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과 올림픽을 유치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세계 만방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함이다. 둘째, 갖춰지지 않은 인프라를 다듬어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할 기회로 삼기 위함이다.
2014년과 2016년, 브라질은 월드컵과 하계 올림픽을 연달아 개최하며 축구 강국으로서의 위용을 선보임과 동시에 강소국 대열에 합류한 브라질 문화 전파를 동시에 해내고자 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없었던 다양한 축구 인프라는 물론, 올림픽 스타를 배출하기 위한 다양한 국가 차원의 육성 전략이 더해졌다.
기대했던 성적을 월드컵에서 거둘 수는 없었지만, 올림픽은 작지만 알차다는 호평을 받았다. 전번 대회에서 22위에 머물던 메달 순위가 13위로 크게 상승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렇다면 <롤>은 어떨까? 증명의 기회, 발돋움의 기회와 같은 고전적인 역할을 <롤>에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MSI 유치를 앞두고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런던에서 <롤> MSI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라며 “MSI는 런던이 국제 e스포츠 허브가 되겠다는 결의를 보여줄 수 있는 환상적인 기회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왜 영국에서 2023 MSI가 열리게 된 걸까? 과연 런던은 e스포츠의 허브로 주목할 만한 도시일까? 영국 전체로 넓혀보면, 영국의 e스포츠는 어디 쯤 와 있을까? MSI를 앞두고 개최국 속 도시, 영국과 런던의 e스포츠를 가볍게 살펴본다.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 성적보다 지속 가능성, 영국 e스포츠 팀 위원회
UKETC
지난 2021년, 영국 e스포츠 팀들은 ‘UKETC(UK ESPORTS TEAM COMMITTEE, 영국 e스포츠 팀 위원회)’를 창설했다. 목적은 뚜렷하다. 팀 중심의 e스포츠 산업 발전과 종목 내 팀의 발언권 향상이다. e스포츠가 태동했던 대한민국의 경우 방송사가 중심이 되어 종목을 발전시켜 왔다. 점차 산업이 커지자 많은 팀이 꾸려졌으며, 협회가 창설됨에 따라 종목 전체의 사회적·문화적 발언권이 확보됐다.
문제는 종목의 인기가 떨어지고 고착화될 때의 방편은 팀과 협회, 방송사가 아닌 게임사가 가진다는 점이었다. 자연스레 <롤> e스포츠의 탄생은 방송사의 주도로 이루어졌지만, 흥미롭게도 현재 전 세계 <롤> e스포츠의 주도권은 라이엇 게임즈와 전 세계 지사의 네트워크가 주도하고 있다. 과거 여러 종목과 달리 <롤> e스포츠의 인기는 정점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팀과 협회의 발언권도 늘어났느냐를 생각하면 고개를 가로젓게 한다. UKETC는 지속 가능한 e스포츠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팀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협회와 독립적인 팀 협의체인 UKETC는 흡사 KeSPA와 e스포츠연맹이 공존하던 모습과 비슷해 보이지만, 게임단의 규모와 자생력을 떠나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협의체의 태동은 국내 e스포츠 산업에 울리는 하나의 경종이기도 하다.
# 공격적인 e스포츠 인프라 투자, 안정과 생존의 기로에서…
(출처: Global Esports Federation)
버밍엄, 코벤트리, 울버햄프턴 등의 도시를 지니고 있는 영국의 웨스트미들랜드 주는 쇠락한 주 경제를 발돋움하기 위한 수단으로 e스포츠를 주저 없이 선택한 영국 내 대표적인 ‘친 e스포츠 도시’라 할 수 있다. 특히 경제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은 지난 40년 간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생존을 위한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에 골몰하고 있던 대표적인 도시였다. 버밍엄의 높은 실업률과 그에 따른 대안의 고민의 결과, 하나의 답으로써 e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찾은 셈이다.
지난 2022년 웨스트미들랜드주는 GEF(Global Esports Federation)와 10년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10년 전략 프레임 워크를 제시했다. 협약 최초 3년 간은 글로벌 e스포츠 투어를 직접 개최하고, 4년 차에는 롤드컵과 같은 대규모 글로벌 e스포츠 대회를 유치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산학 협력과 다양한 포럼 활동을 통해 e스포츠로 발돋움하는 웨스트미들랜드주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주 단위로 성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하는가 하면, 2021년에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대대적인 e스포츠 부트캠프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HOST Esports Studio’가 설립되었다. 작년 6월, 경기도 광명을 찾은 영국 프로게임단 ‘XL(엑셀 e스포츠)’가 광명 경기게임문화센터에서 부트캠프를 차린 것처럼, 영국 내 전문적인 부트캠프 시설을 설립해 전지훈련 수요는 물론, 게임 역량 향상에도 힘쓰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경기게임문화센터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했던 엑셀 e스포츠 (출처: 경기도)
이어 영국 e스포츠 협회는 2022년에 선덜랜드 시에 ‘국립 e스포츠 퍼포먼스 캠퍼스(National Esports Performance Campus)’를 설치계획을 발표하며, e스포츠의 놀라운 잠재력을 자국 내 인재 양성과 개발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영국은 e스포츠를 생존을 위한 먹거리이자, 잠재력이 풍부한 문화산업의 하나로 바라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의 e스포츠 산업이 MSI 개최 도시인 런던과 같은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e스포츠를 낙후된 도시의 활기를 불어넣는 재생의 바람이자, 선수들의 장기적 건강을 고려한 균형 잡힌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해 주기 위함이라 영국 e스포츠 협회는 밝히고 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무게를 두는 것이 영국 e스포츠의 현주소라 볼 수 있다.
# 유럽 e스포츠의 수도를 꿈꾸는 런던, MSI는 시험대가 되는 대회다
그레이터 런던 당국(영국의 최상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런던 앤 파트너스(London & Partners)는 e스포츠를 통해 런던이라는 도시의 위상을 지금보다 더 높게 다져 2024년에는 유럽 e스포츠의 수도를 꿈꾼다는 야심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영국 각지에서 다져지는 e스포츠 인프라들이 런던을 통해 하나로 모이고, 다시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e스포츠 허브 도시’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특히 브렉시트 이후, 환영받지 못하는 유럽 대륙의 외로운 섬나라가 된 영국에게는 여전히 ‘런던’과 같은 대도시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신뢰와 환영을 고루받는 도시임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15년 런던 SSE 웸블리 아레나에서 보여준 롤드컵의 환상적인 결과와 달리, 8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e스포츠의 중심에서 차츰 멀어져 왔던 것이 현재 영국 그리고 런던의 위상이라 할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와 독일은 물론 스페인까지 유럽 e스포츠의 수도라는 타이틀을 두고 치열하게 위상 경쟁을 해왔던 것과 배치되는 결과다.
과연 2023 MSI는 e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영국의 자존심을 세워줄 성대한 대회가 될 수 있을까? 그 뚜껑이 바로 오늘 밤, 첫 선을 보인다.
(출처: 롤 e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