적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스페인의 인터넷 보급률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높은 편이지만 한국 같은 IT 강국과는 아직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스페인에서도 게임이 음악이나 영화보다 3배의 매출을 이루고 있지만, 산업부나 중소기업부, 문화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밀어주는 산업이 아니다. 

5-6년 전부터 스페인, 특히 바르셀로나와 그 주변에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50명~100명 정도의 사무실을 꾸리고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고용해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있다. 최근 들어 스페인에서 글로벌 게임사의 투자 유치에 관심을 보이는 중.

스페인 게임 중심은 마드리드가 아닌 카탈루냐 바르셀로나 부근이다. 스페인 게임업체의 28%가 이 지역에 법인을 설립했고, 나라 전체 수입의 53%가 이 도시에서 발생한다. 유비소프트, 킹, 라이엇, 게임로프트의 지사가 바르셀로나에 있으며 최근 스마일게이트도 AAA급 콘솔 게임 개발을 목표로 바르셀로나 법인을 설립했다.

카탈루냐에만 약 130여 개의 게임 관련 업체가 자리 잡고 있는데, 2018년 기준 이들 회사는 연간 3억 1,800만 유로(한화 약 4,05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스페인 게임 매출의 51.7%, 매출의 72%는 수출에서 발생하고 있다. 역내 게임 개발사 중 약 85%는 창립된 지 채 10년이 안 된 신생 기업이다.

바르셀로나의 Mediatic 창업센터 (출처: Ara.cat/ Raquel Mosull)

 

 

# 전 세계 게임사들은 왜 바르셀로나로 모일까?

전 세계 게임사들은 왜 바르셀로나로 모일까?

바르셀로나는 세계 주재원들을 포함한 모든 재외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다. 나도 바르셀로나에서 13년을 살았다. 우중충한 런던, 친절하지 않은 파리, 지나치게 유기농한 암스테르담보다는 날씨 좋고 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바르셀로나가 최고다.

전문인력 인건비가 오르고, 월세가 오르고, 지역 물가가 오르고 있음에도 IT 업체들이 점점 바르셀로나로 모이고 있다. 드는 돈이 많아져 작은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현상은 아니​지만, 요즘 바르셀로나는 '핫플'이다.​ 캐주얼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공장을 개조한 특이한 건물로 출근한다.

물론 스페인 자생 개발사들도 많이 있다. 한국의 3N처럼 대기업 그룹은 형성되지 않았지만, <인비지몬>의 노바라마(Novarama)는 20년 동안 꾸준히 인디게임의 선두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레전드(Digital Legends)는 게임빌에서 서비스한 FPS <애프터펄스>를 개발했다. 화제의 플랫폼 게임 <그리스>를 개발한 스타트업 노마다 게임즈(Nomada Games)도 스페인 기업이다.

노마다 게임즈의 <그리스>

나도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스페인 게임 업체의 80%가 외부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공공지원과 개인 투자를 합쳐도 20% 미만이다. 그러니 창업한 개발사는 3년을 넘기기 힘들고 5년을 넘긴 개발사도 소규모로 유지되는 추세다. 

지원을 합쳐도 20% 미만이니 창업한 개발사는 3년을 넘기기 힘들고 5년을 넘긴 개발사도 소규모로 유지하는 추세다. 70% 넘는 개발사들이 PC나 콘솔 게임만 개발하니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디자인이라도 출시 못 되는 게임이 수두룩하다.

그렇지만 투자자 눈치 볼 이유가 없으니 개성이 뚜렷하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많은 인디 개발사들이 팔리는 게임을 개발하기보다 본인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것 같다. 즐기면서 일하는 것이 보기는 좋으나, 결과물을 즐길 수 없기에 같은 업종 종사자로서 그리고 유저로서 많이 안타깝다.


# 그래서 스페인 게임 시장은 어떤 곳인가?

나의 짧은 경험으로 스페인의 게임 시장을 이렇다 저렇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특징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1. 콘솔의 전통적 강세, 모바일도 점점 성장 중

스페인 콘솔 시장 규모는 전체 게임 시장의 33%를 차지한다. 특히 6세부터 14세의 54%가 콘솔을 사용한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게임을 좋아하는 가족은 보통 2대의 기기는 장만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스페인 1세대 개발자들은 콘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오직 콘솔게임만 높은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무시 못 할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 자존심이랄까 고집 같은 것을 버리지 못해 무산되는 프로젝트도 가끔 볼 수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 멜봇 스튜디오도 콘솔부터 시작했고 다음 프로젝트도 콘솔이 될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콘솔이 대세

언젠가 국내 N사 임원이 우리 <멜빗 월드>의 모바일판 데모를 본 뒤에 안타까운 눈빛으로 "게임을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냐?" 했던 게 생각난다. 그때 나는 "아, 네... 콘솔 판을 옮겨와서요"라고 태연한 척 대답했다. 아직도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적절한 대답이었는지 아니면 애송이 티를 낸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스페인도 점점 스마트폰/태블릿 시장이 크고 있다. 곧 콘솔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청소년까지 확대되고, 글로벌 마켓에 모바일게임을 내기 쉽기 때문 아닐까?

스페인에는 PC방이 없다. 예전에 '사이버 카페'라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스페인에서 온라인 PC 게임의 비중이 약 15%로 저조한데, 적절한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변두리에는 아직 광케이블도 없다. 스페인의 통신 기업 텔레포니카는 90년대 후반 민영화되어 국가의 통신사업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인프라에 투자해 환경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4천 700만 명이 한국 5배의 땅에서 흩어져 산다.

스페인 지도. 이 넓은 땅에 4천 700만 명이 흩어져 있다.


2. 1,500만 명의 게이머, <피파> 제일 좋아해

스페인 전체 인구의 1/3에 달하는 1,500만 명의 국민들이 게임을 한다. 11~14세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들에서 성별 비율이 동일하다. 거의 비슷한 비율의 게이머 인구를 가지고 있는 것. 스마트폰과 인터넷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스페인에도 중장년 게이머가 급증했다. 이들은 특히 <캔디 크러쉬>나 <포켓몬 고>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는 무엇일까? 당연히 축구 게임이다. <피파 20>은 2019년에 제일 많이 판매된 게임이다. 스페인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나라다. 라 리가 선수들은 게임 광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다. 

<풋볼 매니저> 등 나만의 팀을 구축 할 수 있는 축구 매니지먼트 게임도 인기가 많다. 특히 바르셀로나의 멤버이며 샤키라의 남편이기도 한 헤라르드 피케가 설립한 케라드 게임즈(Kerad Games)의 <골든 매니저>가 꽤 좋은 성과를 이루었다. 1,500만 명이 다운로드했지만 2018년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하스스톤>을 비롯한 TCG 장르도 스페인에서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는 편이다.


4. e스포츠는 미약, 가장 중요한 행사는 '게임랩 콩그레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스페인의 e스포츠는 많이 미흡하다. 글로벌하게 유명한 프로게이머나 팀도 부족한 상황. 작년 가을 롤드컵 4강과 준결승전이 마드리드에서 열렸는데 몇 분 만에 티켓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e스포츠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으로 기억할 만하다.

유럽 지역 LCS 결승전이 열리는 팔라시오 비스탈그레 경기장 (출처: antena3)

 

 

개인적으로 잠깐 관여했던 에피소드 하나를 공유하면, 스페인 M 사는 라리가 축구 중계권을 독점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여러 미디어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다. 몇 년 전에 e스포츠 부서가 설립 되었고 스페인 게임 1세대를 영입해 막강한 팀을 꾸려 스페인 e스포츠용 게임 개발을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꽤 괜찮은 게임이 약 70% 정도 완성되었을 시점인 올해 초에 M 사 경영진이 바뀌었고 e스포츠의 시장성을 이해 못 하는 임원이 개입되면서, 프로젝트가 무산되었고 본인 이름을 걸고 게임을 개발한 내 지인은 현재 게임을 마무리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새 파트너를 발굴 중이다.

스페인에는 아직 지스타 같은 대규모 이벤트가 열리지 않는다. 아직 인지도가 낮지만 마드리드 게임 위크(Madrid Games Week)가 매년 열리고 있다. 2005년부터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게임랩 콩그레스(Gamelab Congress)는 매년 게임 업계 중요 인물들이 참석해 강연이나 질의응답 등을 진행한다. 

지난 6월 말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게임랩 콩그레스에는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장인아 대표가 스피커로 참가했다. 우리 회사의 <멜빗 월드>는 이 행사에서 '베스트 스마트폰 게임'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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