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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덕후론_26] 이집트도 수메르 문명과 같은 방식으로 권력이 등장했어요

비덕이 쉽게 이야기해 주는 덕후 이야기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스카알렛 오하라(scarletOhara) 2022-12-12 11:00:07

 

<원신>과 <우마무스메>가 세계적 인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서브컬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덕후와 덕질을 주제로 보다 많은 이야기가 소통되고, 덕후가 능력자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 저희는 '덕후의 역사'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스카알렛 오하라&디스이즈게임  

 

기원전 5500년 경과 기원전 3900년경 두차례의 강력한 기후변화는 북아프리카의 나일강 유역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어요.


사하라 초원이 사막화되자 사하라의 유목민들이 물을 찾아 동쪽으로 이동해 왔어요. 사하라의 유목민들은 다른 가축들도 길렀지만, 누비아인들에게서 전해져 온 당나귀를 기르고 있었어요. 당나귀는 힘이 세고 체력이 좋아 짐을 나르는데 유용했어요.



 


# 나일강 문명의 시작

 

이 무렵 나일강에는 상류에는 바다리 문화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하류에는 메림데 문화인이 있었어요. 나일강가로 모여든 사람들은 각각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어요. 그 중에서도 지금의 룩소르 북쪽, 나일강의 거대한 곡류 중간의 하안단구에 일궈낸 나카다 문화가 가장 발달했어요. 이곳 나카다 문화권에는 아비도스나 티니스, 나카다, 네켄 등의 큰 마을이 생기고, 이후 도시로 발전해요.


나카다 문화의 주요 도시들 위치. 지도상 Hierakonpolis 가 네켄이다.


수메르 문명은 주변의 첨단 기술, 문화, 소재 들이 우르크 상인들의 네트워킹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했죠. 나카다 문화도 마찬가지였어요. 나카다인들은 누비아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당나귀를 기르기 시작했어요. 수메르인보다도 빨랐어요. 

 

나일강 상류에서는 누비안 유목민인 메제이들과의 교류로 흑요석을 가져와 나일강을 따라 늘어선 농경정착민에게 팔았어요. 무엇보다 나카다 문화가 나일강의 다른 지역들보다 강력해지게 만든 것은 와디 함마마트라는 길이었어요. 나일강과 홍해 사이에는 이트배이 라고도 불리는 험준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요. 그런데 와디 함마마트라는 계곡이 나일강과 홍해를 연결해 주고 있었고, 이 계곡이 나일강과 만나는 곳이 바로 나카다 지역이었어요.

 

나카다인들은 와디 함마마트를 지나 홍해의 항구마을 쿠세이르에 이를 수 있었고, 이곳을 통해 홍해와 아카바 만으로 진출할 수 있었어요. '아카바 만'은 바로 구리산지로 유명한 팀나 계곡으로 이어지죠. 이 루트는 지중해의 중요 교역 항구였던 비블로스와 함께 레반트와 교류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어요.


게다가 동부사막의 풍부한 금, 은 등의 광물자원도 와디 함마마트 를 통해 가져올 수 있었고, 고대 이집트의 가장 중요한 채석장들 역시 와디 함마마트 주변에 위치해 있기도 해요. 우리가 아는 많은 이집트 유적의 거석유적은 이 채석장들에서 캐낸 바위들로 이루어졌죠.



이트배이와 이트배이를 통과하는 와디들, 그리고 고대의 금광 위치. 위에서 두번째 통로가 와디 함마마트.



#문명의 시작과 문화의 융성 그리고 이집트의 탄생

 

나카다인들은 나일강을 따라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누비고 다녔고, 멀리 지중해까지 진출하여 비블로스에도 닿았어요. 비블로스를 통해서는 레반트뿐 아니라 아타톨리아의 구리, 은, 흑요석 등을 가져올 수 있었죠. 바다 너머인 아카바만과 비블로스를 가기 위해 나카다인들은 이집트 문명 최초의 항해를 성공해 냈어요.


그리고 이러한 교류의 원천은 나일강변을 따라 늘어선 농경정착민들에게 얻어내는 농산물이었어요. 이집트의 선주 농경민들은 나카다인들이 가져오는 신문물에 환호했고 기꺼이 농산물을 내주었어요.


나카다 일대의 도시들은 나일강 일대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어요.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처럼 나일강 줄기를 따라 발달하는 모든 문화와 정보가 나카다로 모여들었어요. 나카다2 시기에는 비블로스나 와디 함마마트 등을 통해 멀리 수메르의 문물이 유입되었어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대표적이 귀금속이었던 청금석이 이집트에도 수입이 되었어요. 나카다3 시기에는 수메르인들처럼 문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어요.


나카다 문화권의 3개 큰 도시인 티니스, 나카다, 네켄에는 나일강변의 농경 원주민을 비롯해 나카다인들, 북아프리카 원주민, 서쪽과 남쪽에서 온 누비아인들이 섞여 살았어요. 동부사막의 베자인들도 있었죠. 그리고 무역으로 가까이 지낸 레반트의 셈족들도 왕래했어요.


무역이 흥하자 세 도시는 무역의 주도권을 두고 자주 다투었어요. 메소포타미아에서 라가시와 키시, 그리고 우루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가 티니스가 나카다를 무너뜨리고 상이집트 지역의 패권을 쥐었어요. 와디 함마마트 루트를 장악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티니스는 하이집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나일강 삼각주는 사막 안에서 유일한 평야와 곡창지대를 만들었어요.

 

그 무렵 나일강 삼각주를 중심으로 하는 하이집트 지역은 엘 오마리 문화를 거쳐 마아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어요. 하이집트는 농경 원주민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와 레반트 지역에서 넘어온 유목민들이 각자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어요.


상업교역으로 앞선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던 티니스의 나카다인들에게 하이집트의 농경민과 유목민들은 마치 야만인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을 거에요. 티니스의 지도자 나르메르는 하이집트를 점령하러 내려갔어요. 상류에는 아직 네켄이 건재했지만, 네켄을 견제하면서도 곧 하이집트를 손에 넣었어요. 

 

나르메르는 나일강 상류와 하류를 아우르는 최초의 이집트 왕국을 건설하게 된 것이예요. 나르메르가 건설한 통일왕국을 이집트의 선왕조라고 불러요. 

 

앞서 수메르가 그랬던 것처럼, 이집트 역시 농경 정착민이 살고 있던 곳에 이동에 익숙한 이들이 정착하여 원시적인 거래를 시작으로 무역을 키우며 성장했어요. 그리고 무역으로 주변의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섞여 들어오면서 그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발명해 냈어요.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도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농경민보다 높은 계층을 형성하게 되었어요.


고대 이집트의 계층 피라미드. 권력엘리트 층이 아닌 일반 주민 중에서는 상인들이 가장 높은 계층을 차지하고 있다. 기원 후 대부분의 문명권에서 상인들이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 지를 생각해 보자.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을 권력으로 통합

 

이집트 사회의 엘리트들은 나일강을 따라 들어선 수많은 마을들의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을 하나의 권력 아래로 통합하기 위해 새로운 질서와 규범을 전파해요. 


그것을 개념적으로 Maat(마아)라고 불러요. 이집트가 수많은 민족이 섞여 살고 있었던 태생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천년의 세월동안 분열되지 않고 하나의 왕조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Maat가 수천년에 걸쳐 발전하고 자리잡아 권력을 지탱했기 때문일 것이예요.


위 계층 피라미드의 Scribes, 즉 필경사들은 이집트 내에서 정보를 유통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고대 이집트 사회에 Maat를 전파하고 유지시켰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받았다고 볼 수 있죠. 수메르에서 필경사들이 슈루팍의 지침이나 우루카기나 법을 점토판에 써 전파했던 것과 같은 역할이예요.

 

배와 당나귀를 중심으로 한 상인들의 민족이 국가권력을 발명했던 두 문명을 보았어요. 이번엔 유라시아 대초원을 중심으로 한 기마문화가 어떻게 나머지 두 문명 지역, 인더스와 황하에서 권력을 발명하게 되었는지 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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