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오늘, 디스이즈게임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신문사와 IT매체에서 일하던 젊은이 셋이 낙성대와 강남역 등에서 낙엽과 첫눈을 맞으며 모의작당한 뒤였다. 대구에서 커뮤니티 운영자 한 명이 동참했다.
'디스이즈게임'이라는 이름은 국서방이 지었다. 어느 주말, 강남역 허바허바 빌딩에 그 이름과 다른 이름 하나를 들고 왔다. 국서방은 다른 이름을 선호했지만, 정작 낙점 받은 건 디스이즈게임이었다. 선배 둘이 그 이름을 더 좋다고 했던 까닭이다.
회사 만드는 건 대부분 국서방 몫이었다. 선배 기자 둘은 그런 일에 젬병이었다. 엑셀도 잘 몰랐다. 국서방은 군대에서 행정병을 한 덕에 문서 작업에 능했다. 한심한 선배들은 '어떻게 좋은 콘텐츠를 만들까'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주야장청 했다. 야무진 국서방이 회사 만들기, 돈 벌기를 다 했다.
사이트는 외주를 통해서 만들었다. 당시에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셋은 개발 쪽 노하우가 없었다. 수많은 개발자가 거쳐간 뒤, 사이트가 덕지덕지 누더기가 돼버렸다. 문제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야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됐다. 완전히 뜯어 고치느라 기획자와 개발자가 지난 몇 년, 고생고생을 했다.
회사는 서울 강남에서 가장 큰 찜질방이 지하에 있던 오피스텔에서 시작했다. 함께 자고 일하고, 자고 일했다. 저녁에 건물 1층 둘둘치킨에서 맥주를 많이 마셨다. 업체 지인들이 참 많이 찾아왔다.
초반에는 다양한 시도를 꽤 했다. 보도자료를 [어디어디 제공]이라고 밝히고 올렸다. 몇 자 슬쩍 바꿔서 기자 이름 넣는 관행이 좀 그랬다. 이후 거의 모든 게임매체가 이 방식으로 전환했다. 유튜브가 나오기 전에는 영상을 가장 잘 제공하는 사이트였다. 유튜브가 나온 뒤 그 장점은 사라졌다. 구닥다리 영상 플레이어가 바뀐 것은 한참 뒤였다.
원사운드 카툰도 인기를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요즘 바빠서 업데이트가 느리다. 3월 안에는 업데이트 한다니까, 기다리고 있다. 다크지니가 밤새면서 만든 '카트 완전정복' 같은 연재성 영상 콘텐츠 역시 큰 인기를 모았다. '최초공개' 콘텐츠 역시 화제가 됐다. 많은 이들의 고생 덕분에 디스이즈게임이 여기까지 왔다. 더 갈 수도 있었는데, 내 모자람 탓에 여기밖에 못 왔다.
돌이켜보면, 디스이즈게임의 역사는 한국 게임 생태계 흐름과 비슷하다. 초반, 새로운 시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무거워지고 더뎌졌다. 사이트의 기초가 없었던 탓도 크다. 커나가는 덩치를 감당 못했던 탓도 크다. 변화하는 시대에 제대로 적응 못했던 탓도 크다.
9살 생일이 된 디스이즈게임은, 가벼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simon :)
2005년 3월 14일 디스이즈게임 공식 론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