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헬멧을 쓴 한 남성의 뒤로 뭔가 큰 폭발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와이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주인공. 한 손에는 권총, 등 뒤에는 소총을 맨 그를 군인이라고 하기엔 그 옷차림이 '캐주얼'합니다. 풀어헤친 넥타이와 걷어올린 팔소매는 대개 '느슨하다'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 그림에서는 생존을 위한 절실함이 느껴집니다.
김태현 팀장은 지금까지 총 4번의 변화를 겪은 끝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원래는 동화풍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였고, 캐주얼 게임 제작팀에서 귀여운 캐릭터를 그렸다가, 판타지 MMORPG의 원화를 담당한 끝에 <배틀그라운드>에 안착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그가 그린 <배틀그라운드> 키 아트처럼 부단히 살아남았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다른 원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짬짬이 '이솝이야기'같은 동화에 쓰일 일러스트를 그렸습니다.
그는 2005년 "내가 글을 쓸 테니 너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친구의 권유로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웹툰 '모니앤스토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니앤스토리'는 봉제 인형 '모니'와 주인 '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옴니버스 단편으로 당시 단행본으로 출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때 김태현 팀장은 '모니앤스토리' 인형, 티셔츠, 팬시용품 등을 만들어 파는 캐릭터 사업도 벌였습니다.
#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보다 많이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당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동화의 느낌을 지우고 캐주얼 게임에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당시에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보다 그림을 많이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자부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이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작업량이었습니다.
2011년 6월, 그가 지노게임즈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MMORPG <데빌리언>의 캐릭터, 몬스터 2D 콘셉트 아트를 맡았던 김태현 팀장은 그가 처한 난관을 작업량으로 극복했습니다. <펀치몬스터>보다 훨씬 현실적인 비율을 갖춘 <데빌리언>의 원화를 그리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머리 비율을 줄이는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4년 동안 SD 디자인을 그리다가 실사 디자인으로 스타일을 바꿔 작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사에 가까운 비율과 포즈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 그는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습관적으로 누드 크로키를 그렸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습작에 습작을 거듭해 자신의 화풍을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웹툰 작가로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게임 원화 경력도 있었던 그였지만 <데빌리언>의 포스터 이미지에 쓰일 '완벽한 한 장'을 그려내는 것도 그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별다른 정보가 없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초기 단계에서 그는 인물의 특징에 대한 구상을 하기 전에 인물의 동작 스케치를 먼저 그렸습니다.
이것은 그가 웹툰을 그릴 때 러프한 콘티를 먼저 그리던 습관에서 온 것인데요. 그는 "이 과정에서 애니메이터, 이펙터와 캐릭터의 방향성에 대한 협의를 할 수 있어 좋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 헬멧남의 탄생 비화
김태현 팀장은 전통적인 슈팅 게임의 밀리터리 느낌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에서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저녁에는 전장을 누빈다는 설정,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나 '죽음의 카운트다운'에서 볼 법한 양복을 입은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언노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게임의 중요한 방어구인 헬멧을 씌웠습니다.
* '플레이어언노운'은 <배틀그라운드>의 핵심 개발자인 브렌던 그린의 닉네임입니다. 하지만 김태현 팀장은 세계관에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를 골라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 전장으로 들어가서 사투를 벌이는 경험을 연출하기 위한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개념으로 '플레이어언노운'을 사용했습니다. 김 팀장 본인도 '플레이어언노운'이 브렌던 그린의 닉네임인 것을 알고 있지만, 게임의 이름 앞에 7글자가 붙은 이상 다양한 방법으로 쓸 수 있다는 게 김 팀장의 생각입니다.
# 현실적이라면 모든 복장이 가능하다
<배틀그라운드>는 세계관이 꽉 조여진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영화 속 캐릭터를 플레이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이라고 느끼도록 스스로를 자유롭게 꾸밀 수 있게 하는 것이 김 팀장의 의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김태현 팀장을 포함한 캐릭터아트팀은 군사적인 요소가 연상되는 아이템을 게임 안에서 루팅하는 것으로 만들고 코스튬에서는 군사적인 콘셉트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배틀그라운드>는 밀리터리 게임보단 생존 게임에 가깝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입니다.
DC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킨, <언차티드> 스킨 등 다른 IP와 함께 진행하는 콜라보레이션 스킨도 '현실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작업합니다. 원래 IP의 캐릭터성을 <배틀그라운드>에 잘 녹여내면서도 다른 복장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캐릭터아트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 동화 → SD → 판타지 → 배틀그라운드, 그가 4번의 변신에 성공한 비결
한 번 열중해서 크게 실패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해 실패를 빨리한 다음 그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 시도하는 게 더 좋은 결과물을 낳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테마를 설정하고 거기에 자신이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원화를 작업할 때 한 가지 직관적인 코드를 정합니다. 이를테면 '커리어 우먼'이라는 짧고 확실한 코드를 정한 다음, 이 키워드를 논리적으로 해석한다기보단 머릿속에 도장을 찍듯이 이미지를 만들어나갑니다. 이 과정에 최소 50장에서 100장 정도의 이미지를 모아놓고 살펴보면서 자신의 그림을 그립니다.
김 팀장은 원화가 지망생들에게 "3D 모델링에 대한 이해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김태현 팀장은 <배틀그라운드> 캐릭터 디자인을 위해 유튜브를 보며 3D 모델링의 기초를 독학했습니다. 전문적으로 툴을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있으면 협업도 쉬워지고, 자기 작업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원화가가 3D에 대해 알고 있으면 단순히 스펙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작업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라고 김 팀장은 설명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망생들에게 "완전히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려 하기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현실적인 것을 참고하라. 그러면서 자기 색깔을 불어넣는 연습을 하라. 본인이 원치 않는 프로젝트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스타일에 대해 대비하라."라고 조언했습니다. 현실적인 것을 계속 참고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왔던 김 팀장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자세, 펍지 사옥을 나오면서 이러한 자세가 게임 원화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쓸 만한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을 한 번에 모아놓고 보면, 그가 얼마나 '적응력이 강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