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직원들의 팀워크를 위해 워크샵을 자주 가는 편이다.
보통 워크샵이라고 하면 회의와 토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기도 같이 구워 먹고 술도 한 잔씩 걸치면서 회사 안에서 하기 힘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에서 회사를 운영한 나는 미국에서도 한국식 워크샵이 가능할지 고민이 많았다.
미국에서는 회사에서 회식하더라도 모두들 자신의 차를 갖고 와서 식당에 모이고 맥주는 커녕, “나는 콜라”라고 주문하고 자기 먹을 것만 먹고 집에 간다.
저녁이 되면 모두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므로 한국식 회식은 꿈도 꾸기 힘들다. 게다가 온네트 한국의 여름 체육대회에 데이빗을 데리고 간 후, 데이빗이 보인 반응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데이빗은 여직원들끼리 씨름하는 걸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고, 저녁에 함께 모여 술 먹고 노는 것을 보며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냐”며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사”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인 생활을 선호하는 미국인들끼리 숙소를 공유한다는 건 생각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온네트 워크샵에서 진행된 여자 씨름왕 선발대회. 데이빗이 경악했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미국 법인에서도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지난 1년 사업 결과를 함께 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일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숙소를 빌려야 했는데, 미국에는 한국의 펜션이나 콘도 같은 게 없어 집을 통째로 빌리거나 호텔 같은 곳을 구해야 했다. 내가 담당자에게 요청한 것은 두 가지였다.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어야 하고, 모두 모여 회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담당자가 리조트를 알아 왔는데 고기는 밖에서 구워 먹을 수 있지만, 방안에 20명이 모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회의를 하려면 회의실을 빌려야 하는데 그럴려면 저녁, 아침 등 두 끼를 꼭 리조트에서 먹어야 한다는 거였다. 조건이 까다로워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회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해변의 허름한 호텔을 구했다.
다섯 대의 차에 나누어 탄 우리는 가는 길에 상점에 들러 고기와 술 등을 챙겨서 숙소로 갔다. 이러한 행사가 처음인 직원들은 약간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생각에 모두 들뜬 마음인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하여 먼저 공식 행사인 사업발표 시간을 가졌다.
■ ‘작년의 직원’ 선발
그 전에 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작은 이벤트를 했는데, 바로 직원들이 ‘작년의 직원’을 투표하는 것이다.
각 직원들은 작년에 회사에서 일을 제일 잘 한 직원을 한 명씩 적어 내며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직원이 ‘작년의 직원’으로 선정돼 보너스를 받게 된다. 이 이벤트를 하면 직원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직원이 누구인지 알 수 있어 조직 관리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사업발표는 나와 데이빗, 그리고 YJ가 했는데 데이빗 발표 중 한 말이 나에게 매우 감동적이었다.
데이빗은 발표 마무리에 “이러한 어려운 경제 상황에 우리가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줄 수 있어서 나는 너무 기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회사는 성장하고 있고, 이러한 회사에 내가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하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너무 재미있고 여러분들과 함께 2009년도 멋지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2008년 11월, 12월에 직원들에게 매출 목표를 제시했고 그것을 도달하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직원들 모두 열심히 일한 덕분에 목표보다 더 많은 매출을 거둘 수 있었다. 물론 주기로 한 보너스의 양이 회사 운영의 측면으로 봤을 때 적지 않았고 그 당시 회사의 재정 상황도 썩 좋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경영자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너스 지급을 결정했다. 보너스를 나눠줄 때 현금 잔고를 보며 살짝 걱정도 했지만,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직원들을 보며 힘들지만 약속을 실천하길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공식 발표를 마치고 함께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처음 접하는 미국 친구들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호텔 방에서 고기를 구웠는데 갑자기 벨이 막 울리는 것이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하나 하고 있는데 직원들 특히 미국 직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는 것이다.
“크리스! 위에 건전지를 빼 줘.”
이 말 한마디에 직원 중 하나가 소리나는 벨 뚜껑을 열고 건전지를 쑥 빼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씩 웃는다.
미국 친구들도 이러한 일을 많이 겪었나 보다 싶었다.
고기와 함께 한국 마켓에서 사간 소주와 양주를 함께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슬슬 취기가 올라온 직원들은 서로 크게 웃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 시작했다. 나에게 와서 고맙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자기가 올해 목표를 꼭 달성해서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되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처음 우려했던 걱정과 달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웃고 마시며 즐기는 모습을 보니 ‘사람은 어디나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믿어 주며 함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면 인종과 나라에 상관없이 모두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밤 늦게까지 함께한 직원들은 한 방에 두 명씩 들어가서 자고(이것도 어떻게 보면 한국식이다) 다음날 간단한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지난 2008년 워크샵의 단체 사진.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진 최근 워크샵 사진.
※ <케빈의 미국시장 진출기>는 다음 21화로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21화는 필자인 김경만 온네트USA 대표이사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에필로그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