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아띠'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지은 식당가의 이름인데요. '아띠'는친구, 사랑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아띠'라는 말을 그런 의미로 옛날에 썼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논란이 됐죠.
어떤 네티즌은 '세종을 기리며 만든 건물 지하의 이름이 저 모양이니 세종대왕이 뭐라고 생각을 할까'라며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연합뉴스를 비롯한 여론에서 계속 지적하자 서울시는 '검증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정감 가는 이름이니 하나의 고유명칭으로 봐 달라'고 해명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식으로 소위 '가짜 순우리말'임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았던 단어들은 의외로 많은데요. 지난 시간의 '싸울아비'외에도 몇 개만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전부 국립국어원의 승인을 얻지 못한 비표준어입니다.
1. 미리니름 : 내용누설을 뜻하는 말. 스포일러, 네타바레의 순화어.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오는 '니름'의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이영도 팬카페에서 시작됐으나 좋은 어감으로 인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져나감. 국립국어원의 공식적인 대체어로는 '헤살', '영화헤살꾼'이 있음.
2. 아라 : 바다의 우리말.
'아띠'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사용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음. 오히러 '바다'가 순우리말인데다 과거 사용에 대한 증거가 튼튼해서 '아라'를 순우리말로 인정하기엔 설득력이 없는 상황. 경인운하의 이름을 '경인 아라뱃길'로 바꾸면서 논란이 됐던 표현. 한국의 쇄빙선 '아라호'에서도 사용.
3. 씨밀레 : 친구의 우리말.
Simile. 음악용어로서, 이탈리아어로 '예전과 같이 연주하라'는 뜻. 대학가 음악 동아리에서 '계속 예전과 같다 = 영원하다'는 의미에서 '영원한 친구'로 뜻이 확장되던 것이 나중에는 와전되어 친구의 순우리말로 알려짐. 몇 몇 기업의 브랜드명으로 사용되는 중.
이렇게 보면 저 말을 저런 의미로 알고 사용한 사람이나 저런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나 전부 한심해 보일 수 있겠는데요. 재미있는 점은 표준어가 생겨나는 과정도 위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래 표현은 모두 국립국어원의 승인을 받아서 국어사전에 등재된 것들입니다.
1. 쌈박하다
작은 물건이 잘 드는 칼에 쉽게 베이는 모양새나 소리를 '삼박'이라고 함. 그렇게 시원스런 느낌을 그냥 '쌈박하다'라고 말하기 시작해서 생겨난 표현.
2. 바자회
Bazaar는 페르시아어로 '시장'이라는 의미. '시장'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
3. 터무니 없다
'터 무늬가 없다' -> '터를 잡은 흔적이 없다' -> '근거가 없다'로 의미가 발전한 표현.
4. 깡통
영어 'Can'의 일본어식 발음 '깡/깐'에 ~통을 붙여서 만들어진 말.
사실 어떤 표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어떤 표현이 언중에게 인정받느냐 아니냐는 '그 표현이얼마나 그럴듯한가'보다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가'가 더 중요하죠. 그래서 표현은 끝없이 새로 생겨나고, 인기가 떨어지면 사어가 되어서 사라지죠. 한참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아햏햏', '뷁'같은 것들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잖아요?
쓰는 사람만 있으면 말도 안되는 표현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도있고, 쓰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그럴듯한 표현이라 해도 빛을 보지 못하죠. 표현은 계속 태어나고 사라지며, 그 시기를 한 두 사람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런 속성을 언어의 역사성 혹은 가역성이라고 합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맙시다. 표준어를 결정하는 국가기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표준어가 만들어질 때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말 다듬기'(//www.malteo.net)라는 홈페이지를 아시나요? 이 곳에서는 매 주마다 외래어를 우리말 표현으로 바꾸는 투표를 했었는데요. 최근에는 보통 1,500명 정도가 투표를 하고 400~600명 정도의 의견이 승리해서 단어를 선정합니다.
그런데 이 홈페이지가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고 있어서요. 이 곳에서 투표로 결정된 표현을 그대로 정리해서 외래어 순화 용례집을 만들었습니다. 5천만이 사용할 표현을 500명 정도의 일반인 의견합치로 결정했었죠. 그 결과, 작년에는 맵시청바지(스키니진), 똑똑전화(스마트폰), 여우비성형(쁘띠성형)같은 단어들이 용례집에 실렸습니다.
올해부터는 방식을 바꿔서 유저에게 의견을 받고 위원회에서 사용할 단어를 선정하고 있네요. 표준어의 선정방식이 언어의 역사성에 정면으로 맞서는 듯한 구도입니다.
이야기를 풀면 풀 수록 표준어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한반도의 표준어와 세계의표준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