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TIG 룩백' 코너에서는 업계 전체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가진 개발사들의 발자국을 톺아보며, 그들의 등 뒤에 남겨진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한강 작가가 부커상과 노벨문학상을 받기 한참 전부터, 책장엔 그녀의 책들이 있었다. 과거엔 많은 책 중 한 권이라 여겼기에, 사실 내용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채식주의자>를 꺼내 읽는 순간 깨달았다. 몇 년 전의 나는 책의 초반부를 읽긴 했지만, 완독을 하지 않았구나. 다시 읽어보니 참 문장도, 흐름도 매끄럽고 멋지구나. 그녀의 책은 잘 읽히는 책과는 거리가 멀다던 사람도 적잖게 있었지만, 기자는 어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책의 끝을 봤다.
그래서 다시 드는 생각. 계기야 어찌 됐든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또한 맞지만, '계기'가 가지는 힘이 분명 있구나. 어떤 광고는 실제 게임플레이보다 더 흥미를 끌 때가 있고, 어떤 소개 멘트는 실제 콘텐츠의 내용보다 더 적확한 지점을 찌를 때가 있다. 작가의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고 나니, 책의 재미도 배가 되지 않았는가.
'게임'을 통해 '문학'에 접근한다면 어떨까. 똑같은 독서 행위가 '계기'로 인해, 재미 또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MazM의 5부작 연재의 마지막 기고문을 보며, '좋은 입구'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기고=자라나는씨앗 김효택 대표, 서문 및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TIG룩백 자라나는씨앗 포스트모템 5부작]
① MazM의 탄생-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꿈" (바로가기)
② MazM의 방황-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바로가기)
③ MazM의 자아발견- "이처럼 음악 소리에 감동을 느끼는데도, 내가 벌레란 말인가" (바로가기)
④ MazM의 실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바로가기)
⑤ MazM의 비전- "진정한 기사도를 찾아서" (현재 기사)
"불가능한 꿈을 꾸고, 불가능한 적과 싸우는 것, 용기가 없는 곳으로 달려가고, 닿을 수 없는 별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 -[1605, <돈 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한글날로부터 하루가 지난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그녀가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는 소식이었고 쾌거였다.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과거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처럼 영웅시 되었던 적도 있다. 예전에는 우리가 '글로벌에서 인정받았다'는 의미로서 영웅화 했다면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원어, 원전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한 누군가의 말처럼, 나도 '한글'의 위상이 이토록 높아진 것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문학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아픔과 고민거리를 담아낸다.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인생을, 이 시대의 우리가 생생하게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이, 문학이 주는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내가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문학으로 게임을 만들겠다-고 결정한 회사의 대표로서 전과는 다른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MazM의 정체성인 '게임과 교육'부터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 보자. 대체 MazM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이 막연한 생각이 구체화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6년,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담은 MazM의 처녀작 <옐로 브릭스>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에서 주관하는 이달의 우수게임 '착한 게임' 부문에서 수상을 했다. 그때는 '착한 게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기능성 게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KOCCA의 설명에 따르면, '기능성 게임'(Serious Games)이란 '교육, 스포츠, 의료, 국방, 공공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게임의 오락적 요소와 접목해 다양한 목적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한다. 교육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이 대표적인 '기능성 게임'에 해당되었다. 예를 들어 수학, 과학, 한자, 코딩 등 지식과 스킬을 게임을 통해 학습하게 만든 콘텐츠들이었다.
MazM을 2015년 처음 기획할 당시부터, 이루고자 한 키워드가 있었다. 그것은 '게임과 창작'(Game & Creation)이었다. 문학을 게임으로 경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고 싶었다. 고전문학을 게임으로 플레이하고 깊이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 창작'이라는 또 하나의 바퀴를 만들어, 두 바퀴가 온전히 굴러가게 하고 싶었다.
이는 기능성 게임의 본래 목적과 맞닿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의 기능성 게임이 지식과 스킬을 습득하는 것을 목적에 두는 데 머물렀다면, 콘텐츠를 경험하고 창작하는 것을 게임의 목표로 하는 새로운 관점의 기능성 게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첫 번째 바퀴인 고전문학 작품을 게임으로 플레이하는 단계에서 우리는 시행착오를 오래 겪으며, 두 번째 바퀴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시행착오 끝에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창작'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냈다.
<카프카의 변신>은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위한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직 말하지 않은 목표가 있는데, 바로 MazM 게임을 학교로 연결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초등학생으로도 확장할 수 있겠지만, 타깃은 일단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했다. 문학 작품의 깊이를 맛보도록 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올해 <카프카의 변신> 개발 과정에서 여러 교사와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여전히 지금도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독서토론 수업을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그분들이 주시는 소중한 피드백들은 우리가 방향을 더 명확히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초기부터 '게임을 이용한 독서토론 수업'이라는 모델 하나를 발견했다. 이미 수업이 진행되는 사례가 있었고, 20년 넘도록 중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주제의 토론 수업을 진행해온, 한 독서토론 회사와 MazM의 협업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미 VR/AR 게임으로 수업을 진행해본 경험도 갖고 있었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 내용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진행하는 수업이다.
그런데 MazM의 스토리게임을 이런 수업 과정에서 소개하고 피드백을 얻는 가운데, 재미있는 반응이 현직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서 계속 나왔다. 아이들이 게임을 만들어보는 데까지 가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 특히 귀에 쏙 들어왔다. 이 피드백이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잊고 있던 두 번째 바퀴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리가 '게임으로 하는 독서토론'을 넘어 '게임 만들기'까지 할 수 있을까? 아직은 프로토타입 단계지만,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실력을 우리가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MazM이 그동안 쌓아온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스토리를 기획하는 과정의 노하우 그리고 그것을 게임 콘텐츠로 만든 경험이 이 과정의 설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원래 게임은 놀고 즐기기 위해 탄생한 콘텐츠이니, 게임 회사의 방향성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보통의 스타트업과는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삶을 성찰할 기회가 부족함'을 MazM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정의했다. 우리가 굳이 고전문학을 게임으로 만들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MazM의 게임과 커뮤니티가 그 길을 열고 있고, 더 나아가 게임을 이용한 학습을 통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게임으로 다양한 문학 작품을 경험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에 대해 생각하고, 창작하는 교육 과정이 그것이다.
가상현실, 메타버스, 블록체인, AI 등 수많은 키워드가 시대의 화두가 되어 왔다. 최근에는 본격적인 AI 시대가 열리면서,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더 중요해질 것인지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만큼 AI가 가져올 변화가 무척 크다고 보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지식과 스킬을 대체할 근미래에는, '비전'과 '실행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드는 1인 대표, 1인 PM/PD의 시대가 올 것이라 본다. 이때 사람을 키우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바로 '좋은 콘텐츠'를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기술'보다 '콘텐츠'가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MazM의 사업적 본질은 사실 '캐릭터 비즈니스'에 가깝다. 사람들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캐릭터가 결국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캐릭터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따라서 MazM은 스토리게임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인류 문화 속에 잠들어 있는 '캐릭터'라는 거인을 깨워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MazM은 팬덤에게 보내는 'MazM Letter'라는 주간 뉴스레터를 작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 레터의 마지막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은 더 훌륭해질 수 있고, 그래야 합니다." 이 문장은 MazM이 생각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고비를 넘고 있다. 고전문학을 담은 더 많은 작품을 빠르게 소개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고, 나아가 이 게임들을 이용한 학습 콘텐츠 영역까지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두려움도 있지만, 나는 지금의 MazM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끝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명확하기에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불가능한 적과 싸운 것, 용기가 없는 곳으로 달려가고, 닿을 수 없는 별에 도달하는 것을 나의 운명"이라 '돈 키호테'가 말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