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물을 사 마신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집에서는 엄마가 끓여준 옥수수차를 마셨다. 구수한 맛이 아직도 그립다. 학교에서는 식수대에 고개를 바짝 댔다. 상쾌했다. 수돗물도 자주 마셨다. 별 탈 없었다.
요즘은 수돗물을 안 마신다. 회사에는 코웨이 정수기가 있다. 집에서는 사 마신다. 위메프에서 주문한다. 언제부터 물을 이렇게 마시게 됐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물이 상품이 된 때를 찾아봤다.
1994년 3월 17일이었다. 한국 정부가 생수 시판을 허용했다. 원래 그 전에도 파는 물이 있었다. 88년 올림픽 때였다. 대규모 외국인을 의식했다. 국산 위스키 원주가 이 무렵 생산된 것처럼, 사먹는 물도 나왔다. 임시적인 조치였고, 순전히 외국인 전용이었다. 이후에도 주한 외국인만 살 수 있었다.
물이 페트병에 담겨 나왔을 때 ‘물을 사 먹어?’ 하는 생각을 했다. 대동강물을 판 봉이 김선달은 정말 선구자구나, 하고 웃었던 기억도 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수는 제법 팔렸다. 1990년대는 환경오염에 대한 위기감 덕을 봤다. 2000년대는 웰빙바람을 탔다. 매년 10%씩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제는 미세먼지까지 돕는다.
물장수들이 부쩍 늘어났다. 올해 초 기준으로 70여 업체가 100여 개 브랜드를 팔고 있다. 1년에 335만 톤의 물이 페트병에 담긴다. 인구를 5,000만 명으로 보면, 대략 한 사람이 1년에 500㎖ 생수 134병을 사 마시는 꼴이다. 하루로 치면 1초당 500㎖짜리 병 200개가 팔리는 거다.
세계 시장 규모는 200조 원을 넘었다. '워터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생겼다. 백화점에는 VIP용 워터바가 나왔다. 항공기에는 좌석 별로 제공되는 생수도 다르다.
그런데, 생수에 대한 사실 하나가 잘 안 알려져 있다. 제임스 샐먼즈는 <식수혁명>에 이렇게 썼다.
수돗물에 비하면 생수는 규제가 더욱 느슨하고, 감시도 더 적게 이루어진다. 또한 상표에 표시된 내용은 대개 무의미하고, 기재 사항도 적다. 일부 대규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수가 수돗물보다 더 많이 오염되어 있고, 때로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많다. 생수가 수돗물보다 더 안전하다고 가정하면 마음이 편해질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럭저럭 생수 관리가 잘 된 나라다. 환경부가 1년에 한 번 불시검사를 통해 업체들을 관리한다. 생수 사업자들의 모임인 '먹는 샘물 협회' 에서 자체적으로 꾸준히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다. 이렇게 마시다 보면 생수가 언젠가 마르지 않을까? 실제 지하수를 퍼 올려 마시는 생수는 지하수 고갈로 원수 확보가 어렵고 동업자 간 경쟁이 심해 도산 업체가 늘고 있다. 평창군 봉평면 등은 인근에 생수공장이 들어서면서, 농업용수가 부족해져 농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래 마시던 지하수도 줄어들었다.
땅 속에 흐르는 물의 주인은 어떻게 가릴까? 물이 강물처럼 흐른다면? 문득 지하수 법이 궁금해졌다. 찾아보고 싶은데, GDC 때문에 공항으로 가야 한다. 좌충우돌 업데이트가 잘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행기 안에서는 물을 많이 마셔야겠다. 거긴 무척 건조한 곳이니까. simon :)
- 1994년 3월 17일 정부 생수 시판 허용