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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한잔] 선택과 대가...절망의 세계 안에서 희망을 찾다

버프스튜디오 김도형 대표, 신작 '레일블레이저'로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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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4-09-02 18:39:30

"현직에 계신 분들도 기자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취재를 하다 보면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매일매일 이슈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잠시 차 한 잔, 술 한 잔 기울이며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멋진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 뜨거운 현안들로 담소를 나눠보는 코너 '인디 한 잔'입니다.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죠. 세상에 사실은 꽃길 아닌 가시밭길이 더 많아서 이런 표현이 흔히 쓰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기후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더위가 기승이었지만, 엔데믹 이후 이어진 게임 업계의 한파는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고, 그 여파는 국내 게임 씬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습니다. 세상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해야 기회도 찾아오곤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버프스튜디오'는 이런 맥락에 딱 맞는 개발사입니다. 버프스튜디오는 <용사는 진행중>, <마이 오아시스>와 같은 게임부터, <세븐데이즈>, <언더월드 오피스> 같은 스토리 게임, 재즈를 소재로 한 게임 <블루 웬즈데이>까지 9년의 시간 동안 정말 다양한 게임을 선보였습니다. 모든 순간이 순탄했던 건 아니기에, 지금까지 선보인 게임과는 다른 색다른 신작으로 새로운 희망을 쥐어보려 합니다.


거대한 폭풍 때문에 인류가 멸망한 세계 속에서 인류 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열차에 오른다. 버프스튜디오의 신작 <레일블레이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위기 속에서도 결국 희망을 찾아낸다-는 측면에서 신작과 버프스튜디오는 뭔가 닮아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 희망은 불분명한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김도형 대표와의 만남에서 느낀 '지난 시간에 대해 명확한 인지하고 있다'는 인상은, 새로운 도전이 나아갈 굳건한 레일처럼 다가오기도 했으니까요.


버프스튜디오에 방문해 김도형 대표를 만나고 왔습니다.

# 9년의 시간이 남기고 간 교훈들

어린 시절부터 게임 개발을 하는 게 꿈이었다는 김도형 대표는, 1998년부터 게임 업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기획이 더 맞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엔씨소프트, 위메이드 등 여러 기업을 거쳐왔습니다. 최초의 꿈이었던 '게임 개발자'는 되었으니, 그 다음 목표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회사를 오래 다닌 경험에서 좋은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자연스레 생겼다고 하죠.


2014년 1인 개발로 시작한 그의 4번째 게임 <용사는 진행중>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다음 해인 2015년 버프스튜디오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마이 오아시스>와 같은 힐링 방치형 게임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세븐데이즈>, <아르고의 선택>, <찰리 인 언더월드>, <히어로 아닙니다>, <하우 투 겟 에스퍼> 등 다수의 스토리 게임으로 확고한 팬층을 보유한 회사로 거듭났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스토리 게임을 많이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회사의 모든 인원을 투입했던 프로젝트보다 플랜B였던 <마이 오아시스>가 잘 됐던 경험 이후, 소규모 팀 단위로 창작자들의 개성을 존중하며 시작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세븐데이즈>였습니다. <세븐데이즈>가 700만, <언더월드 오피스>가 5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면서 여러 게임들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죠.


기자 또한 버프스튜디오의 스토리 게임을 좋아한 게이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추억의 한 페이지엔 캐주얼한 소재 안에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다룬 당시의 게임들이 있습니다.


<용사는 진행중>



▲ <세븐데이즈>



▲ <언더월드 오피스>


큰 사랑을 받은 스토리 게임이 많았지만, 수익적인 측면에서 매번 좋은 성과를 안겨준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텍스트 양이 많다 보니 글로벌 출시 과정에서 번역비도 적잖게 들어가고, BM적으로도 다른 장르에 비해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게 김도형 대표의 설명이었습니다.


인상적인 점은 익숙함에 머무르지 않고, 회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활로 탐색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바일게임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아 본 버프스튜디오는, 최근 1~2년 사이 도전 분야를 PC/콘솔 시장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바일과 PC/콘솔 비중을 50 대 50 정도로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최근 본지에서 꾸준히 소개해드리고 있는 '모바일 엑소더스' 현상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 속에 출시된 작품이 재즈를 소재로 한 <블루 웬즈데이>였습니다. 스팀에서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게임으로, <세븐데이즈 오리진> 이후 버프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스팀 시장에 도전한 작품이죠. 특유의 비주얼과 음악적인 디테일, 예술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녹여낸 심리 묘사로 호평을 받은 게임입니다. 



▲ <블루 웬즈데이>


김도형 대표는 <블루 웬즈데이>에서 경험한 바를 언급하며 "스팀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더 필요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자체 퍼블리싱을 하면서도 적잖은 유저들의 찜하기(위시리스트) 등록을 경험해봤고, 업커밍 1위, 출시 직후 인기 순위 3위까지도 도달해봤지만, 아쉬운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한 핵심은 "유저 볼륨이 어느 정도 있는 장르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케팅 경쟁이 너무 과열되어 오가닉(자연 유입)만으론 버틸 수 없게 된 모바일게임 시장과 달리, 스팀을 비롯한 PC/콘솔 시장은 마케팅 공략의 정석이라 부를 만한 해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시장 공략법이 있다 해도 너무 다양한 변수가 산재해 있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곤 하죠.


스팀의 경우 출시 일정 노출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이 있지만, "부익부빈익빈이 심한 플랫폼"이라고 합니다. 그는 스팀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면 "유저 풀이 어느 정도 있는 장르의 게임인지 미리 잘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가령 스팀에 많이 출시되고 있고, 개발자들이 많이 도전하는 장르 중 하나인 '플랫포머'의 경우, 의외로 좋은 성과를 내기 가장 어려운 장르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지난 9년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버프스튜디오 또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8월 30일 스팀 페이지를 오픈한 신작 <레일블레이저>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 절망의 세계 안에서 희망을 찾다

버프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신작 <레일블레이저>입니다.

거대한 폭풍 때문에 인류가 멸망한 세계. 황폐한 세상을 탐험하며 인류 재건의 단서를 찾아야 합니다. 생존자 무리에서 낡은 선로 위를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베테랑 조종사는 당신뿐입니다. 환경과 적들의 위협 속에서 열차와 자원을 관리하며 살아남아야 합니다. 한정된 공간에 차량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자원을 확보하며, 연료 고갈과 고장, 전력 부족에도 적절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레일블레이저>는 로그라이트, 베이스 빌딩, 디펜스, 매니지먼트, 전략 시뮬레이션 같은 요소가 모두 섞인 복합 장르의 게임입니다. 랜덤 생성되는 세계를 탐험하며, 플레이어는 여러 이벤트를 마주하게 됩니다. 적은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기차의 자원을 약탈하기도 하고, 선로가 파괴된 곳도 있습니다. 위협적인 폭풍 외에도 땅이 질척이는 곳 등 여러 환경이 기차가 나아갈 길을 가로막죠.


<레일블레이저>의 기획은 "기지 건설 게임에서 기지가 움직이면서 탐험을 하면 어떨까"라는 키워드에서 시작됐다고 하며, <프로스트펑크>, <익시온> 등의 베이스 빌딩 게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FTL>(패스터 댄 라이트)의 매니징 요소와 로그라이크 요소 또한 참고했다고 하죠. 


김도형 대표가 "멸망한 세계에서의 배경은 쓸쓸한 법이니까요"라고 설명한 아포칼립스 세계관 또한 흥미롭습니다. <설국열차>, <매드맥스>, <마션> 등의 고독한 정서가 묻어 나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며, 게임 <플래닛 오브 라나> 또한 정서적인 측면에서 참고한 작품입니다. SF 장르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레일블레이저> 또한 좋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세계관이죠.


이동하는 기지 콘셉트의 게임은 기존에도 있었으나

SF 세계관에 대한 버프스튜디오의 상상력과 표현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전투는 타워디펜스 요소를 차용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적을 자동 탐색해서 공격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플레이어의 직접 조작이 필요한 컨트롤 요소도 있습니다. 위협적인 적이나 폭탄 등 특정 오브젝트를 강제로 공격하게 만들거나, 각 차량에 전기를 더 공급해 공격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방어막을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등 순간적 판단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로그라이트 게임답게 매 회차 다른 상황을 제시하는 것을 기본에 두고, 랜덤 요소를 많이 차용하기도 했는데 눈에 띄는 시스템들도 있습니다. 리스크와 리턴을 함께 지닌 패시브 아이템 '증강체'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번 회차에서 차량의 전기 소모량을 줄여주는 대신 모든 차량의 수리 비용을 증가시키는 증강체를 얻으면, 발전 차량의 자원을 덜 쓰지만, 전투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방식이라고 하죠.


김도형 대표는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수치적으로 완벽한 밸런스보다는 오히려 적절한 분균형을 목표로 해, 세부적인 조정은 실제 플레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난이도를 기준으로 밸런스를 조정하는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필드에서 만나는 약탈자 무리 외에도, 약탈자들이 방어 시설을 갖춘 전초기지도 존재하고, 엘리트 및 보스전 또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적에게 맞설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합니다.


왼쪽은 SF 도시에 대한 콘셉트 아트, 오른쪽은 보스전 콘셉트 아트입니다.
기차와 로봇이 맞서 싸우는 모습은 고전적인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만듭니다.

김도형 대표는 "게임을 재밌게 만드는 건 시스템과 밸런스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빠져들게 만드는 건 내러티브의 영역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간 여러 스토리 게임을 통해 내러티브에서의 강점을 보여준 버프스튜디오이기에, <레일블레이저>에서 보여줄 디테일 또한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그는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흥미를 유발하는 영역을 넘어 기억에 남게 하려면, 한 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입체적인 악역이 주인공보다 인기가 많은 경우가 많다. 정의와 정의가 충돌할 때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선과 악이 구분될 수 있다고 본다"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언급하긴 어렵지만, 악역의 동기를 적잖은 수의 플레이어가 납득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말했습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생존자 무리나 NPC들이 구조 요청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녹음, 뉴스 기사, 메일과 같은 기록을 만나기도 합니다. 각 레벨의 끝 지점에 등장할 '연구소'를 비롯해 특정 공간에 도달하거나, 조건이 달성될 때 대화와 이벤트가 등장합니다. <바이오쇼크>처럼 스토리에 대한 요소들을 진행 중에 조금씩 만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하네요.


그간 스토리 게임에서 쌓아 온 노하우를 이번 게임에선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합니다.


자원 관리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단순하게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용병단'은 자원을 대가로 지불하면 일정 시간 동안 열차를 호위해줍니다.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약탈자'와 정반대에 있다고 보면 되는데요.


'떠돌이 상인'처럼 중립 세력이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아이템과 자원을 구매할 수 있는 대상이지만, 원한다면 상인을 약탈할 수도 있죠. 대신 그렇게 했을 때는 다른 NPC들에게 윤리적인 규탄을 받는 등 게임에서의 상호작용에 변화가 생긴다고 하네요.


무기가 탑재된 열차 차량.

# GOTY와 AAA 게임을 향해

버프스튜디오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버프'가 되는 게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지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RPG에서 버프, 디버프로 접하는 그 단어가 맞습니다. 김도형 대표는 "그런 메시지가 잘 반영된 게임도 있었고, 아닌 게임도 있긴 했지만,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버프스튜디오가 앞으로 지향할 목표에 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그는 "모바일 쪽을 위주로 사업을 진행하다가 PC/콘솔로 전향한 게 얼마 안 된 편인데, PC/콘솔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고 싶다. 그게 된다면 GOTY(올해의 게임)를 받는 게임도 만들어보고 싶고, 더 잘 된다고 하면 AAA 게임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선지 기자에겐 이 답변이 꽤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일반적인 표현이 아니라, 김도형 대표가 이전부터 꾸준하게 해왔던 회사 소개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등락의 시간"을 지나오면서도 "인디게임부터 AAA게임까지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규모의 게임을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라는 목표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죠.


<레일블레이저>로 TGS(도쿄 게임쇼)에도 출전하는 버프스튜디오가, 언급한 목표처럼 더 큰 스케일의 게임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버프스튜디오 소개 멘트는 한결 같았습니다. 신작에서도 게이머들이 '버프'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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