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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15) 영어로 미국인을 웃겨라

KevinKim 2010-06-30 19:04:59

 

■ 미국 VC들과의 미팅

 

익싸이트 재팬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지만 더욱 미국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현지 벤쳐 캐피탈(VC, Venture Capital)로부터 투자 유치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알고 지냈던 한 친구부터 몇몇 VC를 소개받고 만나보기로 했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기까지의 몇 가지 스텝이 있다. 예를 들면 A B C를 서로 소개시켜 준다고 하면, A B C에게 아래와 같은 형태로 메일을 보낸다.

 

A Mail to B, C

 

B, C는 미국에서 온라인 게임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야. 이야기해보면

C, B는 미국에서 커다란 VC 중 한 군데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일하고 있어. 이야기하면 서로 도움이 될 거야.

 

라는 형태로 소개 메일을 보낸다. 그럼 메일을 받은 B A C에게 다시 메일을 보낸다.

 

B Mail to A, C

 

A, 소개해줘서 고마워. C, 나는 xxx라는 VC에서 일하고 있어. A를 통해서 네가 온라인 게임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나는 2주 후 목요일 오전 10시와 금요일 오후 3시에 시간이 돼. 괜찮다면 참조란에 첨부하는 비서에게 이야기 해줘.

 

그리고 C도 거기에 답장을 보낸 후에 실제 만나는 미팅을 갖게 된다. 한국처럼 바로 전화해서 안녕하세요. xx 소개로 전화드렸는데요. 내일 점심 시간 되세요?” 이런 식으로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항상 2주 정도 여유를 두고 일정 약속을 하는 게 이곳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도 같은 절차를 밟아 몇몇 VC와의 약속을 잡았다. 우리가 미국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정리해서 PT로 준비하고 영어로 발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서 VC들이 있는 팔로알토로 향했다.

 

 

팔로알토의 전경

 

예상했던 대로 아주 고급스러운 사무실의 분위기가 나를 압도하며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파트너(이곳 VC에서 투자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통 파트너라고 부른다)가 나를 맞이해줬다.

 

나는 잘 안되는 영어였지만 최선을 다해 우리 사업 모델에 대해 설명을 했다. 설명을 진지하게 들은 파트너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온라인게임 사업 모델을 처음 접해본 사람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날카로운 것이었다.

 

역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다른가 보다 라며 답변을 했고 질문뿐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충고를 해줬다.

 

케빈, 내가 보기엔 너는 온라인 게임 개발과 서비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고 한국에 좋은 개발사를 많이 알고 있는 장점이 있어. 하지만 너는 미국에서 생활한 것이 1~2년 밖에 되지 않아 미국식 사업개발을 하기에는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

 

그러니까 이곳 미국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마케팅 전공 부사장 정도를 찾으면 회사가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한번 주변에서 알아보고 적당한 사람 있으면 연락해줄게.

 

, 그리고 우리 회사가 페이스북 에도 투자했고 나도 가끔 페이스북(미국의 싸이월드와 같은 사이트) 일을 도와주고 있으니까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도 알아봐 줄게. 우리는 현재의 OnNetUSA 상태로는 투자가 좀 어려울 것 같고 조금 더 성장하면 그때 다시 한번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어.”

 

참으로 신선했던 충고였다.

 

나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지적해 줬을 뿐 아니라 나를 오늘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와주겠다고 하니 말이다. 나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하고 돌아왔지만 진짜로 2주 후쯤 몇몇 마케팅 부사장 후보의 이력서를 그 파트너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정말 프로였던 것이다.

 

 

■ 무모한 도전, 영어로 미국인들을 웃기기

 

우리가 있던 iPark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업체들도 함께 입주해 있다.

 

그 중에 KIN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KIN은 컨퍼런스나 비즈니스 미팅 등을 주선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 KIN에서 일하는 분이 사무실에 와서 조만간 큰 컨퍼런스가 열린다며 소개해줬다. 처음에는 스폰서를 유치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KIN 대표님께서 “케빈, 마침 온라인 게임에 대한 컨퍼런스도 있는데 패널로 참가해볼래요?”라고 하는거다.

 

? 저 영어도 잘 못하고 그런 건 한번도 안해봤는데요?”

 

라고 말씀드렸지만 대표님은 그런걸 해야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많이 알려진다며 나를 설득하셨다. 회사를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얼떨결에 오케이를 했다.

 

며칠 후 행사에 대한 메일을 받고서야 사태에 대한 심각성이 느껴졌다. 나와 함께 하는 패널은 네오위즈 해외사업이사, 미국의 또 다른 게임포탈인 아웃스파크 사장, 그리고 컨퍼런스 의 사회자는 미국 유명 VC의 파트너였다.

 

나만 빼고 모두가 영어에 유창한 분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사전에 만들어진 각본이 있고 사회자가 질문 리스트 내에서만 질문한다고 했는데 그것뿐 아니라 그날 컨퍼런스 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바로 질문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색이 됐다. 사회자의 준비된 질문도 알아들을까 말까 한데 각본에 전혀 없는 사람들의 질문을 어떻게 이해하며 또 대강 알아듣는다고 해도 과연 영어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괜히 회사 알리려 했다가 회사 망신만 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많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 한 명과 함께 미리 둘러볼 겸해서 조금 빨리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에는 다른 내용의 패널 토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여기서 또 한번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각 패널들이 무대로 나와 대략 5~10분 정도 자기 회사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모든 업체들이 자사 소개에 화려한 파워포인트 문서를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말로만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무슨 말로 150여명의 청중 앞에서 영어로 10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우리 패널 토의 시간까지는 대략 30분 정도가 남았고 나와 마케터는 그 때부터 가지고 간 노트북으로 회사 소개 PT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말도 잘 못하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게임 동영상을 많이 보여주는 전략으로 나가기로 했다. 다행히 노트북에는 우리가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들의 동영상이 있었다.

 

 

매년 개최되는 KINCON의 현장 분위기

 

어떻게 30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부랴부랴 완성한 PT를 들고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예상대로 네오위즈 이사와 아웃스파크 사장은 준비해온 PT 자료를 이용해 유창한 영어로 회사를 소개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단상에 올라갔다. “Hello, My name is Kevin. I’m so nervous…”로 시작한 나의 발표는 다행히 큰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다.

 

다음은 실제 패널 토의를 할 차례였다. 처음엔 비교적 각본대로 진행됐다. 그러다 갑자기 사회자가 나에게 대본에도 없던 미국에서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해보니 한국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바짝바짝 탔다. 나는 내가 미국에 와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고 중간중간 청중들이 웃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에 조금 더 자신을 가진 나는 각본에도 없는 말들까지 하면서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

 

흠뻑 땀에 젖은 채 밖으로 나오는데 KIN 대표님께서 케빈, 케빈의 발표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청중들 반응도 지금까지 제일 좋네요.”라고 하셨다.

 

매우 긴장되고 힘든 하루였지만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내 영어로 미국 사람들이 웃었다는 것도 기분 좋았고 (그 나라 사람들을 그 나라의 언어로 웃기게 할 줄 알면 언어 실력이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무모한 도전이 또다시 성공한 것 같아서였다.

 

미국 생활에 커다란 힘을 준 패널 토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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