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컴퓨터’ 시리즈는 국내/외 IT 업계 인사들의 컴퓨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의 윤태진 교수입니다.
사실 저에게 기억이 나는 컴퓨터는 두 개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1984~85년경으로 기억하는데 IBM XT 호환 기종을 처음 썼습니다.
제가 산 게 아니고 당시 지도 교수님께서 본인은 잘 몰라도 가장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분이에요. 세운상가에서 조립한 XT 호환 기종을 가져와서 네가 젊으니까 한번 해봐라 하셔서 컴퓨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986년도에 유학을 갔는데 잠깐 컴퓨터를 써본 게 저에게는 어마어마한 이익이 됐습니다. 왜냐하면 1986년만 해도 대학원생들 중에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고작해야 워드프로세서나 워드퍼펙트 하나 사용할 때인데 그때 다른 유학생이나 미국 학생들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컴퓨터를 썼고요.
최초의 컴퓨터가 두 개나 마찬가지라고 말씀을 드린 이유는 제가 박사 과정을 가서 처음 매킨토시를 접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조교를 맡은 곳이 매킨토시 그래픽 룸이었어요.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컴퓨터가 있었고 거기서 학생들이 포스터를 만들거나 잡지를 편집하거나 이런 일을 했죠.
공학도적인 기질은 전혀 없던 사람이었는데 컴퓨터를 접하고 배운 다음부터 두 가지 특성을 새로 발견한 것 같아요. 발견이라기보다 익힌 거겠죠. 하나는 내 안에 굉장히 다양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초기에 유학생 사회에서 잘 모르면 ‘태진이에게 물어봐’ 이런 게 형성되면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또 창의력은 꽝이었지만 매킨토시로 이것저것 디자인을 해보면서 어떤 그림을 똑같이 그려보거나 예쁜 잡지 포스터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나마 내가 예쁘게 한번 만들어보고 흉내내 보면서 나에게도 이런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끄집어내 준 부분이 컴퓨터가 저에게 해준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고요.
저는 컴퓨터라는 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많은 변화를 겪어오면서 지금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하나의 소통 수단이라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반대로 얘기하죠. 커다란 컴퓨터가 조그마한 스마트폰으로 들어왔고 그러면서 이제는 스마트폰이 컴퓨터가 된 거라고 얘기를 하는데 생각해 보면 컴퓨터가 전화기가 됐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는 주로 소통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쓰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것을 입력하더라도 클라우드에 가기도 하고 이메일로 누구에게 보내주기도 하고 컴퓨터에 남아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요새 넷플릭스나 왓챠를 볼 때 컴퓨터로 많이 본다고 하지만 그게 컴퓨터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같이 소통을 하는 소셜 워칭 같은 걸 합니다.
결국 컴퓨터는 도구로서 다른 많은 사람들 그리고 환경들 심지어 다른 기계들과 소통을 하게 하는 장치가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동키콩 3>(1983) <동키콩 클래식>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아케이드로 처음 출시되었다. 이전 시리즈와 달리 퍼즐성을 줄이고 액션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제가 했던 게 <동키콩 3>쯤 될 거예요. 당시에는 전자 오락실이라고 했었죠. 유학 직전에 학교 앞 아케이드에서 많이 했던 게임이었어요. 1986년도에 유학을 갔더니 영어도 못하고 친구도 없는데 미국 대학 학생회관 안에 아케이드가 있었어요. 거기에 <동키콩>이 있는 거예요.
한국에 있을 때 아주 잘했던 건 아닌데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 해소할 게 게임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하다 보니까 금방 실력이 늘어서 아케이드에 오는 사람 중에 제일 잘했던 것 같아요. 약간 과장 섞어서 얘기하면 제가 아케이드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길을 비켜줬어요.
그 다음에 뭐가 나오는지 알아야 잘 할 수 있으니까 저에게 빨리 해보라고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잘하면 25센트 하나 넣고도 굉장히 오래 즐길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처음 미국 가서 고생할 때 자신감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미국이라는 세계에 처음 갔을 때 나를 지탱해준 게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 중독이라고 불리는 많은 현상들이 병이 아닌 증상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어린이가 게임만 한다는 것은 원인이 있는 결과라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은 당연히 증상의 원인을 찾아야 되는데 단순하게 대응합니다.
특히 당장 현장을 목격하면서 답답하고 화가 나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게임기나 스마트폰을 갖다 버리면 이 증상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그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게임 중독이라고 부르는 현상에 대해서 중독은 의학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데요.
중독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들이 ADHD와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ADHD에 관한 이야기이고 게임기가 혹은 게임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낸 증상은 아니라는 거거든요.
하나만 더 보태면요. 점점 그런 생각들을 가지는 분들이 늘어나지만 이제 게임은 게임으로서 독립성이 없는 것 같아요. 무슨 얘기냐면 아이가 게임 중독이라고 해서 가보면 사실은 스마트폰 중독이에요. 아니면 어른들은 유튜브 중독이면서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기도 하죠.
지금은 디지털 미디어 자체가 통합되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하기도 하고 게임기로 통신을 하기도 합니다. 게임을 통해서 사람을 사귀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특정 지어서 중독이나 빠져나와야 하는 병으로 여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는 얘기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게임과 통신과 여가와 커뮤니케이션, 모든 게 구별이 거의 없어지는 시대라는 거를 일단 인정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얘기를 제일 해주고 싶습니다. 유학을 떠나는 졸업생들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가서 제발 공부만 하지 마라. 가서 공부 열심히 해서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아오면 나는 굉장히 실망할 거다.
왜냐하면 우리가 연구를 하는 게 문화이고 사회과학이고 사람들인데 어떻게 도서실에 앉아서 책만 보고 박사를 받을 수 있냐? 방학 때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여러 나라 사람들도 많이 사귀고 경험하고 일도 해보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거를 똑같이 청소년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좋은 게임을 기획하고 만들고 싶다면 심지어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린다고 좋은 캐릭터를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여행도 다녀보고 클럽에 가서 놀기도 하지만 스터디 그룹 가서 사람들하고 책도 읽을 수 있겠죠.
나이 드신 어른들하고 진지하게 얘기도 해보고 스포츠도 해보고 이런 경험들이 쌓여야 좋은 게임을 만들고 그런 친구들이 또 게임 회사에 들어가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박물관이 너무 잘하고 있는 것 같고요. 저는 박물관 구경하면서 기분이 좋았고 점점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규모도 더 커지고 미래 지향적인 여러 가지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생기면서 지금의 방향성이나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되 더 잘 돼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배워가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게 유일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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