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정하고 있는데요. 세계의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사실
적지 않은 나라들이 국가 권력으로 언어생활을 강제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표준어를 법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 수도의 방언을 표준어의 기준으로 세우지도 않죠.
바다건너 일본에는 법적으로 정해둔 표준어가 따로 없습니다. 언어생활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에 반항감이 있어서라는데요. ‘많은 일본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현실의 일본어’라는 의미에서 ‘공통어’(관동방언에 가깝고, 수도 도쿄의 방언과는 많이 다름)라는 개념을 더 선호한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줄임말을 공식 명칭처럼 사용하는 것을 그리 이상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Costume Play’는
‘코스프레’, ‘Animation’은 ‘아니메’, ‘Digital Camera’는 ‘데지카메’ 등으로 줄여 쓰죠. 이렇게 만들어진 줄임말은 유명해지면 방송에서도 거리낌 없이 사용합니다.
'코스프레'는 한국에서도 보통명사로 사용될 정도로 유명한 단어죠
영국의 경우에도 런던 방언이 아니라 Recieved Pronunciation(용인발음, 이하 RP)이라는 것을 표준어의 개념으로 쓰고 있는데요. 영국 왕족이 사용하는 언어생활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영국 인구의 6%정도만 이를 사용합니다.
현대에는 BBC뉴스나 영국 왕실에서 쓰는데요. ‘게이같다’거나 ‘재수없다’는 등, 이 억양에 대한 영국인의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아서 Contemporary RP라는 현대화된 RP를 만들어 내기에 이릅니다. 주로 영어권 상류층 계급에서 사용되어, '옥스포드 잉글리시'라고도 하는데요. 이것의 사용률도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도 법적으로 표준어가 규정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통 General American(일반 미국영어) 혹은 Midwestern English(중서부 영어)라는 것을 표준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50개주의 억양이 섞이고 중화되어 중서부 지방에 정착된 억양인데요. 미국인은 ‘방송에서 쓰는 억양’ 정도로 생각합니다. 한국인이 배우는 영어는 이를 기본으로 하고 있죠.
이건 여담인데요, 한국은 미국 억양으로 영어를 배우는 몇 안되는 나라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영국식으로 배우죠. 미국에서 성공한 상류층은 일부러 영국식 억양으로 발음을 교정하기까지 합니다.
미국은 워낙 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인 국가라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인식은 일반인 사이에서 희박한 편인데요. 그래도 사투리 억양에 대한 조롱이 개그의 단골메뉴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표준어 규정이 국가/민족간 분쟁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는 한 국가에서 사용하는 언어나 방언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를 표준어로 인정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의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따로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세르비아 방언을 기준으로 새 슬라브어 사전을
만든 것이 오랜 갈등에 도화선으로 작용해서 유고 내전을 촉진시키고 분열을 가속화하기도 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죠
한반도의 경우도 특이하지만 비슷한 상황입니다. 북한과 남한이 서로
평양 방언과 서울 방언을 바탕으로 표준어와 문화어를 만들어 냈죠. 분단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한국어는 남한과 북한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80년대 이전의 남한 방송을 보면, 이 방송이 북한 방송인지 남한 방송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죠.
80년대 이후 남한의 표준어가 크게 변하면서 현재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데요. 자연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데올로기 문제로 의도된 부분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 언중이 사용하는 표현이 문화어와 비슷하더라도 표준어에는 다르게 표기하고 그것을 사용하길 권장했죠. 그런 표현들의 잔재는 아직 어느 정도 남아 있습니다.
문화어 |
표준어 |
쌉싸름하다 |
쌉싸래하다 |
시라소니 |
스라소니 |
두리뭉실하다 |
두루뭉술하다 |
밑둥 |
밑동 |
단촐하다 |
단출하다 |
직효 |
즉효 |
문화어 쪽이 더 익숙한 분들은 전부 간첩인증!
여러 나라의 표준어 이야기를 해 봤는데요. 딱히 뭐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표준어’라는 개념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