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작년 12월 12일, 라인게임즈가 무려 10개의 모바일 신작을 공개했습니다. 회사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출시할 계획을 밝혔는데요. 많은 타이틀이 관심받았지만 그중 단연 주목받은 타이틀은 <대항해시대 오리진>이 아니었나 합니다. 시리즈 IP 30주년 기념 타이틀이자 많은 인기를 얻은 <대항해시대2>, <대항해시대 외전> 기반으로 모바일에 옮겨낸 MMORPG. 많은 이들이 당시 환호했죠.
특히, 게임은 게임 그래픽뿐 아니라 조안 페레로, 카탈리나와 같은 원작 등장인물을 그대로 옮겨내 평을 얻기도 했는데요, 이를 두고 아트웍을 그린 이가 누군지에 대해 궁금함을 가지는 유저도 제법 많았습니다. 일부는 <삼국지조조전 온라인>의 아트웍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얘기도 했죠.
네, 맞습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한 인물'이 그렸습니다. 그것도 올해까지 5년 차에 접어드는 국내 아티스트가요. 게임미술관에서 오늘 만나볼 인물은 바로 코에이테크모(이하 코에이)와 함께 <대항해시대 오리진>을 공동 개발하는 국내 게임사, 모티프의 경규선 컨셉 아티스트입니다.
모티프 경규선 컨셉 아티스트.
# “나는 원래 그림을 그려야 했던 사람”
경규선 아티스트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생각보다 단순했거든요. 2007년 인덕대학교 만화 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한 이후, 특별한 활동이 없다가 2014년 넥슨에서 <삼국지조조전 온라인> 원화가를 맡았고 이어 2018년 부터 현재까지 모티프에서 <대항해시대 오리진> 컨셉 아티스트를 맡고 있습니다. 두 게임을 통해 뛰어난 원화를 그려낸 것과 비교하면 정말 단순하죠.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얘기를 나누면서 보면 그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숨어있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엄청난 끈기도 포함되어 있고요. 경규선 아티스트는 그림이라는 것이 본인과 ‘동일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떤 분야라는 인식, 좋아하는 작가도 없이 그림 자체와 함께 한 그. 단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나는 원래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쉴새없이 모든 것을 그렸다고 합니다. 아마, 세상에 대한 그만의 표현방식이 아닐까 하네요.
경규선 아티스트 개인 작품.
대학교 때까지, 그림과 함께 한 그였기에 취업 역시 낙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 보니 그렇지 않았답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항상 연필과 샤프펜슬로만 그렸을 뿐 그 밖에 뭔가를 할 줄 아는게 없었던 것이죠. 학원을 다닐까 생각도 했지만 돈도 그렇고 가르쳐 주는 사람의 화풍을 닮을 것 같아 그는 독학을 결심합니다. 무려 ‘약 4년’이라는 시간을요.
그는 바깥의 모든 것과 단절하고 자신의 방에서 포트폴리오에 필요한 도구의 사용법부터 캐릭터의 갑옷이나 옷의 주름을 표현하는 방법, 문양 표현 등 시간표를 짜서 매일 반복하며 묵묵히 기초부터 닦았습니다. 당시 과정에 대해 경규선 아티스트는 “마치 산 속에서 수련을 하는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심적인 고통을 겪으며 잠시 그림을 그만 두는 등 삶 자체의 목적을 잃기도 했지만, 아주 우연한 계기로 넥슨에서 공개 채용을 하는 것을 접하면서 그는 조금씩 세상으로, 게임업계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공채 인턴으로 입사한 이후, 실력과 경력을 쌓아온 이들과 차이는 있었지만 경규선 아티스트는 남들 이상의 노력을 들여 가며 그 공백을 조금씩 메꿔나갔죠.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면서 원화의 퀄리티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수 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놀랍게도 입사 5개월만에 <삼국지조조전 온라인> 메인 원화를 하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경규선 아티스트가 띵소프트에 입사하기 전, 약 4년간 그려온 그림들.
# 신인에게 주어진 꿈 같은 기회, ‘삼국지조조전 온라인’ 포스터 작업
그는 <삼국지조조전 온라인> 당시 포스터를 그린다는 것에 대해 매우 꿈 같은 일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코에이 포스터를 그린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라면서요.
그러나, 꿈 같은 일이 현실이 되자 엄청난 중압감과 압박감이 왔다고 합니다. 엄청난 기회였기에, 잘 해내고 싶었으니까요. 욕심도 있었고. 첫 포스터 작업인데다 그려보지 않았던 사람 이외의 것들도 캔버스에 처음 그려야 했고요. 게다가 검수 과정까지. 입사한 지 얼마 안된 신입에게 주어진 큰 기회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경규선 아티스트는 집에서 옷을 싸와서 한 달간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지스타 게임쇼에도 걸릴 예정이었거든요. 공백을 메꿔야 했던 그에게는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만, 작품 하나에 모든 신경을 쏟은 만큼, 고생을 많이 한 기억이 난다고 밝혔습니다.
다행히, 코에이의 반응은 매우 좋았죠. 이후 2장의 포스터도 추가로 작업했는데, 이는 코에이의 수정 피드백을 전혀 받지 않고 한 번에 통과됐다고 합니다. 많은 유저들이 기억을 해주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경규선 아티스트의 첫 포스터 작업인 <삼국지조조전 온라인> 메인 이미지. 캔버스에서 캐릭터 이외의 것을 구성한 첫 그림이라고 합니다. 지스타 2015 넥슨 부스에서 선보여지기도 했죠.
이후 작업한 위 두 포스터는 코에이로부터 단 한 번의 수정 없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노출됐습니다. 경규선 아티스트를 잘 알리는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 대항해시대2 오리진, "원작 느낌 살리면서 세련되게, 그리고 괴리감이 없도록"
이후 시간이 흘러, 그는 2018년 모티프라는 새 둥지에서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메인 원화를 맡게 됐습니다. 이전 타이틀의 경험이 좋은 계기가 된 것이죠. 게임이 과거 PC 시절과 장르를 비롯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보니 NPC를 비롯해 조선소, 도구점 등 다양한 원화가 추가됐습니다.
그가 모티프에서 <대항해시대 오리진>을 작업하면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입니다. 시리즈에서 가장 인기 있던 <대항해시대2>, <대항해시대 외전>을 소재로 한 만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겠죠.
경규선 아티스트는 최대한 당시 느낌을 가져오되 세련되면서도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때의 그래픽 느낌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지만, 새롭게 옮겨낸 모습을 보면서 게임을 즐겼던 기억이나 느낌이 최대한 살아날 수 있도록 옮겨냈다고 합니다.
<대항해시대2>의 주인공 중 하나인 알 베자스. 우측 상단에 있는 당시 원작 이미지와 비교해도 느낌이 매우 잘 살아 있습니다.
전작의 인물을 <대항해시대 오리진>에 맞게 작업하는 과정.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 그의 첫 작업물은 바로 ‘카탈리나 에란초’ 였습니다. 게임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원화라고 하네요. 본격적으로 코에이의 피드백이 시작되기 전 작업된 것인데 원화에 대한 특별한 수정사항이 없어 바로 반영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작업물이 거의 골반까지 작업했던 것에 비해, 카탈리나 에란초는 무릎 가까이까지 작업됐습니다.
작업에 크게 부담은 없었다고 그는 말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당시 게임을 경험했던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당시 게임의 모습이 잘 반영됐나요?
경규선 아티스트의 <대항해시대 오리진> 첫 작업물, 카탈리나 에란초.
<대항해시대 오리진> 달타냥의 모습.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마슈 로이.
# 일관되게, 항상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아티스트로서, 본인의 작업에 대한 개성이나 철학을 보다 뚜렷하게 강조하고 싶어할 법도 한데, 그는 본인의 그림의 특징이 ‘없는 것 같다. 딱히 의식을 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심지어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작가는 없었다고 하네요.
오히려, 그는 본인의 그림 스타일을 생각하기 보다 ‘일관되게 그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본인의 작업물에 대한 강한 확신이 동반돼야 하죠. 아마도, 누군가를 닮기 보다는 본인의 의식 속에서 표현하는 그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외골수’ 기질도 있어 보이고요.
경규선 아티스트는 작업하는 사람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며,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이 바뀌고, 주변 사람도 바뀌게 되지만 그 속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본인의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야 작업물의 기획 의도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구성원과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입사 후 꾸준히 노력했던 것을 언급하며 많은 원화가 지망생들에게 “너무 먼 곳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 그리고 부족한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열심히,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고 격려를 보냈습니다. 단순한 작업을 하더라도, 구성원 모두가 만나 함께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가는 것이기에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당부도 남겼습니다.
아래는 경규선 아티스트가 그린 <대항해시대 오리진>을 비롯해 여러 개인 작업물입니다. 제법 많으니 천천히 감상하시기를 권합니다. :)
<대항해시대 오리진> 이사벨.
<대항해시대 오리진> 게임 내 출항사.
<대항해시대 오리진> 게임 내 도구점 NPC.
<대항해시대 오리진> 게임 내 도구점 NPC의 얼굴 모습.
<대항해시대 오리진> 게임 내 디오구 파군드스.
<대항해시대 오리진> 게임 내 아프리카 도구점 주인 NPC.
<대항해시대 오리진> 게임 내 후안데라코사.
<대항해시대 오리진> 게임 내 미겔 데 세르반테스.
<대항해시대 오리진> 게임 내 미겔코르트헤알.
경규선 아티스트 개인 작품 #1.
경규선 아티스트 개인 작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