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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PD의 뇌피썰(3) '게이머의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니다'

디스이즈게임(디스이즈게임) 2021-08-30 10:46:52

[영상PD의 뇌피썰] 기술이 발전하며 '영화 같은 게임'이라는 표현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게 됐습니다. 또한 게임이 대중화되며 게임 요소를 녹인 영상 콘텐츠도 많이 시도되고 있죠. 게임과 영상은 서로 빠르게 장점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맞아, 게임 속 각종 영상 기법, 비디오 콘텐츠 속 각종 게임 요소, 혹은 게임 영상 그 자체에 대해 다루는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저희 지면엔 '게임'에 무게를 둔 기사가 많았는데, 이번 코너는 (게임을 좋아하는) '현직 영상 PD'가 글을 쓰는 만큼 영상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릴 예정입니다. 재밌게 읽어 주세요.

 

[람자는 누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D&D>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게임 매니아이자 Mnet, Cookat, 라이엇 게임즈 등의 회사에 근무하며 10년째 비디오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숙달된(?) 방송 영상 PD입니다. 'Show me the Money'를 비롯한 각종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K-pop 토크쇼, 그리고 '위클리 매드무비/코멘터리/뉴스피드', 'SNL', 2020·2021년 'LCK 결승전 오프닝쇼' 등의 영상 콘텐츠를 연출하고 제작했습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먼저 떠올려보자. 큰 의미는 없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StockSnap님의 이미지)

 

'철학'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정의를 동반합니다. 아마도 플라톤의 철학 이론 중 하나를 쉽게 풀어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정의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적용된 요즈음의 미디어, 특히 게임은 VR, AR 등의 기술과 결합해 익숙한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환상적인 세계로 재창조합니다.

 

1인칭 시점 게임을 한참 하다가 밖에 나오면 마치 영화 ‘폰부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 몰입과 시야의 상관 관계

 

몰입감이 좋은 1인칭 시점의 RPG를 한참 동안 하다 보면 그 속의 스토리텔링에 매료되어 마치 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FPS 게임을 오랜 시간 하다가 편의점에 방문할 때 건물 옥상에 저격수가 있지 않을까 쳐다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게임 속의 세계는 우리 세계와 닮아 있고 물리적인 원리나 오브젝트의 리액션, 등장인물들과의 상호작용은 그야말로 또 다른 현실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모니터를 통해 '보는' 세계는 바로 가상 현실 속 '나'의 세계!

 

그 중심에 '시각' 요소가 있습니다. '시각'은 게임 속 세계가 우리가 직접 보는 것처럼 보이고, 직접 느끼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게임 속의 풍경이나 인물들은 내가 실제로 보는 것과 같이 화면에 비춰집니다. 

 

특히 1인칭 게임에서는 내 의지대로 마우스를 움직이면 주인공의 시선이 움직이고, 이것은 곧 게이머인 '나'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제공하는 적절한 시각은 물리적으로 적절한 '시야각'과 연관이 있습니다. 

 

 

시야각은 단번에 볼 수 있는 정보의 범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잔뜩 현학적인 뇌피썰을 풀어내다 보니 갑자기 드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과연 게임의 시야각과 실제 내 시야각이 일치하는 걸까? 만약 다르다면 왜 다르게 했을까? 같다면 어떤 시야각을 채택했을까? 등의 궁금증 말입니다. 

 

게임 속 체험이 실제 플레이어가 느끼는 체험처럼 여겨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각적인 요소, '비주얼'(visual)일 것입니다. 언리얼5(Unreal5)엔진을 비롯한 다양한 초 첨단 그래픽 엔진들이 유통되고 있는 지금 질감이나 디테일한 내용은 그야말로 현실을 압도합니다. 그런 와중에 시야각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것은 너무 뜬금없는 일일까요? 

 

촬영 현장에선 카메라 감독과 수시로 렌즈 종류나 화각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선택을 해야 한다. (출처 : Canon 홈페이지)

 

 

# 게임 속 시야각은 현실의 시야각과 다르다

 

저는 영상 제작을 업으로 하는 입장에서 시야각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곤 합니다. 2D인 영상 스크린에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다양한 화각의 카메라 렌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어떤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계산된 연출이 가능하다면 시야각이 좁은 렌즈를 통해 집중도를 높이고, 전반적인 분위기나 실시간의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장면을 넓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광각이나 어안렌즈를 사용해 달라고 카메라 감독님에게 요청합니다. 드라마타이즈나 대본이 잘 짜여진 콩트를 찍을 때는 시야각이 좁은 렌즈군를, 리얼리티 예능물을 제작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광각 렌즈와 카메라가 CCTV처럼 배치되기도 합니다.

 

이런 직업적인 고려는 결국 게임 속 시야각에 대한 궁금증과 연결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카메라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서 보이는 범위가 다르다. (이미지 출처:  colesclassroom.com )

 

영상이나 카메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50mm 렌즈가 사람의 시야각과 가장 유사해서 기본 렌즈에 속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관련 연구에서 참고해본 바, 50mm정도 렌즈의 화각은 약 45~50도 전후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실제 시야각 및 ‘그렇다고 알려진' 시야각은 약 45~50도 정도라고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울펜슈타인 3D>의 리메이크 버전을 만들 때에도 시야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1인칭 게임의 시야각은 실제로 사람의 시야각을 흉내 낸 것일까요? 

 

가장 초창기의 3D FPS 게임으로 알려진 <울펜슈타인 3D>의 화면을 먼저 참고해 보면 실제 사람의 눈, 45~50도 정도의 시야각보다 훨씬 넓은 화각으로 보입니다. Reddit 커뮤니티 검색을 통해 찾은 <울펜슈타인 3D>의 시야각은 약 72도 정도 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보던 시야각의 거의 1.5배가량 넓은 수치로 보이는데요. 

 

어떤 연유에서 이런 수치를 정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수많은 게임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고민 끝에 정해진, 거의 최초의 FPS 게임이라고 불리는 <울펜슈타인 3D>의 시야각 70도가량의 수치는 이후 FPS 게임들 업계의 표준이 되었을까요?

 

더 넓은 시야각을 적용해 더 많은 적들을 핵앤슬래시 할 수 있도록 한 게임 <둠>

 

그 후에 나온 FPS 게임 <둠>을 살펴보면 되는 거죠. <둠>은 특이하게도 <울펜슈타인 3D>가 사용했던 72도가 아니라 '90도'의 시야각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후 작품인 '퀘이크' 시리즈까지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는데요. 

 

90도의 시야각은 사실상 카메라 렌즈로 따지면 광각에 속하는 왜곡된 시야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카메라 렌즈로 환산한다면 일반적인 광각렌즈는 초점거리(Focal length) 35mm 이하의 렌즈군을 의미하는데, 초점거리 24~35mm 정도의 렌즈가 시야각으로 약 64도~84도를 커버한다고 합니다. 

 

헌데 게임 <둠>에서의 시야각 90도는 이를 넘어서는 각도이니 거의 어안렌즈(Fisheye lenses)에 가까운 것을 사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실제 사람의 시야각과 유사하게 디자인해, 어쩐지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던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 기획 의도와 시야각의 상관 관계?

 

비교적 최근 게임의 시야각을 한번 살펴볼까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는 기본 시야각은 65도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역시 <둠>과 <퀘이크>의 90도가 업계 표준이 아니었군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의 시야각은 앞서 파악해 두었던 사람의 시야각(50도 내외)과 더 가까운 시야각을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인간의 고뇌를 드라마로 잘 표현하려는 제작 의도를 시야각으로까지 담은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가설을 세워볼까요? 목적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이 아닌, 또 다른 기획의도의 게임이라면 기본 시야각이 다르지  않을까요?

 

하지만 <콜 오브 듀티: 워존>은 기획 자체가 다르다.

 

동명의 시리즈 중 <콜 오브 듀티: 워존>은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경쟁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드라마와 내러티브에 대한 몰입보다는, e스포츠를 의식한 플레이어 간의 배틀로얄이 핵심 포인트이기 때문에 더 넓은 기본 시야각을 가지고 있었네요. 

 

이 게임 <콜 오브 듀티: 워존>에서 제공하고 있는 기본 시야각은 80도라고 합니다.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2>의 65도보다 더 넓게 상황을 파악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오버워치>의 시야각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만큼 좁았다면 엄청난 난이도의 게임이 되었을 지도….

 

더 정신없고 파괴적인 전장에서 상대를 쓰러트리고 많은 정보 획득을 순간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오버워치>의 기본 시야각은 약 100도가량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게임의 기획과 몰입에 대한 종류가 달라지면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시야각이 변화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은 VR 버전으로도 나와 있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더불어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스토리라인과 드라마 몰입에 방점이 있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가 가지는 기본 시야각 65도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대작 RPG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의 기본 시야각과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는 사실상 RPG처럼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나간 걸까요? (ㅎㅎ)

 

<몬스터 헌터: 월드>같은 MORPG 혹은 액션RPG는 3인칭을 기본 제공하기 때문에 같은 화각이라도 1인칭 시점에 비해 정보량에서 이득을 본다.

 

3인칭 백뷰 시점의 MMORPG나 MORPG는 어떨까요? 아마도 굉장히 넓은 기본 시야각을 제공하지 않을까 예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MORPG인 <몬스터 헌터: 월드>의 경우에는 커뮤니티에 따르면 약 90도의 기본 시야각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엄청 넓지는 않군요. 

 

하지만 이러한 MORPG 게임들의 경우에는 주인공 캐릭터의 시각 그 자체로 보는 1인칭 시점이 아니고, 조금 떨어져 주인공의 뒤통수에서 조망하는 3인칭 시점을 제공합니다. 때문에 엄청나게 넓은 시야각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1인칭 게임보다는 월등하게 많은 정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됩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도 울트라 와이드 모니터를 통하면 더 넓은 시야각으로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Sam Toshi YouTube)

 

게임 속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시야각은 사실 기본 세팅이 그러하다는 것이지, 모니터의 크기나 내부에서 조절 가능한 값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많은 1인칭 시점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 값을 조절해서 자신과 모니터의 거리, VR 기기 혹은 자신의 에이밍 스킬에 따라 이상적인 값으로 조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자신의 실제 시야각인 45도에 가깝게 맞춘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보통은 한눈에 더 많은 정보를 조망할 수 있도록 더 높은 시야각을 세팅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저들의 FPS 게임 화면은 특별한 의도가 있지 않는 이상 광각렌즈 혹은 어안렌즈에 해당하는 시야각을 지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미디어, 그리고 현실의 인상을 좌우하는 시야각

 

몇 년 전, 마치 FPS 게임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온 것과 같은 느낌의 영화가 발표가 되어 화제가 되었던 건이 떠오르네요. 영화 이름은 '하드코어 헨리' 입니다. 시종일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어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영화입니다. 

 

실제 촬영을 GoPro Hero 3을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카메라의 스펙을 참고하면, 16:9 화면을 기준으로 와이드 모드로 촬영했을 때 118.2도의 화각을 제공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주변부가 둥글게 왜곡되어 보이는 어안렌즈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FPS 게임에서 제공하는 시야각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을 적절하게 영상으로 잘 표현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될 것 같네요.

 

영화 '하드코어 헨리'는 영화의 내용보다 기획의도와 게임성(?)으로 더 큰 이슈가 되었다.

 

2013년 출시되어 롱런하고 있는 오픈월드 액션 게임 <GTA5>의 기본 시야각은 약 90~100도가량이라고 합니다. 역시 광각에 해당하는 부분인데요. 

 

출시 당시 패러디로 굉장히 인기 있었던 tvN 방송국의 SNL 프로그램에서 콩트로 방영했던 GTA 패러디 영상 떠오르세요? 

 

저는 당시 이 영상을 볼 때 정말 게임을 잘 패러디하고 흉내 냈구나 하면서 감탄하며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에서도 게임에 해당하는 장면은 별도로 주변부 왜곡이 심한 광각렌즈를 이용해서 촬영을 해 표현을 했다는 것 금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인칭 게임을 SNL의 GTA처럼 패러디할 목적의 영상이라면 꼭 광각 렌즈를 준비해둬야 하겠네요.

 

시야각, 시각, 화각 등은 패러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실제 우리 눈을 통해 보는 시야각보다 더 넓은 시야각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오랜 시간 받아들이는 우리 게이머들에게는 실제 눈이 펼쳐내는 50도 남짓의 '현실 속' 시야각은 좀 아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임에서는 기본적으로 100도 이상의 시야각을 제공하고, 원한다면 더 많이 늘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게이머들은 그런 상태로 몇 시간, 혹은 십 수 시간을 플레이합니다. 

 

게임을 벗어나면 약간 어지러운 느낌이 있나요? 아마도 강화 시야각에서 너프된 후유증이 아닐까 싶네요.

 

아이언맨에 탑승하면 실제 눈보다 더 광각의 시야각을 제공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그래서 아마도 멋진 광경이나 멋진 장면, 기억할만한 장소에 가면 실제 우리의 눈을 통한 50도 시야각이 아닌, 최소 100도가 넘는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서 보기를 선호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버워치>에서는 토르비욘이 설치한 포탑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파라의 궁극기를 눈으로 확인해 피하는 기염을 토했고, <엘더스크롤: 스카이림>에서는 숨겨진 길을 찾으면서 동시에 드로우거의 양손검을 동체시력을 사용해 피하던, 가상 현실에서 증강되었던 우리의 시각을 그리워하면서 말이죠. 

 

감동적인 순간을 휴대폰을 통해 보는 것은 사실 강화된 시야각으로 더 많은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이다!! 라고 생각해보자. (이미지 출처 : Pixabay, Fredrik Solli Wandem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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