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를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면이 자주 나옵니다. 무지(無知)에서 오는 공포를 위해서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때 인간의 뇌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끊임없이 구상하고, 직접 보거나 만져서 확인할 때까지 상상을 멈추지 않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에도 공포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요소가 있죠. 바로 ‘시야'입니다. 특히 게임 초반부 정글러와 서포터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다른 라이너에게 심리적인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대회의 사례를 통해 움직임을 감추는 것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솔로 랭크에선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주보국 필자(Amitis),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아무도 없을까?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 최강팀 vs 최강팀, 젠지와 T1의 경기로 알아보는 시야의 중요성
지난 7월 30일 진행된 T1과 젠지의 경기는 운영의 기본이 ‘시야’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유의미한 장면들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귀환 연기를 통해 젠지의 바텀 듀오를 함정에 빠뜨린 T1 (출처: LCK)
이 장면은 티원이 젠지 바텀 듀오를 상대로 귀환 심리전을 걸었던 장면입니다. 귀환을 먼저 하면 아이템을 구매하고 상대보다 먼저 라인에 복귀해 라인을 지운 후 다른 움직임을 가져갈 턴(Turn)을 얻게 되죠.
프로 레벨에선 작은 움직임 하나가 큰 눈덩이로 커집니다. 그렇기에 먼저 집을 보내서 턴을 내준다면 어떤 손해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먼저 집을 다녀오더라도 상대가 라인을 지우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라인을 먼저 클리어하려 노력합니다.
티원의 바텀 듀오는 라인을 지우고 젠지의 바텀 듀오가 모르게 부시 안으로 숨었습니다. 젠지 입장에선 먼저 라인을 지운 쪽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귀환을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래서 후속 라인을 먼저 밀어 상대 바텀이 다시 라인에 복귀하더라도 관리하기 어렵도록 귀환 전 턴을 한 번 더 사용하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먼저 모습을 감췄던 티원 바텀이 ‘페이커' 이상혁 선수의 트위스티드 페이트와 타이밍을 맞춰 합류해 교전을 열고 젠지에게 손해를 입힙니다.
기습과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합류로 이득을 얻어 오는 T1 (출처: LCK)
이 장면이 있기 전 페이커의 트위스티드 페이트도 라인에서 모습을 먼저 감췄던 것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핵심은 시야를 감춘 쪽이 주도적으로 움직여 득점했다는 것이죠.
다른 장면도 살펴볼까요?
강가 부시에 와드가 박힌 정보를 파악한 피넛은
점멸을 활용해 드래곤 둥지 뒤쪽으로 돌아서 갱킹을 시도해 성공시켰다 (출처: LCK)
라인을 밀고 있는 티원의 바텀 듀오는 멀리서 돌아오는 상대방의 갱킹이 아니면 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강가로 바로 내려오는 적을 봤다면 반응해서 뒤로 빠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수 싸움을 읽은 피넛은 들고 있던 점멸을 활용해 어두운 삼거리 부시로 들어가 갱킹을 성공시켰죠.
같은 위치에서 시야에 보이는지 실험해본 결과, 점멸을 쓰지 않았다면 보였을 피넛
프로 경기에서 ‘턴을 쓴다'는 것은 투자를 의미합니다. 즉 투자한 양보다 큰 이득을 벌어야 게임을 원하는 대로 굴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 피넛은 점멸을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든 점멸을 소모시키고 킬까지 얻었죠. 이 과정에서 모습을 감췄던 것은 투자가 성공할 확률을 높여줬습니다.
그렇다면 시야를 통해 보는 이득은 갱킹이나 기습 공격의 성공에만 영향이 있을까요?
(출처: LCK)
시야 지우기와 챔피언 감추기는 상대방을 압박하는 데도 사용됩니다. 미니언이 많이 뭉친 빅 웨이브 때 타워 다이브를 설계하거나, 시야를 지우고 로밍을 갈 수 있는 챔피언의 위치를 감춤으로써 웨이브를 받아야 하는 라인을 압박하는 식이죠. 킬을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타워에 고스란히 미니언을 모두 잃게 만든다면, 킬에 상응하는 경험치와 골드 손해를 입힐 수 있으니까요.
# 시야를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행동 방침
대회를 통해 시야가 중요한 것을 알았으니, 이제 실전에 적용해 봅시다.
하지만 대회와 같은 정교한 움직임은 솔로 랭크 환경에선 어렵습니다. 모두가 처음 보는 사이고, 알고 있는 사이라 해도 합을 맞춰본 경험이 적다면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난잡한 환경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준비했습니다.
1. (탑/바텀) 일방적인 구도가 예상될 때 활용하는 와드
탑 라인에 베인과 말파이트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서로의 실력이 비슷하다면 평타 사거리가 긴 베인이 팔이 짧은 말파이트를 상대로 일방적인 견제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파이트는 먹을 수 있는 미니언을 최대한 먹고, 버릴 미니언은 버려가며 버텨야 하죠.
이런 상황에서 베인의 일방적인 견제를 방해할 수 있는 와드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바로 가운데 부시에 와드를 설치하는 겁니다. 상대방을 공격하면 미니언의 어그로가 챔피언으로 변경됩니다. 어그로가 바뀐 미니언은 일정 사거리에서 벗어나거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챔피언을 쫓아가죠. 그렇기에 평타 견제형 챔피언은 상대방을 공격한 후, 부시로 들어가 어그로를 초기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부시에 미리 와드를 박는다면 어그로를 초기화 시킬 공간을 없앨 수 있죠. 부시를 통해 어그로를 초기화 시키기 어렵다면 견제형 챔피언이라도 미니언에게 맞고 오히려 체력이 비슷하게 빠지는 상황이 나올 수 있습니다.
미니언 어그로를 관리하기 좋은 가운데 부시에 와드를 설치해 미니언 어그로를 쉽게 끊기지 못하게 하는 전략
2. 와드는 상대가 모르는 위치에 박아야 효과가 있습니다
와드는 좋은 위치에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설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빤히 쳐다보는 상황에서 와드를 설치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3. (미드) 라인을 먼저 지우고 사라지는 상대를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와드
라인 클리어가 초반부터 매우 빠른 챔피언이나 기동력이 뛰어난 챔피언들을 상대하는 미드 라이너에게 미아 핑을 보내는 것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와드가 있습니다. 바로 라인 가운데 와드입니다.
대개 와드는 상대 챔피언이 어느 쪽으로 로밍을 자주 가는지 파악해 해당 방향에 설치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와드는 한 쪽 방향의 수비만 신경쓰기 때문에 와드가 박힌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움직임에 매우 취약하죠.
그렇기에 상대가 먼저 라인을 지우고 어디로 움직이는지 파악하기 위해 설치하는 라인 가운데 와드는 모습을 감춘 상대방이 사이드 라인 모두에 압박을 주는 것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블루 진영에서 레드팀 로밍을 파악할 수 있는 와드
레드팀 입장에서 블루팀의 로밍 억제 와드, 숨어서 귀환하는 것 까진 파악할 수 없다
4. 뻔한 위치라면, 위치를 변경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비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와드가 설치될 위치는 강에 있는 점 부시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점 부시의 시야를 획득한다면 많은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우리는 생각을 바꿔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와드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말이죠. 오브젝트 둥지를 예를 들면 꼭 둥지 안쪽에 설치해야만 상대방이 오브젝트를 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둥지 바깥에 설치해 오브젝트를 때리는 모습만 볼 수 있다면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상대의 트라이를 짐작만 해도 괜찮을 땐 밖에 와드를 설치해 보자
5. 벽을 타고 움직이는 습관은 은신에 좋습니다
협곡의 지형지물은 생각만큼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합니다. 그래서 보일 법한 위치라도 안 보이게 지나갈 수 있는 경우가 많죠. 프로 경기에서 정글러들이 벽을 타고 움직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령 내셔 남작 강가 바위게의 경우 벽을 타고 움직이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구간이 있습니다.
챔피언 4개가 숨어있는 빨간색 박스. 바위게 시야로 보이지 않는다
와드로 보고 있으니 안전할까?
벽을 타고 오는 상대에게 취약해 오히려 방심할 수 있는 와드
차라리 확실하게 레드 진영 쪽으로 기울여서 설치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