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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TIG우리말] 신박한 언어의 변화

머신 2012-01-20 13:02:25

'신박하다'라는 말,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쓰는데요. 무슨 뜻일까요? 느낌을 보면 '참신하다', '신기하다' 정도로 쓰이는 것 같은데요. '쌈박하다'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믿을 신(信)에 머무를 박(泊)을 써서 '이틀 밤을 머무르다'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뜻으로 쓰는 것 같진 않아서 검색을 하게 됐습니다.

 

'신박하다'는 디씨인사이드의 와우갤러리에서 처음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요. 와우갤러리에서 '성기사'라는 직업 이름의 앞 두 글자를 이용해서 말장난 하는 것이 유행하자, '기'가 금지어로 등록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기사가 판금 방어구에 회복과 무적까지 있어 잘 죽지 않는 점을 비꼬아 '바퀴'라고 부르던 것을 '박'이라고 줄여서 '기'대신 사용했다는데요. '신박하다'는 '신기하다'를 그저 그런 이유로 바꿔서 말한 것이 흥하게 된 표현입니다.

 

 

 

    지구인들아 를 모아줘    ->    지구인들아 을 모아줘

 

    일렉    ->    일렉


    죽전에    ->    죽전에

 

    전기기기기능사    ->    전박박박박능사

 


당시 와우갤러리 분위기에 맞춘 표현들

 

 

이렇게 보면 '신박하다'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은어입니다. 본래의 뜻까지 왜곡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의 소지가 큰 표현이죠. 그렇다면, 표준어가 아니니까 써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공식적인 문서에서는 문제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일상 생활에서 쓰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표준어라는 개념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대한민국 표준어 규정 제 1장 1항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표준어 원칙'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닭과 달걀의 문제가 아니라, 명확하게 앞뒤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문장이죠. 국어사전에 없어도 실제 사람들이 두루 쓰고 있다면 국어사전을 고쳐야지, 사람들의 언어생활을 고칠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표준어와 은어의 경계선도 모호한 편입니다. 아래에 나열한 말들도 전부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어죠.

 

 

 

    돈지랄 : 분수에 맞지 아니하게 아무 데나 돈을 함부로 쓰는 짓을 속되게 이름.

 

    돌림방 : ‘윤간’(輪姦)을 속되게 이르는 말.

 

    개기름 : 얼굴에 번질번질하게 끼는 기름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면 실제로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사람들의 언어생활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을씨년스럽다'처럼 국가의 위기가 만들어낸 표현도 있고, '신박하다'처럼 별 것 아닌 일로 생겨난 것도 있죠. 생겨난 이유가 어찌됐든 사람들이 두루 쓰게 되면 언젠가 표준어로 자리잡고, 오래 가지 못한다면 은어로 남게 되겠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언어학자나 미디어가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표준어가 일상언어에 족쇄를 채우는 도구가 되어선 안됩니다. '언어파괴'라는 명목으로 새 표현을 싸잡아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죠. 내가 표준어를 쓰는 것은 자유지만, 남이 표준어를 쓰지 않는 것도 자유로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표준어는 많은 사람을 상대로 뜻을 전달할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죠. 미디어에서는 꼭 지켜야 하고, 많은 사람을 상대로 뜻을 펼치려면 꼭 알아야 하는 소양입니다. 그만큼 중요하니까 제가 이 코너를 계속 하는 것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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